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 3장 불꽃은 찬란함으로 부나방을 유혹한다 (1)
객잔 주인이 안내한 십 인실은 그야말로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슬어 있었고 천장에는 물이 샌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가니 절로 욕이 나올 정도였다·
사내들의 땀 냄새와 입 냄새 발 냄새가 합쳐져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사내들의 음담패설이 곁들이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진무원과 곽문정은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꾹 참았다·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휘성과 강서성 호남성에서 혈겁이 일어났다면서?”
“말이라고 하는가? 그 때문에 지금 운중천에서 난리가 났다네·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南宮世家)가 급습을 당해 전력의 반이 날아갔다는군· 형산파(衡山派)와 옥화문(玉化門)도 큰 피해를 업었고·”
“허! 밀야가 이제 발악을 하는 모양이군·”
“들리는 말로는 사대마장이 움직였다고 하더군·”
“사대마장? 그 살아 있는 재앙이라 불리는 자들 말인가?”
“그렇다네·”
대화를 나누는 사내들의 음성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로 인해 십 인실 전체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듯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천성에 있는 문파들도 큰 피해를 입은 것 같다는데·”
“사천성이라면 당문과 청성파 아미파도 혈겁을 입었다는 것인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천성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의 인원이 대거 교체되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군· 이젠 워낙 검문 검색이 철저해져서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발도 못 붙인다네·”
“이젠 안전한 곳이 하나도 없군· 이 지옥 같은 일상이 언제 끝날지·”
“운중천은 뭐 하는지 모르겠군· 왜 밀야를 쓸어버리지 못하고 이리 휘둘리는 건지· 예전에 북천문이 건재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쉿!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아 내가 못할 말 했는가? 북천문의 진 문주가 건재했을 때는 밀야가 어디 이렇게 중원을 활보할 엄두라도 냈는가? 이게 다 운중천이 죄 없는 북천문의 진문주를 죽였기 때문일세·”
남자의 음성이 격앙되었다·
좁은 방 안에 있던 몇몇 남자가 그에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의 벽이 되어주었던 무인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 그가 죽고 밀야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나서야 그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며 중원을 지켜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운중천은 죄를 지었어· 북벽에 이어 그의 아들인 북검까지 죽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당연한 업보인지도 몰라·”
“그래도 함부로 그런 말 말게· 자칫하다가 운중천 무인들 귀에 들어갔다가는 치도곤을 면치 못할 테니·”
“알겠네· 하도 속이 터져서 그러네·”
남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진무원은 팔베개를 하고 누운 채 남자들의 말을 정리했다·
‘남천명의 말처럼 다른 사대마장들 또한 본격적으로 움직였구나· 그들이 이렇게 개별적으로 움직인다면 필연적으로 운중천 역시 그들을 잡기 위해 절대 고수들을 움직여야 할 것이다·’
중원은 운중천의 안마당이었다· 안마당을 밀야의 사대마장에게 유린당하면 사기가 크게 떨어질 뿐 아니라 전력에도 큰 손실이 온다· 결국 운중천에서도 사대마장을 잡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과연 누가 움직일 것인가? 아홉 하늘 아니면 숨겨놓은 전력· 그도 아니면 모용세가의 전력이·’
진무원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아직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전선이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고 그로 인해 사람의 뇌리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점차 운중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운중천에서 아직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무원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진무원이 그렇게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콰앙!
갑자기 객잔 반대편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사람들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아 암습이다·”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십 인실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갔다· 진무원과 곽문정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와 보니 객잔 한쪽이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고 많은 이가 잔해에 깔려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 중 진무원의 눈길을 끈 이는 바로 표승우였다· 표승우는 허리를 움켜잡은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전방에는 검은색 피풍의를 걸친 괴인이 조그만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서 있었다·
‘저건?’
분명 표승우가 호위하던 남자가 들고 있던 상자였다· 진무원이 빠르게 무너진 잔해를 훑어보았다· 잔해에 깔려 숨진 자들 중에 표승우의 고객이 보였다·
‘암습을 한 것인가?’
진무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 순간 표승우가 노성을 토해냈다·
“네놈 대체 뭐냐? 감히 내 의뢰인을 죽이다니·”
암습을 당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굉음이 터지더니 엄청난 열기와 충격파가 그가 있는 방을 덮쳤다· 온몸을 짓누르는 강렬한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 의뢰인은 죽어 있었고 그의 허리에는 커다란 쇳조각이 박혀 있었다·
표승우는 상대가 벽력탄 같은 종류의 화탄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객잔의 처참한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묻잖아 이 개새끼야· 정체가 뭐냐고·”
표승우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잉!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오른쪽 발뒤꿈치가 무서운 속도로 괴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일도각(一刀脚)이라 불리는 수법이었다·
이 순간 표승우의 다리는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이었다· 일도양단의 기세가 괴인을 덮쳤다·
스륵!
순간 괴인의 몸이 누군가 잡아끄는 것처럼 뒤로 물러났다· 마치 유령 같은 움직임에 표승우의 일도각이 헛되이 바닥을 강타했다·
쾅!
바닥에 큰 구덩이가 패였다·
반진력으로 표승우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오히려 반진력을 이용해 괴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바바바방!
열여덟의 발길질에 공기가 연이어 터져 나갔다· 신기에 이른 무영각(無影脚)이었다· 이 각법 하나로 그는 보표로 위명을 쌓았다·
폭풍 같은 그의 무영각에 괴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표승우는 쾌재를 부르며 다시금 일도각을 날리려 했다· 그 순간 괴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괴인이 허공에 던진 곳은 마치 솔방울처럼 생겼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느껴졌다· 순간 위기감을 느낀 표승우가 일도각을 거두고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젠장!”
콰아앙!
그 직후 솔방울처럼 생긴 화탄이 폭발을 일으켰다· 화염과 강렬한 열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몸 위로 객잔의 잔해와 화탄의 파편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객잔의 일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미친!”
뒤늦게 곽문정이 사태를 깨닫고 표승우에게 달려갔다·
“크헉!”
표승우가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의 어깨와 다리에는 파편의 일부분이 박혀 있었고 가슴은 강렬한 열기에 화상을 입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 괜찮아요?”
“나 난 괜찮아· 그보다 그자는?”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표승우는 괴인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괴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곽문정이 고개를 젓자 표승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의뢰인은?”
표승우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잔해를 향했다· 잔해 밑에 깔린 그의 의뢰인은 미동도 없었다· 절명한 것이다·
“크윽!”
표승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육체의 고통과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다· 그가 보표가 된 이후 처음으로 의뢰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분노와 상실감은 표승우 본인이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곽문정이 표승우의 상처를 지혈하며 물었다·
“의뢰인이 누구기에 습격을 당한 거죠?”
“나도 몰라· 호북성 출신의 거상이라는 것밖에는·”
“거상?”
“그래! 부현에서 만날 사람이 있으니까 보호해 달라고 했어· 그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반드시 전달해 줘야 한다면서·”
곽문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표승우의 설명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습격한 괴인의 정체는 물론이고 목적까지도·
괴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곽문정은 진무원도 보이지 않는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괴인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가볍게 바닥을 톡톡 차는 것 같은데 그의 몸은 거의 십여 장씩 쭉쭉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문득 괴인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근처의 수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냐?”
살기가 담긴 음성이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러자 누군가 수풀 속에서 걸어 나왔다·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가 괴인을 추적해 온 것이다·
진무원이 괴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내가 묻고 싶군요· 당신은 누굽니까?”
“····”
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무원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순순히 대답을 해줄 이였다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있는 객잔에서 벽력탄을 터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괴인이 진무원을 빤히 바라봤다· 진무원도 괴인을 바라봤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진무원은 진짜 얼굴이 아니었고 괴인 역시 인피면구를 쓴 듯 감정이나 표정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진무원의 시선이 괴인이 들고 있는 상자를 향했다· 괴인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저 상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이 분명했다·
‘저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기에····’
진무원의 시선을 느꼈는지 괴인이 상자를 뒤로 숨기며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의 감각을 감쪽같이 속이고 이곳까지 추적해 왔단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진무원이 괴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유유자적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괴인이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살기를 더욱 거세게 피워 올렸다·
“감히!”
그가 진무원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쾅!
진무원이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벽력탄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진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계류보로 이동을 한 것이다·
“크윽!”
괴인이 다시 벽력탄을 던지며 뒤로 몸을 날렸다· 마지막 벽력탄이자 가장 위력이 큰 놈이었다·
쿠와앙!
천지를 흔드는 폭발이 일어났다·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부러져 나가고 풀들에 불이 붙은 채 허공으로 비산했다· 엄청난 후폭풍이 방원 삼 장여를 집어삼켰다·
괴인이 안심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불길을 뚫고 진무원이 질주해 왔다· 새빨간 불길이 양쪽으로 확 갈라졌다·
“제길!”
엄청난 폭발에서도 진무원은 상처 하나 없었다· 벽력탄이 터지는 순간 폭발 권역을 물러났었기 때문이다·
괴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별호는 폭귀(爆鬼)였다· 벽력탄과 같은 화기를 귀신같이 잘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력탄은 워낙 위험한 물건이라 몇 개 가지고 다닐 수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사용하기도 전에 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상자를 향했다·
‘제길!’
주인은 그에게 상자의 회수를 명했다· 정확히는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의 회수였다· 만일 회수가 여의치 않으면 없애 버릴 것을 지시했다·
진무원에게는 벽력탄이 통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화기를 모조리 사용해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폭귀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사이 진무원이 그의 지척까지 쇄도해 왔다· 진무원의 눈동자에 폭귀의 결연한 표정이 들어왔다·
‘이자?’
순간 진무원이 방향을 바꿔 허공으로 치솟아올랐다· 그 순간 폭귀의 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쾅!
지니고 있던 화기를 모조리 폭발시킨 것이다·
발밑으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진무원은 몸을 비틀어 폭발 권역에서 벗어났다·
“이런!”
진무원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폭귀가 자폭을 택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사방에 폭귀의 것으로 짐작되는 살점이 떨어져 있었다·
문득 진무원의 눈이 빛났다· 살점 한가운데 반쯤 부서진 상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폭귀는 자신의 죽음으로 상자를 없애려고 했지만 그의 예상보다 상자는 단단한 재질로 이뤄져 있었다·
진무원이 반쯤 파괴된 상자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