338화 : 5장 들어오는 자는 많아도 실속이 있는 자는 드물다 (1)
잠시 후 북천문의 무인들이 나타나 담척을 압송해 갔다· 전광석화와 같은 일처리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담척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수였다· 그런 고수를 곽문정은 너무나 쉽게 제압했다· 담척을 제압하는 과정 중에 곽문정이 보여준 일검은 너무나 날카로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쉽게 받아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북천문은 엄청나군요· 저런 소년마저 고수라니·”
“그냥 그런 소년이 아닐세· 저 소년이 바로 검룡표라네·”
“검룡표? 설마?”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검룡표(劍龍鏢) 곽문정·
최근 들어 유명해진 신진 고수의 이름이었다· 단순히 신진 고수라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겠지만 곽문정은 달랐다·
진무원이 위기에 처했을 때 홀로 죽음의 관문을 돌파한 이가 바로 곽문정이었다· 당시의 인상이 얼마나 강했는지 천라지망에 동원되었던 무인들 사이에서 곽문정의 이름이 회자되다가 세상에 알려졌다·
용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검법을 펼치던 어린 보표· 그래서 붙여진 별호가 검룡표였다·
이제 곽문정은 단순한 보표가 아니었다· 검룡표라는 별호가 붙은 신진 고수였다· 예전에 칠소천이 그랬듯 강호 정상급의 기재로 당당히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제 검룡표라는 별호를 모르는 강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작 곽문정은 그런 어마어마한 별호에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말이다·
염광설이 곽문정의 손을 잡은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곽 소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런지·”
“은혜랄 것 없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북천문에서 적극 대응할지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언제 한번 꼭 북천문에 초대해 주십시오· 저희 부녀가 소협을 위해 연주를 하겠습니다·”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세요 곽 소협·”
염초하까지 합세하자 곽문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검룡표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뛰어난 성취를 이룬 무인이었지만 이런 식의 반응엔 익숙지 않았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곽문정은 급히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염광설 부녀가 그런 곽문정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이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담척이 북천문에 압송당해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두 사람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방으로 올라왔다· 방문을 닫은 그 순간 부녀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북천문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기강이 잡혀 있는 것이 보통이 아니에요·”
두 사람의 목소리는 방금 전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침착하면서도 차가웠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북천문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래도 검룡표와 인연을 맺어놓았으니 그를 이용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검룡표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더구나· 어떻게 검룡표를 잘 구워삶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빠 저 염초하예요·”
염초하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엔 평범한 악사 부녀로 알려져 있었지만 기실 그들은 흑월과 비슷한 정보 조직에 속해 있었다· 중원의 모든 정보 조직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북천문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처럼 북천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온 정보 조직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야밤에 몰래 침투하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걸려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이럴 경우 북천문 내의 무인들을 포섭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북천문 내의 무인을 포섭하는 데 성공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포섭하려던 자들이 색출되어 목숨을 잃었다·
북천문은 한 치의 허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정보 조직들이 난감해하고 있었다·
염초하는 그런 이들을 비웃었다· 그들은 너무나 고전적인 수법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북천문은 그런 고전적인 수법으로 무너질 만큼 호락호락한 문파가 아니었다· 반면 자신은 이미 검룡표와 접점을 만들었다·
“그를 통하면 분명 북천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확실히 그는 대단해 보이더구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위가 대단해·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분명 강호의 수많은 기재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가 될 거야·”
“그래서 구미가 더 당기는 것도 사실이에요·”
“흐흐! 어쨌거나 이 모든 일은 너에게 달렸다· 잘 부탁하마·”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북검이 북천문에 있는 것은 확실하겠지?”
“그럴 거예요· 아직 그가 밖에 나왔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으니까요·”
“흐음!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정말 소문만큼 대단한 사람인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곧 그렇게 될 거예요·”
염초하가 자신했다·
청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크큭!”
그의 입술이 뒤틀렸다· 그의 얼굴은 볼품없이 말라 있었고 입술은 가문이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얼굴과 전신을 뒤덮고 있는 딱지가 채 마르지 않은 상처들·
양팔은 의자에 묶여 있었고 두 다리 역시 결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빛도 들지 않는 밀실에 갇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크큭! 아주 지독하게 망가졌군·”
지난 열흘 동안 고문을 당했다· 그를 고문한 자는 전문가였다· 어떻게 해야 인간을 효과적으로 망가뜨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청인의 모든 것을 하나씩 망가뜨려 갔다·
만일 청인이 고문을 견디는 수련을 받지 않았다면 진즉에 그에게 굴복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인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고문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망가뜨린다· 정신이 망가진 자는 결코 고문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청인은 정신이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벅!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왔다· 그리고 교묘한 수법으로 청인을 망가뜨려 갔다· 오늘도 그는 청인의 입을 열기 위해 오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허리가 꾸부정한 늙은이가 들어왔다·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입은 늙은이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흉측하게 웃었다·
“흐흐! 잘 잤느냐?”
“큿! 더러운 늙은이· 당신 같으면 이곳에서 잘 수 있겠는가?”
“왜 잠자리가 불편한가? 그렇다면 어서 대답을 하게· 편히 재워줄 테니·”
“영원히?”
“흐흐! 편한 죽음도 복이지· 그렇게 복이 있는 자들이 많지 않아서 문제지·”
늙은이가 히죽 웃었다·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인도부(人屠夫)· 인간 도살자라고·
인도부는 운중천 내에서 인정을 받는 고문 전문가였다· 그는 결코 한 번에 많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다른 방식으로 고문을 했다· 그러면서 고문 대상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즐겼다·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내가 고문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오래 버틴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크큭! 그거 영광이군·”
“하나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오늘 네놈은 반드시 북천문의 비밀을 털어놓게 될 것이다· 흐흐!”
인도부는 탁자 위에 가지고 온 가죽 주머니를 풀었다· 그러자 각종 고문 도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도부는 그중 가장 긴 장침을 꺼내 들었다· 젓가락만 한 굵기의 장침이었다· 표면에는 나선형의 홈이 파여 있는 것이 무슨 예술 작품같이 보였다·
인도부가 장침을 들고 웃었다·
“멸혼침이라는 물건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이지·”
“거참 예쁘게 생긴 물건이군· 그런데 그걸로 이 몸에 고통을 줄 수나 있겠어?”
“흐흐! 직접 경험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흥!”
청인이 애써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멸혼침이 보통의 물건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인도부가 청인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지독한 악취가 느껴졌다· 단순히 씻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껏 몸에 묻힌 수많은 사람의 혈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명이나 고문을 해온 것이냐?”
“흐흐! 아마 네놈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운중천에서 고문이 필요한 경우에는 모두 나에게 보낸다· 내가 맡아 입을 열지 않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늘 너도 입을 열게 될 거야·”
인도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더욱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푸욱!
그가 청인의 가슴에 멸혼침을 쑤셔 박았다·
“끄으!”
청인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얼굴의 핏줄이 모조리 불거져 나왔다· 온몸은 덜덜 떨리고 두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크게 치떠졌다·
멸혼침이 회전을 하며 너무 쉽게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족히 한 자는 되는 멸혼침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주요 장기는 피했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대신 엄청난 고통이 청인의 전신을 엄습했다·
푹!
인도부가 또 하나의 멸혼침을 청인의 몸에 쑤셔 박았다·
“흐흐! 결코 쉽게 죽지 않을 거야· 내가 장담해· 대신 너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고통을 경험할 거야·”
멸혼침은 혈령봉납(血靈封蠟)이라는 물건으로 만들어졌다· 혈령봉납은 저 멀리 남만에서 무리 지어 살아가는 혈령봉이라는 벌의 침에서만 추출되는 귀물이었다· 혈령봉납은 극독의 성분을 함유해 인체에 들어가면 혈관과 뼈를 서서히 녹인다·
인도부는 그런 혈령봉납의 성질을 이용해 멸혼침을 만들었다· 청인의 몸에 박힌 혈령봉납은 이제 서서히 그의 혈관과 뼈를 녹일 것이다·
“끄아아아!”
참다못한 청인이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인도부는 근처에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청인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두 번 다시 사람 노릇을 할 수 없을 거야·”
“끄으! 끄으윽!”
“은류라고 했지? 네놈이 운용하고 있는 북천문의 정보 조직이· 어서 구성원을 털어놓아· 이름만 적으면 멸혼침을 빼줄게·”
“우 웃기지 마·”
“크윽! 정말 지독한 놈이군·”
인도부가 혀를 찼다·
진무원을 탈출시키기 위해 청인은 혼자 남았다· 그는 기회를 봐서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서문세가의 무인들에게 잡혀 운중천에 넘겨졌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상처를 입고 지난 수개월을 혼수상태에 있었다· 운중천에서는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서 정보를 하나라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열흘 전 청인이 마침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운중천은 그를 인도부에게 보냈다· 살려냈으니 정보를 얻어낼 차례인 것이다·
“커헉!”
마침내 청인이 피를 토했다· 그의 가슴 섶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위험한 전조였다·
청인이 혀를 깨물려고 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쿠웅!
갑자기 밀실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순간 청인이 무언가 느낀 듯이 고개를 발작적으로 들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빛이 굳게 닫힌 철문을 향했다·
쿵!
또다시 밀실이 진동했다· 이전보다 강도가 강해졌다· 그제야 인도부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굳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무슨 일이냐?”
“알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무슨?”
인도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크아악!”
철문 밖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도부의 안색이 변했다·
“으악!”
“어서 막아!”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이곳을 지키던 무인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였다·
“누가?”
순간 밀실의 문이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며 쓰러졌다· 인도부가 욕설을 내뱉으며 기형의 고문 도구를 집어 들며 소리쳤다·
“누구냐?”
“여기 있었군요·”
적갈색의 피풍의를 걸친 남자가 밀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혼미하던 청인의 눈동자에 생기가 조금 돌아왔다·
“무 문주님?”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대답을 하는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가 청인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처참하게 망가진 청인의 모습에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문주? 그럼 네가 북천문의 문주인 진무원이냐?”
인도부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진무원의 손가락이 인도부를 향했다·
“컥!”
갑자기 인도부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진무원이 그의 마혈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청인의 몸에 박힌 멸혼침을 모조리 뽑았다· 멸혼침의 나선형 홈에 청인의 살점이 딸려 나왔다·
진무원은 뽑아 든 멸혼침을 들고 인도부에게 다가갔다· 인도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이 일렁였다· 자신이 만들었기에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설마?”
그 순간 진무원이 멸혼침을 인도부의 몸에 찔러 넣었다·
“끄아아아!”
인도부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지만 마혈이 제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무원이 청인을 등에 업으며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죠·”
“집?”
“그래요· 집·”
밀실 밖으로 나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청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무상과 황철 경무생 등 북천문의 주요 수뇌부들이었다·
청인의 눈에 절로 눈물이 고였다· 그러자 경무생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 많았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
그날 운중천의 비밀 뇌옥 하나가 완전히 부서지고 청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