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 7장 하늘의 그물은 생각보다 촘촘하다 (3)
우태천 등이 숨을 죽이고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살천랑(殺天郞) 하늘을 죽인 남자·
천하에 수많은 고수들이 존재하지만 그 이름만큼 충격을 주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홉 하늘의 일인인 적엽진인을 죽이면서 충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절대의 무인· 그가 왜 적엽진인을 죽였는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적엽진인을 죽인 후 그는 신비롭게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살천랑이라는 가공할 별호뿐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서문화는 단천운이 살천랑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우태천이나 설공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무원은 침묵을 지킨 채 서문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없이 깊고 유현한 눈빛 하지만 서문화에겐 무척이나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진무원은 모든 것이 들통났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우기는 것은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난 귀제갈일세· 이 정도로 나의 눈을 속이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우습게 본 거지·”
서문화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때 서문혜령이 진무원을 향해 다가왔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접근해 온 거죠? 적엽진인과 마령제는 왜 죽인 건가요?”
“····”
“아홉 하늘의 둘을 죽일 정도의 무공이라면 정당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어도 능히 위명을 떨쳤을 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은밀히 그들을 죽였다는 것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있다는 뜻· 아닌가요?”
서문혜령의 말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뛰어난 두뇌와 날카로운 직관력이 결합되어 진실에 가까운 추리를 했다·
진무원은 그런 서문혜령에게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혜령이란 날개를 단 담수천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서문혜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도 느낀 거지만 진무원의 모습은 무척이나 익숙했다· 단지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가 지닌 독특한 기질과 분위기를 어디선가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저와 같은 자를 본적이 있다· 그는····’
그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이름 하나·
“설마 진무원?”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그 어떤 근거도 없다· 그저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일단 진무원을 떠올리자 모든 정황이 딱 맞아떨어지며 머릿속을 장악했던 짙은 안개가 싹 걷혔다·
때로는 여자의 직감은 중간 과정을 뛰어넘어 진실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서문혜령에게 일어났다·
서문혜령의 말을 들은 서문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무원’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맴돌았다·
‘진무원은 분명 삼 년 전에 죽었지 않았던가? 그는 만장절벽에서 떨어져 시체도 찾지 못할····’
순간 그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시신을 찾지 못했다? 그 말은 곧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처음에 보고를 받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원래 믿고 싶은 사실만 믿는다· 근거가 부실하면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스스로 믿고 싶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서문화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고 그래서 서문세가의 제자들에게도 항상 그런 것들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막상 자신 역시 그런 실수를 하고 있었다·
서문화의 눈빛이 변했다·
“정말 진··· 무원인가?”
그의 음성이 덜덜 떨려 나오고 있었다·
만일 서문혜령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천하가 격동할 일이다· 진무원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단천운과 살천랑이 그의 다른 모습이라니·
당금 강호를 쩌렁쩌렁 호령하고 있는 젊은 영웅들이 정말 전부 진무원의 화신이라면 운중천은 그의 손에서 놀아난 꼴이다· 서문화는 차라리 서문혜령의 짐작이 틀리길 빌었다· 정말 단천운이 진무원으로 드러나면 그때 느낄 굴욕감과 비참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진무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이 거세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정말 서문혜령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강호 최대의 비밀을 엿보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생각을 정리한 진무원이 고개를 들었다·
뚜두둑!
순간 진무원의 얼굴 근육이 이리저리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런 진무원의 모습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으음!”
마침내 진무원이 본래의 얼굴을 되찾았을 때 서문혜령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설마 했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진··· 소협·”
“진무원·”
곳곳에서 경악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단지 얼굴이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것이 변했다·
기도 분위기 그리고 일대를 장악하는 가공할 존재감까지·
삼 년 전 북검이라는 별호로 강호를 질타했던 진무원의 진실 된 모습에 우태천 등은 그만 숨을 죽이고 말았다·
단순히 자신들보다 조금 더 강한 후기지수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질시도 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감히 그가 가늠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살천랑이라는 별호 하나만으로도 놀라 까무러칠 지경인데 북검이라는 위대한 별호까지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또 극의에 달할 수 있는지 불가사의했다·
“진무원!”
서문화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고 꽉 쥔 주먹에는 굵은 힘줄이 지렁이처럼 불거져 나와 있었다·
진무원은 운중천 최대의 위험 요소였다· 운중천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의 상징성에 비하면 가공할 무력은 두 번째 문제다·
아직도 강호에는 진무원과 북천문을 추억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진무원이 강호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 동조할 확률이 높았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사안이 커져도 너무 커졌다·
단순히 적엽진인이나 현현소를 죽인 자를 처단하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운중천 최대의 적이 부활해서 눈앞에 있다· 지금 반드시 그를 제거해야 했다·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서문세가와 운중천의 무인들은 모두····”
“잠깐!”
서문화가 총공격령을 내리려는 순간 낯익은 음성이 끼어들었다·
나직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묵직한 목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월동문을 지나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당당한 체구에 사자의 기세를 흩뿌리는 남자는 바로 담수천이었다·
그의 등장에 서문화와 서문혜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부러 담수천에게 비밀로 한 일이었다· 그의 성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
서문혜령이 불렀지만 담수천은 무심히 그녀를 지나쳤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수··· 천·”
담수천의 눈을 순간 서문혜령은 뻗었던 손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순수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빛이 향한 곳에 바로 진무원이 서 있었다·
담수천이 진무원의 앞에 섰다· 그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역시 진 소협 아니 진 형이었구려·”
“담 형에겐 죄송합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렇지 않을까 추측했지만 확신할 수 없기에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오·”
“그렇군요·”
진무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수천의 몸에서는 패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함에 대한 열망 정상을 오르기 위한 야망 그 순수한 감정을 모를 진무원이 아니었다·
담수천은 입장과 신분을 떠나서 진무원과 싸우길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담수천과 달리 여유롭게 싸울 형편이 아니었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이곳은 적진이나 마찬가지였다· 보이는 모든 이가 모두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가하게 담수천과 누가 더 강하냐를 놓고 싸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담수천을 넘지 않고서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홉 하늘 중 한 명인 서문화 창룡검제를 이긴 담수천 그리고 십자혈마공을 익힌 조운경까지····’
거기에 얼마나 더 많은 병력이 자신을 잡기 위해 투입될지 알 수 없었다·
진무원이 담수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를 막을 겁니까?”
“지금이 아니면 진 형과 싸울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진무원이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수천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란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편 담수천의 등장에 서문화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문에 진무원을 합공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담수천은 반드시 그 혼자만의 힘으로 진무원을 상대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비록 아홉 하늘의 일원이라지만 담수천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담수천 역시 순수 무력으로 아홉 하늘의 일원인 창룡검제 비사원을 누른 절대 강자· 그가 고집을 부린다면 존중을 해줘야 했다·
서문화가 서문혜령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단 수천이 놈을 상대하도록 해라· 그사이 우리는 천라파멸진을 준비한다·]
‘하나 천라파멸진은····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다·]
서문화의 강경한 말에 서문혜령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라파멸진은 서문세가 비전의 진법이다· 거기다 삼중 사중의 포위망이 또 겹쳐져 있다· 결국 진무원이 이곳을 빠져나갈 확률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 순간 담수천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독문 무공인 성광류(聖光流)를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무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담수천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기린아였다·
그를 상대하려면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진무원은 그림자 내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도 은은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담수천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다·
진무원은 그가 유일하게 적수로 인정하는 젊은 무인이었다· 그는 항상 진무원과 싸우는 순간을 고대해 왔었다· 오늘은 꿈이 이뤄지는 날이었다·
휘류류!
성광기가 그의 몸을 휘돌았다·
“아!”
“저것이 성광기?”
마치 천신이 강림한 듯 신비로운 모습에 모두가 탄성을 내뱉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담수천이었다·
대지를 박찼다 싶은 순간 담수천은 어느새 진무원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후웅!
담수천의 주먹이 진무원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진무원이 단봉을 휘둘렀다·
까앙!
쇳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두 사람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담수천의 손가락이 허공을 긁는가 싶더니 빛 무리가 진무원의 눈앞에서 터졌다· 강렬한 빛에 진무원의 눈이 잠시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겐 전방위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단봉이 담수천의 겨드랑이를 노리고 날아갔다· 담수천은 팔을 접어 겨드랑이를 보호하며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몸이 팽이처럼 돌아가더니 오른발이 채찍처럼 튀어나왔다· 원심력에 유연함이 더해져 파괴력이 극대화됐다·
예상치 못한 담수천의 발길질에 진무원은 단봉으로 전신을 보호했다·
콰앙!
엄청난 충격에 진무원의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담수천이 그런 진무원을 따라붙었다· 순간 진무원이 신형을 뒤집더니 단봉을 상하로 그었다·
스가악!
담수천의 옷자락이 잘려 나갔다· 멈추는 것이 조금만 늦었으면 옷이 아니라 가슴이 잘려 나갈 뻔했다·
진무원의 검술은 매우 독특했다· 검강은커녕 검기를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날카로웠다· 더군다나 그의 무기는 날카로운 검이 아닌 뭉툭한 단봉이었다· 믿을 수 없는 무위였다·
“좋구나!”
담수천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치며 진무원을 향해 연이어 십이 권을 내질렀다·
콰르르릉!
엄청난 경력이 담긴 주먹질에 공기가 떨리며 뇌성이 울려 퍼졌다·
진무원은 단봉으로 담수천의 경력을 하나씩 해소해 나갔다· 만일 직접 만든 단봉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부서졌을 만큼 담수천의 일격에 담긴 힘은 엄청났다·
두 사람의 격돌 여파는 방원 오십여 장에까지 미쳤다· 그 때문에 근처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무인들은 급히 뒤로 물러나야 했다·
“저 저게 인간의 싸움?”
“북검과 무제 저들은 이미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벗어났구나·”
두 사람의 대결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와 감이 가진 묘리를 최대한 풀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펼치는 단순한 초식이 바로 신공절학이 되었다·
“으하하!”
담수천이 웃었다·
드디어 전력을 다해도 될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몇 번의 손속을 교환함으로써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상대는 그야말로 호적수라고 불러도 될 인물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성광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