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 6장 때로는 예상치 못하게 발목을 잡힌다 (1)
“큭! 재밌구나·”
척천경의 코끝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웃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두 눈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포영휘와 홍악산이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군마대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는 초토화가 된 대지가 보였다·
이곳에 도착한 것이 반나절 전이다· 그 시간 동안 기괴한 진법에 잡혀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환상으로 범벅된 진법을 파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리무환이 펼친 청옥환상진은 실로 교묘해서 파훼하는 것이 더더욱 쉽지 않았다· 결국 반나절을 이곳에서 묶였고 뜻하지 않게 몇몇의 군마대 무인들이 부상을 당했다·
척천경에겐 그야말로 치욕이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발길을 붙잡아놓는단 말이지·”
“이미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쉽게 따라잡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포영휘의 말에 척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포영휘나 척천경 모두 실망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약탈한 보급품 중 휴대 가능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려라·”
“예!”
“먼저 출발해라· 기필코 오늘 밤중으로 놈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나는 일대를 이끌고 뒤따라가겠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포영휘의 음성에도 살기가 넘실거렸다· 설마 이곳에서 진법에 발목을 잡힐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다· 짜증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진법을 펼친 상대에 대한 살의는 눈덩이처럼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해 거추장스러운 짐을 모두 버리게 했다· 지참한 것은 오직 무기와 간단한 건량뿐이었다·
“가자!”
포영휘의 외침 아래 군마대의 질주가 다시 시작됐다· 종전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그들은 내달렸다· 휴식 시간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끼니는 말 위에서 간단한 건량으로 해결했고 물도 말 위에서 마셨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반나절을 달렸다· 그러자 저 멀리 탕마군과 낭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포영휘의 얼굴에 살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겨우 여기까지인가?”
그들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말을 달릴 때 저들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더 멀리 갔을 것이다·
“쉴 것 다 쉬고 도주한단 말이지? 아니면 군마대가 추적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인가?”
그가 손짓했다·
“악산이 이끄는 삼대는 왼쪽으로 우리는 방추형 진용으로 오른쪽 측면을 들이친다·”
“대주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왜 겁나나? 그렇다면 나 혼자 놈을 치지·”
포영휘의 명령에 홍악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대로 계속 포영휘에게 얕보일 수는 없었다·
“알았다·”
홍악산이 삼대를 이끌고 왼쪽으로 크게 호선을 그리며 돌았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포영휘가 이대를 이끌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평소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법이다· 이렇게 양쪽에서 동시에 들이닥치면 대부분의 집단은 제대로 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지리멸멸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군마와 일체가 된 무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탕마군과 낭인들처럼 제대로 된 병법을 알지 못하는 오합지졸들에게는 말이다·
포영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눈이 순식간에 군웅들을 훑었다·
“군마대가 추적해 왔다!”
“으악! 살려줘!”
군마대의 등장에 혼비백산하는 탕마군과 낭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포영휘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상대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분명 두려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상대의 진영에 대단한 책사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의 대응이 이해가 됐다· 그 책사란 자가 분명히 대비를 시켰을 것이다·
포영휘가 코웃음을 쳤다·
“흥!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봤자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정한 강함은 모든 것을 깨부순다· 포영휘는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의 배경에는 군마대가 있었다· 그만큼 혹독하게 수련시켰고 자신감도 있었다·
쿠와앙!
그 순간 홍악산이 이끄는 삼대가 먼저 탕마군과 낭인들의 좌측을 직격했다· 순식간에 전열이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됐다· 탕마군은 겁에 질려 도주했고 그나마 낭인들이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하하! 모두 죽어랏!”
홍악산이 미쳐 날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해 있던 홍악산이다· 그는 그간의 울분을 탕마군과 낭인들에게 쏟아부었다·
거기에 포영휘가 이끄는 이대까지 더해지자 탕마군과 낭인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도망갔다· 홍악산과 삼대가 그들을 추적하려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패앵!
갑자기 날카로운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바닥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덩굴이었다· 수십 줄기의 덩굴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이게 뭐야?”
갑작스러운 변고에 군마대의 무인들이 타고 있는 말들이 놀라 날뛰었다· 덩굴에 걸려 넘어지는 말이 속출했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인들 역시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함정이구나·”
포영휘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적들은 나무 덩굴을 묻어놓고 이곳으로 자신들을 유인한 것이 분명했다· 말의 다리가 나무 덩굴에 얽혀 꼼짝을 못했다·
“모두 당황하지 말고 덩굴을 잘라내라!”
포영휘의 명령에 군마대의 무인들이 나무 덩굴을 잘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주하던 탕마군과 낭인들이 돌아서 반격을 시작했다· 그 선두에 종리무환과 철기문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탕마군과 낭인들을 이끌고 군마대의 배후를 습격했다· 그들은 군마대가 덩굴을 잘라낼 시간을 주지 않고 공격했다·
기동력을 잃었으나 군마대는 여전히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종리무환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상대는 군마대였다· 겨우 이 정도로 그들을 몰살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종리무환이 이끄는 병력은 특히 말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적의 기동력을 빼앗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적이었다·
탕마군과 낭인들은 말의 다리만 노렸다· 말의 배 밑으로 이동하고 검을 이용해 말의 무릎을 잘라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말이 다리를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모두 말에서 내려 놈들을 공격하라·”
보다 못한 홍악산이 말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
그 순간 종리무환이 외쳤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그의 명령에 낭인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했다·
포영휘의 안색이 변했다·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가 말의 안장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도가 들려 있었다·
후웅!
그가 도를 휘두르자 빗살 같은 도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크악!”
도기에 휘말린 낭인 십여 명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들의 가슴과 등에는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 같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흥! 수작을 부리다니·”
잠시 바닥에 착지했던 포영휘가 다시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의 도가 다시 빗살 같은 도기를 발산하려는 순간이었다·
쐐액!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위기감을 느낀 포영휘가 도를 들어 자신의 전면을 가렸다·
콰앙!
순간 그의 도에 강렬한 충격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충격을 이기지 못한 포영휘의 몸이 뒤로 오 장여나 날려가 바닥에 착지했다·
“무슨?”
도를 쥐고 있는 손바닥이 찌르르 울렸다·
온몸을 진동시키는 강렬한 울림에 그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발치에 나뒹구는 것은 부서진 돌멩이의 잔해였다·
‘고수?’
누군가 돌멩이를 던져 그를 공격한 것이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쐐애액!
순간 예의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챠앗!”
포영휘는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에 반투명한 강기의 막이 형성되는 찰나 돌멩이 대여섯 개가 직격했다·
콰아앙!
호신강기에 막힌 돌멩이가 마치 벽력탄처럼 터져 나갔다· 엄청난 충격에 포영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에 포영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구냐?”
그가 돌멩이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도를 겨눴다· 그의 도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가 싶더니 도강을 형성했다· 본능적으로 미지의 상대가 녹록치 않은 존재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홍악산을 비롯한 다른 군마대의 무인들은 탕마군과 낭인들을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지금 포영휘가 상대하고 있는 미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쉬각!
그 순간 눈앞에서 섬전이 번쩍였다·
“두 번 당할 줄 아느냐?”
포영휘는 호신강기를 믿고 섬전이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호신강기를 부술 수 있는 것은 같은 수준에 이른 강기 무공뿐이라는 것이 포영휘의 상식이었다·
그가 섬전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도강이 길게 늘어나며 채찍처럼 휘었다·
포영휘는 이번 한 수에 섬전은 물론이고 음지에서 암습한 자를 두 동강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도강이 섬전을 가격하는 순간 그의 상식과 믿음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쿠콰가각!
도강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나가며 섬전의 정체가 드러났다·
“나무?”
그것은 분명 가느다란 나뭇가지였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도강이 깨져 나가고 철벽같던 호신강기가 뚫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포영휘가 눈을 크게 치떴다·
그 순간 포영휘의 어깨가 화끈해졌다· 나뭇가지가 그의 어깨를 꿰뚫은 것이다·
“무슨 개 같은····”
빠각!
그 순간 강렬한 충격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포영휘의 목이 홱 돌아가면서 정신을 잃었다·
포영휘가 기절하자 나뭇가지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체구를 가진 남자는 바로 진무원이었다·
진무원은 바닥에 쓰러진 포영휘의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사나운 위세를 자랑하던 포영휘였지만 지금은 의식을 잃고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전장을 바라봤다· 채약란과 고천후가 홍악산을 합공하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에 공손창이 가세하자 홍악산의 손발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미 홍악산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채약란과 고천후였다· 거기에 공손창이 가세하자 승부의 추가 점차 기울어져 갔다· 종리무환은 탕마군과 낭인들을 지휘해 군마대를 공략했다·
이 모든 것이 종리무환의 계책이었다· 그는 더 이상 도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나무 덩굴로 적의 기동력을 빼앗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는 진무원에게 포영휘를 상대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만 제거한다면 한번 승부를 겨뤄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탕마군과 낭인들을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군마대를 공격했다· 말과 기동력을 잃은 군마대의 무인들은 지독한 그들의 합공에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었다·
진무원의 시선이 동쪽으로 향했다·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제일 큰 위협이 남아 있었다·
진무원이 동쪽으로 경공을 펼쳐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