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 1장 호랑이가 상처를 입으면 늑대들이 물어뜯는다 (2)
쉬이잉!
강력한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말과 마차를 단숨에 두 동강이 내버렸다· 두 동강이 난 마부의 시신과 함께 사방으로 마차의 파편이 비산하였다·
“비어 있군·”
검기를 날린 자가 빈 마차를 보며 중얼거렸다·
암연무검(黯然武劍) 경방혼이 그의 이름이었다· 그는 점창파의 장로로 부현에 머물고 있는 점창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가 제자들을 이끌고 진무원의 추적에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윤주천의 복수 때문이었다·
진무원이 부현 지부에서 난동을 부리는 과정 중에 현무대주 윤주천이 죽었다· 윤주천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간에 점창파 입장에서는 굉장히 소중한 인재였다·
자파의 제자가 살해당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복수하는 것이 구대문파의 불문율이다· 만일 진무원이 멀쩡했다면 일말의 고민이라도 했을 테지만 지금 그는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반드시 그를 죽여 점창파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했다·
점창파의 제자들이 속속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제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이 마차가 아닌 모양입니다·”
“다른 마차는?”
“이 마차까지 포함해 두 대의 마차를 잡았는데 모두 비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세 대의 마차에 놈이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대나 빠져나갔단 말이냐?”
“의표를 찔린 모양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차는?”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좋아! 우리는 그 마차를 쫓는다·”
경방혼이 남서쪽으로 달려가자 점창파의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 추적전이 섬서성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진무원으로부터 시작된 파란은 부현은 물론이고 섬서성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진무원은 눈을 감은 채 운공을 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마차 안이라 운공에 몰두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지금 그의 몸 안에서는 담수천이 남긴 성광기의 잔재와 그림자 내력이 힘을 겨루고 있었다·
모든 사마(邪魔)의 극성인 성광기는 엄청난 항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도 성향의 무공을 익힌 자들에겐 상극이나 다름없었다·
진무원이 익힌 그림자 내공은 마도 계열의 내공은 아니었지만 이면에 스며드는 특유의 성질상 성광기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담수천과 겨루면서 진무원은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상성상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단순히 성광기를 소멸시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성광기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광기는 쉽게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진무원의 내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이 이상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진무원은 만영결을 운용해 성광기를 자극했다· 그러자 성광기가 크게 반발했다· 성광기가 강력한 빛을 뿌리는 태양처럼 위세를 떨치자 그림자 내공이 주춤했다· 역시 상성상의 문제였다·
진무원과 담수천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무원의 몸 안에서 그들의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운공을 하는 진무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전신에서도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전신의 뼈가 모조리 부서지는 듯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진무원은 운공을 멈추지 않았다·
인고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래도 진무원은 걱정하지 않았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십 년도 더 오래전에 북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부터 그는 인내하며 시기를 기다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청인과 곽문정이 얼마나 더 견뎌주느냐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들을 믿었다· 그들과 함께해 온 삼 년의 시간을 믿었다· 그들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믿음에 부응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진무원은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며 심상의 세계로 함몰해 갔다·
“크윽!”
곽문정이 신음성을 흘렸다·
그가 왼쪽 어깨를 바라보자 깊은 자상이 보였다· 뼈가 거의 드러날 정도의 깊은 검상이었다·
곽문정은 급히 지혈산을 뿌렸다· 하얀 가루가 상처에 닿자 거품이 일어났다· 지독한 고통에 곽문정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인내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시자 옷의 소매를 잘라 대충 동여맸다· 지혈이 되자 그가 전방을 바라봤다·
청인이 싸우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꺼내는 일이 없는 독문무기인 현월비(玄月匕)를 들고 은밀히 적들을 암살하는 그의 모습은 유령을 연상케 했다·
곽문정이 상처를 치료하는 사이 그가 나서 싸우는 것이다· 대신 곽문정은 마차를 몰고 있었다·
한 명이 다치거나 지치면 다른 한 명이 나서는 그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유기적이어서 체력을 보존하는 데 탁월했다·
“휴우!”
곽문정이 잠시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시체가 길을 따라 널브러져 있었다· 반나절 동안 그와 청인의 손에 죽은 무인들의 수만 예순 명이 넘었다· 평생 손에 묻힌 피보다 반나절 동안 손에 묻힌 피가 훨씬 많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피의 낙인이 찍혔다· 어쩌면 이날의 기억을 가지고 평생 괴로워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멈출 수 없었다·
자신과 청인이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진무원의 목숨도 북천문의 부활도·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무사히 이곳을 탈출할 방안을 강구했다·
싸우는 와중에도 머리를 굴렸고 마차를 몰면서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교대로 싸우고 휴식을 취하며 온전히 전력을 보존했다·
마차를 몰면서도 곽문정은 생각했다·
‘일각 전부터 이곳에 전력이 집중되고 있다·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동원한 마차들 대부분이 적들에게 저지되었거나 제압당한 것이 분명하다· 남은 마차가 몇 대인지 모르겠지만 그들마저 당하는 순간 이곳에 모든 전력이 몰려들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들이었다· 어떻게든 단시간 안에 저들을 돌파해야 했다·
“후우!”
그때 적들을 모두 처리한 청인이 마차로 돌아왔다·
평상시라면 넉살이 가득할 그의 얼굴에 근심이 한 가득이었다· 그 역시 적들의 전력이 이곳에 집중되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방법을 바꿔야겠어·”
“어떻게요?”
“마차를 버려야겠어·”
“그럼?”
“네가 주군을 업고 가거라·”
“아니에요· 제가 막을 테니 차라리 형이 가는 것이····”
“그럼 너는 분명히 죽는다·”
“하지만 형이 맡아도 똑같잖아요·”
“아니 달라· 나 혼자라면 살아남을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잊었냐? 나 청인이야· 어떠한 경우에도 내 목숨 하나는 보존할 수 있어· 하지만 너는 달라·”
“크윽!”
곽문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인하려 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란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청인은 각종 편법과 임기응변에 강했지만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었다·
“너는 이대로 앞으로 내달려· 나는 적당히 놈들을 막다가 다시 합류할 테니까·”
“알겠어요·”
결국 곽문정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청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설령 잘못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절대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다·”
“형!”
“놈들이 나타났다· 준비해·”
청인의 말에 곽문정이 앞을 바라봤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무인들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전까지 막아선 무인들과 달리 그들의 몸에서는 사나운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운중천의 정예 무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오늘 제대로 몸을 풀겠군·”
하지만 오만한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정보를 담당하는 은류의 수장답게 한눈에 저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탓이다·
‘서문세가의 개들·’
서문중일이 이끄는 서문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서문세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우상인 서문화를 진무원의 손에 잃은 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살기가 벌써 피부를 저릿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청인은 어쩌면 여기에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태상가주를 잃어 독기가 잔뜩 오른 그들을 상대로 무사히 몸을 빼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주군을 따르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언제고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예상했다· 최선을 다한다· 죽고 사는 것은 그 후의 문제다·’
그가 현월비를 꺼내들었다·
그사이 곽문정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 진무원을 업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운공 중에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테지만 곽문정은 진무원을 믿었다·
“형! 제가 업을게요· 조금 흔들릴지 모르지만 참아줘요·”
곽문정은 진무원을 등에 업은 후 긴 천으로 자신과 그의 몸을 꽉 동여맸다·
그때였다·
쾅!
갑자기 굉음과 함께 강렬한 충격이 마차를 덮쳤다· 그 순간 곽문정은 마차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수풀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곽문정이 흘깃 청인을 바라봤다· 그 순간 청인도 곽문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인의 입가에는 한 줄기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곽문정은 그의 미소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믿는다·’
곽문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문중일이 이를 갈았다·
“역시 이 마차에 타고 있었구나 진무원·”
비록 찰나에 불과했지만 서문중일은 곽문정의 등 뒤에 업힌 이가 진무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놈을 추적하라· 반드시 태상가주님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존명!”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곽문정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일제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벽에 가로막혔다·
청인이라는 이름의 벽에·
“나를 넘기 전에는 절대 주군에게 갈수 없다·”
쉬쉬쉭!
청인이 날린 비수에 서문세가의 무인들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기백에 질린 서문세가 무인들이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청인을 향해 파상 공세를 펼쳤다·
“크읏!”
청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월비를 이용한 그의 무공은 은밀한 기습이나 일대일의 대결에 유용했다· 이런 백주대낮에 다수를 상대하는 싸움은 그에게 무척 불리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덤벼라· 서문세가의 샌님들아· 진짜 싸움이 뭔지 보여주마·”
청인이 유령처럼 서문세가 무인들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목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어느새 현월비가 그들의 숨통을 끊은 것이다·
“놈!”
보다 못한 서문중일이 청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손에서 서문세가의 독문무공 중 하나인 붕산수(崩山手)가 펼쳐졌다·
쾅!
“큭!”
붕산수는 이름 그대로 산을 무너뜨릴 만큼 강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의 강렬한 일격을 현월비로 막은 청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단 한 번의 격돌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겨우 이 정도냐? 서문세가의 무공도 별거 아니구나· 그러니 태상가주도 우리 주군에게 뒈졌겠지· 하긴 맨날 책상머리 앞에서 음모만 짜는 놈들이 무슨 대단한 무공을 익혔을까?”
하지만 청인은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
그의 도발에 서문중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죽은 주군을 모욕하는 청인에게 분노한 것이다·
서문세가의 무인들은 이성을 잃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머리를 쓰는 가문답게 항상 모든 상황을 이성으로 판단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서문화를 모욕하는 청인의 말에 이성이 싹 날아가고 말았다·
“놈을 죽여랏·”
“우와아아!”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이성을 잃고 청인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청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의도대로 상당수의 서문세가 무인들의 발을 붙잡아두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이뤘기 때문에 후회 따윈 없었다·
“이야아아!”
청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서문중일과 서문세가 무인들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무공을 토해냈다·
수많은 무인들이 죽고 청인의 몸 또한 그들의 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추적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