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4장 푸른 하늘의 의로운 별이 다시 빛을 내다 (2)
명류산은 남무석을 간신히 이겼다·
승리의 대가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명류산은 오히려 용기백배했다· 자신의 무공이 남무석과 같은 고수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입으면 당기문이 치료를 해주었다· 그 결과 명류산은 상처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무모함은 자신감을 증폭시켰고 명류산이 위험에 기꺼이 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명류산은 승승장구했고 그 결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삼백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본인에겐 다시없을 영광이었고 관전하던 이들에겐 이번 대회의 이변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명류산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는 겨우 예선을 통과했을 뿐이고 진짜 고수들은 본선에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겨우 예선을 통과한 무인들보다 본선에 출전할 무인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본선에 출전할 이들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강호를 이끌어갈 진정한 기재들이기 때문이다·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같은 거대 문파들이 괜히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비급과 무공이 있었고 그에 걸맞은 전통과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자산은 그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는 무인을 키워내는 체계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분류했다· 재능에 따라 익힐 무공이 정해지고 그에 걸맞은 스승이 배정되었다·
무공을 익히는 단계마다 영약이 주어지고 상승의 경지로 가는 비급과 적절한 가르침이 따라왔다· 그렇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무공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 안에 심마(心魔)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수백 년 동안 체득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무공을 익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같은 거대 문파에서는 주화입마에 빠지는 제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척마대를 뽑는 행사에 나오는 무인들은 그런 명문들이 체계적으로 키워낸 제자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과 무력을 갖춘 이들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도 없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이들의 대거 등장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젠장!”
명류산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비무대 위로 오르는 무인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자신은 그렇게 힘들게 예선을 통과했건만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본선에 나오는 젊은 무인들에게 쏠려 있었다· 예선을 힘들게 통과한 자들은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두고 봐라· 내 녀석들을 쓰러뜨리고 척마대의 한 자리를 차지할 테니까·’
명류산은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며 다른 기재들을 노려봤다·
사회를 맡은 무인이 기재들을 소개할 때마다 사람들은 열화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본선에 합류한 기재들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진무원과 하진월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이로써 운중천은 일석이조의 이득을 얻었군요·”
“일석이조? 일석삼조 아니 십조라고 봐도 무당하다· 제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도 모자라 대신 피를 흘려줄 이들을 구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사람들의 관심과 인망을 한 몸에 받고 운중천을 중심으로 강력한 응집력을 구축했으니 이보다 남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느냐?”
“그렇군요·”
“저들은 백 년이 넘는 세월을 통해 강호에 군림하는 법을 체득했다· 단순히 무력을 앞세워 군림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지·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하진월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운중천이라는 이 거대한 괴물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강호를 지배하기 위해 끝없이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실행했다· 그렇게 강호를 지배하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했다·
한 단체에 강호 전체가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지배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누구 한 명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는 이가 없었다· 그만큼 운중천이 완벽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강호는 정체되었고 항상 똑같은 부류의 이들이 강호를 지배한다· 바로 운중천과 그들과 연관된 거대 문파들이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완벽한 환경을 구축한 채 말이다· 그들이 구축한 환경에 들지 못한 자들은 처절하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불합리한 일도 없었다· 최소한 하진월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떠한 의문도 없다는 것은 어떠한 희망도 없다는 것· 지금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밀야로부터 중원을 지킬 수 있지 않았습니까?”
“밀야? 그렇지· 밀야····”
하진월이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말끝을 흐렸다· 진무원이 그런 하진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하진월이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 네놈은 저기 참여할 생각이 없느냐? 네놈이 척마대의 대주가 되면 볼만할 텐데·”
“그들이 참가시켜 주겠습니까?”
“절대 반대하겠지·”
“그러니까요·”
“흐흐!”
두 사람이 고졸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왜 척마대에 관심 있으세요? 제가 추천해 드릴까요?”
뜻밖의 목소리에 진무원과 하진월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하진월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이거 서문 소저가 아니신가?”
그들에게 말을 한 여인은 바로 서문혜령이었다·
진무원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녀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서문혜령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척마대에 관심 있으세요? 지금 진 소협의 위명이라면 분명 척마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한번 도전해 보세요·”
“진심이십니까?”
“어떤 것 같아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나 저 위에 제 자리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런가요? 아쉽네요·”
서문혜령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곁에서는 채화영이 전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진무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진월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시시한 소리를 하러 온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로 서문 소저가 친히 이렇게 찾아오셨소?”
“제안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제안?”
“그래요· 제안·”
“한번 들어봅시다·”
“이대로 운중천을 나가세요·”
하진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서문혜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북천문의 명예를 회복한 것만으로 진 소협은 소기의 목적을 이룬 셈일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나가세요·”
“나가라?”
“그도 못하겠다면 그냥 이대로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서문혜령의 단호한 말에 하진월이 피식 웃었다·
“서문 소저의 제안은 이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뿐이구려·”
“그런가요? 나는 지금 최대한의 호의를 베푸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라· 그냥 숨만 쉬고 살라는 것 아니오? 그게 무슨 호의라는 거요?”
하진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때로는 숨만 쉬고 사는 것도 호사일 수 있어요· 일단 살아 있어야 꿈도 꿀 수 있는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진 소협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서문혜령의 시선이 하진월의 곁에 있는 진무원을 향했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은 진무원의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창룡회는 왜 만든 겁니까?”
“그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제가 창룡회에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하면 듣겠습니까?”
“그거완 달라요· 창룡회는 세상을 바꿀 힘과 의지가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있어요· 진 소협이 처한 상황과는 여러모로 달라요·”
진무원은 입을 다물었다·
서문혜령은 총명했다· 그녀가 이끄는 창룡회는 분명 강대한 조직이 분명했다· 하지만 창룡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녀의 말과 눈빛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신념도 지나치면 독선이 되게 마련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리지 않게 마련이다· 지금 진무원이 어떤 말을 하든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한참을 말없이 서문혜령을 바라보던 진무원이 갑자기 포권을 취했다·
“창룡회의 비상을 빌겠습니다·”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요· 알겠어요· 저도 진 소협의 무운을 빌죠· 그럼·”
서문혜령이 소리 나게 몸을 돌렸다·
진무원과 하진월은 멀어져 가는 서문혜령과 채화영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마침내 서문혜령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하진월이 입을 열었다·
“저 여우가 무슨 생각이지?”
“단순한 충고는 아니겠죠?”
“충고?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아· 그녀는 충고를 할 성격이 아니야· 차라리 계획을 꾸며 제거하는 것을 택하지·”
하진월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의 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의 이목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채화영은 서문혜령을 따라 종종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문혜령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생각에도 진무원과 하진월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자신이 아는 걸 서문혜령이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그녀가 그들을 찾아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궁금한가요?”
“네?”
“제가 왜 그들을 찾아간 건지 궁금하나요?”
“그게····”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예요· 지금부터 나 역시 전력을 다해야 하니까요·”
“결의?”
“곧 알게 될 거예요·”
서문혜령이 미소를 지었다·
순간 채화영은 전신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보아온 서문혜령의 미소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짓는 미소는 이전의 미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갈게요·”
“언니?”
“가볼게요·”
서문혜령은 채화영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채화영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서문혜령은 결코 뒤돌아보거나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거처인 혜화전으로 들어왔다· 적막한 혜화전 안에는 오직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수많은 이가 일제히 내뱉는 환호성이 혜화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작했구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척마대를 뽑는 본선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문득 서문혜령의 시선이 방 한쪽을 향했다·
“당신을 위한 시대예요 수천·”
그 순간 거짓말처럼 벽 한쪽의 어둠이 일렁이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검은 무복을 입은 육 척 장신의 사내였다· 다갈색 피부에 어깨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얼굴 한가운데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굵은 흉터·
백수의 왕인 수사자를 연상시키는 남자의 등장에 서문혜령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수천? 어떻게···?”
서문혜령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당신이 나를 불렀잖소·”
“폐관은 끝난 건가요?”
“그렇소!”
남자의 이름은 담수천· 아주 오래전 백인비무행을 성공시킨 전설적인 무인이다· 칠 년 전 모습을 감췄던 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둠에 잠겨 있던 창천(蒼天)의 고성(孤星)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