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 6장 정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1)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화젯거리는 바로 척마대의 부대주 네 명이 모두 정해졌다는 것이다· 창룡회에서는 두 자리를 확보했고 나머지 두 자리는 구대문파에서 차지했다·
이제 남은 자리는 대주와 부대주 한 자리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의 승자가 대주직을 차지하고 패자가 부대주직을 수행하게 된다·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은 온통 비무대로 향해 있었다·
한쪽은 칠소천의 일원인 심원의
다른 한쪽은 혜성처럼 나타나 비무대회를 뒤흔들고 있는 조월·
두 사람이 비무대회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은 승자였고 척마대의 대주직을 놓고 싸우게 될 무인들이다·
두 사람의 대결은 강호 초미의 관심사였고 수많은 이가 그들의 대결을 직접 보길 바랐다·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운중천에서는 특별히 이날 정문을 개방했다· 강호와 관계없는 일반인까지 받아들였고 그 때문에 운중천이 문을 연 이래 최대의 인원이 들어왔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로 운중천 전체가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지막 대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상을 향했다·
비무대 반대편 단상의 정상엔 빈 의자 아홉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척마대를 뽑는 비무대회가 진행하는 동안 이제껏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아홉 하늘의 자리였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아홉 하늘이 모습을 보일 거라고 기대했다· 명색이 강호 최대의 행사인데 끝까지 그들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빛이 바랠 것이기 때문이다·
아홉 하늘이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 바로 십 년 전이다· 그 이후 웬일인지 그들은 절대 한자리에 모인 법이 없었다· 그리고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이 한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아홉 하늘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될 걸세·”
“척마대주와 아홉 하늘 그리고 북검까지· 정말 이번 행사는 볼거리가 엄청나군·”
“그나저나 북검과 아홉 하늘이 대면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아홉 하늘과 진무원의 무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누가 척마대주가 될지 내기를 벌이는 이들도 속출했다·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사람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찔렀다·
십대장로가 먼저 입장했고 뒤를 이어 운중천의 수뇌부들이 연단 위에 올랐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인물들까지 연단을 채우자 사람들은 장내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강호 최대의 행사이니만큼 진행은 설검수사(舌劍修士) 남선우가 맡았다·
남선우가 비무대 위에 오르자 사람들이 더욱 큰 환호성을 보냈다· 남선우는 잠시 사람들의 환호성을 음미하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함성이 잦아들었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척마대의 대주가 결정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척마대의 대주는 강호의 최전선에서 밀야와의 싸움을 수행하게 될 겁니다· 그야말로 강호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강호의 미래를 그리고 새로운 강호의 시작을·”
“우와아아!”
사람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남선우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남선우의 일장 연설에 빠져들었다·
“밀야는 강호 공공의 적입니다· 그들이 출현할 때마다 강호는 큰 혼돈에 빠졌고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의 희생을 치르면서 우리 운중천은 강호를 지켜왔습니다· 아니 여러분의 부모 형제가 지켜온 강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강호를 대신해 영광스러운 전쟁을 수행할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척마대입니다·”
사람들은 목이 찢어져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이미 척마대에 뽑힌 이들의 얼굴에는 큰 자부심이 떠올라 있었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검을 빼 들고 밀야와 싸울 꿈에 부풀었다·
‘척마멸사(斥魔滅邪)의 선봉에서 싸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을 것인가?’
사내로 태어나 웅지를 품지 않은 무인이 누가 있을까? 단지 기회가 없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
척마대에 뽑힌 자들은 무력이 증명된 자들이다· 최소한 젊은 무인 중에서는 손꼽히는 무력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당장에라도 밀야와의 전쟁에 투입되길 바라고 있었다· 전쟁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남선우는 설검수사라는 별호처럼 세 치 혓바닥으로 젊은 무인들의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했다·
사람들은 그런 남선우의 일장 연설에 빠져들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군웅들 한가운데서 남선우를 바라보는 진무원의 눈빛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저자의 혓바닥이 검보다 무섭구나·’
남선우는 군웅들의 욕망을 교묘하게 자극하고 운중천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척마대의 모습이 당장에라도 전장으로 뛰어갈 기세였다·
“이제 마지막 싸움만이 남았습니다· 척마대의 대주 척마대를 이끌고 밀야와의 전쟁 선봉에 설 위대한 무인을 뽑을 마지막 싸움이· 심원의 소협 조월 소협 모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남선우가 잠시 말을 끊고 군웅들을 둘러봤다· 그를 바라보는 군웅들의 얼굴에는 기이한 열기가 떠올라 있었다·
남선우는 그들의 얼굴에 서린 기대를 읽었다· 그들이 지금 이순 간절히 원하는 욕망을 읽고 웃었다· 자신이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다·
일만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숨을 죽이고 남선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열리고 그들이 원하는 단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남선우는 그들의 기대에 기꺼이 부응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위대한 무인들이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분들은 바로····”
“····”
“운중천과 천하의 수호자인 아홉 하늘이십니다·”
“우와아아!”
순간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까지 나온 그 어떤 함성보다 큰 함성이었다· 그들의 함성에 비무대 주위에 뿌연 먼지가 일어날 정도였다·
남선우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사정상 모든 분이 오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 몇 분만 참석한 것일지라도 충분히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이제 그분들을 모시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명의 무인이 연단 위로 올라왔다· 각각 붉은 장포를 걸친 매부리코의 노인과 도복을 입은 도사 그리고 승복을 입은 노승이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과 강대한 기도가 흘러나와 사위를 압도했다·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그들이 단상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단 세 사람의 존재감에 숨을 죽였다·
몸이 오슬오슬 떨리고 피부에 소름이 돋아 올라왔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입안이 바싹 말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기(氣)의 그물이 전신을 옭아매고 있는 느낌에 군웅들은 압도당했다·
운중천의 지배자이자 강호의 정점에 서 있는 무인들의 존재감은 그렇게 오롯했다· 하지만 그들이 단상의 정상에 있는 의자에 앉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탄성을 쏟아냈다·
“사사천의 천주 심무외 대협이다·”
“무당파의 적엽 진인도 있어·”
“불영신승이시다· 소림에서도 왔다·”
몇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보았다·
홍옥마수(紅玉魔手) 심무외는 마도의 명문인 사사천의 천주이자 심원의의 아비였다· 그의 옆에는 귀염상의 미녀가 앉아 있었다· 바로 심원의의 동생이자 심무외의 딸인 심수아였다·
심무외의 곁에는 무당파의 적엽 진인(赤葉眞人)이 앉아 있다· 그는 자광이 어린 눈빛으로 장내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검처럼 날카롭고 예리해서 사람들의 어깨를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이는 소림사의 불영신승(佛影神僧)이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진무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맑아짐을 느끼고 절로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은 강호란 세상의 정상에 선 세 사람· 그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세상을 굽어보았다·
세 사람의 시선이 우연처럼 한곳을 교차했다· 그곳에는 진무원이 있었다·
심무외의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송곳처럼 진무원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고 적엽 진인의 자광이 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거기에 불영신승의 맑은 눈빛까지 더해지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진무원의 눈빛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무려 십 년만이다·
십 년 전 그들이 북천문에 왔을 때 진무원은 힘없던 어린 소년이었다· 그들의 압박에 아비가 죽음을 택할 때도 그는 참아야만 했다·
진무원은 당시 그들의 눈빛을 잊지 않았다· 아비의 죽음을 오연히 바라보던 그들의 서늘한 시선에 어린 경멸의 빛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놓고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심무외 진무원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적엽 진인의 칼날 같은 시선은 차라리 익숙했다· 그들은 그때도 그랬으니까·
진무원을 화나게 하는 것은 불영신승의 자애로운 눈빛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그 눈빛이 역겹게 느껴졌다·
차라리 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증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봐줄 만했을 텐데 지금 그의 눈빛에는 한줄기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나를 흔들려는 것인가?’
진무원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저들은 그날의 일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진무원은 그날의 일을 잊지 않았다·
아비는 모든 것을 잊고 살라 했지만 진무원은 그럴 수 없었다· 아비의 죽음과 맞바꿔 그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진무원은 그들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네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면서 묘한 긴장감이 형성됐다· 군웅들도 그 사실을 느끼고 숨을 죽였다·
그제야 그들은 진무원이 북천문의 후인이자 당대 문주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밀야와 내통했다는 누명은 벗었지만 북천문이 멸문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진무원의 아비 진관호는 수많은 군웅이 보는 앞에서 자결을 택했고 운중천의 아홉 하늘이 그렇게 만들었다· 진무원이 누명을 벗었음에도 아홉 하늘은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진무원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들인 셈이다· 진무원이 당장 칼부림을 하더라도 명분은 그에게 있었다· 실제로 진무원에겐 그만한 힘도 있었다·
북검이라는 별호는 괜히 얻은 것이 아니다·
연천화를 쓰러뜨리고 얻은 그의 위명은 아홉 하늘에 그다지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무원은 설화를 뽑지 않았다·
가슴에서는 용암과도 같은 살심이 들끓었지만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냉철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살심을 폭발시켜 봤자 그가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군웅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진무원은 최대한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자 적엽 진인과 심무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들은 진무원이 분을 참지 못하고 도발하길 바랐다·
본디 젊음은 무모하고 종종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분노에 몸을 맡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들의 생각보다 냉철했다·
그는 군웅들 한가운데서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엔 일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호부에 견자 없다더니 그 아비에 그 자식이구나· 북벽 못지않은 존재감에 인내심까지 갖추었다니·’
그들의 눈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군웅 중 그 누구도 그들의 살기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당사자인 진무원은 달랐다· 그는 그들의 심경 변화를 눈치챘다· 하지만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군웅들은 모르지만 그들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인내심과 명분의 싸움이·
그때였다·
[잘 참았다]
그의 귓가로 모기 소리 같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 전음을 보낸 것이다·
갑작스런 전음에 놀랄 만도 하지만 진무원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단상 위를 바라봤다·
먼저 시선을 돌린 이는 심무외와 적엽 진인이었다· 속으로는 열불이 끓어올랐지만 지금 당장은 척마대의 대주를 뽑는 비무대회를 진행해야 했다· 언제까지 진무원과 기 싸움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강호를 지배해 온 노강호답게 살심을 옅은 미소로 감췄다· 그러자 눈치만 보고 있던 남선우가 재빨리 나섰다·
“이제 심원의 소협과 조월 소협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대결의 승자가 곧 척마대의 대주가 될 겁니다· 누가 이기던 간에 이 두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위로 심원의와 조월이 올라왔다·
심원의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조월은 무표정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하지만 진무원의 시선은 그들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망막에는 단상 위에 있는 적엽 진인 등의 얼굴이 맺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해·
그 순간 진무원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잘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