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 4장 산 자는 선인(善人)이고, 죽은 자는 악인(惡人)이다· (1)
척마대는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다· 겨우 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수십 명의 습격자를 압도했다·
습격자들은 밀야의 무인이었다· 이미 수십 번 이상이나 그들과 치열하게 싸웠기에 척마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혈룡대(血龍隊)·’
밀야의 비밀 조직 중 하나였다·
목표는 운중천의 요인 암살과 교란 그리고 공포감 조성이었다·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발을 뺄 자는 일찌감치 빠지라는 경고를 하는 조직이 바로 혈룡대였다·
혈룡대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무지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발로 밟아 죽여도 계속 기어 나오는 개미들처럼 혈룡대는 끊임없이 전장에 투입됐다·
좌문호가 히죽 웃었다·
‘탕마군과 똑같은 놈들이야·’
이들에게선 탕마군과 똑같은 냄새가 났다· 약물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공력을 늘리고 속성으로 무공을 익혔다· 깊이도 없고 발전 가능성도 적었지만 그래도 실전에서는 쓸 만했다· 개중에는 좌문호를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무위를 가진 자도 나오곤 했다·
지금 척마대를 습격한 혈룡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무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척마대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크악!”
비명이 터져 나오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객잔의 벽과 바닥이 붉게 물들고 사방에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아수라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흐흐!”
좌문호의 입술을 비집고 섬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명료하게 보이던 세상이 온통 붉게만 보였다· 피가 들끓으면서 냉철했던 이성이 광기에 잠식되어 갔다·
몇 명이나 죽였는지 몰랐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객잔 안에 살아남은 혈룡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혈룡대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다른 척마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혈인이 된 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따윈 느끼지도 못 했다· 오히려 그들은 속이 후련하다고 생각했다·
좌문호가 자리에 앉으며 소리쳤다·
“주인장 술 가져와·”
다른 척마대의 무인들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객잔 안에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혈룡대가 습격한 그 순간 빠져나간 것이다· 대신 바닥에 쌓여 있는 혈룡대의 시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좌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전까지 무언가에 신경을 쓴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큭!”
그는 고민하지 않고 웃었다·
중요한 일이라면 언젠가는 생각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승자로서 권리를 누리고 싶었다·
“어서 술 가져오라니까·”
그의 목소리가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척마대와 혈룡대의 싸움을 잠시 지켜보던 진무원은 곧 밖으로 나왔다· 굳이 끝까지 지켜보지 않아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곽문정이 굳은 표정으로 따르고 있었다·
보표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곽문정이었지만 저렇듯 잔혹하고 피 튀기는 싸움은 처음이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마치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 밑바닥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곽문정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턱!
그때 그의 머리에 커다란 손이 얹혀졌다· 진무원이 그의 머리를 헝클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짐승이 되는 것은 아닐 게다· 난 그렇게 믿는다·”
“예!”
곽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원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믿게 만드는 힘과 강한 신뢰감이· 그래서 그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특실이 있는 별채로 넘어왔다· 객잔 안에서는 혈풍이 불었지만 이곳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표승우가 나오며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벌써 식사가 끝난 거야?”
“뭐 어쩌다 보니까요·”
곽문정이 얼버무렸다·
진무원이 보충 설명을 했다·
“식사는 조금 있다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예?”
“지금쯤 주인이 객잔 안을 치우는 데 정신이 없을 겁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가서 식사를 하세요·”
“아!”
그제야 표승우는 객잔 안에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방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주위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이것은 시작일지도 몰랐다·
‘제길!’
표승우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탁자 위에 놓인 상자로 향했다·
생각할수록 불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의뢰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상자는 반드시 전해줘야 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무원이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표승우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진무원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신기한 남자였다· 생각해 보면 진무원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날을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보면 곽문정도 신기했다·
그가 처음 곽문정을 보았을 때는 무공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또래의 다른 소년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대체 문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일도 저 남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
그는 곽문정이 누군가를 이렇게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곽문정은 나이답지 않게 의젓했으며 보표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니까· 이 바닥에 있는 보표들 중 누구도 곽문정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인정을 받고 있는 존재가 바로 곽문정이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남자였다· 하지만 당장 그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상관없겠지· 의뢰인에게 물건을 무사히 전해줄 때까지만 이용하면 될 테니까·’
그는 애써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때 진무원이 곽문정에게 말했다·
“너는 표 대협과 함께 이곳에 있거라·”
“형은요?”
“잠시 밖에 다녀오겠다·”
“알겠어요·”
곽문정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진무원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준 후 밖으로 나왔다· 등 뒤로 표승우의 의뭉 어린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움직일 때였다·
객잔을 나와 진무원이 향한 곳은 번화가였다· 아니 예전에 번화가였던 곳이다· 밀야와 운중천의 전쟁으로 인해 이제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
하지만 사람들의 생명력은 강인했다· 폐허가 된 곳에 그들은 다시 시장을 세웠다· 예전처럼 멀쩡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천막을 세우고 좌판을 늘어놓고 물건을 펼쳤다·
평화 시에는 이렇게 시장이 열리지만 운중천과 밀야의 전쟁이 격화되면 시장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오면 시장은 다시 열린다· 그야말로 도깨비시장이 따로 없었다·
운중천과 밀야 모두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필요한 곳이었다· 이곳엔 없는 것이 없었다· 곡식 의복 무기 그리고 정보까지·
본진에서 보내주는 보급 물자보다 이곳에서 구하는 게 훨씬 싼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양측 모두 적절히 이곳을 이용했다·
진무원은 시장을 거닐었다· 전쟁이 한참이었지만 시장에는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상인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물건들을 좌판 가득 늘어놓고 있었다·
물건값은 평소보다 서너 배는 뛰어 있었다· 그래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곡식 같은 경우는 좌판에 내놓기 무섭게 나갔다· 물건을 가진 상인들은 그야말로 무섭게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어쩌면 전쟁으로 인해 가장 득을 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인지도 몰랐다· 물자를 비축한 상인들· 하진월은 그런 이들을 전쟁상인이라 부르며 마땅히 경계해야 할 존재들로 분류했다·
진무원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걸었다·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에게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진무원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했다· 가격이 맞으면 구입하고 맞지 않으면 자리를 떴다·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진 상인들이었지만 누구 한 명 진무원을 경계하지 않았다·
진무원은 많은 것을 얻었다·
시장은 민심을 보여주는 척도이자 이곳 부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상황판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인들 중 단 한 명도 평범한 자는 없었다· 대부분의 이가 무림 문파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운중천이 부현을 장악하면 그와 연관된 상인들이 득세를 하고 반대로 밀야가 장악하면 그와 연관된 상인들이 득세를 한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인들도 있었다·
상인들의 분위기를 읽으면 현재 부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판도를 읽을 수 있었다·
진무원은 몇몇 상인이 서둘러 물건을 소진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과 거래할 때보다 싼 가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건을 처분하고 있었다·
상인은 약간은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불과 반각 전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듣고 난 이후였다· 분명 평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운중천 출신의 무인이 분명했다·
상인이 평소보다 싼값으로 물건을 팔아치우자 다른 상인들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덩달아 값을 떨어뜨렸다· 물건은 순식간에 동이 나자 상인들은 서둘러 좌판을 정리해 자리를 떠났다·
일사불란한 모습이 마치 잘 조련된 군대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시장엔 오직 진무원만이 남아 있었다·
‘전조(前兆)인가?’
위기를 느낀 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듯 재앙이 일어나기 직전 새들이 둥지를 떠나가듯 그렇게 상인들은 자리를 떠났다·
이제 무슨 전조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진무원은 이미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공기가 바뀌었다·
장마철 습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그 불쾌한 느낌이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강렬한 살의와 적의가 범벅이 되어 안개처럼 부현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사람들의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밀야다·”
진무원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전각 위로 올라가 부현 북쪽을 바라보았다·
어둡기만 하던 대지에 횃불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그 모습이 꼭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의 바다 같았다· 그 너머 부현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마치 어둠이 잠식을 해오는 것 같았다· 하나 같지만 하나가 아닌 존재들· 수많은 무인이 어둠과 동화되어 부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살기가 진무원의 살갗을 따갑게 자극했다·
“습격? 이놈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부현 곳곳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던 척마대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좌문호도 보였고 다른 부대주들도 보였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한 곳을 향했다· 육십여 명의 무인이 순식간에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오롯이 서서 사위를 압도하는 강렬한 기백을 발산하는 남자는 진무원도 익히 아는 존재였다·
“심··· 원의·”
사사천의 소천주이자 칠소천의 일원인 그가 삼 년 만에 진무원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심원의의 모습은 예전에 진무원이 알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칙칙한 검은 무복과 대조되는 새하얀 얼굴· 눈가에는 광기가 넘실거리고 피처럼 붉은 입술엔 살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척마대의 무인들이 심원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강렬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심원의는 그들의 눈에 어린 짙은 갈망을 보았다·
이미 익숙해진 눈빛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들은 전장의 최일선에서 뛰어다녔다· 수많은 임무를 함께 수행했고 밀야의 정예들과 격돌했다·
혈기만 왕성하던 애송이 무인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살기를 발산하는 살인기계가 되었다· 육십여 명의 무인 중 절반 이상이 새로운 얼굴이었다· 즉 절반이 넘는 동료들이 삼 년 동안 죽어나갔다는 뜻이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 감정은 마모되고 깎여 나갔다· 이성이 지배하던 두뇌는 광기로 잠식되었다· 전쟁은 이제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전쟁과 살육을 통해서만 그들은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심원의가 주위에 모인 척마대를 보며 히죽 웃었다·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어제 그렇게 당하고 또 쳐들어오는 것을 보니·”
“흐흐흐!”
척마대의 무인들이 대답 대신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번엔 사우명의 목을 확실히 따 버리자·”
사우명은 밀야의 부현 공세를 지휘하는 수장이었다· 별호는 화의사신(花衣死神) 그의 손에 죽은 운중천 무인의 수만 삼백여 명이 넘었다· 단순히 무공만 강한 게 아니라 병법에도 능해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운중천을 압박하고 있었다·
결코 우습게 볼 인물이 아니다· 그 사실을 척마대의 무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렵다는 표정 대신 살기를 더욱 북돋았다·
“가자!”
심원의가 척마대를 이끌고 전장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의 광기가 전장에 더해졌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괴물을 잉태시키게 마련이다· 인성은 마비되고 도덕성을 상실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괴물·
척마대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눈빛이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