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 3장 원치 않는 동행엔 사고가 따르게 마련이다 (2)
진무원은 유건엽과 함께 아침 일찍 객잔을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태원의 서로(西路) 끝에 있는 커다란 시장이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시장은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만물장(萬物場)이라고도 불릴 만큼 시장의 규모는 엄청났다·
진무원은 유건엽을 이끌고 시장을 돌아다녔다· 감정의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유건엽이 엄청난 시장의 규모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진무원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가 유건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마시장 근처의 목공소였다· 진무원은 망설이지 않고 목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목공소 안에는 장인들이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진무원이 들어서자 장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마차를 한 대 사려고 합니다만·”
“마차요? 만들어놓은 것은 없는데·”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글쎄 구조가 간단한 거면 반나절 만에도 만들 수 있고 복잡한 거면 며칠이 걸리기도 하지요·”
“어차피 복잡한 것은 필요 없습니다· 구조가 간단하고 튼튼한 걸로 제작해 주십시오·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그 정도라면 은 석 냥이면 충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건 계약금입니다·”
진무원은 우선 은 한 냥을 장인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장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 근처에 쓸 만한 철방 있습니까? 화로 좀 빌리고 싶은데·”
“그거라면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조가철방이라고 나올 겁니다· 주로 농기구와 마차 부속품을 만드는 곳인데 저희 거래처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보냈다고 하면 화로를 빌려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진무원은 장인이 알려준 대로 철방을 찾아갔다· 철방의 장인은 진무원에게 흔쾌히 화로를 빌려줬다· 어차피 한가한 시간이기도 했거니와 진무원이 은 한 냥을 줬기 때문이다·
농기구를 만드는 곳답게 철방의 화로는 매우 조악했다· 하지만 진무원에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진무원은 철방 한쪽에 있는 쇳덩이를 들고 와 화로에 집어넣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껏 함께하면서 진무원이 저렇듯 환한 미소를 지은 것이 처음이기에 유건엽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무원은 쇳덩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길 기다려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따다당!
그만의 독특한 운율까지 담겨 있는 망치질에 유건엽은 괜히 자신까지 신명 나는 것을 느꼈다·
진무원이 망치를 두들길 때마다 쇳덩이에서 불똥이 튀며 모양이 이지러졌다· 진무원은 일반적인 장인들이 두들기는 것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유건엽은 거기까진 알지 못했다·
진무원은 집게를 들어 쇳덩이를 길게 늘이고는 다시 망치질을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진무원이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망치를 내려놓았다·
“이건?”
“앞으로 네가 차야 할 물건이다·”
진무원이 만든 것은 한 쌍의 장갑이었다·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갑은 관절까지 정묘하게 구현되어 있어서 실제 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한번 끼어 보거라·”
“예!”
유건엽은 대답과 함께 쇠로 만든 장갑을 손에 끼었다· 장갑은 유건엽의 손에 꼭 맞았다· 하지만 빡빡해서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예?”
“식사를 하거나 잘 때 외에는 장갑을 벗지 말거라·”
“알겠어요·”
유건엽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진무원이 그렇게 시킨 데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진무원은 그런 유건엽의 얼굴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가 너무나 생각이 깊은 것도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니 자신도 어렸을 때는 유건엽과 비슷했던 것 같다· 어쩌면 유건엽은 진무원의 어린 시절을 비춰주는 거울인지도 몰랐다·
유건엽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빡빡한 장갑의 관절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가자·”
“예·”
진무원은 그 후로 시장에 들러 각종 곡물 가루를 비롯해 노숙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그가 타고 온 말에도 필요한 물건이 대충 구비되어 있었지만 인원이 늘어난 데다 상대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였다· 당연히 준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짐을 들고 움직이던 진무원이 문득 노점 앞에 멈춰 섰다· 늙은 노파가 좌판을 펴고 고기 국수를 팔고 있었다· 노파가 만든 국수는 무척이나 향긋해서 식욕을 자극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건엽도 넋을 잃고 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아침을 먹자꾸나·”
“예”
유건엽이 먼저 조그만 의자에 쪼그리고 앉았다· 진무원도 의자에 앉으며 노파에게 말했다·
“국수 두 그릇 주세요· 고기 좀 두둑이 얹어주시고요·”
“조금만 기다리게· 금방 말아줄 테니까·”
“예!”
노파가 미리 반죽해 두었던 면을 끓는 물에 넣고 휘휘 내저었다·
진무원은 국수가 나오길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무림인도 상당수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가 한 명 있었다· 거리 한쪽에 책상을 내놓은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중년인이었다·
두툼한 살집의 중년인 곁에는 운중천을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이 걸려 있었고 뒤쪽으로는 삐쩍 곯은 소년 다섯 명이 서 있었다· 이제 겨우 열두어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중년인은 그런 소년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책상 위에 놓인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어찌나 게걸스럽게 먹는지 손과 입은 물론이고 소매에도 온통 닭기름이 묻었다·
“쩝쩝!”
소년들이 그런 중년인을 보며 배가 고픈지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중년인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닭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끄윽!”
그가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진무원이 미간을 찌푸릴 때 국수를 말던 노파가 불쑥 말을 꺼냈다·
“왜 자네도 애를 팔려는 건가?”
“애를 팔아요?”
진무원이 묻자 노파가 유건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이 아이를 팔려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거야? 그럼 나는 자네에게 절대 국수를 팔지 않을 걸세·”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제가 왜 이 아이를 팔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 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아주 못 볼꼴만 보고 있어· 이젠 이 장사도 그만해야 하나 봐·”
“무슨 말씀입니까?”
“저 아이들 다 지 부모 손에 팔린 아이들이야· 지 자식을 팔고 부모란 것들이 은자 열 냥을 받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진무원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운중천에서 고아를 모집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데려와서 탕마군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탕마군으로 투입한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것도 이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아이들을 사고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노파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잠시 후 사십 대 초반의 꾀죄죄한 중년인이 이제 겨우 열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꾀죄죄한 중년인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로 운중천의 깃발 옆에 앉아 있는 모집인에게 다가갔다· 잠시 흥정을 하는 듯하더니 모집인에게 소년을 건넸다· 그 대가로 꾀죄죄한 중년인이 받은 것은 은자 열 냥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남았는지 꾀죄죄한 중년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너를 다시 데리러 올게· 아빠 믿고 기다리고 있어·”
“응·”
소년이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은 그런 소년을 잠시 다독이다가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소년은 멀어져 가는 아비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마침내 중년인이 사라지자 모집인이 벌떡 일어나 소년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후 엄포를 놨다·
“이제 너는 탕마군이 될 것이다· 만일 도망가면 네 아비에게 돈을 다시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네 동생을 대신 끌고 갈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얼마든지 도망가거라·”
소년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그제야 냉혹한 현실을 인지한 것이다·
노파가 그 모습을 보며 저주를 했다·
“저러고서 자식 찾으러 오는 놈 내 한 명도 못 봤어· 하늘은 뭐 하나 몰라· 저런 놈들한테 벼락 한번 내치지 않고·”
그 후로도 노파의 욕설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진무원과 유건엽은 말없이 고기 국수를 먹었다· 고기 국수를 먹는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유건엽도 마찬가진지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진무원과 유건엽이 고기 국수를 거의 다 먹어갈 때 즈음 일단의 무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운중천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모집인에게서 소년들을 받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제야 유건엽이 입을 열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마 감숙이나 섬서성 어딘가로 보내질 것이다· 그곳에서 속성이 가능한 무공을 익힌 후 전장에 투입되겠지·”
진무원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숨길 일도 아니었고 유건엽도 무공을 익히겠다고 결심한 이상 알아야 했다·
유건엽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진무원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유건엽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었다· 그 나이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진실이었다· 식사를 모두 끝내고 목공소로 돌아올 때까지도 유건엽은 말이 없었다·
목공소 마당에는 너덧 사람이 타도 충분할 만큼 큰 마차가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외관은 허름했지만 비바람을 막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진무원은 나머지 셈을 치른 후 옆에 있는 마시장에서 말을 한 마리 더 사서 마차에 맸다·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는 서서히 만물장을 떠나 태원 외곽으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유건엽은 말이 없었다· 원래도 말이 없었지만 더욱 말이 없어진 것이다· 대신 은은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내부에서만 맴돌던 살기가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탕마군으로 팔려가는 소년들의 모습이 유건엽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살기를 타고 태어난 유건엽이다· 그런 유건엽이 외부로 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으니 곧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제 진무원은 결정을 해야 했다· 간밤에 진무원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진무원은 이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 아이의 살기는 쉽게 억누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아이의 살기를 극대화시켜 스스로 갈무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자신의 멸천마영검이나 만영결은 유건엽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건엽을 위한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무공에 손을 대게 될 줄이야·’
진무원은 차분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떠올렸다· 직접 익힌 것은 만영결과 멸천마영검 그리고 계류보 정도지만 그보다 많은 무공이 그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었다·
만영벽에 새겨져 있던 무공도 있었고 지난 삼 년 동안 읽은 무공서도 있었다·
궁극(窮極)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지만 일단 궁극에 이르면 지나온 길이 훤히 보이는 법이다·
진무원은 스스로가 궁극에 이르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나온 길이 훤히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유건엽에게 어울리는 무공을 창안할 결심을 했다·
‘건엽이에겐 권이 어울린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유건엽은 강골(强骨)이었다· 뼈대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강하면서 오밀조밀했다· 거기다 근력 또한 좋은 편이어서 괜히 손에 맞지 않는 무기를 들고 설치는 것보다는 권공을 익히는 것이 훨씬 나을 듯했다· 그래서 유건엽에게 쇠로 만든 장갑을 만들어줬다·
살기가 강한 자들은 손에도 살(殺)이 끼게 마련이다· 그냥 가볍게 한 대 쳤는데도 상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들 대부분이 유건엽처럼 짙은 살기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였다·
그런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진무원은 유건엽에게 쇠로 만든 장갑을 착용하게 했다· 쇠 장갑을 착용함으로써 얻는 장점 한 가지는 바로 악력이 월등히 강해진다는 것이다· 권공을 익히는 무인들에게 강한 악력은 그야말로 필수 조건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진무원이 결의를 다질 때였다·
갑자기 일단의 무리가 뒤쪽에서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당신들은?”
“또 보게 되는군요 단 소협·”
손을 들어 아는 체하는 인물은 바로 종리무환이었다· 그의 뒤로 채약란과 공손창 그리고 고천후의 모습이 보였다·
고천후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도 이 길로 가는데 당분간 심심치는 않겠군·”
그의 시선은 우연처럼 진무원의 곁에 앉아 있는 유건엽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