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 1장 운명은 낮은 곳으로 흘러 고이게 마련이다 (1)
강호의 명성은 곧 힘이다·
힘을 가진 자 명성을 탐하고
명성을 가진 자 주위에 사람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명성을 얻은 자·
그의 발밑엔 수백 수천 명이 흘린 피가 흐르게 마련이다·
학살자가 영웅이라 불리는 곳·
그곳이 강호다·
상남엔 깊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대부분 무인이었고 무인들은 하나같이 병기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운중천과 밀야가 격돌하는 전선은 이제 부현을 넘어서 동천(銅川)까지 확대되었다· 동천은 화산과 지근거리에 위치한 현이었다· 이젠 화산파도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선이 확대된 것이다·
자연 급해진 것은 화산파와 종남파였다·
화산파는 오랜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외세의 침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기에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당장 모든 속가제자가 소집되었고 외부로 나갔던 본산 제자들도 소환되었다· 화산파가 출범한 이래 처음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화산파만이 아니었다· 화산파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종남파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종남파도 본산제자와 속가제자를 모조리 불러 들여 방비를 단단히 했고 운중천에도 도움을 청했다·
화산파와 종남파가 무너지면 섬서성이 밀야에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운중천에서도 전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 운중천에서도 정예들을 파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선이 요동치자 영웅이 되길 꿈꾸는 젊은 무인들이 부나방처럼 섬서성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섬서성은 천하의 인재와 영웅들을 끌어모으는 뜨거운 용광로가 되었다·
상남은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 지역이었다· 화산파와 종남파의 배후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안전한데다가 운중천의 지부가 있기에 많은 무인이 상남에 집결하고 있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상남에서 무기를 차고 있는 무인을 보는 것은 길가의 돌멩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흔했고 자연히 일반 백성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운중천의 상남 지부로 커다란 마차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호화로운 사두마차의 등장에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눈을 빛냈다·
전운이 감돌다 보니 이곳 상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림 인사들이 방문했다· 그 때문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멈추십시오·”
무인들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마부석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기도가 범상치 않은지라 무인들은 잠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문세가에서 왔어요· 마차에는 서문혜령 아가씨께서 타고 계세요·”
“아 적화선자·”
그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서문혜령이 얼굴을 드러냈다· 운중천에 몸을 담고 있는 무인치고 서문혜령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문 소저·”
“들어가도 되나요?”
“예? 예! 들어가십시오· 토 통과·”
무인들의 외침에 마부석에 앉아 있는 여인 채화영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마차를 몰았다·
상남 지부에 들어서자마자 서문혜령은 지부장을 찾아갔다·
상남 지부장 이름은 송화열· 서문혜령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비굴함이 가득했다· 강호의 지위만 놓고 봤을 때 그가 서문혜령에게 저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었다· 비록 서문혜령이 칠소천의 일원으로 강호에 명성을 날린다고 하지만 운중천의 지부장이라는 지위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에·
하지만 송화열이 상남 지부장이 된 데는 서문세가의 힘이 컸다· 서문세가의 지원 아래 상남의 지부장이 되었기에 서문혜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아가씨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알아볼 것이 있어서요·”
“말씀만 하십시오 아가씨· 제가 아는 거라면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탕마군과 낭인들이 도착한 일이 있죠?”
“예! 그 때문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군마대와 마주치고도 생환하다니·”
“군마대와 마주쳤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탕마군과 낭인들에게 물어봤는데 군마대와 격돌한 것이 맞답니다·”
“군마대와 격돌하고서도 살아왔다? 쉽게 믿기 힘든 말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가씨·”
송화열의 대답을 들었지만 서문혜령의 얼굴엔 못내 찜찜한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철기문이 개입했다는 것은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흐음!”
그나마 철기문이 개입했다면 이야기가 얼추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송화열이 그녀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것?”
“예! 탕마군이나 낭인들 모두 공통적으로 한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남에서는 그를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게 누군가요?”
“공작문의 단천운이라고 합니다· 강호초출이라고 하더군요·”
“단천운?”
서문혜령이 조용히 단천운이라는 이름 석 자를 되뇌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살짝 균열이 간 것을 송화열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름을 되뇔수록 이상하게 꺼림칙했다· 마치 입안에 모래가 가득 찬 것 같은 깔깔함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공작문의 단천운이라는 자가 어떻게 개입했다는 거죠?”
“저도 잘 모르지만 군마대의 이대주 포영휘에게 상처를 입힌 자가 바로 그랍니다· 그 때문에 군마대가 추적을 멈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포영휘에게 상처를 입혀요? 그것도 강호초출이?”
서문혜령의 미간에 파인 골이 더 깊어졌다·
그만큼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포영휘 개인으로 놓고 봤을 때의 무위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가치가 가장 빛이 나는 것은 군마대라는 무력집단을 지휘할 때였다·
군마대라는 무력집단에 속해 있을 때의 포영휘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강호초출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한다·
“포영휘가 상처를 입어서 추적을 멈췄다?”
서문혜령이 생각에 잠겼다·
머리에서 그림이 쉽게 맞춰지지 않았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강호에 신성이 출현했다고 생각하면 간단했지만 서문혜령은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하나의 주목받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단천운의 등장에는 그 어떤 조짐도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강호에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또 신비롭게 사라졌다·
“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죠?”
“철기문의 무인들이 가장 잘 알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으니까요·”
“그럼 종리 부문주부터 만나봐야겠군요·”
서문혜령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송화열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한 가지에 꽂히면 집착을 하는 세문세가 사람들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지부장님 지급으로 들어온 보고입니다·”
밖에서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송화열의 허락이 떨어지자 젊은 무인이 붉은 봉투에 든 서신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지급이라고?”
“그렇습니다· 방금 전 전서구로 들어왔습니다·”
“으음!”
송화열이 급히 붉은 봉투를 열고 서신을 펼쳤다· 서신을 펼쳐 읽어 내리는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헉! 청성파와 다 당문이 혈겁을 당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서문혜령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화열의 손에서 서신을 빼앗았다·
서신을 읽어 내리는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서신 안에는 분명 청성파와 당문이 혈겁을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흘 전에 청성파가 혈겁을 당하고 그다음 날 당문이 또 혈겁을 당했다고? 말도 안 되는····”
불과 사흘 만에 수천 리 밖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내고 이곳까지 알려온 운중천의 정보력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내용이었다·
청성파와 당문이 어떤 문파던가? 각각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운중천에서도 무시 못 할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천성이라는 폐쇄적인 지형 덕분에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두 문파가 다른 곳도 아닌 자신들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사천성 안에서 혈겁을 당했다고 하니 쉽게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도대체 사천성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폐쇄적인 사천성의 지형 특성상 대규모 병력 파견은 불가능했을 테고 그렇다면 소수 정예를 파견하여 급습했다는 건데· 겨우 소수 정예의 급습 정도에 청성과 당문 같은 대문파가 혈겁을 입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면 수의 열세를 일거에 뒤집을 정도의 절대 고수가 동원되었다는 건가?”
서문혜령의 두뇌가 무서울 정도로 핑핑 돌아갔다·
수많은 정보를 대입하고 가능성을 도출해 내고 경우의 수를 찾아냈다·
“설마 사대마장이 움직였단 말인가?”
서문혜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재로서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최악의 가정이기도 했다·
“정말 사대마장이 움직였다면 겨우 청성과 당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서문혜령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단천운에 대한 생각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위기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해일처럼 덮어버렸다·
“아가씨·”
송화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서문혜령이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남천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옆구리와 어깨에서 혈흔이 보였다· 지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다·
“만독제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구나· 만독불침에 가까운 나의 몸에 이 정도의 상처를 입히다니·”
당관호는 은마사를 이용해 남천명을 공격했다· 그의 은마사는 금용 암기답게 극악한 위력을 자랑했지만 불행히도 남천명에겐 통하지 않았다· 가공할 내공을 바탕으로 오래전에 만독불침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기에 당관호는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만독제라는 별호답게 수많은 암기를 사용했고 독공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승자는 남천명이 되었다· 하지만 남천명이 입은 상처도 결코 녹록치 않았다·
당관호의 암기와 독공은 만독불침 신체에 가까운 그의 몸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내장이 상하고 기혈이 들끓어 흐트러진 진기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마영좌시여· 잠시 쉬시면서 운공이라도 하심이 어떠신지요?”
“흥! 겨우 이깟 상처 때문에 쉰단 말이냐? 됐다· 어서 움직이기나 하거라·”
“예!”
염마대의 대주 구광문이 쉴 것을 권했지만 남천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기혈이 들끓어서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반나절 정도만 지나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령서생의 명을 수행해야 하니까·’
밀야에도 군사는 존재한다·
마령서생(魔靈書生) 가경의 바로 그가 밀야의 군사였다·
가경의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밀야의 일반 무인들은 가경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야주와 사대마장 같은 밀야의 수뇌부들 정도였다·
운중천과의 전쟁이 발발한 후 어쩐 일인지 가경의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삼 년 동안 거의 수수방관하던 그가 움직인 것은 불과 한 달 전이었다·
한 달 전 그는 사대마장을 소집했고 각자에게 임무를 하나씩 주었다· 남천명에겐 사천무림을 초토화시켜 줄 것을 부탁했고 다른 마장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임무를 부여했다·
가경의의 조그만 머릿속에 얼마나 큰 그림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가경의가 그리는 그림이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사대마장은 가경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남천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경의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가경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마령서생이 움직인 이상 이전까지처럼 전선이 고착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천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조용히 운공을 하기 시작했다·
풍렬일기공(風烈一氣功)·
지금의 청풍마영을 있게 만든 희대의 심공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외부의 그 어떤 기운의 침입도 용납지 않는 철벽같은 성향을 가진 심공이 바로 풍렬일기공이었다·
남천명은 그 덕에 흔들리는 말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심법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풍렬일기공을 운용하며 휴식에 들어갔다·
저 멀리 아미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