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 2장 검객은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은 혼란으로 물든다 (1)
무영사태가 전각의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전신이 소 잡는 커다란 칼로 조각조각 해체되는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진무원이 제때 영단을 복용시키지 않았다면 목숨마저 위험했을 것이다·
무영사태가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봤다· 그녀의 망막에 진무원과 남천명이 격돌하는 모습이 맺혔다·
남천명은 이제 전신이 뇌전으로 덮여 보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무공이었고 인간의 한계 따윈 오래전에 벗어던진 것 같았다·
‘밀야의 사대마장이란 다 저렇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들인가? 정녕 막을 수 없는 재앙이란 말인가?’
왜 사대마장을 막을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몸으로 뇌전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존재를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얀 뇌전 인간과 맞서 싸우는 낯선 남자 때문이었다·
위기의 순간에서 그녀를 구해주었던 낯선 남자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남천명의 무력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평범한 청강검이 허공을 찌를 때마다 남천명은 오히려 움찔하며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났다·
무영사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의 검에는 검강이나 검기 같은 초절정의 기예는 발현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특별한 초식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평범한 찌르기 한 번에 남천명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미타불! 대체 저 시주가 누구기에?’
무영사태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의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했다·
그때였다·
지이잉!
갑자기 섬뜩한 느낌과 함께 무영사태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아 오르고 온몸의 솜털이란 솜털이 모조리 곤두섰다·
“크흡!”
뒤이어 남천명의 답답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이나마 뇌전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던 남천명의 어깨에 긴 자상이 생겨나 선혈을 점점이 흩날리고 있었다·
자상은 뇌전의 열기로 금세 봉합이 되었지만 남천명의 경악 어린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 진무원이 날린 일격 때문이었다·
검기나 검강도 없는 평범한 일격이 풍렬일기공의 맥을 가닥가득 끊고 들어왔다· 단순히 맥만 끊은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음파의 벽마저 두 조각으로 가르고 들어왔다·
만일 남천명의 회피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단순히 어깨가 갈라지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진무원의 검이 허공에서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평범한 검로에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풍렬일기공을 발동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런데 남천명은 그러지 못했다· 진무원의 검에서 일어난 기이한 흡인력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그물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그의 몸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의 최대 장점은 속도다· 풍렬일기공 역시 속도가 극에 달할 때 제 위력을 발휘하고 우레의 힘을 끌어 쓸 수 있다· 그런데 진무원의 기괴한 검공은 그가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짧은 순간 벌써 내 약점을 파악했단 말인가?’
그가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아무리 속도를 높이고 뇌전을 거세게 방출해도 진무원의 검을 뚫을 수가 없었다· 진무원의 검법은 실로 기묘했다· 분명 평범해 보이는 초식이었는데 이상하게 피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검공이냐?”
남천명의 외침에 진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멸천마영검을 차분히 풀어내며 남천명을 압박했다·
쉬각!
유성혼(流星魂)이 허공을 갈랐다·
‘우측으로 삼 보·’
순간 그의 예상처럼 남천명이 우측으로 삼 보 이동했다· 유성혼을 피하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멸천마영검의 이초식 북천벽이 펼쳐졌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엄청난 압박감이 남천명을 덮쳤다· 그러자 남천명이 급히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든 동작이 진무원의 예측했던 대로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진무원은 남천명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했다· 극한의 속도에 치중한 남천명의 무공은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잔가지는 모조리 쳐 내고 줄기만 남겨둔 나무처럼 진퇴가 명확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눈으로 인지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와 작렬하는 뇌전의 위력에 질려 감히 남천명의 움직임을 어떻게 제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진무원은 달랐다·
전방위 감각이 폭발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남천명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의 호흡 그의 근육의 미세한 떨림 뇌전의 방전 영역 그리고 그의 이동 방향까지도 말이다·
남천명의 호흡이 점차 가빠지고 있었다· 더불어 그의 몸에서 방전되던 전기도 차츰 위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진무원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계류보가 펼쳐지며 그의 몸이 쭈욱 늘어났다·
“헉!”
순간 진무원에게 쇄도하던 남천명이 놀라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진무원이 방향을 바꿨다·
쉬각!
진무원의 검이 번쩍였다·
순간 남천명의 몸을 감싸고 있던 뇌전이 다시 한 번 잘려져 나갔다· 이번엔 남천명의 가슴에 긴 자상이 생겨났다·
“감히!”
남천명이 노성을 내뱉으며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뇌령섬화(雷靈閃火)·
풍렬일기공 최강의 초식이 진무원을 향해 펼쳐졌다·
쿠콰콰각!
뇌전의 폭풍이 진무원을 향해 몰아쳐 왔다·
진무원은 망설이지 않고 뇌전의 폭풍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초식이나 투로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진무원은 검에 간절한 염을 담았다·
베겠다는 일념(一念)을·
츄화학!
그의 검이 허공에 긴 선을 만들어낸 순간 남천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세상 전체가 잘려져 나가고 있었다·
뇌전의 폭풍도 대기도 그리고 하늘도·
그가 보고 있던 모든 세상이 두 조각이 나는 것 같았다·
“아!”
다음 순간 모든 것이 환상처럼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지만 남천명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르륵!
그의 몸을 비집고 선혈이 점점이 흘러내렸다· 어깨에서 시작된 선혈은 사선으로 이어져 아랫배까지 일직선으로 흘러내렸다·
“컥!”
남천명이 뒤늦게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진무원이 그제야 멈춰서며 검을 바닥을 향해 길게 늘어뜨렸다·
남천명이 힘없이 진무원을 올려다봤다·
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게 무슨 검··· 공인가?”
“멸천마영검·”
진무원이 대답과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아미파와 염마대의 싸움에 낯익은 이들이 개입했다· 뒤늦게 달려온 검혈대와 활독당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개입에 염마대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미타불!”
무영사태가 하염없이 불호만 되뇌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대마장의 전설·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전설의 종지부를 자신의 눈으로 보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대체 누구기에?”
그녀의 망막 가득 전설의 종지부를 가져온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남천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천명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북천문 이런 오지에 숨어서 힘을 길렀나? 가경의가 예상 못한 상황이군·”
“가경의?”
“흐흐! 있네· 그런 아이가· 내 죽음으로 그 아이가 사천성을 주목할 게야· 이제 자네도 두 발 편히 뻗고 자기 힘들게 되겠군·”
“누가 두 발을 뻗고 잘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흐흐! 그것도··· 그렇군· 피곤해! 이제 좀 자야겠네· 나는····”
남천명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강호를 오랜 세월 지배해 온 공포의 전설은 그렇게 종극(終極)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진무원을 바라봤다·
사대마장의 전설을 종식시킨 자· 비록 무너뜨린 것이 일각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에게 던져준 충격은 그들의 정신과 자아를 일순간이나마 붕괴시키기 충분했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염마대주 구광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균열이 생겨났다· 항상 냉정하기만 했던 가슴 한편에 격랑이 일어나고 있었다·
남천명은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자신들 모두가 죽어도 그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됐다· 그는 밀야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밀야의 수많은 이가 그를 우러러보고 따랐다·
그의 죽음은 밀야 전체에도 큰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어쩌면 밀야의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남천명의 죽음이 던져준 충격은 거대했다·
구광문이 진무원을 향해 달려왔다·
“네놈은 누구냐?”
마치 모래를 집어삼킨 것처럼 그의 음성은 탁하고 처절했다· 피를 토하는 그의 외침에도 진무원은 별반 움직임이 없었다·
구광문이 큰 주먹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는 주먹을 진무원을 향해 내뻗지 못했다·
“커억!”
갑자기 그가 피를 토해냈다· 검붉은 선혈이 바닥과 그의 가슴을 적셨다·
“무슨?”
구광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눈과 귀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붉게만 보였다· 그 속에 진무원이 있었다·
“크악!”
구광문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혈맥이 터지고 근육이 파열된다· 내부의 장기는 기능을 잃고 괴사를 하고 있었고 근육을 지탱하던 뼈가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의 몸 자체가 붕괴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갈기갈기 해체되는 고통에 구광문이 죽어라 소리를 질렀다· 그의 비명이 어찌나 처절하던지 아미파의 무인들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을 정도였다·
처절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구광문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핏발 선 눈으로 구광문을 노려보는 남자는 바로 당기문이었다·
일천광주(一千狂酒)·
그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극독 중의 극독이었다· 바로 구광문같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일천광주에 중독되면 혼을 짓이기는 듯한 처절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공력은 산산이 흩어지고 피는 마치 용암이라도 된 듯이 미친 듯이 들끓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쉽게 죽지 않는다· 끔찍한 고통이란 고통을 모조리 느낀 후에야 천천히 죽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이 일천광주였다·
만들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일천광주였다· 그런 극독을 하독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당기문이 얼마나 큰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끄아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이제 알겠지? 당문을 건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당기문의 말에 활독당과 검혈대의 무인들마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문을 나와 북천문에 몸을 담고 있지만 당기문의 근원은 당문이었다·
근원을 침범당하고 짓밟힌 자의 분노는 실로 무서웠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한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당문은 아직 죽지 않았다·
당기문이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진무원은 당기문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기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삼 년 전 운중천에 의해 사냥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사람에게 독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격적인 경험은 사람을 바꾸고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당기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했고 최대한 독의 사용을 자제하려 했다·
그런 그가 끝까지 아끼고 아꼈던 극독을 사용했다· 그라고 극독을 사용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선 당문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문의 가주가 죽고 수뇌부가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당문의 역사상 이런 피해를 입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문은 약해졌다· 당문을 노리는 적이 있다면 그야말로 최적의 기회였다· 그래서 증명해야 했다· 아직 당문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당문의 독과 암기는 아직도 적의 숨통을 끊기 충분할 정도로 날카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광문은 그 후로도 반 시진이나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했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스스로 목을 조르며 어서 빨리 죽기를 기원했다·
그런 구광문의 모습은 아미파 무인들의 뇌리에도 깊은 낙인을 새겼다·
‘당문은 죽지 않았다·’
‘그들의 끔찍한 독과 암기는 아직도 건재하다·’
소름과 오한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