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 7장 하늘의 일각이 무너지다 (1)
진무원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양신은 단순한 내공의 결집체가 아니었다· 적엽 진인의 정(精) 기(氣) 신(神)이 녹아 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였다·
신선지경에 이른 자가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벗어 던지고 갈아타는 새로운 육체 그것이 바로 양신이었다·
그런데 적엽 진인은 양신을 이용해 무당파의 비전 검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의식은 두개로 나뉘어져 본신과 양신을 동시에 지배하고 있었다·
적엽 진인과 같은 수준에 오른 고수가 한 명 더 합류해 합공을 하는 형국이었다· 자연 진무원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적엽 진인의 검공에 군더더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모든 것을 잘라내서 가장 간결한 검의 흐름을 완성했다·
적엽 진인의 검초는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진무원을 공격했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었다·
진무원도 굳이 눈으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전방위 감각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믿는 것은 그뿐이었다·
서걱!
근처에 있던 집채만 한 바위가 두 동강이 나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름드리나무가 잘려 나가고 육중한 암릉에 깊은 흠집이 생겼다·
두 사람의 대결은 여타 고수들의 싸움과 달랐다· 두 사람 모두 검기나 검강 따위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자루의 검뿐이었다·
이 척 칠 촌 길이를 가진 차가운 쇳덩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지만 진무원이나 적엽 진인과 같은 절대 고수의 손에 들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들은 천하에서 가장 검에 대해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검이 가진 묘리와 운용의 묘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다·
허공에 불꽃이 튀었다· 바닥에 깊은 족적이 패였다·
때로는 질주하고 어떤 때는 급격히 속도를 줄이며 어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전장은 무당산이었다·
무당산의 깊은 계곡과 높은 산봉우리가 두 사람의 싸움에 몸살을 앓았다·
“아아!”
청인의 방해 공작 탓에 뒤늦게 진무원을 추적하던 무당파의 제자들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입만 떡 벌렸다·
추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기의 파장이 이곳까지 전해졌다· 그 소름 끼치는 예기와 살의는 그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슴이 떨리고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무량수불! 대체 누가 있어 사백조와 저렇듯 자웅을 겨룰 수 있단 말인가?”
무당파의 장문인인 해검 진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저 멀리 무당산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지잉!
갑자기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이 검명을 터뜨렸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해검 진인 근처에 있던 무당파 무인들의 검들이 일제히 검명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검들의 울음에 해검 진인과 무당파의 제자들이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사백과 저자 때문이다· 그들의 싸움에 검들이 공명을 하고 있어· 그들은 이미 근처에 있는 검까지 지배하는 경지에 올랐어·’
사백인 적엽 진인이야 오래전부터 강호의 절대자로 군림해 오던 인물이었다· 타고난 천재에 가공할 재능을 가졌다· 거기에 무당파의 전폭적인 지원과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수십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홉 하늘의 일인으로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 너무 멀어서 형체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젊은 사람의 뼈대는 나이 든 사람의 그것과 달랐다· 제아무리 무공을 수련하더라도 근본적인 차이까지 매울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 저자가 누구기에?’
그때 근처에 있던 사제가 물었다·
“장문인 가서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와준다? 사백을 말이냐?”
“그게····”
“사백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신 분· 그분은 누군가 자신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무당파의 제자라 할지라도·”
해검 진인의 사제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적엽 진인의 성격이 얼마나 모질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백이 반드시 저자를 제압할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한다·”
“알··· 겠습니다·”
지켜보는 이는 무당파의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각 문파에서 무당파로 파견 나온 무인들도 경천동지할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아!”
그들은 멍하니 싸움을 바라봤다·
쩌엉!
진무원과 적엽 진인의 몸이 교차했다· 그들의 어깨와 소매에 옅은 혈흔이 내비쳤다· 두 사람의 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만큼 격렬하게 움직인 것이다·
잠시 적엽 진인이 멈춰 섰다· 그러자 어린아이 모양의 양신이 다시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적엽 진인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허! 대단하구나· 어미 뱃속에서부터 검이라도 익힌 것이더냐?”
“그러는 진인께서도 정정하십니다·”
진무원도 진심으로 감탄했다· 적엽 진인은 검의 하늘이라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진무원이 들고 있는 청강검을 내려다보았다·
청강검은 이미 날이 상하고 검신 곳곳에 균열이 가서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겨우 상대의 일 초를 감당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반면 적엽 진인이 들고 있는 무도는 이 하나 나간 곳 없이 멀쩡했다· 그야말로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지잉!
무도는 아직도 검명을 흘리고 있었다· 적엽 진인의 살기가 무도를 타고 흘러나오는 것이다·
문득 적엽 진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네가 누군지 알 것 같구나·”
“····”
“진무원· 맞느냐?”
겉모습을 바꾸고 목소리를 변조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의 분위기와 기도였다·
적엽 진인은 오래전 진무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진무원과 같은 독특한 분위기와 기운을 지닌 자라면 당연히 기억했어야 했다· 하지만 진무원이 죽었다는 거짓된 정보와 편견이 그의 눈을 가렸다·
하지만 싸우면서 확신했다· 상대가 진무원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무인들 중 이 정도로 검을 익힌 자는 진무원밖에 없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적엽 진인·”
이미 상대가 알고 있는데 굳이 거짓을 말할 필요도 없었고 감출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것을 떠나 상대는 존경할 만한 검호였다· 그런 자와의 대결에 거짓을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다·
“허! 대단하구나· 기어코 살아남아 이 자리에 오다니· 너는 모용율천 이후 처음으로 노부를 감탄하게 만든 사람이다·”
“적엽 진인의 칭찬을 받고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노부는 감탄을 금할 수 없구나· 그 집념과 투혼이 부럽구나·”
말과는 달리 적엽 진인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북천문의 망령이 끈질기게 살아나와 그와 운중천을 괴롭히고 있었다· 적엽 진인은 힘들게 구축한 아성을 진무원에게 잃고 싶지 않았다·
“네가 결국 내 바닥을 드러나게 만드는구나·”
“아직도 밑천이 남아 있었습니까?”
“겨우 이 정도가 끝이라면 오산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너를 제거하겠다· 그것이 무당파와 운중천을 위하는 길일지니·”
다시금 그의 몸에서 양신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적엽 진인이 들고 있는 무도에 깃들었다·
우웅!
양신이 깃든 무도가 검명을 토해냈다·
진무원은 침중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무도가 혼자서 허공을 날아올랐다·
쐐액!
무도가 섬전처럼 진무원을 향해 날아왔다·
“이기어검(以氣馭劍)?”
기로 검을 조종하는 경지· 그것도 뜻이 가는 곳에 검이 가는 심어검(心馭劍)이라는 전설의 경지였다·
무도에 깃든 양신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적엽 진인의 마음이 향한 곳에 무도가 향했다· 그리고 적엽 진인의 마음은 진무원을 죽이라는 살의를 머금고 있었다·
진무원은 계류보를 펼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무도가 날아왔다·
진무원은 손바닥으로 무도의 검면의 쳐 냈다· 궤적이 바뀐 무도가 십여 그루의 나무를 수수깡처럼 베어버리고는 다시 진무원에게 날아왔다·
쳐 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진무원의 손에서 피분수가 치솟아올랐다· 내공으로 보호하는데도 무도의 날카로운 날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카카캉!
진무원이 춤사위를 췄다· 추고 싶어서 추는 게 아니다· 심어검을 피하다 보니 그렇게 춤사위 비슷하게 된 것이다·
“소용없다· 나는 너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아무리 날뛰고 발버둥 쳐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적엽 진인 서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심어검은 그도 말년에 터득한 심득이었다· 단순히 심어검에 그친 것만이 아니라 양신까지 합일시켰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무도라는 쇠붙이에 담은 것이다·
진무원의 전신에 점점 상처가 많아졌다· 진무원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혈인을 방불케 했다·
진무원에겐 적엽 진인에게 대항할 어떤 방법도 없어 보였다· 급한 대로 나뭇가지를 들었지만 무도에 단숨에 잘려 나갔다·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나?’
그 어떤 무기로도 무도에 대항할 수는 없었다·
적엽 진인과 같은 희대의 고수를 상대로 무기를 들지 않고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란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순간 진무원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팽이처럼 진무원의 주위를 팽그르 돌던 무도가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진무원이 무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빈손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마치 무형의 검을 들고 있는 듯한 모습에 적엽 진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별 발악을 다하는구나·”
그는 무도에 남아 있는 공력을 모두 집중했다·
제아무리 무한대에 가까운 공력을 소유한 그였지만 심어검을 오래 펼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한 수에 진무원과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휘류류!
무도가 허공에서 큰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무도 주위의 공기가 이지러졌다·
순간 진무원의 입이 열렸다·
“설화야·”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검이 존재한다·
날도 없고 손잡이도 없는 뭉툭한 형태의 검이· 아직은 쇠몽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투박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검이었다·
검은 대답이 없었다· 아니 대답을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어쩌면 혼자만의 상상일 수도 있었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진무원은 간절히 염원했다·
깨어나라고·
그의 오랜 친구 설화의 이름을 부르며·
무도가 무섭게 회전을 하며 그의 목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일렁이고 옷깃이 무섭게 펄럭였다·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진무원은 피하지 않았다·
“설화야!”
그의 목소리가 무당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쩌어엉!
순간 무도가 그의 몸을 직격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적엽 진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뚝 끊어졌다·
“이건?”
사방으로 차가운 빛이 흩날리고 있었다· 꽃비처럼 내리는 은빛의 편린·
그의 애검 무도가 산산이 부서져 비산하고 있었다·
으아앙!
그 순간 한줄기 애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도에 깃들었던 양신이 깨져 나가는 소리였다· 양신의 연결이 끊기면서 적엽 진인이 검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양신은 단순한 내공의 응집체가 아니었다· 양신의 소멸은 적엽 진인에게도 큰 타격을 입혔다·
그래도 적엽 진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질 수가 없었다· 그가 겨우 고개를 들어 진무원을 바라봤다·
진무원은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여전히 빈손이었다· 하지만 적엽 진인은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색 검을· 하지만 다음 순간 검은색 검은 환상처럼 사라져 갔다·
적엽 진인이 눈을 끔뻑거렸다·
“심··· 검(心劍)?”
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