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 4장 봄에 깨어나기 위해 겨울에 잠을 잔다 (3)
북천문이 면양에 개파했다는 소문은 폭풍처럼 퍼져 나갔다· 운중천은 물론이고 밀야까지도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폭풍은 엄청났다·
이미 강호인들 대부분이 운중천에 의해서 북천문이 억울하게 멸문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북천문에 대한 동정심과 향수가 가득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북천문이 다시 현실에 등장한 것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운중천과 밀야의 전쟁으로 혼돈으로 치닫는 천하였다· 거기에 북천문이라는 불씨가 던져졌으니 얼마나 큰 혼돈의 불길이 천하를 집어삼킬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북천문의 재등장은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었다· 운중천 밀야를 비롯한 수많은 문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쾅!
믿지 못할 소문에 관대승이 의자의 팔걸이를 내려치며 일어섰다·
“이럴 수가! 북천문이 개파를 하다니· 그것도 사천성에서·”
관대승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최악이 상황이었다· 진무원이 불같은 명성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북천문의 개파라니· 운중천의 총관인 그로서는 제대로 허를 찔린 상황이었다·
“설마 숨어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니· 더군다나 개파를 했다하면 이미 온전한 전력을 구축했음이 아닌가?”
문득 그의 시선이 왼쪽 어깨를 향했다· 허전했다· 삼 년 전 진무원에게 팔을 잃었다· 상처는 나았지만 고통은 아직도 때때로 그를 괴롭혔다·
“진무원! 역시 그때 없앴어야 했는데·”
관대승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진무원을 죽이기 위해 천라지망을 펼친 것이 벌써 두 번째다· 그때마다 진무원은 그를 희롱이라도 하듯이 유유히 사라졌다· 한 번은 죽음으로 위장을 했고 또 한 번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서·
그런 진무원이 이번엔 대놓고 사천성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북천문과 함께· 관대승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게 진짜인가? 정말 진무원이 면양에 북천문을 개파한 것이 맞는가?”
“확실합니다·”
순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백포를 입은 남자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관대승의 심복인 추월이었다·
“어떻게 우리가 북천문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었지?”
“밀야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대부분의 인원이 북방으로 파견 나갔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사천성은 특유의 폐쇄적인 지형 때문에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도 당문과 청성파 아미파가 확고히 자리를 잡은 사천성에 북천문이 들어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대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추월의 말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진무원 감쪽같이 천하의 눈을 속였군· 설마 사천성에 숨어 힘을 기르다니· 어떻게 사천성에서 개파를 한 거지? 당문이나 청성 등이 그렇게 쉽게 허락해 줄 리 없을 텐데·”
“무언가 암중 거래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허면 사천무림의 세 축인 당문과 청성 아미는 북천문과 뜻을 같이한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렇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운중천과 밀야의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지금 사람들은 옛 북천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밀야의 침공을 북방에서 홀로 막아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천문의 부활은 많은 이의 향수를 자극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운중천에서 이탈한 자들이 북천문에 합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력을 동원해서 북천문을 칠 수도 없으니····”
북천문을 치겠다고 병력을 동원했다가는 밀야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명분도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관대승은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면양에 간자들을 투입해서 놈들의 정황을 면밀히 살피도록·”
“그것이····”
“왜 그러는가?”
“그러려면 북방에서 전력을 빼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구나 지금은 겨울· 관도가 눈으로 막혀 있고 수로로 이동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겁니다· 지금 간자들을 파견해도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한 달이면 놈들이 면양에 확고히 자리를 잡아서 허점을 파고들기가 더 힘들어질 텐데·”
“그렇습니다· 정말 교활한 놈들입니다· 그들은 한겨울에 개파를 선언함으로써 시간을 벌었습니다·”
“어쨌거나 최대한 빨리 면양으로 간자들을 투입할 방법을 찾도록· 나는 그분을 뵙고 오겠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관대승이나 대답하는 추대승 모두 개운치 않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눈은 금세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 ☆ ☆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하게 추웠다· 눈도 예전보다 많이 내려 사천성으로 통하는 모든 관도가 막혔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사천성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한겨울을 나야 했다·
사천성으로 통하는 관도가 다시 뚫린 것은 겨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직 코끝이 시릴 만큼 바람이 찼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기온이 높아졌다·
눈이 어느 정도 녹고 관도가 뚫리자 사천성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이가 들어왔다· 면양에도 상당히 많은 이가 들어왔다· 그 때문에 면양은 때아닌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북천문이 자리를 잡으면서 경기가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봄이 되면서 외부의 사람들마저 많이 들어오니 이제는 방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면양에 들어온 이들 중에는 무림 명문의 제자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면양에 개파한 북천문에 호기심을 갖고 들어왔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 중에서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이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 이 정도면 이곳도 소강호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주위 풍경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리는 소녀가 있었다·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머리와 활기가 넘치는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북천문 때문에 면양이 활기에 차있다더니 정말이구나·”
소녀의 곁에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등에 차고 있는 비파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비파 하나만 들고 강호를 주유하는 악사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유랑 악사도 모여들게 마련이다·
소녀는 북천문의 전경을 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부락산을 등지고 서 있는 북천문의 위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높다란 담장 위로 삐쭉 솟아오른 전각군의 위용은 악사 부녀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북천문의 정문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수레에 짐을 싣고 온 상인이었다· 북천문은 규모가 엄청난 만큼 하루에 소모되는 물자도 엄청났다· 그 때문에 매일같이 많은 물건을 사들여야 했다·
“엄청나구나· 신생 문파에 이 정도의 물자가 소요되다니·”
“진 문주가 대단한 사람이라더니 정말인가 봐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런 문파를 만들어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저 안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요?”
“경계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니구나· 자칫 가까이 갔다가 치도곤을 당할지 모르니 아예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겠어요·”
악사의 단호한 대답에 소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림인들이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잘 알기에 아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악사의 손에 이끌려 인근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 수많은 이로 시끌벅적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무기를 소유한 무인들이었다·
삼삼오오 탁자에 모여 앉은 그들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주제는 바로 북천문이었다· 악사와 소녀는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두 사람은 간단하게 요리를 주문한 후 담소를 나눴다· 그들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부잣집의 초대를 받아 연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부잣집의 가장 연장자인 노마님의 아흔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초대받았던 것이다·
악사의 이름은 염광설 소녀의 이름은 염초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떠돌며 연주하는 악사 부녀였다· 아비 염광설이 비파를 연주하면 딸 염초하는 노래를 부른다· 염광설의 비파를 탄주하는 솜씨도 훌륭하지만 염초하의 목소리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부녀가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이봐! 그거 비판가?”
갑자기 거친 음성이 그들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드니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염광설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맞습니다만·”
“크! 잘됐군· 어디 연주 한번 해봐·”
“예?”
“악사라며? 그러니까 연주 한번 해보라구· 듣게·”
“그게····”
염광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악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 데서나 연주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인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왜? 연주하기 싫어? 공짜로는 연주하지 않는다 이건가?”
무인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동전 한 닢이 염광설의 발치에 떨어졌다·
“됐지? 그럼 연주해·”
순간 염광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었다· 아무리 예인이 천시를 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들을 모욕한 이는 없었다·
그때 염초하가 앞으로 나섰다·
“죄송하지만 지금 다른 곳에서 연주를 하고 와서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주를 못하겠다는 거야? 돈을 받아먹었으면 연주를 해야지·”
“저희가 언제 돈을 받았다고?”
“줬잖아· 거기 발밑에 안 보여?”
무인이 염광설의 발아래 나뒹굴고 있는 돈을 가리켰다· 감당할 수 없는 모욕에 염초하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런 염초하를 보며 무인이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제법 예쁜 계집이네· 계집 어디 이 어르신을 위해 노래나 한번 해보려무나·”
무인은 염초하의 가냘픈 몸을 끌어당겨 억지로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염초하는 바둥거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왜소한 소녀가 무공을 익힌 무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 딸을 건들지 마시오·”
보다 못한 염광설이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쾅!
“컥!”
하지만 그는 무인의 주먹질 한 방에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바랐지만 누구 한 명 나서지 않았다· 염광설은 모르지만 그의 딸을 희롱하는 무인은 강호에서 성격이 더럽기로 꽤나 유명한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금사광웅(金沙狂熊) 담척·
사천성과 가까운 귀주성 금사(金沙) 지역에서 활동했던 무인이었다· 미친 곰처럼 성격이 폭급하고 한번 눈이 돌아가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날뛴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가 바로 금사광웅이었다·
담척은 북천문이 사천성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 자신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담척이 염초하를 껴안으며 음소를 터뜨렸다·
“흐흐! 저항하지 말거라· 이 어른이 곧 북천문에 들어가게 되면 너 역시 호강하게 될 테니까· 이번 기회에 아예 이 어른의 첩이 되는 게 어떻겠느냐?”
“시 싫어요·”
“그렇게 앙탈을 부리니 더욱 귀엽구나·”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염초하가 외쳤지만 객잔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담척이 북천문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정말 북천문에 들어간다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내는 꼴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염광설 부녀를 외면할 때였다·
“그 아이를 놔줘요·”
갑자기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뭐?”
갑작스러운 방해꾼의 등장에 담척이 눈을 치떴다· 그러자 낯선 소년이 보였다· 이제 겨우 십오륙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팔짱을 낀 채 그를 한심하단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넌 뭐냐?”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이곳에서 연약한 소녀를 괴롭히는 겁니까?”
“나? 나는 곧 북천문에 입문할 몸이다·”
“북천문이 당신을 받아준다고 하던가요?”
“뭐? 당연하지 않느냐? 나처럼 무공이 고강한 고수를 받아주지 않을 문파가 어디 있느냐? 북천문이라고 다를 줄 아느냐?”
“이제 보니 제대로 미친 곰새끼였구나· 혼자 망상이나 하고 있다니·”
“뭐?”
담척은 예상치 못한 소년의 독설에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화를 폭발시키며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내 네놈의 허리를 똑 분지르마· 그래도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보겠다·”
담척은 양손을 벌려 소년의 허리를 움켜잡으려 했다· 그 순간 소년의 검이 섬전처럼 뽑혀 나왔다·
쉬악!
소름끼치는 소음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어 어?”
담척이 손을 뻗다 말고 두 눈만 꿈뻑거렸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츄확!
순간 그의 어깨에서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어느새 소년의 검이 그의 어깨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크악!”
담척이 비명을 내지른 순간 소년의 손이 그의 마혈을 제압했다·
“뭐 북천문에 들어간다고? 북천문이 당신 같은 자들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싸늘하게 말하는 소년은 바로 곽문정이었다·
북천문이 개파를 하면서 그 이름을 팔고 패악질을 부리는 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 때문에 곽문정을 비롯한 북천문의 고수들은 그런 자들을 응징하고 있었다· 지금 확실히 잡아놓지 않으면 그런 이들이 북천문의 명성에 먹칠을 할 것이기에·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담척에게 잡혀 희롱을 당했던 염초하가 곽문정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곽문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몽롱하게 풀어져 있었다·
“소협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그게····”
곽문정이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