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3장 젊은 용들은 새로운 하늘을 꿈꾼다 (1)
진무원은 북천문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의 바다가 보였다·
진무원이 손을 뻗었다· 별들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았다· 손을 오므렸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무원은 피식 웃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웃음이 잦아졌다· 진무원은 그 이유가 은한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보면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 덕분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이 들자 이별이련가?’
그때였다·
진무원의 감각에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스슥!
마치 안개처럼 소리도 없이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무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대가 품고 있는 미세한 살기가 아니었다면 감지조차 못했으리라·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살기가 꼭 독이 잔뜩 오른 살무사 같았다·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심원의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심원의가 이제 와서 다시 진무원에게 살기를 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담수천이나 서문혜령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살기의 주인이 진무원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마치를 먹이를 사냥하기 전에 관찰을 하는 살쾡이처럼 은밀하게 진무원을 지켜보는 것이다·
진무원은 두렵다는 생각보다 신기하다는 감정을 먼저 느꼈다· 분명 상대는 자신보다 고수였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지만 육안으로는 형체조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은신술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진무원의 감각에는 그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림자 내공 때문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어둠 속에서 기감이 더 예민해지는 느낌이다·
상대는 진무원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챈 걸 모르는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진무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상대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과 대응할 수 있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더구나 진무원은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만일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미지의 존재가 정말 심원의나 담수천이 보낸 존재라면 무공을 드러낼 수 없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무공을 익힌 흔적을 드러내지 않아서이니까·
진무원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와서 무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테니까·
어차피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견딘다·’
결과가 어찌 되든 또 참고 인내한다· 그것이 진무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진무원은 상대가 습격해 오길 기다렸다·
긴장으로 전신 근육이 뻣뻣해지고 신경이 곤두섰다· 그만큼 상대의 존재감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상대가 살기를 품은 것은 분명한데 공격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금 그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인데도 말이다·
‘관찰하는 건가?’
진무원은 심원의가 보낸 자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심원의 성격에 또다시 시험하거나 관찰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장패산 패거리도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은밀하지 못하니까·’
진무원은 가능성이 있는 전제를 하나씩 떠올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과 맞지 않았다·
‘운중천이 아니라면····’
그 순간 떠오른 이름 하나·
‘한설?’
현재 북천문에 들어와 있는 이들 중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바로 은한설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은한설은 아니었다· 은한설의 느낌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은한설과 비슷하지만 또 그와는 다르다·
‘한설은 아니지만 동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진무원은 자신의 느낌이 거의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
갑자기 피부가 뜨끔거렸다· 적의 살기가 강해진 것이다·
‘어쩌면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낸 것인지도····’
죽이려 했으면 벌써 죽였을 것이다· 현재 진무원은 무방비 상태니까· 그런데 놈은 은밀히 살기만 보내올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고··· 인가?’
무엇에 대한 경고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은한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진무원의 후각을 자극하는 미약한 향기 하나·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리는 찰나 그의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휘청!
긴장이 풀린 진무원이 비틀거렸다·
그의 전신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절대··· 절대 잊지 않겠다· 오늘의 이 느낌을 이 굴욕을····’
상대는 경고를 보냈을지 모르지만 진무원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또한 자양분이 되어 그의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
“그르륵!”
남자가 피거품을 게워 올리며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의 가슴엔 누군가의 굵은 팔뚝이 꽂혀 있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의 얼굴을 보려 했다·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동체와 얼굴을 가리는 봉두난발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광기 어린 붉은 눈동자의 거한· 금방이라도 삭아 바스러질 것 같은 회색 장포가 불어오는 바람에 미친 듯 흔들리고 있었다·
“크흑! 호 혼돈의 마인 어떻게 당신이····”
혼돈의 마인이라 불린 자가 대답 대신 남자의 몸을 관통한 팔을 들어 올렸다· 그는 가슴을 관통당한 남자가 고통에 두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절정의 무인이었다· 강하고 똑똑했으며 누구보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빛나는 눈동자의 소유자였지만 죽음 앞에서 그의 생명의 빛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혼돈의 마인은 그런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그의 광기 어린 눈빛은 죽음을 앞둔 남자에게 극심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잠시 후 남자의 몸이 푸들거리더니 숨이 끊어졌다· 그제야 혼돈의 마인이 흥미를 잃은 듯 손을 휘둘러 그의 몸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재미없군· 조금은 더 발악할 줄 알았건만·”
그의 눈에서 차츰 광기가 사그라졌다·
그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초토화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서 초연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보이는 처참하게 죽은 자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목표를 추적해서 사냥한 후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 그보다 능숙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한번 손을 쓰면 광기가 폭발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멸절한 후에야 이성을 찾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혼마(混魔) 혹은 혼돈의 마인이라 불리는 남자의 이름은 태무강이었다·
태무강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회색 무복을 입은 일단의 무인이 다가왔다· 그들의 수는 모두 십여 명· 하나같이 태무강과 비슷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태무강 휘하의 무인들이었다·
일명 회혼랑(灰混狼)·
태무강의 광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수족들이다·
통제 불능의 회색 늑대들은 오직 태무강에게만 충성을 바치고 그의 명령만을 받는다· 그들도 태무강처럼 타인의 피로 전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회혼랑 중 한 명이 태무강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모두 정리했습니다 주군·”
“다음은?”
“북천문입니다·”
“북천문?”
“그곳에 그녀가 은신해 있답니다·”
“고 맹랑한 꼬맹이가 허를 찌르는군· 설마 거기 숨어 있을 줄이야·”
태무강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