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 6장 옛 인연이 이어지나,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2)
하진월은 팔짱을 낀 채 북천문의 전경을 바라봤다·
짧은 시간 동안 북천문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제대로 된 전각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고 유입되는 무인들의 수 또한 예전에 비할 수 없이 늘어났다·
규모가 커지니 자연 소비되는 물자 또한 많아졌다· 그 때문에 북천문에 물자를 공급하는 백룡상단 역시 뻔질나게 이곳을 드나들었다·
“이제 거의 한계인가?”
그동안 철저히 북천문의 존재를 감췄다· 무인들의 외부 출입을 삼가게 하고 백룡상단에서도 믿을 수 있는 인물들로만 이곳에 드나들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노력도 한계에 달했다·
아미파와 청성파 당문의 무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에 드나들고 있었다· 그들도 보안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워낙 많은 이들이 드나들다 보니 조금씩 뒷말이 흘러나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어찌어찌 막고 있지만 북천문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문제는 운중천이 그 사실을 언제 아느냐였다· 지금 당장이야 밀야와의 전쟁 때문에 사천성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지만 북천문을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아직 많이 모자라는데·”
그가 원하는 전력의 칠 할도 올라오지 않았다· 비밀을 유지하려 은밀히 일을 진행하다 보니 모든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이 못내 아쉬운 하진월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어떻게든 전력을 더 끌어 올려야 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기존에 북천문에 합류한 무인들과 새로 합류하는 무인들의 화합이 잘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지라 옛 북천문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북천문의 단결력만큼은 여느 문파 못지않았다·
아미파나 청성파 당문에서 파견 나온 무인들은 그런 북천문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 문파 모두 밀야에 의해 혈겁을 당했기에 뿌리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들의 독기는 결코 북천문의 무인들에 뒤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된다· 조금만 더 버티면 완전한 전력이 구축될 거야·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하진월이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자신이 노력을 하면 어떻게든 일반 전력은 더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초절정 이상의 고수였다·
현재 북천문에서 초절정 이상의 고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문주인 진무원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풍제 경무생과 무주 마도광 검주 소무상 그리고 황철 정도가 다였다· 경무생은 이미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고 마도광 역시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소무상은 근래 대단한 깨달음이 있어 한 단계 진일보했다·
풍운번주 능군휘는 아직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활독당주인 당기문은 무공을 거의 몰랐다· 가장 확실한 전력인 은한설은 아직도 세상에 나오길 꺼렸다·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직 진무원뿐이다· 그래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절대고수 한두 명만 더 있으면 어떻게 더 유연하게 조직을 활용할 수 있을 텐데·”
하진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더욱 골치가 아팠다· 하진월이 그렇게 쓰린 마음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군사!”
갑자기 저쪽에서 군사부에 소속된 무인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큰일?”
“검주께서 군사를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급한 일이랍니다·”
“검주가?”
검주라면 소무상을 말한다· 소무상은 결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하진월은 급히 무인을 따라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북천문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조그만 소연무장이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연무장과 달리 이곳은 오직 북천문의 수뇌부들만 사용했다·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소연무장에 도착해 보니 검을 빼 든 채 눈을 부라리고 있는 소무상의 모습이 보였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기에 하진월이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저길 보십시오·”
소무상이 손가락으로 소연무장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소연무장을 바라보던 하진월이 눈을 크게 치떴다·
소연무장의 중앙엔 그도 익히 아는 사람이 홀로 서 있었다·
옷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아직 피가 굳지 않은 상처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와 싸웠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황철의 표정이 이상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모든 것을 달관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이상한 위압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건?”
“저와 비무를 하다가 갑자기 저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벽을 깨는 것이 분명합니다·”
“으음!”
하진월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소무상의 옷 또한 엉망으로 찢어져 있었다· 그의 말처럼 황철과 비무를 하다가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근래 들어 황철과 소무상은 매일같이 비무를 했다· 아무래도 서로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상대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비무를 하다 보니 실력도 급속히 늘었다· 어떤 때는 소무상이 황철을 압도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는 황철이 소무상을 제압하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서로를 이기고자 하는 욕구 조금이라도 발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그들은 매일같이 비무를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난 두 사람은 늘 하던 것처럼 비무를 시작했다· 전날 황철에게 손해를 보았던지라 소무상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며칠 전까지의 싸움을 복기하고 자신의 문제점과 황철의 강점을 파악했다· 그렇게 면밀히 분석한 끝에 비무에 나섰다·
둘의 싸움은 호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무상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만큼 충분히 준비를 했고 체력 또한 월등히 유리했으니까·
신이 난 소무상은 그동안 준비했던 검초를 한꺼번에 펼쳤다· 이젠 청운검법이라 부를 수 없는 그만의 독자적인 체계가 잡힌 검을·
그렇게 소무상은 황철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리고 황철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무공을 펼쳤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냈다· 단전에 남아 있던 내공 한 방울까지 모조리 쥐어짰다· 후회 없는 싸움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그때 찾아왔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토해냈을 때 모든 것을 비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작은 깨달음 하나· 황철은 그 작은 깨달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만일 그때 소무상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공격을 계속 했다면 황철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무상은 초절정에 오른 무인답게 황철의 상태를 금방 눈치챘고 오히려 호법을 섰다·
“깨달음이라니? 그렇다면 절대의 벽을 깬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소무상이 고개를 저었다·
현재 황철은 그와 같은 초절정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 찾아온 깨달음이 초절정의 경지를 확고히 해줄지 아니면 절대의 경지로 넘어가게 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황철이 깨어나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문득 소무상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황철은 정말 필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공에 몰두했다· 그 차이가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앞서간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십쇼· 금방 따라갈 테니까·’
소무상은 전의를 불태웠다·
하진월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황철을 바라보았다·
‘형님·’
공적으로는 군사와 봉공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형 아우 하는 사이였다· 누구보다 황철을 생각하는 이가 바로 하진월이었다·
스스로를 둔재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가 삼류 심법이라고 말하는 삼원심법으로 초절정의 벽을 넘어선 굳은 의지의 남자· 그래도 진무원을 보좌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바로 황철이었다·
하지만 하진월은 그런 황철을 높게 평가했다· 거북이처럼 느릴지언정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하게 마련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말이다·
그때 갑자기 황철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건?’
그는 본능적으로 황철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소무상도 마찬가지였다· 소무상은 주위를 경계하며 누구도 황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후웅!
갑자기 기의 흐름이 격렬해졌다· 주변에 있던 기운이 일시적으로 모이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사방으로 해일처럼 한꺼번에 밀려 나갔다·
무공을 모르는 하진월조차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기의 흐름이었다· 당연히 소연무장 주위에 있던 몇몇 무인도 그런 흐름을 느끼고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구를 막아선 소무상의 살벌한 모습에 위축되어 돌아가야 했다·
그때였다·
“후!”
갑자기 황철이 큰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순간 강렬한 안광이 일렁이더니 곧 사라졌다·
깨달음의 순간이 끝난 것을 직감한 하진월이 그를 향해 급히 다가갔다·
“형님·”
“아우님 여긴 어떻게?”
“검주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랬군·”
황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무상을 바라봤다· 소무상은 여전히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고맙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 이리 오시게·”
“깨달음을 얻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다 자네 덕분일세· 자네가 아니었으면 결코 얻지 못했을 거야·”
“절대의 벽을 깨신 겁니까?”
“그렇지는 않네· 그렇게 쉽게 깨진다면 절대지경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단지 넘어갈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을 보았네·”
“축하드립니다· 가능성을 보았다면 근일간 반드시 넘어설 수 있을 겁니다·”
“자네도 멀지 않았네· 그때까지 나도 자네와 계속 비무하겠네·”
“감사합니다·”
황철의 배려에 소무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하진월이 말했다·
“오늘은 잔치라도 벌여야겠군요· 형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이니·”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닐세· 남들에게 알릴 일도 아니고·”
황철이 얼굴을 붉히자 하진월이 웃었다·
“하하! 그럼 우리끼리라도 조촐하게 술 한잔하시지요· 주안상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러세!”
황철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갑자기 진무원이 보고 싶어졌다·
‘공자님 잘 계시지요?’
가경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엔 온통 비통함만이 가득했다·
눈앞에 커다란 관이 놓여 있었다· 관안에 든 시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운중천에서 돌려받은 만추산이었다·
한때 파산마부라는 별호로 중원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살아 있는 재앙이 이젠 파리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런 만추산의 모습에 가경의는 슬픔을 금치 못했다·
그때 누군가 가경의의 뒤쪽에서 걸어 나왔다· 만추산의 시신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이는 바로 흑익신창 우문천이었다·
“추산·”
우문천의 눈가에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남들에겐 공포의 존재로 군림했을지 몰라도 그에겐 수십 년을 동고동락해 온 동료이자 친우였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정이 있었다· 그런 이의 죽음은 그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우문천이 손을 뻗어 만추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마음껏 회포를 풀었느냐? 그렇다면 여한은 없을 터· 하지만 나는 가슴이 허하구나 추산·”
청풍마영 남천명에 이어 파산마부 만추산이 죽었다·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사대마장 중 두 명이 벌써 목숨을 잃은 것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죽음은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상실감과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거대한 분노에 우문천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지경에 다다른 고수답게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그가 진정되길 기다려 가경의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절대 괜찮지 않네·”
“혹시····”
“걱정하지 말게· 분노에 눈이 멀어 군사의 대계를 망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알지 않는가? 내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가경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상 사람들은 사대마장이라고 하면 모두 같은 수준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분명히 우열은 존재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우문천은 사대마장 중에서도 최상위의 무력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아니 사대마장이라는 테두리로 가둬둘 수 없는 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도 그가 사대마장에 안주하는 것은 그의 사부 사부의 사부가 모두 흑익신창이라는 별호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굳이 사대마장이라는 틀을 벗어던지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기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사대마장 중에 두 명이 죽었다·
이대로 놔두면 밀야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더 이상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언제까진가?”
“네?”
“운중천과 휴전을 하기로 한 날짜가·”
“다음 달 초아흐레까지입니다·”
“그냥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가경의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