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9장 산을 밀고 바다를 퍼내서라도 시대를 움직인다 (1)
스윽! 스윽!
진무원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뭉툭하던 검신에 날카로운 날이 벼려졌다· 숫돌이 깎여 나가는 만큼 검날은 날카로워졌고 진무원의 이마와 상체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진무원은 혼을 다해 검날을 세웠다· 마침내 모든 작업이 다 끝났을 때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척 삼 촌의 길이에 무게는 한 근이 조금 넘는다· 통상적인 검보다 약간 짧고 가볍지만 무게균형이 기가 막히게 잡혀 있었다·
진무원은 불빛에 검을 비췄다· 균열 간 곳 하나 없이 매끈한 검신이 빛을 어지럽게 난반사하고 있었다·
“좋군!”
수십 개의 검을 만들었다가 부수길 반복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검을 만들었다· 비록 평범한 쇠로 만들었지만 검신의 강도나 균형이 완벽해 어지간한 검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가 사용하기에는 검신이 조금 짧고 가볍다는 것이다· 쾌검 위주의 검을 익히는 자에게 적합한 형태였다·
“휴! 제대로는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내 것이 아닌 모양이구나·”
자신이 만들었으되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검 그러니까 필요가 없는 검이었다·
진무원은 검을 화로에 집어넣으려 했다·
우웅!
순간 검에서 기이한 울림이 느껴졌다·
“검··· 명(劍鳴)인가?”
꼭 검이 죽지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무원은 다시 한 번 검의 울음을 느끼려 했지만 착각이었던 듯 검은 두 번 다시 울지 않았다·
진무원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화로에 넣으려던 검을 거뒀다· 착각이든 그렇지 않든 검명을 들었는데 세상에서 없애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무원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나무로 검병을 삼고 소가죽을 칭칭 동여매 검을 완성했다·
자신이 완성한 첫 번째 검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눈에는 만감이 스쳐 지나갔다·
수없이 망치를 두들기고 불을 가까이 한 후에야 그는 검이라는 무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검의 특성을 알게 되었고 검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다· 당연히 검을 잡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을 조금 알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검이라는 광활한 세계의 초입에 발을 디딘 것에 불과했다· 진무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무원은 자신이 만든 검을 벽에 걸어두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은한설이 와 있었다·
은한설은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발을 장난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툭툭 찰 때마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 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곤 했다·
“흠흠!”
진무원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은한설이 진무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햇볕이 그녀의 뺨을 따라와 붉게 물들였다·
은한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진무원을 빤히 바라봤다· 흑요석처럼 검디검은 눈동자와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는 푸른 기가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이 신비하게 보였다·
진무원이 키가 자랐듯 은한설도 지난겨울 동안 눈에 띄게 성숙했다· 이젠 그녀에게서도 여인의 향기가 조금씩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진무원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태연히 물었다·
“언제 온 거야?”
“좀 전에·”
“그동안 뭐 했던 거야? 얼굴 한번 비추지 않고·”
진무원과 함께 심원의의 초대에 갔다 온 후 은한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기다렸던 거야?”
“약간은·”
진무원의 대답에 은한설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바빴어·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
“일? 그래서 다 끝낸 거야?”
“어느 정도는····”
은한설이 말끝을 흐렸다·
진무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은한설이 창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배고파·”
“뭐야? 아직까지 안 먹은 거야?”
“그야 차려주지 않으니까·”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구나·”
진무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은한설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탁자로 다가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진무원은 언제나 그렇듯 밥을 짓고 화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의 솜씨는 날로 늘어 이제는 숙련된 숙수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금세 밥이 익는 냄새가 만영탑에 가득 퍼졌다·
은한설은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진무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
“그 여자 어때?”
“그 여자? 누구?”
“얼마 전에 온 여자· 만경각 안에 들어가는 모습도 봤어·”
“서문 소저를 말하는 모양이구나?”
“만경각에서 뭐 했어?”
“그냥 대화했어·”
“대화?”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보더라구· 궁금한 게 많은가 봐·”
진무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은한설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그 여자 예쁘지?”
“예뻐·”
순간 은한설의 아미가 치켜 올라갔다·
이어서 진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네가 더 예뻐·”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은한설의 입꼬리가 살며시 치켜 올라갔지만 진무원은 등을 돌리고 있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은한설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뭐?”
“아무것도 아냐·”
잠시 후 진무원이 음식을 내왔다· 따뜻한 온기가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은한설은 그 온기를 몸으로 느꼈다·
문을 열자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방 안의 풍경이 은한설을 맞이했다·
“휴!”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은한설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가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냐?”
“소주·”
그 순간 온통 검은 일색의 존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은한설이 반색했다·
“사령·”
“이제 돌아왔습니다 소주·”
그는 바로 은한설의 심복인 사령이었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사령·”
“소주의 염려 덕분입니다·”
“사부님은?”
“다행히 비밀리에 마련해 둔 안가에서 주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은 어떠셔?”
“적잖은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되셨습니다·”
사령의 대답에 은한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나마 다행인가?”
“주군께서는 소주가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대로 찾아오라고 전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그들이 아직 천라지망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 역시 몇 번이나 그들에게 발각될 뻔했습니다·”
은한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령의 은신술과 잠입술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도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긴장할 정도의 천라지망이 펼쳐졌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역시 그답다고 해야 하나?”
“그는 결코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허나 주군과 소주께서 무사하신 이상 그의 야망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어둠 속에서 사령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러자 지독한 사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조심해· 지금 이곳엔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와 있으니·”
“죄송합니다 소주·”
그제야 사령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사사천의 소천주가 왜 이곳에?”
“담수천 그자를 기다린다고 했어·”
“담수천이란 말입니까?”
사령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아는 자야?”
“천하가 주목하고 있는 무인입니다·”
“사령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타고난 승부삽니다·”
“그 정도야?”
은한설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가 아는 사령은 결코 누군가를 이렇게 후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주도 직접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자가 어떤 자인지·”
“알았어· 내가 직접 판단하지·”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소주· 이곳은 적진입니다·”
은한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북천문의 전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