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 4장 어떤 만남은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3)
은한설과 담수천은 격돌했다·
은한설은 특유의 은백색 구체로 몸을 둘러싼 채 담수천을 공격했다· 반면 담수천은 순백색의 하얀빛을 발산하며 은한설의 공격에 대응했다·
쿠콰쾅!
두 사람이 격돌할 때마다 뇌성벽력이 울려 퍼지고 대지가 거센 진동을 일으켰다·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군웅들은 분분히 자리를 피했다·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피한 그들은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과연 인간의 싸움인가?”
“실로 무섭구나 백야마녀· 사대마장의 전설은 진짜였어· 저 어린 소녀가 저 정도일진대 다른 사대마장의 무위는 또 어쩔 것인가?”
그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밀야를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밀야를 내심 우습게 본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오늘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저 어린 소녀에게 죽은 사람의 수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으며 누구 한 명 그녀에게 조그만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무력은 가히 공포스러웠다·
휘류류!
은한설의 몸에서 흘러나온 은혼기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그녀에게 적의를 가진 모든 것을 공격했다· 이제껏 수많은 군웅의 생명을 빼앗은 은혼기였지만 어쩐지 담수천을 상대로는 별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담수천은 은은한 빛 무리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성광기라는 이름의 기운은 모든 사마의 대척점에 서 있었고 은한설의 은혼기로부터 담수천을 지키고 있었다·
은혼기와 성광기의 위력은 호각이었다· 은혼기와 성광기가 격돌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그 어떤 기운도 상대를 확실히 압도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은혼기와 성광기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닌바 힘이 호각이라면 초식의 숙련도가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은한설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수영(手影)이 허공에 가득 찼다·
멸절산영(滅絶散影)의 초식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수영에 둘러싸인 담수천의 대응은 더 눈부셨다· 그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돌더니 순식간에 수십 번의 발길질을 했다·
각인화락(脚刃花落)의 초식이었다·
발끝에 세운 칼로 꽃을 떨어뜨린다는 이름처럼 담수천의 발은 수십 개의 족영을 만들면서 은한설의 수영을 떨어뜨렸다·
타다다다닥!
손과 발이 얽히길 수십여 차례· 대나무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성이 연신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군웅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일견 가볍게 보이는 공방전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흉험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손과 발이 격돌할 때마다 주위의 공기가 일렁거렸다·
그들이 펼치는 초식들은 공방 일체의 묘리를 가지고 있었다· 방어를 하면서도 공격을 하고 격렬한 공격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몸을 완벽하게 방어했다·
자연 두 사람의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은한설이었고 여유를 갖는 쪽은 담수천이었다·
은한설에겐 이곳은 적진이다· 당장 수많은 군웅이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들의 병력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 담수천은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지 결코 은한설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은 소저의 무공은 정말 대단하구나·’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녀와 교환하는 일 수 일 수가 온몸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자칫 방심하다간 단 일격에 숨통이 끊어질 수도 있음이다· 사대마장의 일인다운 발군의 무력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다· 전신의 피가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휘돌고 있다·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치는데 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그는 은한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연이은 격전으로 은한설의 체력이 소모된 것이다· 보통 사람에겐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담수천과 같은 경지에 이른 고수들에겐 어마어마한 격차였다·
‘사대마장의 전설 이제 내가 깨부수겠다· 당신을 밟고 나는 저 높은 하늘로 올라가리라·’
그의 주먹에 엄청난 공력이 응축됐다· 한껏 응축된 공력은 은한설을 향해 날아갔다·
쉬쉬쉭!
연이은 세 번의 주먹질·
성광류에서도 가장 극강한 위력을 가진 초식 중 하나인 삼연광륜격(三聯光輪擊)이었다·
은한설도 담수천의 공격에 담긴 막대한 힘과 위력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은혼반선수(銀魂半仙手)를 펼쳤다·
그녀의 손에 은백색의 강기가 형성됐다· 수강(手罡)이다·
콰앙!
삼연광륜격과 은혼반선수가 격돌하자 천지가 뒤흔들렸다·
두 사람은 연이어 절초를 쏟아냈다· 서로가 쉽게 만나기 힘든 상대였다· 호각의 무위 대등한 승부 그리고 승부에 대한 집념이 서로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그들은 싸우면서 발전하고 서로에게 탄복했다· 하지만 승부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들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사이였다·
“으음!”
격렬하게 움직이는 은한설의 입가에 한줄기 혈흔이 내비쳤다· 연이은 격돌에 내상을 입고 심맥이 흔들렸다· 그 때문에 진기가 불순해졌고 내공의 운용이 원활치 않았다·
‘월광륜을 써야 하는가?’
그녀의 품에 있는 마병 월광륜이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은한설은 월광륜을 사용하려는 욕구를 자제했다· 담수천에게만큼은 병기의 이점을 이용해 승부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사이 담수천의 맹렬한 공격이 시작됐다· 천광조영(天光照映) 경천무혼(驚天武魂) 같은 성광류의 절초가 연이어 펼쳐지면서 은한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콰우우!
강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은한설의 옷이 찢겨 나가고 고운 피부에도 상처가 하나둘 생겨났다· 하지만 은한설은 당황하지 않고 방어를 단단히 하면서 담수천의 허점을 노렸다·
아직 그녀는 승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쐐액!
갑자기 한줄기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담수천과의 싸움에 집중하느라 은한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파공성을 들었을 때는 이미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의 가슴 어림까지 다가온 다음이었다·
은한설은 본능적으로 몸을 최대한 비틀어 날카로운 기운을 피하려 했다·
퍼억!
순간 그녀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가슴을 피한 대신 옆구리에 일격을 허용한 것이다· 그녀의 옆구리에 붉은 단검이 꽂혔다·
“허윽!”
은한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담수천이 은한설을 향한 공격을 멈추고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엔 도사 복장을 한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 선두에 육십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도사가 있었다·
담수천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운상 진인?”
노도사는 무당파의 장로인 운상 진인이었다· 적엽 진인에겐 사질이고 현 무당파의 장문인인 운화 진인에겐 사제가 되는 극강의 무인이다· 은한설의 몸에 꽂힌 붉은 단검은 바로 그가 날린 것이었다·
담수천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운상 진인? 정당한 대결에 끼어들다니!”
“강호의 공적을 상대하는 일일세· 정당함을 따질 이유가 없네·”
운상 진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사이 무당파의 도사들이 은한설을 포위했다·
“운상 진인·”
“자네는 할 만큼 했네· 마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충분하지 않은가? 강호의 많은 이가 자네의 업적을 칭송할 것일세·”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소이다 운상 진인·”
“많은 군웅이 그녀의 손에 죽었네· 하물며 그녀는 밀야의 사대마장이 아닌가? 대대로 사대마장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는지 자네가 모르지는 않을 터· 확실하게 처단해야 하네· 그러니 이만 물러나시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운상 진인의 눈에는 탐욕의 빛이 어려 있었다· 밀야의 사대마장 중 하나인 백야마녀를 처단하면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된다·
비록 세속에 초연한 도사의 신분이지만 운상 진인은 아직 공명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운중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이 왔을 때 제일 먼저 휘하의 제자들을 끌고 달려온 것이다·
“무당파의 지보 중 하나인 청령검(靑靈劍)에 격중된 이상 마녀의 악행도 끝일세·”
“청령검?”
“초대 조사께서 만든 선기가 어려 있는 검일세· 마공을 익힌 자들에겐 그야말로 상극이라 할 수 있지·”
운상 진인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걸음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담수천의 눈엔 은은한 분노의 빛이 어려 있다· 정당한 두 사람의 대결에 끼어든 운상 진인을 향한 분노였다· 운상 진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은 세상사를 모르는 햇병아리· 세상은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란다 아이야·’
은한설은 아직도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꺽꺽대고 있었다· 운상 진인의 짐작대로 청령검에서 청명한 기운이 일어나 그녀의 심맥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기혈이 들끓었다· 은혼기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내부를 진정시키려 했다·
후웅!
그 순간 그녀의 품속에 있던 월광륜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까지 그녀의 통제하에 있던 월광륜의 마기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월광륜의 마기는 순식간에 그녀의 체내를 파고들어 심맥을 잠식했다·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이는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졌다·
그녀의 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이는 바로 담수천이었다· 그가 은한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릴 때 운상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도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마녀를 제압하라! 운중천으로 압송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처벌할 것이다!”
“와아아!”
무당파의 도사들이 은한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송문고검이 위험한 빛을 발했다·
이미 상처를 입고 지친 은한설이다· 무당파 도사들의 눈에는 그런 그녀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였다· 이대로 그녀를 제압해 운중천으로 압송한다면 무당파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쉬가악!
무당파의 무인들이 은한설을 향해 송문고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난무했다· 수십여 줄기의 검기가 은한설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그때까지도 은한설은 새우처럼 꺾인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무당파 도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그 순간 갑자기 은한설이 허리를 펴며 고개를 들었다·
은백색 머리카락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은백색 눈동자의 중앙에는 선명한 혈점이 자리를 잡았다· 혈점 안에 담긴 것은 세상을 향한 분노와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광기였다·
담수천이 외쳤다·
“모두 피하시오!”
하지만 무당파의 도사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대신 그들의 귓전을 울린 것은 ‘위잉’ 하는 조그만 소음이었다· 마치 귀 옆에서 벌이 날갯짓하는 듯한 소리에 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무슨?”
선두에서 달려오던 무당파 일대제자의 얼굴에 의혹의 빛이 어렸다· 방금 전까지 똑바로 서 있던 세상이 기울고 있었다· 이어서 허리 아래서 느껴지는 극렬한 통증·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멀쩡히 서 있는 자신의 하체가 보였다·
쿠쿠쿵!
순식간에 십여 명의 도사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에 기세 좋게 달려들던 무당파의 도사들이 멈춰 섰다·
그들의 눈에 허공에 큰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한 쌍의 륜이 보였다·
위잉!
월광륜 그 천고의 마병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기에 잠식당한 은한설의 붉은 시선이 무당파의 도사들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월광륜이 날갯짓을 했다·
대경한 운상 진인이 외쳤다·
“마 막아라!”
그러나 그의 외침은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월광륜이 무당파 도사들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월광륜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남았다·
담수천이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운상 진인과 무당파의 도사들이 은한설을 폭주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그녀는 이성을 잃어버린 마녀 그 자체였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가공할 마기가 일대를 잠식해 나갔다·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