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 6장 옛 인연이 항상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2)
은한설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가 향한 곳은 장안 외곽에 있는 야산이었다· 그 뒤를 백남회와 곤륜파의 도사들이 따랐다·
“도주하는 것인가 마녀여?”
은한설의 뒤를 따르는 백남회의 눈이 무섭게 번뜩였다· 그의 몸은 마치 신룡처럼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용이 구름을 가지고 논다는 이름의 곤륜파 절세의 경공술이 그의 몸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다· 대지를 가볍게 박찰 때마다 그의 몸이 십여 장씩 쭉쭉 나갔다· 하지만 그는 운룡대구식을 펼치고도 은한설을 쉽게 따라잡지 못했다·
은한설은 야산의 정상에 도달해서야 멈춰 섰다· 그런 그녀를 향해 백남회가 철검을 휘둘렀다·
쉬아앙!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빛 무리가 일어나 은한설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은백색의 기류가 은한설의 몸을 휘감았다·
쾅!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백남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집채만 한 바위라도 단숨에 베어버릴 만한 위력을 가진 공격이었다· 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반진력이 만만치 않았다·
츄화학!
그 순간 먼지 속에서 은백색 기류가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흡!”
백남회는 기경하면서 검을 들어 전면을 막았다· 순식간에 검에서 푸른색 광채가 흘러나와 그의 전면에 벽을 만들었다·
급한 대로 검벽(劍壁)을 펼친 것이다·
콰가각!
검벽 위로 은빛 기류가 강타하면서 쇠를 갉아먹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녀여!”
백남회의 뒤쪽에 있던 도사 두 명의 몸이 요동치더니 은한설의 좌우로 파고들었다· 그들의 검에서도 시퍼런 빛이 일렁이고 있다· 무섭도록 정련된 검기였다·
운룡십삼검(雲龍十三劍)· 운룡대구식과 함께 곤륜파의 대표적인 절기로 알려진 검공이 은한설을 향해 펼쳐졌다·
용이 구름을 뚫고 승천하듯 무서운 기세로 은한설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은한설은 그들의 공세를 회피하지 않았다·
휘류류!
그녀의 몸을 감고 돌던 은빛 기류가 소용돌이치더니 두 사람의 검을 튕겨냈다·
‘저게 무슨···?’
곤륜파 도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한설의 몸을 휘감고 있는 은백색의 기류는 뚫리지 않는 철벽이자 가장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무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백남회가 은한설을 향해 노호성을 터뜨렸다·
“사공(邪功)을 쓰는 것을 보니 역시 사마외도를 걷는 것이 틀림없구나!”
그의 상청무상신공이 은한설의 몸을 휘도는 은백색의 기류에 미친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바늘로 미간을 쿡쿡 찌르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에 절로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다·
“챠핫!”
그는 다시 은한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어느새 또렷한 검강이 형성되어 있었다·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
곤륜파의 수많은 절기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검공이 은한설을 향해 펼쳐졌다· 용을 도살한다는 끔찍한 이름답게 태허도룡검은 무지막지한 위력을 자랑했다·
쿠콰카각!
은한설이 서 있는 곳으로 수십 줄기의 검강 다발이 직격했다· 굉음이 천지를 울리고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백남회의 공격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용형무상(龍形無上) 도룡참격(屠龍斬挌) 같은 태허도룡검의 절초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그와 보조를 맞춰 도사들의 공세 역시 더욱 거세졌다·
쿠콰콰콰!
검강의 폭풍과 검기의 칼날이 야산의 정상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들의 가공할 공세에 대기가 요동 쳤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공세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백남회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의 육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아직 그의 적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곧 그의 반격이 시작될 거라고·
그 강렬한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산하는 먼지를 뚫고 은백색의 기류에 둘러싸인 은한설이 튀어나왔다·
은혼기로 만들어진 강기의 칼날은 회오리치며 백남회와 도사들을 휘감았다·
“크윽!”
사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력에 백남회와 도사들의 안색이 싹 변했다·
‘천하에 이런 무공이 있다니·’
아마도 반탄강기를 더 발전시킨 유형의 무공이라 짐작됐다· 순간적으로 반탄강기를 펼치는 것은 그도 가능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유지하면서 내공을 발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무한대에 가까운 내공을 소유해야만 가능한 일을 눈앞의 어린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이다·
‘도고일척(道高一尺)이면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더니 두렵구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거대한 마가 음지에서 자라고 있었다니· 내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마녀를 죽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세상은 도탄에 빠질 것이다·’
백남회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그는 삼청무상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철검이 맑은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용이 포효하는 듯한 검명과 함께 그의 철검이 십여 개로 분열했다·
그의 철검은 열 개의 얇은 검편으로 이뤄져 있었다· 열 개의 검편이 은한설을 포위하듯 허공을 맴돌았다·
십검탈령(十劍奪靈)·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의 묘리를 담고 있는 태허도룡검 최강의 절초이다·
열 개의 검편은 백남회의 의지에 따라 은한설을 향해 쏘아졌다· 검편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궤적과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영혼의 편린마저 남기지 않겠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거라 마녀여·”
“흥!”
은한설이 코웃음을 치며 은혼기에 더욱 공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는 은백색의 기류가 더욱 강맹하고 날카롭게 변하더니 폭발하듯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쿠카카캉!
은백색의 기류와 열 개의 검편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크윽! 내 내력이····”
백남회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입가에 피가 비치며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상대의 거센 내공을 이기지 못하고 내력이 역류하고 있었다· 심맥이 픽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우두둑!
손목이 먼저 돌아가고 팔꿈치 어깨가 그 뒤를 따라 뒤틀리더니 팔 전체가 송두리째 뜯겨져 나갔다·
“크아악!”
백남회의 처절한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은한설의 몸을 휘감고 있는 은백색의 기류가 그런 백남회의 몸을 휘감았다· 얼굴만 밖으로 나온 백남회가 소리쳤다·
“나는 상관하지 말고 어서 마녀의 출현 사실을 곤륜에 알리거라!”
“사부님!”
“어서!”
그의 처절한 외침에 도사들이 각자 다른 방향을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은백색의 기류가 백남회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키더니 회오리를 일으키며 조여들었다·
푸화학!
은백색의 기류 안에서 피보라가 터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곤륜이 내보낸 철혈의 무인이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은한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완벽한 은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떠한 감정의 편린도 들어 있지 않은 완벽한 살인자의 눈빛이다·
그녀의 시선이 양쪽으로 나뉘어져 도망가는 도사들을 향했다· 그들의 신형은 벌써 삼십여 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둘 중의 한 명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은한설은 품에 손을 넣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륜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월광륜(月光輪)·
그 천고의 마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아앙!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월광륜이 그녀의 손을 떠났다·
이제 은한설의 영역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도사들이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눈에서는 분루가 흐르고 있었다·
“마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들의 망막을 가득 채운 것은 우두커니 서 있는 은한설이 아닌 조그만 륜이었다·
“으아악!”
순간 비명과 함께 도사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월광륜이 크게 휘돌아 다시 은한설의 손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월광륜의 표면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은한설은 들어가기 싫다는 듯이 울음을 터뜨리는 월광륜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제야 은백색으로 물들었던 그녀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만든 참극을 잠시 바라보던 은한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원래는 이렇게 가혹하게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백남회에게 상처만 안겨주고자 했다· 하지만 은혼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순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고 철저하게 부수고 싶은 격렬한 감정이 그녀의 머리와 가슴을 지배했다· 그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 참상이다·
백야마녀(白夜魔女)의 길·
그녀의 사부 그 사부의 사부도 그랬다고 했다·
제아무리 은혼심결을 완성하고 은혼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도 자칫 방심했다가는 이성의 끈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폭주할 때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곤 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살의를 다스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제법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은한설은 이제 겨우 은혼기를 완성했기에 살의를 다스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휴!”
은한설의 붉은 입술을 비집고 나직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떴다·
은한설이 내려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사위가 어둠에 잠기고 한참 후 일단의 무인들이 야산에 나타났다·
그들은 폐허가 된 야산을 둘러보았다·
“분명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럼 백성들의 고변이 사실이구나·”
그들은 종남파의 무인들이었다·
이곳에서 종남파가 있는 종남산까지는 수십여 리에 불과했다· 종남파의 야산 인근에 사는 백성들이 찾아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들은 야산에서 천둥소리가 터져 나온다며 진상을 알아봐 줄 것을 부탁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열 명이 넘는 백성이 찾아와 부탁하니 종남파에서도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이대제자 두 명과 삼대제자 열 명을 파견해 진상을 알아보게 했다·
비록 짙게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명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초토화된 야산의 정상에서는 분명 무인들 간의 싸움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들의 싸움이어야 이런 흔적이 남는 걸까?”
종남파 무인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가득했다·
그들의 수준으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무인들의 싸움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필 종남파 인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때였다· 근처를 살피던 삼대제자들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여기에 시신이 한 구 있습니다!”
“사숙 이곳에는 생존자가 있습니다!”
“뭣이?”
사숙이라 불린 종남파의 무인이 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가슴이 갈라져 뼈가 드러나 있는 곤륜파 무인이 널브러져 있었다·
“정말 살아 있는 것이냐?”
“예! 절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약하게 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본 파의 속명환을 복용시키거라· 반드시 이곳에서 있던 진상을 알아내야 한다·”
“옛!”
대답을 한 무인이 품에서 한지에 싸인 검은색 환단을 꺼내 복용시켰다· 종남파의 속명환은 비록 전설 속의 영약처럼 사람을 단숨에 기사회생시키는 효능은 없지만 그래도 상세를 호전시키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일단 숨만 붙여놓으면 종남파에서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본 파로 호송한다!”
“옛!”
“모두 경계를 철저히 하라!”
지시를 하는 종남파 무인의 눈에 짙은 긴장감이 떠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