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5장 손톱 아래 조그만 가시가 더 아프다 (2)
진무원은 뇌옥 한가운데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뇌옥의 죄수라고는 진무원 한 명뿐이다· 일련의 사건이 있은 후 외당의 당주 단운강이 외인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외인의 접근도 없고 방해하는 자도 없다· 덕분에 진무원은 오랜만에 마음껏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진무원은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그의 사고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
하지만 그의 호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쾅!
누군가 뇌옥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노인이다· 삐쩍 마른 몸매에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생긴 얼굴 날카로운 눈빛이 노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노인의 뒤에는 외당주 단운강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며 따르고 있었다· 잠시 뇌옥 안을 둘러보던 노인은 진무원이 갇혀 있는 철창을 향해 곧장 걸어왔다·
그는 철창 앞에 멈춰 서서 진무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진무원은 감은 눈을 뜰 줄을 몰랐다·
한참을 진무원을 내려다보던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진무원 맞느냐?”
외모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목소리다·
그제야 진무원이 눈을 뜨고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맞습니다만·”
“내 이름은 금주상이다· 운중천의 집법당주가 바로 노부다· 너는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느냐?”
“제 신분 때문입니까?”
“그렇다·”
집법당주 금주상의 눈이 뇌옥의 어둠 속에서도 무섭게 빛났다· 운중천의 내부 규율을 집행하는 집법당의 당주답게 금주상의 무공 수위는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얼마 전 무한의 한 객잔에서 수십 명의 무인을 도륙한 죄목으로 잡혀왔다· 맞느냐?”
“맞습니다·”
진무원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이냐?”
“무슨 죄 말입니까?”
“수십 명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죄· 부인할 생각이냐?”
“죽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무고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상은 다르다?”
“그렇습니다·”
“어디 떠들어보아라· 내가 보고 받은 것과 얼마나 다른지 들어보자꾸나·”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린 자객이었습니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데 순순히 당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습격한 자들이 자객이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흠!”
진무원의 대답에 금주상이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그가 보고를 들은 바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솔직히 대답하거라·”
“말씀하십시오·”
“네 사문이 강호에 알려진 대로 철검문이 맞느냐?”
“····”
“아니더냐? 이곳에 오기 전 익명의 투서를 받았다· 그곳엔 네가 철검문의 후인이 아니라고 적혀 있었다·”
금주상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그에 따라 뇌옥 안의 긴장감은 더욱 팽배해져 갔다·
“북천문의 육대문주 진무원·”
순간 뒤에서 듣고 있던 외당의 당주 단운강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북천문이라니·’
그 단어를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십여 년 전 외당에서도 무인들을 북천문에 파견했다· 그때 파견 나간 무인 대부분이 밀야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모두 단운강의 수하들이었다·
금주상의 말에도 진무원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맞느냐? 대답하거라·”
“맞습니다·”
“으음!”
금주상의 입술을 비집고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이 철갑처럼 굳었다· 그만큼 진무원의 대답이 안겨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금주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운중천 내에서 북천문의 기치를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뜨고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안타까운 빛이 가득했다·
“왜 왜 이곳으로 온 건가? 그렇게 살아남았으면 죽은 듯 조용히 숨어살 것이지 뭐 하러 굳이 세상으로 나온 것인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네의 존재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바람처럼 살다 가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더군요·”
혼마의 습격 적암산 검벽에서의 수련 그리고 운남으로의 여정과 이곳까지 오는 길·
생각해 보면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고 무엇 하나 연관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이곳에 도착했다· 운명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운명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정말 가혹한 운명이겠군·”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난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다· 자네가 북천문의 후인이라고 해서 봐주는 것은 없을 거란 말일세·”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쨌든 무운을 빌겠다·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자면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충고 감사합니다·”
진무원은 금주상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금주상은 사적인 감정과 공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무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않을 테지만 최소한 악의를 갖고 일을 처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진무원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금주상이 단운강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그를 집법당의 뇌옥으로 압송할 것이니 그때까지 경계를 철저히 서게·”
“아 알겠습니다·”
같은 당주였지만 집법당과 외당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운중천의 아홉 하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집법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만큼 집법당의 권력은 외당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금주상이 눈을 감았다·
‘폭풍이 불겠구나· 그가 폭풍을 몰고 왔어·’
진무원이 북천문의 후인이라는 사실은 운중천 수뇌부들 사이로 은밀히 퍼져 나갔다·
“북천문의 후인이 다시 나타나다니·”
“그게 정말인가?”
수뇌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운중천은 단순한 독립체가 아니었다· 수많은 강호 세력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또 하나의 강호였고 그렇게 얽힌 인과 관계에 따라 수뇌부들은 진무원의 출현을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척마대를 뽑는 중요 행사를 앞두고 운중천 대회의가 소집되었다· 대회의는 단순히 운중천 수뇌부만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각 문파에서 파견된 대표들까지 합류해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거대한 대전에 운중천의 수뇌부 구대문파 오대세가 등에서 파견 나온 장로들이 모였다· 그 수는 모두 쉰 명이 넘어갔다· 그들의 의견이 곧 현 강호의 의견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전의 분위기는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체면 때문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한시라도 빨리 회의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운중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아홉 하늘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대신해 십대장로가 참석했다·
백무신장(白霧神掌) 갈문홍·
소면적검(笑面赤劍) 유청월·
태산광노(泰山狂老) 양경문·
옥화선자(玉花仙子) 빙하운·
참마무영객(斬魔無影客) 섭요천·
탈혼신창(奪魂神槍) 사마공천·
포룡객(捕龍客) 우문상·
금강야차(金剛夜叉) 대력심·
소요악공(逍遙樂工) 백리현상·
수라유성도(修羅流星刀) 홍천학·
개개인의 무력이 오래전 초절정을 넘어섰다고 알려진 고수들이자 운중천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들이었다·
운중천의 아홉 하늘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십대장로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 역시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북천문의 후인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십대장로 외에도 주요 조직의 수뇌들이 참석해 중량감을 더하고 있었다·
집법당주(執法黨主) 금주상·
검도각주(劍刀閣主) 표소류·
패왕전주(覇王殿主) 육지문·
비각전주(秘角殿主) 월성천·
그 외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등 거대 세력에서 참여한 무인들의 면면 또한 범상치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만큼 오늘 다루게 될 사안은 민감하면서도 파급력이 막대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십 년 전 북천문이 문을 닫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북천문의 멸문에 일조한 공범자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때문에 북천문이라는 단어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그들이 느낀 감정은 당혹과 분노같이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등에서 파견 나온 장로들의 표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북천문이 멸문한 지 십 년이다· 이미 잊힌 이름이고 아득한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현 상황이 그리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 그들의 감정이 표정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십대장로 중 일인인 포룡객 우문상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발생했구려· 북천문의 후인이 다시 세상에 나오다니· 그는 이미 죽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는 비각전주 월성천을 향해 물었다·
비각전은 운중천의 대외 정보 수집 조직이고 월성천은 비각전을 이끌어가는 수장이다· 당연히 운중천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정보가 그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칠 년 전 진무원이 죽었다고 판단한 곳도 비각전이다· 자연 월성천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칠 년 전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분명 그는 죽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정보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성천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모두가 질책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연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십대장로 중 한 명인 양경문이 나섰다·
“이 자리는 월 전주를 비난하기 위한 곳이 아니오· 갑자기 나타난 북천문의 후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오· 모두 기탄없이 의견을 말해주시오·”
“의견이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 북천문은 이미 강호 공적으로 멸문했고 그렇다면 그 후예 역시 강호의 공적이 아니겠습니까? 마침 외당의 뇌옥에 갇혀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척살해서 강호의 도의를 세워야 합니다·”
과격한 의견을 들고 나온 자는 남궁세가에서 파견 나온 남궁청산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진무원을 향한 적의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가문의 촉망받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인 남궁일검이 진무원에게 개망신을 당했다는 소식은 그의 귀에도 들어왔다· 남궁일검의 망신은 곧 남궁세가의 망신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남궁청산은 진무원의 처벌을 주장했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상당히 많은 인사가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북천문의 후인이 운중천에서 고개를 들고 다닌다면 강호의 무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소·”
“맞소! 북천문은 강호에 큰 손실을 끼쳤소· 밀야를 척살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내통을 했고 그 결과 다시 밀야가 준동하게 된 것이오· 지금 꼴을 보시오· 밀야가 다시 준동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고 있는지·”
종남파의 무학 진인이 수염을 푸들푸들 떨면서 열변을 토해냈다· 그에 장내의 분위기가 뜨겁게 고조됐다·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둥글둥글한 인상과는 반대로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중년의 도사였다·
그가 탁자를 내려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 북천문의 모든 죄과는 전대 문주인 진관호의 죽음으로 끝이 난 것 아니었습니까? 운중천의 아홉 하늘도 그렇게 인정했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의 자식인 진무원을 처벌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군요· 그가 무슨 대역죄라도 저질렀습니까?”
그는 화산파의 칠성 진인이었다· 대전 안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노기마저 서려 있었다·
그때 공동파의 장로가 일어섰다·
“본 파의 장문제자인 무진이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진무원이란 자는 매우 광명정대하며 강호에 그 어떤 해악을 끼칠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아니 일대제자의 말만 듣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진은 단순한 일대제자가 아닙니다· 공동파의 차기 장문인입니다· 그런 그가 거짓을 말했단 겁니까?”
“그게 아니라····”
남궁청산과 공동파의 장로가 언쟁을 벌였다· 그에 다른 이들이 합세하면서 시장 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대전 안이 시끄러워졌다·
십대장로 중 일인인 소요음객 백리현상의 낯빛이 침중해졌다·
‘뜬금없이 나타난 북천문의 후인 때문에 이리 여론이 갈리다니· 자칫하다가는 운중천이 내분에 휩싸이겠구나·’
상당수의 장로가 진무원을 참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반대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진무원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던 공동파와 화산파 당문의 반대가 거셌다· 그들은 모두 운중천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파이다· 그들을 무시하고 진무원의 처벌을 감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진무원 단 한 명으로 인해 운중천이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