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 4장 싸우는 자, 서로를 알아본다 (2)
진무원은 홍악산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발산하는 역발산의 기개가 느껴졌다· 일반적인 무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패도적인 기운이 그의 주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홍악산뿐만이 아니었다· 군마대 전체가 그와 비슷한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심산유곡이나 안전한 곳에서 닦은 내공은 그야말로 순수한 기운을 가진다· 하지만 전장에서 쌓은 내공은 그렇지 못했다·
거칠고 탁했다· 그리고 전장의 광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위압적이고 포악한 기세를 자연스럽게 발산하게 된다· 지금의 군마대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마대가 발산하는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단순히 전장의 광기에 물든 것이 아니라 전장의 광기 그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진월이 진무원에게 건네준 강호인명록에는 군마대의 대주 척천경을 패(覇)와 주(注)의 중간급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일성의 패주에 근접한 마땅히 주목받아야할 자라는 뜻이었다·
구파일방의 수장이나 오대세가의 주인들 바로 아래 급의 무인이 바로 군마대주 척천경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하진월도 얻어내지 못했다· 워낙 신출귀몰한데다가 가까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홍악산이 말을 몰고 다가오자 종리무환 등의 표정이 싹 변했다· 홍악산이 그들을 향해 조소를 흘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두고 볼 생각이지? 저들과 같은 일행이 아니었나? 겁쟁이들·”
홍악산이 도끼를 들어 종리무환 등을 가리켰다· 그러자 제일 먼저 고천후의 볼 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감히 노부에게 겁쟁이라니!”
그가 앞뒤 재지 않고 홍악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애초에 물러설 여지도 공간도 없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자!”
채약란이 군마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뒤를 공손창이 따랐다·
“어쩔 수 없구나·”
종리무환이 고개를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런 식의 이득 없는 싸움은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진무원은 마차에 담담히 앉아 있었다·
“아저씨·”
곁에 있던 유건엽이 진무원을 불렀다· 그는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누구보다 살기에 민감하다 보니 홍악산이 발산하는 살기와 기세에 악영향을 받는 것이다·
“괜찮다·”
진무원이 그의 조그만 손을 잡았다· 그러자 유건엽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홍악산과 군마대의 살기에 노출된 것은 여전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그 이유가 진무원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유건엽이 아니었다·
유건엽이 진무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무원은 군마대와 탕마군 낭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죽어나가는 것은 탕마군과 낭인들이었다· 종리무환을 비롯한 철기문의 무인들이 뛰어들었지만 기울어진 전황을 일거에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제 겨우 열대여섯 살짜리 소년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지만 군마대를 당할 수는 없었다·
“으으!”
결국 겁에 질린 몇 명이 뒤돌아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들을 막을 곽숭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포는 급격히 전염되었다· 소년들은 검과 도를 버리고 도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힘겹게 버티던 낭인들마저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도는 비좁은데 수많은 사람이 얽히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군마대는 서두르지 않고 그들을 추적해 한 명씩 죽여 나갔다·
“으허헝! 살려줘요!”
“엄마 보고 싶어!”
소년들이 흐느껴 울었다·
검과 도를 버린 그들은 더 이상 탕마군이라는 이름의 무인이 아니었다· 아직은 부모의 품이 그리울 어린 소년들이었다·
진무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잠시만 혼자 있거라·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진무원이 유건엽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유건엽이 고개를 들자 진무원의 미소 띤 얼굴이 보인다· 그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유건엽은 웃는 진무원의 얼굴이 무섭다고 느꼈다·
진무원이 마차에서 내렸다· 바닥엔 수많은 무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탕마군이 버린 도검도 있었고 낭인들이 쓰던 기형의 병기도 다수 존재했다·
진무원은 그중 쇠봉을 집어 들었다· 쇠로 만든 봉은 딱 검 정도의 길이였다· 무게도 적당해 보였다·
탁탁!
진무원은 쇠봉으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탕마군의 소년들을 쫓아 군마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두두두!
전투마의 발굽 소리가 대지를 타고 진무원의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소년들이 진무원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진무원의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장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소년들이 거의 지나갔다 싶은 순간 군마대가 들이닥쳤다· 군마대의 눈에 쇠봉을 들고 있는 진무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이제까지 수많은 무인이 군마대의 앞을 막았지만 저렇게 무모하게 쇠봉 한 자루만을 들고 앞을 막아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앗!”
군마대가 속도를 높였다· 말의 무게와 속도를 이용해 단숨에 진무원을 짓밟으려는 것이다·
육중한 전투마 수십 마리가 달려오는 모습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눈동자엔 한 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군마대가 거의 지척에 달했을 때 진무원이 쇠봉을 쭉 뻗었다·
콰직!
그의 쇠봉이 선두에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던 전투마의 앞다리를 부러뜨렸다· 다리가 부러진 전투마가 고꾸라지면서 타고 있던 군마대의 무인마저 허공을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윽!”
순식간에 말을 잃은 군마대의 무인이 낭패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런 그의 눈에 연신 픽픽 고꾸라지는 전투마의 모습이 보였다·
진무원은 전투마의 다리만을 노리고 공격하고 있었다· 전투마에 탄 군마대의 무인들은 그런 진무원을 짓밟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무원은 절대 한 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없었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동하면서 말의 다리만을 공격했고 군마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군마대가 말 위에서 진무원을 공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그의 몸에 조그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그렇게 일각여가 흘렀을 때 관도에는 쓰러진 말이 즐비했다·
앞다리가 부러진 말들은 버둥거리며 몸부림쳤지만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앞쪽에 쓰러진 말들 때문에 뒤쪽의 군마대는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아군이 길목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놈!”
졸지에 수족과 같은 말을 잃은 군마대의 무인들이 진무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와 창 도끼 같은 중병이 공기를 가르며 진무원을 향해 날아왔다· 그들의 무기에서는 창기와 도기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육시를 내겠다·”
“하앗!”
반드시 진무원을 죽이겠다는 그들의 기백이 전해져 왔다·
순간 진무원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의 쇠봉이 공기를 갈랐다·
키이이!
소름 끼치는 파공성과 함께 쇠봉이 선두에 선 군마대의 목젖을 강타했다·
“컥!”
목젖을 강타당한 군마대의 무인이 비칠거리다가 그대로 푹 쓰러졌다·
“놈!”
그 모습을 본 다른 무인들이 분노 어린 음성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우리에서 풀려 나온 맹수처럼 사나운 기세를 여과 없이 발산했다· 하지만 그들의 살벌한 기세는 진무원에게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텅! 터엉!
그의 쇠봉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반드시 군마대의 무인들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특별한 초식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검기나 봉기를 발산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쇠봉을 찌르고 후려칠 뿐이다· 그런데도 절정의 무공을 익힌 군마대의 무인들이 별반 대응도 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건엽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겐 신명 난 춤사위처럼 보였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의 두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군마대의 무인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진무원은 대답 대신 주위를 둘러봤다· 고천후와 채약란이 홍악산과 더불어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홍악산의 부법은 맹렬했다· 도끼질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맹한지 고천후와 채약란은 감히 정면으로 맞부딪치지 못하고 피하거나 공격을 흘려보내면서 역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종리무환과 공손창은 그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다른 군마대의 무인들이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견제했다·
“흠!”
종리무환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남들 눈에는 종리무환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홍악산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에는 이면의 진실이 보였다·
‘역시 진법인가?’
종리무환도 하진월처럼 순식간에 진법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종리무환은 홍악산의 주위를 맴돌면서 돌멩이와 나뭇가지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었다· 단지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당연히 종리무환이 진법을 펼칠 거라고 생각했다· 종리무환이 가진 최상의 무기였고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가장 절묘한 패였으니까· 그리고 진무원이 기다리던 순간이기도 했다·
종리무환이 외쳤다·
“모두 물러서시오!”
그의 외침을 들은 채약란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급히 뒤로 물러섰고 눈치 빠른 고천후가 그 뒤를 따랐다·
한참 흥에 겨워 부법을 펼치던 홍악산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오르는 순간 종리무환이 바닥에 마지막 나뭇가지를 꽂아 넣었다·
휘류류!
순간 홍악산을 중심으로 정체 모를 기류가 휘돌더니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뭐냐?”
홍악산이 노성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을 집어삼킨 검은 기류의 장체를 알아차렸다·
“진법이냐? 크으!”
그는 알고 있었다· 간혹 나뭇가지 몇 개 돌멩이 몇 개만으로도 순식간에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하지만 설마 자신이 그런 존재를 맞닥뜨리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홍악산은 진법을 파훼하는 것을 포기했다· 진법을 분석하고 파훼할 머리 따윈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힘으로 부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했다·
“챠앗! 광월투광(狂月投光)!”
그의 도끼에서 붉은빛이 일어나 덧씌워졌다· 부강(斧罡)이었다·
콰앙!
부강이 검은 운무를 때리면서 공간이 크게 출렁였다· 홍악산은 두 번 세 번 연이어 부강을 날렸다· 마침내 여섯 번을 후려쳤을 때 공간에 금이 갔고 일곱 번째 공격에 검은 기류와 공간이 와장창 부서지며 주위 풍경이 현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진법은 급하게 펼치느라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만일 완벽한 진법이었다면 아마도 한참을 더 고생해야 했을 것이다·
진법을 부수고 나오자 아수라장이 된 관도의 모습이 보였다· 수십 마리의 말이 쓰러져 버둥거리고 있었고 그와 비슷한 수의 군마대 무인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무슨···?”
홍악산의 두 눈에 분노의 불꽃이 이는 듯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전장을 전전했지만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
그의 노성에 부하 중 한 명이 반대편 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주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감히 이 홍악산에게 이렇게 엿을 먹이고 도주해?”
그가 이빨을 으득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