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7장 앉아서 폭풍을 부른다 (2)
척마대를 뽑는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벌써 운중천의 정문을 열고 무한이나 운중현에 머물고 있는 젊은 무인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운중천은 정문을 여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인근에 머물고 있는 젊은 무인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결국 참다못한 젊은 무인들이 운중천에 정문을 개방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난감해진 것은 바로 운중천의 수뇌부였다·
문제는 진무원 때문이었다·
당장이야 운중천에서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에 진무원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운중천의 수뇌부와 구대문파 등에서 파견된 무인들뿐이다·
하지만 그 같은 정보 통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였다· 당장 주위 환경에 민감하거나 상황 판단이 빠른 자들은 운중천 내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진무원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진무원이라는 존재가 젊은 무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젊은 무인들의 출입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운중천 수뇌부의 고뇌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운중천의 수뇌부 회의가 다시 소집됐다· 이번에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배제됐다· 먼젓번 대회의에서 몇몇 무인이 운중천이 아닌 진무원의 편에 서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그리하여 십대장로와 주요 조직의 수장들만 한자리에 모였다·
십대장로 중 일인인 섭요천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진무원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룰 수 없습니다· 이제는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모르오? 방법이 마땅치 않아 이러는 것 아니오?”
마찬가지로 십대장로 중 한 명인 갈문홍이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럼 방법을 제시해 보시오·”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하는 말 아니오·”
“자자 다들 자제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시작으로 다시금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결론도 나오지 않고 감정만 상하게 하는 대화가 장시간 이어졌다·
집법당주 금주상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운중천이라는 초거대 세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대화 수준이 시정잡배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무원 그 아이 하나 때문에 자칫하면 운중천의 부끄러운 민낯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생겼구나·’
분란의 불씨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당장 십대장로만 하더라도 의견이 분분한데 진무원의 생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퍼질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만큼 진무원이란 존재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뇌옥 안에 가만히 앉아서 운중천을 뒤흔들고 있구나·’
금주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중천의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다·
차라리 진무원이 검을 들고 도전해 왔다면 그에 걸맞게 응전을 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검 대신 뇌옥을 택했고 그 결과 운중천의 수뇌부에게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
패왕전주 육지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 장로님께서 반드시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육 전주?”
“진무원이 운중천의 뇌옥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이미 외부로 조금씩 흘러나가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아니 누가 감히 기밀을 유출했단 말인가? 설마 외당에서 유출시킨 것인가?”
“외당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정확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외부 사람들이 진무원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으음!”
육지문의 말에 십대장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황이 그들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누군가의 아쉬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십 년 전에 확실히 처리해야 했는데·”
십대장로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가득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처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오· 막대한 부담을 무릅쓰고 죽이든가 아니면 풀어주든가 우리는 선택해야 하오·”
“이런 방법은 어떻겠소이까?”
십대장로 중 일인인 유청월이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말해보시구려·”
“어차피 척마대를 뽑는 행사를 미룰 수 없는 것은 모두 아실 거요· 요식적인 행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강호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오? 어서 본론을 이야기하시오·”
“북검을 척마대 행사와 연관시켜 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말이오?”
“강호 동도들이 심판하고 처분하게 만드는 거요·”
“그게 가능하겠소? 강호인 상당수가 아직도 북천문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데·”
“안 될 건 또 뭐 있겠소? 추억이란 것이 얼마나 오염되기 쉬운 헛된 감정인지는 말 안 해도 다들 잘 아시지 않소이까? 군중을 선동하는 것은 약간의 노력이면 충분하오· 하물며 그 대상이 감정에 휩쓸기 쉬운 젊은 무인이라면야····”
육지문이 말끝을 흐렸지만 그의 의도를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십대장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갈문홍이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반발하는 이들은 어찌할 셈이오? 우선 화산파와 공동파 당문이 반대하고 있지 않소·”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소? 십 년 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침묵했소· 아무리 입으로 정의니 뭐니 떠들어도 결국에는 자파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있소· 그게 세상인심이오·”
“흐흐!”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면 연 보주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소? 그 사람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일 테니·”
“옳거니! 묘안이로구나·”
모두가 웃었다· 단 한 명 금주상을 제외하고는·
‘또다시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는가?’
운중천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뤄지는 야합에 금주상은 눈을 감았다·
한동안 인적이 끊긴 뇌옥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지만 진무원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뇌옥 안에 들어온 자는 금주상과 집법당의 무인들이었다· 금주상은 잠시 멈춰 서서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외부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 갇혀 있다 보니 안색은 다소 창백하게 변했고 수염도 거뭇거뭇 올라와 있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머리카락은 눈을 가리고 있고 어깨에도 뿌연 먼지가 쌓여 있다·
금주상은 그런 진무원의 모습에서 진관호를 떠올렸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이 된 진무원의 얼굴은 아비 진관호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아들은 아비를 닮고 자식은 부모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인가?’
그때 진무원이 눈을 떴다·
금주상은 그사이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했다·
“밖으로 나오게나·”
“석방입니까?”
“집법당의 뇌옥으로 옮길 것이네· 그곳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자네 사건을 처리할 것이네·”
“정식 절차?”
“자연히 알게 될 것이네· 그만 나오시게·”
집법당의 무인들이 뇌옥 문을 열었다·
진무원이 몸을 일으키자 집법당의 무인들이 그의 검을 빼앗으려 다가갔다· 그것이 절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차마 진무원의 몸에 손을 대지 못했다·
진무원의 눈빛을 보는 순간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무원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사달이 일어날 것 같은 강렬한 느낌·
몸이 머리보다 먼저 판단하고 진무원에게 접근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그 당혹스러운 경험에 그들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그때 그들을 구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빼앗을 필요는 없다· 그는 북천문의 마지막 문주·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도록 하라·”
“예!”
금주상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진 문주 나오시게나·”
말투마저 변했다· 진무원을 북천문의 문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무원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금주상은 생각했다·
진무원이 이채 어린 눈으로 금주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진무원을 향해 금주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진무원은 금주상을 따라 뇌옥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강렬한 햇살에 진무원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그림자 내공이 절로 일어나 그의 눈을 보호했다·
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뇌옥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외당무인들이 진무원을 발견하고 자신들끼리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외당무인들 사이에서도 진무원의 존재는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가세나·”
금주상이 걸음을 옮겼다· 그와 함께 온 집법당의 무인들이 진무원을 포위한 채 뒤를 따랐다·
외당이 이름 그대로 운중천의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집법당은 운중천 내에서도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법당 딴에는 은밀하게 호송한다고 했지만 진무원의 존재는 금세 사람들 눈에 띄고 말았다·
“누구지?”
“집법당의 무인들이 저만큼 동원된 것을 보면 거물인 모양인데?”
“아직 젊은 사람 같은데····”
사람들은 집법당으로 호송되는 진무원을 보며 수군거렸다· 집법당의 무인들이 수십 명이나 동원되어 호송될 정도면 보통 존재가 아닐 거라고 나름 추측하는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의 다양한 시선이 진무원의 감각에 느껴졌다· 진무원의 전방위 감각은 그런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마저 포착하고 구별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미지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낸 데 반해 그렇지 않은 이들의 시선도 존재했다·
진무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질적인 감정이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진무원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무원은 그들이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런 부류가 한둘이 아니었다·
‘저자들과 왼편 전각 뒤에 있는 자들은 서로 다른 곳 소속이군· 나무 뒤에 은신한 자 지붕 위에 숨어서 지켜보는 자들까지 하면 모두 네 곳에서 나온 것인가?’
그 말은 곧 전혀 소속이 다른 네 곳에서 파견 나온 인물들이 진무원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운중천 내의 힘의 역학이 최소 네 군데 이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군·’
진무원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저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들을 통해 진무원이 오히려 운중천 내에 존재하는 분열과 힘겨루기 상태를 가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과 며칠 동안 뇌옥에 갇혀 있었을 뿐인데 진무원의 전방위 감각은 무섭도록 예리해져 있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상대의 시선에 담긴 감정까지 읽어내고 있었다·
전방위 감각만 발달한 것이 아니었다· 몸 상태도 이상할 정도로 좋았다· 전신의 근육에 힘이 넘쳐흘렀고 기혈이 막히는 곳 없이 내력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상의 몸 상태였다·
진무원은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앞서 가던 금주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자연 그 뒤를 따르던 진무원과 집법당 무인들의 걸음도 멈추었다·
금주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젊은 무인 때문이었다· 젊은 무인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그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자넨?”
“금 당주님께 소생 심원의가 인사 올립니다·”
금주상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하는 인물은 바로 심원의였다·
“자네가 왜?”
“잠시 죄인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심원의의 시선은 집법당 무인들에게 둘러싸인 진무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