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 7장 싸우려는 자는 들어오고, 팔려는 자는 나간다 (1)
한선우는 눈을 크게 치떴다·
남명과 공동파의 무인들이 보인 기세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들의 검은 날카로웠고 치명적인 요혈을 노리고 독사처럼 파고들었다·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부현에 파견 보낸 인물들답게 그들의 무위는 무척 뛰어났다· 특히 공동파의 성명 절기라 할 수 있는 복마검(伏魔劍)은 거센 파도처럼 곽문정을 향해 밀려왔다·
그에 반해 곽문정의 움직임은 매우 단순했다· 검이 다가오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저들이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느라 잠시 멈칫하면 오히려 다가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단순한 동작들이 너무 유려하게 연결되다 보니 흡사 뛰어난 무희의 춤사위를 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남명과 공동파의 무인들이었다·
“뭐 뭐야?”
공격해 오는 줄 알고 검을 휘두르면 뒤로 물러난다· 그렇다고 쫓아가면 어느새 뒤로 돌아가 배후를 향해 다가온다· 아직 곽문정은 공격다운 공격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명과 공동파의 무인들은 수십여 번을 공격당한 사람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공격만이 능사가 아니고 방어가 수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상대의 호흡을 끊을 수 있다면 이미 이긴 싸움이나 진배가 없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해준 말이다·
솔직히 아직 그의 말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최대한 비슷하게 따르려고 할 뿐이다·
만일 남명과 공동파 무인들의 무공이 조금만 더 고강했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저들은 또래 무인에 비해 강한 편이었지만 실전 경험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 때문에 익힌 무공을 효율적으로 펼치질 못하고 있었다·
반면 곽문정은 자신이 익힌 무공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보표로 천하를 떠돌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숱한 싸움에 휘말렸고 자신과 상인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검법 형태가 만들어졌다·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검이 아닌 지키기 위한 검법이·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가르침과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기키 위한 검이라고 공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곽문정이 허리에 찬 검을 손으로 잡으며 갑자기 남명과 공동파 무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에 남명이 쾌재를 불렀다·
“놈!”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곽문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다른 무인들도 합공했다· 그런 그들의 공격엔 일말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죽이거나 큰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할 만큼 그들은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당황한 것이다· 반면 곽문정은 누구보다 냉철했다·
그는 가볍게 몸을 흔들어 남명 등의 검을 흘려보내며 검집째 휘둘렀다·
퍼버버벅!
“컥!”
가죽 북을 강타하는 소리와 함께 남명 등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들의 얼굴과 어깨는 크게 부어 있었다·
지독한 고통에 입이 떡 벌어지고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고통보다 더 그들을 괴롭게 한 것은 곽문정이 어떤 초식을 펼쳐 그들을 공격했는지 알아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어 어떻게···?”
남명은 감히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말만 반복했다·
그때였다·
“쯧! 늦었구나·”
갑자기 객잔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남명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 사숙? 사매?”
객잔 입구에서 탄식을 흘린 남자는 바로 함지평이었다· 그의 곁에는 함소령이 서 있었다·
남명과 공동파 무인들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특히 남명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마음에 둔 사매 앞에서 이런 광경을 보이는 것 자체가 그에겐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는 급히 일어나 변명했다·
“사 사숙 그가 먼저 저희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공동파를 무시하고····”
“명아 그만하거라·”
“사숙?”
“내가 너를 알고 그를 안다· 더 이상 공동파의 명예를 떨어뜨리지 말거라·”
“저 저는····”
너무나 단호한 함지평의 말에 남명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너무나 차가운 함지평과 함소령의 눈빛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빛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명이 고개를 떨궜다· 다른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지평은 잠시 그들의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곽문정을 향해 다가갔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추한 꼴을 보였군·”
“아닙니다·”
“저들은 내가 돌아가서 처벌하겠네· 그러니 이만 용서해 주겠나?”
“용서랄 게 있나요?”
곽문정은 검집을 허리에 꽂으며 물러났다· 함소령이 그런 곽문정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남명과 공동파의 무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저런 자가 일개 보표라고?’
그토록 무시하던 보표에게 비참하게 패했으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함지평이 그를 살갑게 대하는 태도를 보니 복수는 꿈도 꿀 수 없을 듯했다·
함지평이 그들에게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지부로 들어가서 근신하고 있거라! 내 돌아가는 대로 너희에게 따끔한 벌을 내릴 것이다!”
“예·”
그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함지평과 함소령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함지평이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미안하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걸세·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네·”
“아닙니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그걸로 충분해요·”
“휴우! 일단 자리에 앉게나·”
“이쪽에 앉으세요·”
곽문정은 두 사람에게 한선우가 앉은 탁자 반대편 자리를 권했다·
“이 소형제는?”
“한선우라고 이번에 저와 함께 갈 동생입니다·”
“그럼 자네 일행이구먼· 똑똑하게 생겼군·”
곽문정의 소개에 함지평이 호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한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한선우예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반갑네· 공동파의 함지평이라고 하네· 소형제의 동생이라면 나에게도 마찬가지니 앞으로 편하게 대하게·”
“아 아니에요·”
“난 함소령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함소령까지 친근하게 나오자 한선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공동파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선우는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함지평은 공동파에서도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았다·
‘형이 정말 대단한 모양이구나· 저런 엄청난 사람이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다니·’
그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곽문정을 바라봤다·
함지평이 자리에 앉으며 곽문정에게 말했다·
“내 짐작보다 소형제의 무공이 대단하군·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어·”
“아닙니다· 그리 대단할 거 없어요·”
“그 정도면 우리 공동파의 이대제자 중에서도 당할 자가 그리 많지 않겠어·”
“운이 좋았을 뿐이지 대결하는 시간이 길어졌으면 당하는 것은 저였을 거예요·”
곽문정이 얼굴을 붉혔다· 공동파의 제자들을 상대할 때의 냉철한 모습과는 다른 그의 모습에 함소령이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정말 한결같아·’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곽문정이 함지평에게 물었다·
“혹시 그들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더 큰 이유가 있네·”
“큰 이유요?”
갑자기 함지평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덩달아 함소령의 얼굴도 경직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곽문정이 살짝 긴장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이곳을 떠나게·”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래도 감천 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네·”
“감천이라면 밀야와 전투가 벌어지는 곳 아닌가요?”
“그렇다네·”
함지평이 잠시 말을 끊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밀야가 감천에 전력을 집중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네·”
“그럼?”
“전선이 더 확대될 수도 있네· 어쩌면 이곳 부현까지 확대될 수도 있어· 그 때문에 운중천에서도 이곳에 전력을 더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네·”
“으음!”
“나야 공동파에 속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있어야 하지만 자네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아직 안전할 때 백룡상단과 함께 이곳을 떠나게· 내 그 말을 해주러 왔네·”
함지평의 말에서 곽문정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함지평이 저리 말할 정도면 정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공 단주님이 오시면 그리 전해드릴게요·”
“될 수 있으면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게야·”
“예!”
곽문정의 표정도 함지평만큼이나 심각해졌다· 문득 그의 시선이 함소령을 향했다·
“그럼 소령은?”
“소령이를 비롯한 이대제자들은 화산파로 피신시키려 하네· 그래도 화산파는 이곳에서 오백여 리 넘게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 더 안전할 걸세·”
“음!”
“그래서 말인데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네·”
“저한테요?”
곽문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 백룡상단하고 나갈 때 소령이와 다른 제자들도 함께 데리고 나가주게나·”
“제가 말입니까?”
“그렇다네· 자네도 경험했다시피 혈기만 왕성하지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다 보니 그들만 보내기가 꺼려진다네·”
함지평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명의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공동파의 제자들은 정원에서 곱게 가꾼 화초였다· 보기엔 예쁠지 모르지만 안전한 담장으로 보호를 받다 보니 거친 비바람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알겠습니다· 공 단주님께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겠습니다·”
“공 단주가 아니라 자네에게 하는 부탁일세·”
“저는 아무런 힘도 없는 보표인지라····”
“정식으로 의뢰를 넣겠네 곽 보표· 소령과 제자들을 서안까지만 데려가 주게· 그러면 그들이 알아서 화산파까지 갈 게야·”
“의··· 뢰입니까?”
곽문정은 가슴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보표로 수많은 상행을 따라 나섰지만 누군가 정식으로 그에게 의뢰를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그게 온전히 자신을 믿고 의뢰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의뢰를 받아주겠는가?”
곽문정이 잠시 눈을 감았다·
‘형 나 이 의뢰 받아도 될까?’
그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함지평과 함소령은 말없이 곽문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심사가 얼마나 복잡할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믿음을 주었다·
삼 년 전 그는 치기 어린 애송이에 불과했다· 정의감은 투철했지만 상황 판단 능력이나 무공은 현저히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곽문정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그가 가진 보표로서의 능력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함지평이 기대를 거는 것 역시 무인으로서의 능력보다는 보표로서의 능력이었다·
‘무엇보다 저 아이는 그의 가르침을 받았지· 그라면 믿을 수 있다·’
그는 곽문정의 뒤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세상은 모두 그가 죽었다고 떠든다· 하지만 함지평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침내 곽문정이 눈을 떴다
“함 대협의 의뢰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리기만 하던 소년이 진정한 보표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