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 5장 혼마와 북검, 그 약연의 끝 (2)
그그극!
태무강의 살기에 석실 아니 지하 공간 전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지하 공간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광포한 살기를 발산하는 태무강과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진무원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삼 년 만의 조우였다·
“역시 살아 있었구나· 흐흐! 나는 네놈이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는 당신도 제법 멀쩡해 보이는군요·”
“큿! 그깟 상처 따윈 내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가 익힌 혼원염마공(混元閻魔功) 덕분이었다· 그가 수면에 빠져 있는 이 년 동안 혼원염마기가 육체를 완벽하게 회복시켰다· 덕분에 그의 육신은 더 강해지고 질겨졌다·
그는 그날의 치욕을 잇지 않았다· 그는 진무원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진무원은 그런 태무강을 보며 눈을 빛냈다·
‘역시 그들은 상자를 포기하지 않았구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표승우와 동행했다· 표승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제법 훌륭한 미끼가 되어주었다· 그 미끼에 태무강이라는 거물이 낚였다·
‘혼마는 모용율천에게 연결되는 중요한 존재·’
태무강을 제압한다면 모용율천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싸움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태무강의 광포한 시선이 진무원의 전신을 훑었다· 그는 진무원에게 설화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음소를 흘렸다·
“그 괴상한 검은 어디에 버려두고 온 것이냐?”
진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태무강의 입꼬리가 더욱 뒤틀려 올라갔다· 진무원은 검객이었다· 검이 없는 검객은 그다지 두렵지 않은 법이다·
물론 검객이라고 해서 권공에 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검을 들고 있을 때보다 효율은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흐흐! 뜻밖의 소득을 얻었구나· 연판장의 끝에 네놈이 있다니·”
“····”
“운중천의 내부에서 자라난 독버섯들· 그들의 이름을 적은 연판장· 아마도 네놈이 조장했겠지?”
태무강은 상황을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굳이 그의 잘못된 판단을 정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군사의 말처럼 운중천 내부에 반발을 하는 자들이 생겨났구나· 그들끼리 연판장을 작성했고·’
언제가 하진월이 말했었다· 운중천과 같은 세력이 오래 집권하다 보면 내부에서 불만이 터지게 마련이라고· 그 어떤 불씨가 던져진다면 내부의 불화는 급격히 타오를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불씨는 던져진 셈인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불씨는 꺼질 수도 있고 더욱 거세게 타오를 수도 있었다·
진무원은 천기가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태무강이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냐? 감히 나를 앞에 두고·”
쿠와앙!
태무강의 화강암 같은 몸체가 진무원을 그대로 직격했다· 엄청난 충격에 뒤로 튕겨져 나간 진무원의 몸이 석실의 벽을 뚫고 날아가 처박혔다·
“어디 삼 년 전의 빚을 갚아 볼까나?”
태무강이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러자 뼈마디가 부딪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전신의 힘줄이 불거져 나왔다·
그때 갑자기 건너편 석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태무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진무원이 처박힌 석실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벽을 건너는 그 순간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변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미풍이 바늘처럼 그의 전신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마치 수백 수천 개의 칼날이 전신을 노리는 듯한 저릿한 감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석실 벽에 처박혀 있던 진무원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진무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이곳 석실만 다른 세계인 것처럼 동떨어진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무원의 기묘한 존재감이 장악한 세계가 태무강을 적대하는 것 같았다·
“큿!”
태무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사이 진무원이 바닥에 나뒹구는 돌덩이를 주워 들었다· 석벽의 파편이었다· 길게 쪼개진 모습이 뭉툭한 석검 같았다·
진무원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석검을 태무강을 향해 겨눴다· 그러자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엄청난 압박감이 태무강을 짓눌렀다·
“어림없다·”
순간 태무강이 혼원염마기를 일으켰다· 강기의 폭풍이 일어나 그의 몸을 휘감자 기묘한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태무강이 진무원을 노려보았다· 진무원은 여전히 그에게 검을 겨눈 자세 그대로였다· 마치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삼 년 전의 진무원은 실로 무서웠다· 무공을 펼칠 때의 그는 마치 격랑같이 격렬했고 폭발하는 화산처럼 맹렬했다· 하지만 지금의 진무원은 그때와 달랐다·
고요해졌고 정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전신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태무강은 강기를 폭발시키며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초반의 기세 싸움에서 밀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쿠콰카칵!
엄청난 강기의 폭풍이 진무원을 향해 몰아쳤다· 강기에 휩쓸린 석벽이 짐승의 발톱에 긁힌 것처럼 푹푹 패여 나가고 지하 공간 전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무원에게만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들고 있는 석검에 공기가 갈라지고 강기가 베어져 나갔다·
강기의 폭풍이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엔 강기의 결이 보였다· 큰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강기의 결에 석검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강기의 결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뭉치면 폭풍이 되지만 갈라지만 미풍에 불과하다·
진무원 앞으로 길이 열렸다· 그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걸음걸이가 표홀했다·
“크윽! 또냐?”
태무강이 혼원염마공의 절초를 연이어 펼쳤다· 혼원염마기는 불가사리처럼 상대의 내공을 잡아먹고 분석해 가장 최악의 상성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혼원염마기는 진무원을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진무원의 그림자 내공은 혼원염마기와 최악의 상성이었다· 잡아먹고 분석하려 해도 그림자처럼 스며드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태무강에게 남은 것은 내공 대결이 아닌 초식과 육체의 격돌뿐이었다·
“흐아아!”
그가 괴성을 내질렀다· 솥뚜껑만큼이나 거대한 주먹이 통나무만큼이나 굵은 발이 진무원의 전신을 연신 두들겼다·
쾅쾅쾅!
굉음이 울리며 진무원의 몸이 연신 뒤로 밀렸다· 하지만 진무원의 몸에는 그 어떤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석검이 모든 공격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빗기고 흘리고 후려치고 쪼개고 베고····
가장 기본적인 초식에 멸천마영검의 묘리를 녹여냈다·
평범함으로 위장한 가장 위대한 검공에 태무강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후퇴란 그의 머릿속에 없는 단어다·
처절하게 부서지고 깨질지언정 앞으로 돌진한다·
“크하하!”
태무강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처절한 광기를 발산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
북검과 혼마 그들의 싸움이 대지를 울리고 있었다·
“아!”
공아천의 눈앞에서 관제묘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표승우와 곽문정이 갇혀 있던 석실은 허름한 관제묘 아래 비밀리에 건설한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많은 공을 들인 만큼 지하 공간은 무척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런 공간이 두 사람의 싸움에 무너지고 있었다·
대지는 들썩이고 먼지가 높게 일어나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 부현 외곽이었기에 망정이지 시내에 있었다면 즉각 운중천의 무인들이 달려왔을 것이다·
콰앙!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세 사람의 몸이 흔들렸다·
“이건 도대체····”
“이게 인간의 싸움인가? 그들은 대체 누구지?”
공아천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불신과 공포가 범벅이 된 눈동자는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이 현실임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의 상식이 무너지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자들이 벌이는 싸움은 그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공아천의 시선이 곽문정을 향했다·
“대체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냐? 그는 그는····”
곽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혼마의 무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를 상대하는 진무원의 무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름 진무원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해 온 곽문정조차도 감히 추측할 수 없을 만큼·
‘형은 이미 또 다른 경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구나·’
곽문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진무원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형의 근처까지 가지 않을까?’
진무원은 그의 우상이자 목표였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콰앙!
그 순간 무너진 관제묘를 뚫고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바로 진무원과 태무강이었다· 두 사람 모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문득 태무강이 입을 열었다·
“네놈 정말 강하구나· 정말··· 흐흐!”
태무강이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회색 먼지가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푸스스!
그 순간 진무원이 들고 있던 석검이 가루로 변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공아천과 표승우 곽문정은 숨을 죽였다·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누가 이겼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퍽퍽!
순간 미세한 소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태무강의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몸 안에서 폭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혈맥이 연이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주요 대맥은 물론이고 미세한 세맥까지 터져 나갔다·
태무강의 눈과 귀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팽팽하던 얼굴에 갑자기 깊은 골이 패이더니 주름이 생겨났다· 하나둘 생겨난 주름은 곧 몸 전체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꼿꼿하던 허리가 꾸부정하게 변하고 눈에서는 총기가 급격히 사라졌다· 한 인간이 일평생에 걸쳐서 경험해야 할 노화가 촌각 안에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진무원의 그림자 내력 때문이었다· 태무강의 몸에 침투한 그림자 내력은 혼원염마기와 사투를 벌였다·
혼원염마기는 광포하고 무자비했다· 불가사리처럼 상대의 내공을 잡아먹고 성질을 변환시키는 괴공은 다른 기운과의 공존을 거부했다·
당연히 혼원염마기는 태무강의 몸에 들어온 그림자 내력을 몰아내려 했다·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하지만 그림자 내력은 혼원염마기가 상대했던 그 어떤 기운과 달랐다·
그림자 내력은 오히려 혼원염마기를 변화시켰다· 나쁜 쪽으로 말이다· 더욱더 광포하고 제어할 수 없게· 결국 태무강은 혼원염마기의 제어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난 그대로였다· 혼원염마기가 폭주하면서 태무강의 몸을 오히려 파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억지로 멈춰 놓았던 노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백 살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노인이 태무강이 있던 자리에 서 있었다·
“흐흐! 놀랐느냐?”
진무원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인 태무강이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광기가 사라진 그의 눈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백 년 백오십 년· 얼마 만이지? 이렇게 맑은 기분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백오십 년 이상을 살아왔단 말입니까?”
“흐흐! 그것을 어찌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상시에는 잠을 자다가 필요할 때만 눈을 뜨고 활동하는데· 아마 실제로 내가 살아 있던 시간은 이십 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에 다시 분노가 어렸다·
혼원염마기는 그에게 가공할 힘을 주었지만 반대로 그에게 끊을 수 없는 구속구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백오십 년이 훨씬 넘었다·
그가 한 번씩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은 바뀌어 있었다· 그가 알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새로운 인물이 그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 하고 그렇게 괴물이 되어 이제까지 살아왔다·
푸쉬쉬!
마치 오래된 종잇장처럼 그의 손끝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태무강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죽을 수 있겠구나· 흐흐! 그 대가로 한 가지 알려주마· 모용율천은····”
태무강의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무원은 한 자도 놓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퍼석!
마침내 태무강의 몸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때 진무원은 눈을 감았다·
“모용율천·”
그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