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2장 때로는 질시에 눈이 멀기도 한다 (1)
섬서성에는 구대문파 중 두 곳이 존재했다·
화산파와 종남파·
둘 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섬서성 사람들의 정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산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도가 계열의 문파로 도사들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반면 종남파는 화산파와 또 달랐다· 화산파처럼 도가 계열의 문파이면서도 종남파는 오히려 군문(軍門)과도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섬서성 자체가 국경 인접 지역인 것도 한 이유였고 무엇보다 종남파와 군부가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화산이나 무당파처럼 정통 도가를 표방하는 문파들의 무공은 깊고 웅혼하지만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반면 종남파는 도가의 색채를 띠고 있으면서도 속성이 가능한 무공이 꽤 많았다·
물론 그런 무공들은 상승지경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 있는 반쪽짜리에 불과했지만 대신 금방 익혀 실전에 빠르게 투입될 수 있기에 군문에서 선호했다·
때문에 섬서성 인근의 군문에서는 장수들을 종남파에 보내 무공을 익히게 하며 많은 지원을 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종남파도 군문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도가 계열의 문파라기보다는 군문 혹은 속문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때문에 섬서성 사람들은 화산파의 도사들에게는 경외감을 종남파의 무인들에게는 친근감을 느꼈다·
현재 종남파를 이끌어가는 이는 청학 진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장문인에 올라 수십 년 동안 무난하게 종남파를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청학 진인은 가슴까지 내려온 기다란 수염을 만지며 방 안에 누워 있는 중년의 도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현재 종남파를 이끌어가고 있는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으음!”
방 안에 누워 있는 중년의 도사는 종남파의 무인이 아니었다· 며칠 전 종남파의 무인들이 구해온 이였다· 도사의 품속에서는 곤륜파를 상징하는 신물이 나왔다·
비록 종남파와 왕래는 없었지만 곤륜파의 무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도사는 지극한 간호와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정신을 차리려 하고 있었다·
잠시 신음성을 흘리던 도사가 마침내 눈을 떴다· 도사는 초점이 잡히지 않는 흐릿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도사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다· 그제야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모두를 대신해 청학 진인이 입을 열었다·
“종남파일세 곤륜의 친우여·”
“제가 왜 종남에?”
“기억나지 않는가? 종남산 인근의 야산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갔다가 쓰러져 있는 자네를 발견했다네·”
그제야 곤륜의 도사가 잠시 단절되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마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녀라니 무슨 말인가?”
“희대의 마녀가 나타났습니다· 그녀에게 모두가 죽었습니다·”
“진정하고 차분히 말해보게· 마녀라니?”
청학 진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 역시 본능적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다·
곤륜의 도사는 은한설과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종남파 도사들의 얼굴이 철갑을 씌운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으음!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그녀의 손에 사부와 사형이 죽었습니다·”
종남파 도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워낙 신비지문이라 곤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곤륜의 무공과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있었다·
일정한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 제자들을 외부로 내보내는 법이 없는 곤륜파이다· 그런 곤륜파 내에서도 백남회의 위치는 매우 특별했다·
곤륜에서 악을 응징하기 위해 내보낸 자가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상대는 곤륜을 두려워하지도 않을뿐더러 잔혹하기 그지없는 손속을 지녔다·
“하필 이 시기에 마녀가 출현하다니·”
“이대로 마녀의 출현을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장문인·”
“그렇습니다· 비록 곤륜파와 내왕이 적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똑같이 정도를 표방하는 문파입니다· 이대로 마녀의 출현을 좌시한다면 많은 강호 동도가 저희를 욕할 겁니다· 당장 추적대를 조직해 마녀를 척살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강호 동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강경 일변도의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
장로들이 강경하게 나오자 청학 진인은 눈을 감고 장고에 들어갔다·
‘마녀의 출현이라니 그것도 종남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섬서성에서 출현했다니 도저히 좌시할 수가 없구나·’
생각을 정리한 청학 진인이 눈을 떴다·
“지금 당장 추적대를 조직해서 마녀를 뒤쫓게나· 그리고 마녀가 향한 곳으로 짐작되는 지역의 문파들에게도 협조 요청을 하게·”
“명대로 하겠습니다 장문인·”
종남파의 장로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곤륜의 도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 곤륜은 종남파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사해가 동도라고 했소· 더구나 강호의 해악이 될 마녀를 척살하는 일이오· 마(魔)를 척결하는 일에는 문파의 구분이 있을 수 없소·”
“감사합니다 장문인· 제가 앞장서서 마녀를 추적하겠습니다·”
“부탁하겠소·”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 ☆ ☆
은마상단은 융중산을 지나고 있었다· 융중산은 호북성 서북단에 있는 산으로 복룡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제갈공명이 학문을 닦으며 은거했던 곳으로 유비의 삼고초려로도 유명한 곳이다·
은마상단에게 융중산이 큰 의미를 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단이 있는 호북성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근 일 년 만의 귀향이다· 아직 은마상단의 본단이 있는 곳까진 한참을 더 가야 하지만 그래도 같은 호북성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유장환이 외쳤다·
“오늘은 이곳에서 노숙을 하겠네! 이후부터는 쉬는 일 없이 달릴 테니 다들 단단히 각오하라구!”
“흐흐!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그거 조금 달리는 게 대수겠습니까?
상단의 보표 중 한 명이 넉살좋게 대답했다·
“왜 벌써 마누라 품이 그리운가?”
“어디 그립다 뿐입니까? 아주 살 냄새를 맡고 싶어 죽겠습니다·”
“하하! 알겠네· 오늘 밤만 지나면 쉬는 일이 절대 없을 거라고 내 약속하지·”
유장환의 큰소리에 근처에 있던 보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자 얼른 노숙할 준비들을 하게· 빨리 쉬어야 힘을 비축해 내일부터 달리지·”
“예 알겠습니다·”
보표와 상인들이 흩어져 노숙할 준비를 했다·
큰 이득을 남긴데다가 인명 손실도 없었기에 그들의 몸놀림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은한설은 마차 지붕에 앉아 그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익숙한 광경이다· 시시덕거리며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은한설에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은한설은 그들의 모습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유장환이 은한설에게 다가왔다·
“소저 오늘 노숙할 건데 괜찮겠소?”
“아무래도 상관없어··· 요·”
“하하! 이젠 소저도 우리 일행이 다 되었군· 아무튼 오늘만 참으시오· 조만간 무한에 도착할 테니까·”
“알겠어요·”
“혹시 무한에 도착하면 따로 머물 곳은 있으시오?”
“네?”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은마상단에서 머무시는 것이 어떻겠소?”
은한설이 말없이 빤히 바라보자 유장환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는 지금 이 순간 꽤 긴장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녀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너무 어리다 생각해서 거리를 두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은한설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은한설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호의는 고마워요· 하지만 난 운중천에 들어가야 해요·”
“은 소저·”
“마음만 고맙게 받아들일게요·”
“아 알겠소· 하나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은마상단으로 찾아오시오· 운중천과는 바로 지척이니까·”
유장환은 애써 실망한 티를 감췄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한설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게 할게요·”
“하하! 괜히 시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려· 식사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조금 쉬시구려·”
“그렇게 할게요·”
은한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유장환은 멀어지는 은한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의 곁으로 호상단주 이등명이 다가왔다·
“아직 어린 소저입니다· 욕심이 과한 거 아닙니까?”
“누가 뭐랍니까? 흠흠! 전 그냥 따로 잡은 숙소가 없으면 머물라고····”
“이제 겨우 열대여섯 살 먹은 어린 소저를 노리다니 소상주님 나이를 생각하십시오·”
“크음!”
유장환이 얼굴을 붉힌 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에 이등명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은한설은 노숙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강가를 걸었다· 인적이 드문 강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녹음이 가득한 수풀이 우거져 있고 강 위에는 물새들이 한가하게 노닐고 있었다·
거친 북방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도 은한설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무심코 강가를 걷던 은한설의 눈에 갑자기 이채가 어렸다·
그녀의 조그만 입술이 열렸다·
“사령이야?”
“소주·”
대답과 함께 순식간에 검은 인영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펑퍼짐한 검은 피풍의로 전신을 가린 인영은 바로 그녀의 심복인 사령이었다·
“왔구나·”
“이제야 찾아왔습니다 소주·”
사령이 은한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많이 늦었네· 사부님이 안 보내준 거야?”
“일이 많았습니다·”
은한설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일? 설마?”
“네 대회의에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럼?”
“밀야는 세상으로 나올 겁니다·”
“음!”
“이미 몇몇 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야주의 결정이었습니다·”
“야주께서?”
은한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밀야에서 야주의 결정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칠 년 전 밀야 내의 변란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수습을 하고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니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야주는 오히려 권력을 공고히 했다·
“야주가 직접 움직이실 건가?”
“그럴 거 같습니다·”
“강호에 폭풍이 몰아치겠구나·”
“소주·”
“사부님께서는 따로 말씀이 없으셨고?”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자유를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은한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사부가 약속한 최소의 자유였다· 밀야의 중원 침공과 상관없이 그녀에겐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 편히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는 그녀도 자신할 수 없었다·
“운중천에 대해 들은 건 있어?”
“저도 밀야에서 바로 오느라 딱히 들은 것이 없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혹시 진무원이란 자 때문입니까?”
“····”
“역시 그렇군요·”
사령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혹시 호북성에 들어온 것도 그를 만나기 위해섭니까?”
“맞아·”
“소주·”
“확인하고 싶어· 과연 내가 인간인지 앞으로도 인간으로 살 수 있는지·”
사령은 은한설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령은 은혼심결을 익힌 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은한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소주 뜻대로 하십시오·”
“고마워· 같이 갈 거지?”
“전 소주의 그림자입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대답과 함께 사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한설은 한동안 사령이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야주가 움직였단 말이지·”
야주가 움직인 이상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그녀가 아는 야주는 신중했다· 최소 칠 할 이상의 자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칠 할 이상의 승률을 자신했다는 뜻일 것이다·
쉽게 멈추지 않을 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