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 1장 군림하는 자, 타인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1)
그들은 항상 말한다·
의문을 갖지 말라고·
그 시간에 무공 한 초식이라도 더 익히라고·
머리 쓰는 것은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놓으라 했다·
무인들은 그들의 말을 따랐다·
어떠한 의심도 없이·
그 결과가 지금의 강호다·
현현소의 두 눈은 타오르는 용광로 같았다· 이글거리는 두 눈에서는 가공할 패기가 폭사되어 나오고 있었다·
무공이 정점에 이른 무인은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자신의 기세를 절로 갈무리하게 된다· 그것이 일반적인 무인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현소는 달랐다·
그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하거나 숨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공할 기세를 대놓고 드러냈다· 그만큼 많은 적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노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적들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현현소는 도전해 오는 자들을 모조리 물리쳤다· 그의 손속에 자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이고 또 죽이고 모조리 죽였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에게 도전해 오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령제(魔靈帝)라는 별호는 수십 년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별호에 매우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현현소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순간 진무원은 안구가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가 만났던 무인들 중 그 누구도 현현소만큼 강렬한 눈빛을 가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현현소의 눈빛을 감히 감당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겠지만 진무원은 달랐다· 그는 현현소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 진무원의 모습에 현현소가 미소를 지었다·
“귀제갈의 말대로 제법 강단이 있는 놈이구나· 노부의 눈빛을 받고도 그리 당당할 수 있다니· 네놈은 노부와 함께할 자격이 있다·”
“감사합니다·”
“공작문 출신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왔군· 쉽지 않은 일인데·”
“다행히 개천이 제법 크고 깊었습니다·”
“흐흐! 말을 참 재밌게 하는 녀석이군· 마음에 들어·”
현현소가 진무원의 어깨를 탁탁 두어 번 두들겼다· 순간 진무원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만큼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진무원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어깨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온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희가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싸우는 것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들은 그냥 나를 따라오면 될 것이다·”
현현소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진무원은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이 자리는 단순히 통보를 하기 위해 마련되었을 뿐이다·
진무원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너희에게 적잖은 영광과 명예가 돌아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할 터· 더 물어볼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흐흐! 눈치가 빠른 녀석이군·”
현현소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웃지 않았다·
곁에 있던 서문화가 입을 열었다·
“의문이 많을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의문을 갖지 말게· 우린 꽤나 많은 준비를 했고 그 덕에 결점이 없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으니까· 자네는 우리를 믿고 따라오면 되네·”
“음!”
“밀야의 야주를 죽이는 일일세· 이 계획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게 될 걸세· 그리고 순식간에 담수천과 같은 반열에 오를 걸세·”
서문화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세·”
진무원은 그 후로도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진무원이 나가자 서문화가 현현소를 바라봤다·
“어떤가?”
“쓸 만한 녀석이야· 공력이 제법 깊어·”
“위험하진 않겠나?”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더군”
현현소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진무원의 수준은 어깨를 두들길 때 이미 알아봤다· 젊은 나이에 비해 공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이나 아홉 하늘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직 젊으니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는 알 수 없었다·
젊음이란 때로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개화시키곤 했다· 현현소나 서문화 모두 그런 예측 불가의 가능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아이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미 망한 공작문 출신이네·”
“그래서?”
“배경이 없다는 것은 부담 없이 쓰고 버릴 수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하지· 자네 뜻대로 사용하게·”
“큿!”
현현소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수십 년의 세월을 보아온 서문화였다· 서문화의 성향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서문화만큼 후대에 잔혹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는 미래의 경쟁자가 될 만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쓸 만해 보이는 싹수가 있는 자라면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짓밟았다· 특히나 서문세가에 위협이 될 것 같은 대상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불쌍한 녀석이군· 하필이면 귀제갈의 눈에 들어서·’
늘 있어왔던 일이기에 현현소는 놀라지 않았다· 단지 그만큼 진무원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 의외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그놈 하나만 데려가라는 것은 아니겠지?”
“칠소천 중 셋이 따라갈 걸세· 소림사에선 설공을 내놨고·”
“그들에 대한 처우는? 설마 놈처럼 쓰고 버리는 패는 아니겠지?”
“물론일세·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얼마든지 버려도 좋네·”
“그거 마음에 드는군·”
현현소가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에게 칠소천이라는 허명 따윈 하등의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직 같은 아홉 하늘뿐이다·
“단 설공은 각별히 챙겼으면 좋겠군·”
“설공?”
“소림의 기잴세· 불영이 각별히 아끼는 아이기도 하고·”
“그 땡중이 아끼는 아이란 말인가?”
순간 현현소의 눈에 패도적인 기운이 넘실거렸다·
불영신승 소림에서 내놓은 아홉 하늘 중 하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을 표방하는 불영신승과 마도 지향적인 현현소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싸우거나 대립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같은 배에 올라탄 운명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재미없군·”
“불영이 설공을 강하게 키울 모양이야· 그러니 배려 좀 해주게·”
“흥!”
현현소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서문화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나름의 방법으로 설공을 보살펴 줄 거란 사실을·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진무원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설공 남수련 연소소 우태천 등이 차례로 서문화에게 불려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의 얼굴은 불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마도 진무원이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밀야의 야주를 척살하는 영광스러운 임무에 선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한한 영광이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각자 흩어져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짧은 수련으로 성취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무공을 점검하기엔 충분했다·
‘밀야의 야주를 암살한다? 그것도 현현소 혼자만의 힘으로?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진무원은 고개를 저었다·
야주의 무공 수위는 미지수였다·
사대마장을 수하로 부리는 야주의 무공이 현현소보다 아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야주를 암살하기 위해 현현소 혼자만을 보낸다는 것은 확실한 약점을 파악했거나 절대적인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화 아주 족쇄를 제대로 채웠군·’
주위에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서문화와 현현소를 만나고 난 직후 감시가 따라붙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외출을 함부로 할 수도 청인과 접촉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진무원은 걱정하지 않았다· 청인이라면 어떻게든 자신과 접촉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진무원이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남수련이 그에게 다가왔다·
“단 소협·”
진무원이 눈을 뜨고 남수련을 올려다봤다· 남수련의 안색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공을 펼치며 점검했기 때문이다·
“남 소저·”
진무원이 몸을 일으켰다·
“단 소협도 이야기를 들으셨죠?”
“예!”
“이번 임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저희와 현 대협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요?”
“글쎄요·”
“솔직히 대답해 줬으면 해요· 단 소협은 이번 임무를 어떻게 보나요?”
“쉽진 않을 겁니다·”
“단 소협도 그렇게 생각하나 보군요·”
남수련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무산파의 장문제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남수련이었다· 그녀는 이 영광스러운 임무의 이면에 존재하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필 왜 우리일까요? 분명 운중천에는 우리보다 이일에 적합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글쎄요·”
“그렇게 말을 돌리지 말아주세요· 전 단 소협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자신 있으니까 하는 일이 아닐까요? 귀제갈 서문화는 심모원려한 사람이니까요·”
“음!”
“제가 아는 그는 칠 할 이상의 확률이 없으면 결코 나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칠 할 이상의 승산을 보고 있단 말이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진무원의 대답에 남수련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칠 할 이상의 승산이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고마워요·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릴게요·”
남수련이 포권을 취하고는 물러갔다· 멀어지는 남수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겨우 칠 할의 승산이라····”
커다란 황소가 관도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황소의 뒤에는 달구지가 매달려 있었다· 달구지 위에는 두 사람이 편히 앉아 있었다·
조그만 소년 한 명과 커다란 방립을 눌러쓴 여인이었다·
소년은 연신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고 여인은 무심히 앉아 있었다· 누구도 고삐를 쥐고 있지 않음에도 커다란 황소는 길을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걸었다·
“와! 저거 보셨어요? 햇볕을 받아 강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요·”
“그렇구나!”
“아름답지 않으세요?”
“아름다워!”
“저기 암석 좀 보세요· 마치 거대한 호랑이 같아요·”
“그렇구나!”
“멋있지 않아요?”
“멋있구나!”
여인은 소년의 감탄사에 착실히 추임새를 넣어줬다·
소년의 이름은 한선우 하진월의 제자였다· 방립의 여인은 바로 은한설이었다·
방립 속에 가려진 은한설의 입꼬리는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한선우였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동안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행을 시작하자 본래의 성격을 드러냈다·
은한설은 그런 한선우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는 이런 추억이 없었다· 사물을 인지하면서부터 무공을 익히는 것만이 그녀의 모든 일과였다·
밀야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진무원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조그만 추억마저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진무원과의 추억이 소중했다·
그녀는 단순히 진무원의 안위를 걱정해서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남아 있는 조그만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는 것이다·
‘무원·’
진무원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무원은 그녀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유일한 남자였다·
“저기 좀 보세요·”
그때 또다시 한선우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냐?”
“저기··· ”
한선우가 손으로 왼쪽 방향을 가리켰다· 조그만 강이었다·
방립 속에 가려진 은한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강을 따라 수많은 시신이 떠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는지 모르지만 강물 전체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이건?”
“상류에서 무림인들 간의 싸움이 있었나 봐요·”
“그런가 보구나·”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강을 따라가면 상류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 되면 분명 무인들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은한설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자· 괜한 시비에 휘말릴 필요는 없으니까·”
“알았어요· 황아야 오른쪽으로 가자·”
한선우의 말에 커다란 황소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은한설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바람에 실려 오는 짙은 혈향 때문이었다·
혈향이 어찌나 짙은지 머리가 다 지끈지끈거렸다· 일단 발을 디디면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강호의 생리라지만 사천성을 빠져나온 첫날부터 무인들 간의 분쟁에 휩쓸리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한선우가 조심스럽게 은한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글쎄다·”
은한설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없었다· 단지 바라는 것은 쓸데없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소박한 바람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듯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숲을 뚫고 누군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튕겨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