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 3장 나비의 날갯짓이 구름을 부르기도 한다 (3)
월성천은 운중천의 정보를 총괄하는 비각전의 전주였다· 정보를 담당하는 직책의 특성상 운중천 내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또 그 정도의 권한과 힘을 갖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지간한 문파 하나 정도는 손쉽게 지워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본신의 무력 또한 대단해서 십대장로를 제외하면 당할 자가 많지 않았다·
그는 평소 수많은 무인을 자신의 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진무원은 그와 똑같은 높이에서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대등한 상대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사실이 월성천은 한없이 불편했다· 무엇보다 상대가 북천문의 후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에겐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북천문 그때 완전히 씨를 말렸어야 하거늘·’
월성천이 이를 악물었다·
진무원은 그런 월성천의 눈에 담긴 분노와 살기를 감지했다· 월성천과 함께 온 수하들 역시 비슷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들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 심신이 위축되었겠지만 진무원은 달랐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는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역경과 고난 속에 단련된 그의 신경은 겨우 이 정도의 살기에 위축될 만큼 연약한 것이 아니었다·
“자네가 왜 여기 있지? 역시 소 당주와 내통하고 있었던가?”
“내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군요·”
“흥! 그는 자네에 관한 정보를 철저하게 감췄다· 내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지· 거기에 거짓 정보로 우리를 기만했다· 그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월성천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때 소무상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전 기만한 적이 없습니다· 장원이 불에 탈 때 진 공자도 있다고 했고 그에 따라 운중천에서 철저히 검증했으니까요· 결국 진 공자가 죽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운중천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기만을 했습니까?”
“어디서 궤변을····”
“운중천이 검증하는 몇 년 동안 저는 거의 감금당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제가 진 공자와 내통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저 역시 진 공자가 운중천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소무상은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그동안 추밀당의 당주로 있으면서 얻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면 먼저 흥분하는 자가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를 추밀당주에 임명한 자는 분명 월성천이었다· 하나 그것은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 아니었다· 월성천은 소무상이 이용 가치가 있다는 판단하에 추밀당주에 임명했다· 소무상은 추밀당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소무상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의리와 정으로 뭉친 사이가 아니었기에·
“궤변이라 생각하시면 절 압송해 가도 좋습니다· 하나 아무리 조사해도 제 혐의를 입증하기는 힘들 겁니다·”
소무상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월성천은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놈은 분명 모든 증거를 인멸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내가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소무상이 얼마나 주도면밀한지는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진무원의 부상으로 인해 주변이 시끄러운 때였다· 자칫 감정대로 행동했다가는 그 어떤 역풍이 불지 몰랐다·
소무상도 그 사실을 알기에 오히려 강하게 밀고 나갔다·
월성천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성급한 마음에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좋다 널 압송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추밀당의 당주직은 박탈하겠다· 당장 추밀당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라·”
“알겠습니다·”
소무상이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던 바다· 이로써 홀가분하게 진무원을 따라갈 수 있게 되었으니 족쇄가 제거된 셈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디 몸조심하길 바라지· 소 당주· 아니 이젠 당주가 아니지· 소 무사·”
“충고 명심하겠습니다 월 전주님·”
내친김에 소무상은 아예 추밀당주를 뜻하는 신분패를 월성천에게 반납했다·
신분패를 손에 쥔 월성천의 어깨에 잔 경련이 일었다· 굴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소무상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소무상의 곁에 진무원이 있다·
진무원은 검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맨손으로 건드리기엔 너무나 날카로웠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갈지 몰랐다· 건드려도 대책을 확실히 마련한 다음에 해야 했다·
‘당장은 명분이 없으니 지켜보겠다 진무원· 하나 그 오만방자함이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월성천이 소리 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같이 온 무인들이 따랐다·
그들의 모두 나가자 소무상이 뒤돌아봤다· 객잔의 주인과 점소이 등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을 향해 소무상이 입을 열었다·
“모두 들었지? 이제 청화객잔은 폐업한다·”
“그럼 우리는 실업자가 된 건가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점소이의 표정에 소무상이 혀를 찼다·
“음흉한 놈!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누가 보면 정말 갈 곳이 없는 줄 알겠다·”
“헤헤!”
소무상의 타박에 점소이가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활짝 웃었다·
“비각전에 대충 인계해 주고 미리 준비해 둔 안가로 철수해·”
“알았어요·”
점소이가 주인과 함께 주방으로 갔다·
소무상이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들이야말로 추밀당의 핵심입니다· 저들이 없으면 추밀당은 그저 평범한 조직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보를 모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범람하는 수많은 정보 안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실을 추려내고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점소이와 객잔의 주인은 그런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소무상이 운용하는 추밀당의 진정한 핵심 인물들이었다·
소무상은 검 한 자루만 챙겼다· 칠 년 전 진무원이 준 그 검이었다·
“아직도 그 검을 쓰시는군요·”
“이젠 손에 익어서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소무상은 기꺼이 진무원에게 검을 넘겼다· 진무원은 검집에서 검을 뽑아 자세히 살폈다·
일반적인 검보다 길고 좁은 검신의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실금이 가 있고 검날도 군데군데 빠져 있어 만신창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소무상이 걸어온 인생행로가 검 한 자루에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 검을 들고 얼마나 고련을 했을지 진무원의 눈에는 선히 보였다·
“장원으로 돌아가면 제가 손을 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소무상이 환히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검의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무원의 손을 거친다면 그의 검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청화객잔을 나섰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곳을 떠나지만 소무상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속이 후련한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는데 아쉽지 않습니까?”
“하하! 주군께서 먹여주고 재워줄 텐데 아쉬울 게 뭐 있겠습니까?”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테니 열심히 벌어야겠군요·”
“많이 버십시오· 아주 많이·”
“하하하!”
소무상의 너스레에 진무원이 큰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큰 웃음을 터뜨려 본 것도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면 그간 웃을 일이 거의 없던 것 같다·
그때였다· 갑자기 앞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길 양쪽으로 분분히 비켜섰다· 진무원이 앞쪽을 보니 말을 탄 일단의 무인이 커다란 마차를 호위한 채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들은?”
“무당파의 무인들입니다·”
소무상이 즉각 대답했다· 마차의 지붕에는 무당파를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이 걸려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도인들의 안광은 하나같이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서둘지 않고 말을 천천히 몰았다· 수많은 이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누구 한 명 흥분한 기색 없이 차분하게 말을 몰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발산하는 단단하면서도 완고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소림사와 함께 구대문파의 태두로 불리는 무당파이다·
소림이 강맹하다면 무당은 부드럽다· 소림의 무공이 산악처럼 웅장하다면 무당의 무공은 구름처럼 부드럽고 변화가 무쌍해 표홀하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본래 운중천이 있는 호북성은 무당파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무당파의 허락이 없었다면 운중천이 호북성에 자리를 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당파는 대의를 위해 호북성에 운중천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운중천이 자리를 잡은 이후 무당파는 산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의 출입을 삼갔다· 수행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날 이후 호북성에서조차 무당파의 도인들을 보는 것은 무척 희귀한 일이 되었다· 특히 오늘처럼 대규모의 인원이 세상에 나온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으면 흥분할 법한데도 무당파의 도사들에겐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단 한 명 예외가 있다면 마차의 지붕 위에 앉은 소년 도사였다·
이제 겨우 팔구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 도사는 신기하단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유난히 새까만 눈동자와 귀여운 얼굴은 순진무구함으로 가득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의 시선이 갑자기 진무원과 마주쳤다· 소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진무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소년이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마차의 지붕을 두들겼다· 그러자 마차의 창문이 살짝 열리며 한줄기 강렬한 안광이 느껴졌다·
그의 안광과 마주한 순간 진무원은 강렬한 충격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눈앞에 섬전이 터진 것처럼 새하얀 안광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마치 칼날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무섭게 벼려진 칼날이 뇌수를 후비적거리고 신경 다발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며 사물이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였다·
“으음!”
진무원은 침음성을 흘리며 만영결을 운영했다· 그림자 내공이 움직이자 붉게 물들었던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군?”
곁에서 소무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진무원은 대답할 수 없었다·
마차 안에 있는 미지의 상대가 걸어온 싸움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단순한 눈빛 교환에 불과했지만 진무원과 같은 고수에겐 검을 들고 싸우는 것보다 더 흉험한 싸움이었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갑자기 상대의 눈빛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마차의 창문이 탁 하고 닫혔다·
“주군?”
소무상이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그제야 진무원의 눈빛 또한 정상으로 돌아왔다· 곁에 있던 소무상은 마차 안의 눈빛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거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 마차에 탄 자의 눈빛을 느낀 자는 오직 진무원 한 명뿐이었다·
‘저자가 누구기에···?’
마차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길을 갔고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소년이 진무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진무원은 마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설화를 쥐고 있는 손에 어느새 땀방울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무당파· 그렇다면 적엽 진인(赤葉眞人)인가?’
무당파에도 하늘이 있었다·
천하에 존재하는 수많은 검객이 우러러보는 검의 하늘이·
세상은 그를 적엽 진인이라고 불렀고 검의 하늘이라 칭송했다·
구름 위에만 있던 아홉 하늘 중 한 명이 드디어 세상에 내려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