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 6장 악연의 실타래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1)
관대승이 마차에서 내렸다· 잠시 그가 정문 위에 걸린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웅혼한 필체로 쓰인 네 글자 무적세가(無敵世家)·
잠시 옷매무세를 다듬던 관대승은 이내 허전한 어깨를 느끼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팔을 잃은 지 삼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관대승은 이내 평소의 여유 있는 표정을 회복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지?’
그가 향한 곳은 바로 무적세가의 가주인 모용율천의 거처였다· 그는 아침에 모용율천의 호출을 받고 급히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굳게 닫힌 문을 향해 말했다·
“저 대승입니다·”
“들어 오거라·”
“예!”
관대승이 대답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모용율천이 있었다·
관옥을 깎아놓은 듯 수려한 이목구비가 용포와 무척이나 잘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순간 관대승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수십 년 동안 모용율천을 모셨지만 그가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모용율천은 평정심을 잃는 법이 없었고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런 그가 미소 대신 인상을 쓴다는 것 차제가 관대승에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관대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주님·”
“대승아·”
“예!”
관대승이 불안한 표정으로 모용율천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싸한 느낌에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모용율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어 흘러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혼마가 죽었구나·”
“예? 그게 무슨····”
관대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자 모용율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혼마가 죽었다· 그와 연결되었던 심령이 어제 끊어졌다·”
“말도 안 되는····”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 바로 어제·”
혼마 태무강은 조부의 유산이었다· 태무강이 익힌 혼원염마공은 상대의 내공에 따라 자신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희대의 괴공이었다·
혼원염마공을 익힌 자는 주기적으로 기나긴 수면을 취하며 내력을 정순하게 해야 했다· 따라서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모용율천의 조부와 아비는 그런 태무강을 필요에 의해 깨워 사용했다· 필요가 없을 때는 수면에 들게 해서 전력을 온전히 보존케 했다·
모용율천은 태무강과 심령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심령의 연결은 모용율천이 태무강을 부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어제 심령의 연결이 끊겼다·
그 순간 모용율천은 알아차렸다· 태무강의 숨이 끊어졌음을·
모용율천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평생을 태무강을 부려왔지만 설마 그를 잃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대승이 받은 충격은 모용율천에 비할 수 없었다· 태무강은 그가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도구였다· 마치 모든 자물쇠를 딸 수 있는 만능 열쇠처럼 태무강을 사용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대체 누가?”
“그것은 나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혼마가 목숨을 잃었다는 거지·”
“으음!”
“혼마를 투입한 곳이 어디더냐?”
“연판장을 회수하기 위해 부현으로 보냈습니다·”
“흐음! 부현에 혼마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강한 자가 존재하던가?”
“그것은····”
관대승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부현은 분명 풍운의 중심지였다· 수많은 무인이 부현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태무강에게 확실한 죽음을 내릴 수 있다 장담할 수 없었다·
‘설마 밀야에게 제거당한 것일까? 아니다· 태무강은 사대마장에 근접한 괴물· 현재 부현에는 그만한 수준의 무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누가 있어 태무강을 죽인단 말인가?’
관대승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현재 부현에 존재하는 모든 무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태무강을 죽일 만한 무인이 누가 있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태무강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무인은 있어도 숨통을 끊을 만한 자는 생각나지 않았다·
“조짐이 심상치 않구나 대승아· 어떻게 보면 혼마의 죽음은 별게 아니다· 그를 대체할 자는 또 존재하니까· 하나 자꾸만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큰 문제다·”
“죄··· 송합니다·”
“예상대로였다면 밀야와의 싸움은 일 년 전에 끝났어야 했다· 그랬으면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밀야의 야주가 본가의 통제권을 벗어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
관대승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자리를 비웠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밀야에 은밀히 행사하던 영향력이 사라진 것도 그중 하나였다·
“거기에 혼마의 죽음까지· 예상치 못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더 큰 문제는 우리는 혼마를 죽인 자의 정체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다 제 불찰입니다·”
“나는 이런 상황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관대승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 세상을 암중에서 지배해 온 자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감히 그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대승아·”
“예!”
“혼마를 죽인 자를 내 앞으로 데려오너라· 그를 혼마 대신 사용할 지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
“밀야와의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거라·”
순간 관대승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어 모용율천을 올려다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용율천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진무원은 창가에 앉아 어둠에 잠식된 부현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중천의 본진이 있는 방향이었다·
‘반격을 준비하는가?’
예상치 못한 밀야의 기습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운중천에서는 그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벌써부터 바람에 혈향이 배어 있는 듯했다· 기분 나쁜 느낌에 진무원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소리도 없이 진무원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마치 제 집에 온 것처럼 창가 곁에 있는 탁자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 앉았다·
그제야 진무원이 뒤돌아봤다· 탁자에 앉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남자가 보였다· 사십 대 후반의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였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놀라지 않았다·
“돌아왔군요·”
“음!”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는 바로 청인이었다· 또다시 얼굴을 바꿨지만 진무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흑월과는 접촉하셨습니까?”
“음!”
“그런데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비록 역용을 하고 있었지만 청인의 얼굴은 무척 어두웠다· 진무원이 아는 청인은 매우 유쾌한 남자였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는 웃음을 잃는 경우가 없었다·
청인이 다시 한 번 물을 들이켰다· 진무원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청인이 물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다·”
“부탁?”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제발 내 부탁을 들어다오·”
“말씀하세요·”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반드시 들어드리겠습니다·”
진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족 따위는 붙이지 않았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부탁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던 청인이었다· 그 덕분에 은류라는 정보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돈으로는 결코 환산하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진무원에게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진무원을 바라보는 청인의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가 어렵게 본론을 꺼냈다·
“월주를 구해다오·”
“월주? 흑월의 주인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 월주께서 지금 큰 곤경에 처해 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진무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진무원의 모습에 청인이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무원이 이리 흔쾌히 허락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하는 부탁이었다· 은류의 수장인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진무원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주·”
“어디로 가면 됩니까?”
“경공을 전력으로 펼쳐도 최소 닷새는 걸리는 곳에 있다·”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목적지를 물어보지도 않는 거냐?”
“상관없으니까요·”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월주를 구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진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에서 곽문정과 마주쳤다·
“어? 어디 가세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이 밤중에요?”
곽문정이 의아한 시선으로 진무원의 곁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진무원의 곁에 있으니 이상한 것이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전음을 보냈다· 청인의 정체를 알려준 것이다· 그러자 곽문정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아!”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말씀하세요·”
“안가를 구해야겠다·”
“안가요? 물론이죠· 당장 구할게요·”
“고맙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곽문정은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청인도 그 사실을 알기에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진무원과 청인은 곽문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청인은 진무원을 이끌고 어둠 속을 내달렸다·
청인은 한참이나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해가 뜰 때 즈음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얼마나 달렸을까? 청인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발걸음은 점차 늦어졌다·
피로가 극에 달했지만 청인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청인은 절박했다·
그렇게 닷새를 경공을 펼쳐 전력으로 달렸다·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진무원의 눈빛은 깊이 가라앉았다·
‘역시 그곳인가?’
이미 방향을 이쪽으로 틀 때부터 짐작은 했다· 하지만 짐작이 사실로 확인되자 마음이 어느 정도 무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눈앞에 육중한 암릉으로 이뤄진 거대한 산이 보였다· 아침 햇살에 암릉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신묘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진무원은 본능적으로 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일흔두 개의 봉우리와 서른여섯 개의 절벽 그리고 스물네 개의 계곡을 가진 거대한 산· 천하에 이런 산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무당산?”
“그래! 무당산이다· 무당파가 있는 곳이지·”
청인이 이를 악물었다·
구대문파의 하나이자 도가의 성지 무당파가 눈앞에 있는 거대한 산 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럼 월주가 무당파에?”
“무당파 깊은 곳 뇌옥에 갇혀 계시다· 부디 그분을 구해다오·”
무당파의 전력만으로도 능히 용담호혈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밀야의 침공을 우려해 구대문파에서 대거 정예를 파견한 상태였다·
단순한 용담호혈이 아니라 철옹성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구나 무당파에는 아홉 하늘 중 한 명인 적엽 진인이 있었다· 이 시대 최강의 반열에 올라 있는 절대의 고수가·
검의 극의를 깨달았다는 절대 고수· 강호에 그와 비견될 만한 검호는 같은 아홉 하늘 중의 한 명인 창룡검제 비사원뿐이었다·
하지만 적엽 진인보다 더 모습을 보기 힘든 자가 비사원이었다· 그 때문에 강호에서는 비사원보다 적엽 진인을 좀 더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더 신뢰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적엽 진인이 지키는 무당파였다· 그곳에 갇혀 있는 자를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했다·
그 사실을 진무원도 알고 있었고 청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청인은 진무원을 볼 면목이 없었다· 자신의 부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 알기에·
하지만 청인은 그만큼 절박했다· 그가 지금 이 순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는 진무원밖에 없었다·
진무원의 그의 염원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