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 7장 하늘의 일각이 무너지다 (2)
전설이 무너지고 있었다·
양신의 소멸은 적엽 진인의 죽음을 불러왔다· 그토록 강대했던 무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너무나 이질적인 풍경에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했다·
능군휘는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적엽 진인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때로는 친구로 지내기도 했고 때로는 적으로 대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왔다·
비록 그에게 패해 삼 년이란 시간을 감금당하기도 했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적엽 진인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용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잘 가게 친구여·”
그는 먼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의 시대가 아홉 하늘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 적엽 진인의 죽음은 그 시작을 알리는 경종이었다·
능군휘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진무원의 입가에 옅은 혈흔이 내비쳤다· 선홍색이 아닌 시커멓게 죽은 피였다·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였다·
‘정말 심검을 펼친 건가?’
심검 전설처럼 내려오는 경지다·
검을 잡은 검객이라면 누구나 심검의 경지에 오르길 꿈꾼다· 하지만 검강이나 이기어검처럼 눈으로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없기에 정말 그런 경지가 있는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단지 짐작만으로 그런 경지가 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능군휘도 진무원이 진짜 심검을 펼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적엽 진인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심어검을 이겼기에 추측해 볼 뿐이다·
그때 진무원이 입가의 혈흔을 소매로 닦으며 능군휘에게 다가왔다·
“자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무원의 안색은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 후면 무당파의 제자들이 달려올 것이다· 그 전에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진무원은 능군휘를 들쳐 업고 경공술을 펼쳤다·
능군휘의 몸이 덜컥거렸다· 빠른 속도로 무당산이 멀어져 갔다· 그래도 능군휘는 무당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적엽 진인의 죽음으로 무당파는 힘을 잃을 것이다· 구대문파라는 지휘는 유지하겠지만 예전의 성세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무당파도 변해야 한다· 변해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고난의 날들이 무당파를 기다릴 것이다· 능군휘는 무당파가 역경을 무사히 헤쳐 나가길 빌었다·
곽문정이 구한 안가는 호북성 외곽에 있는 조그만 농가였다· 전쟁으로 인해 논과 밭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래도 농가의 외향은 멀쩡한 편이었다·
농가는 비상시 언제든 호북성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요지에 위치해 있었다· 진퇴가 확실하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용케 이런 곳을 구했구나·”
“헤헤!”
진무원은 곽문정을 칭찬했다· 그 짧은 시간 이런 안정적인 농가를 구한 감각은 정말로 칭찬해 줄 만했다·
진무원은 일단 방 안에 능군휘를 뉘였다· 능군휘의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능군휘는 단잠을 잤다· 너무 깊게 자서 숨을 쉬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호흡이 안정적이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청인이 안가로 들어온 것은 거의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청인도 적잖은 고초를 겪은 듯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처의 고통 따윈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월주는?”
안가로 들어오자마자 제일 처음 꺼낸 말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아!”
진무원의 대답을 듣자마자 청인이 제자리에 탁 주저앉았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능군휘가 잠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직접 능군휘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청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입니다· 치료 잘하고 삼 년 정도만 정양하면 원래의 무공을 회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 이렇게 무사히 구해줘서·”
“아닙니다·”
“솔직히 무리한 부탁이었다는 것 알아· 그래서 더 고마워·”
청인이 의자에 앉아 능군휘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진무원은 청인의 곁에 서서 묵묵히 능군휘를 바라보았다·
문득 청인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월주에 대해 알지 못했어· 이 양반이 월주라는 사실을 안 것도 최근의 일이야·”
“정말입니까?”
“그래! 지부장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이 양반이 월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이야·”
그제야 진무원은 흑월이 지난 삼 년 동안 활동을 멈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장을 잃은 조직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흑월은 활동을 멈추고 능군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숱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능군휘가 갇힌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절망뿐이었다·
능군휘가 갇힌 곳은 구대문파 중 하나인 무당파였다· 단순히 무당파라면 문제가 될 게 없었지만 그곳엔 적엽 진인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제껏 노심초사 애만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청인은 능군휘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자신을 흑월의 비월로 키운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막상 얼굴을 제대로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고 두려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웃음이 나왔다·
이제껏 진무원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그런 환한 웃음이었다· 진무원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제 후련해졌어·”
“뭐가 말입니까?”
“흑월·”
“····”
“항상 빚지고 있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문주를 완전히 따를 수가 없었어·”
진무원을 돕기 위해 은류를 만들면서도 청인은 항상 흑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몸은 이쪽에 있는데 마음의 반은 저쪽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제 빚은 다 갚았으니 나도 온전히 은류에만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아닙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곽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손님이 찾아왔어요·”
“손님?”
“흑월에서 왔다고·”
“내가 알렸어·
청인의 말에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모셔·”
“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름다운 세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남 일녀 그중 한 명은 진무원도 아는 사람이었다·
‘매월령·’
흑월의 사천 지부장이었던 매월령이었다·
그녀가 진무원에게 눈인사를 한 후 다급히 능군휘에게 다가갔다·
“월주님·”
“크흑! 월주님·”
두 남자가 눈물부터 흘렸다·
그들은 모두 능군휘의 심복이자 흑월의 부월주들이었다· 능군휘는 두 명의 부월주로 하여금 흑월의 내외의 일을 분리시켜 맡겼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능군휘의 몸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만 흘렸다· 매월령도 한쪽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지난 삼 년은 그들에게도 인고의 세월이었다· 능군휘의 안위를 걱정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당파에 갇힌 것을 알면서도 적엽 진인 때문에 구출 작전을 할 수도 없어 참담하기만 했던 세월이었다·
사람들의 감정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진무원도 그들을 굳이 진정시킬 생각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가 죽었느냐? 왜 이리 시끄러워· 잠도 못 자게·”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능군휘의 목소리였다· 그가 어느새 눈을 뜨고 있었다·
“월주님·”
“괜찮으십니까? 월주님·”
부월주들이 능군휘의 손을 움켜잡았다·
“네놈들이 보기엔 괜찮은 것 같으냐? 아주 엉망이야· 그래도 오랜만에 편히 누워 있으니 살 만한 것 같기는 하구나·”
“저희가 불민하여 월주님을 고생케 했습니다· 이 죄는 차후 달게 받겠습니다·”
“됐다· 그게 어찌 너희의 죄겠느냐? 나 좀 일으켜 다오·”
부월주들이 급히 능군휘의 양쪽 어깨를 안아 일으켜 세웠다·
폐인이 되었어도 능군휘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그는 부월주들과 매월령 청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흑월을 이끌어가는 핵심 무인들이 모조리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 없는 동안 흑월을 이끌어가느라 너희가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월주님·”
“미안하구나· 이런 못난 꼴을 보여서·”
“저희가 더 죄송합니다· 일찍 구해 드렸어야 했는데·”
부월주와 매월령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보다시피 내 상처가 가볍지 않구나· 이 상태로는 월주의 직을 수행할 수 없을 듯하다·”
“월주님·”
“그래서 내 중대한 결심을 하였다·”
“새겨듣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내 요양하는 동안 임시로 월주직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세 사람이 급히 고개를 들어 능군휘를 바라봤다·
“그 사람은 무공이 매우 강해야 한다· 다른 아홉 하늘에게서 흑월을 지켜야 할 만큼· 그리고 사심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다·”
“설마?”
“그래! 나는 그··· 북천문의 문주께 잠시 동안 흑월을 맡아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럴 수가·”
부월주들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매월령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불려올 때부터 그녀는 이런 상황을 직감했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진무원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흑월의 매월령이 임시 월주께 인사드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태도에 부월주들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이성을 되찾았다·
‘확실히 현재 천하에서 북천문주보다 흑월의 주인에 더 적합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라면 월주님을 대신해 흑월을 훌륭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정식 월주도 아니고 임시였다· 언젠가 능군휘가 완치되면 다시 월주직을 맡는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라면 진무원에게 임시 월주를 못 맡길 이유도 없었다·
그 순간 진무원은 능군휘를 보고 있었다· 능군휘도 진무원을 보고 있었다·
능군휘가 눈으로 말했다·
-내 선물이다· 너라면 흑월을 옳은 일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왜 입니까?
-너밖에 없기 때문이다· 흑월은 쓰는 자에 따라 천하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너라면 그런 흑월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무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은류를 만들었다· 하지만 흑월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진월은 늘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보를 선점하는 자야말로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며·
진무원은 지배자의 운명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선점이 중요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진무원이 눈을 떴다·
“알겠습니다· 당분간 제가 흑월을 맡겠습니다·”
“고맙네!”
진무원의 허락에 능군휘가 환히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월주님·”
능군휘의 기침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안색도 갈수록 창백해져 갔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진무원이 능군휘의 명문혈로 내공을 주입했다·
진무원의 그림자 내력은 능군휘의 속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제야 능군휘의 혈색이 조금씩 제 색깔을 찾았다·
그제야 진무원이 능군휘에게서 손을 떼며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능 대협을 치료해야 합니다·”
“하나 일반적인 의원으로는 절대 월주님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어요·”
매월령과 부월주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들도 능군위의 상처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능 대협을 사천성으로 모시고 가십시오· 그곳엔 천하제일의 의원이 있습니다· 그분이라면 능 대협을 분명 치료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천성? 아! 당 대협·”
매월령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미 청인으로부터 북천문에 대해 전해들은 매월령이었다· 만 가지 독에 능한 당기문이라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부월주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월주님을 모시고 북천문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서신을 써드릴 테니 당 대협께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분명 혼신의 힘을 다해 치료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부월주가 급히 능군휘를 호송할 준비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무원이 흑월의 수뇌부를 바라보았다·
“신임 월주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