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 4장 달갑지 않은 만남도 있다 (1)
두 개의 문을 통과하고 세 번의 검문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전각의 이름은 혜화전(慧花殿)이었다·
혜화전의 주인은 바로 서문혜령이었다· 운중천에 들어오면 그녀는 늘 혜화전에서 머물렀다· 이곳에는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잘 가꿔진 후원과 연무장 널따란 전각과 수발을 들 수많은 사람과 경호무인· 하지만 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이곳에서 정보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서문세가의 정보 조직을 그대로 옮겨왔다· 규모만 작을 뿐 서문세가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운중천에 들어오는 정보 대부분이 그녀에게도 전달되었다· 그 덕에 그녀는 혜화전에 앉아서 운중천이 돌아가는 바를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는 종이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많은 이가 들어왔구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 문파의 무인들까지·”
조만간 운중천은 그 커다란 문을 열고 인근 무한과 운중현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인들까지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리 먹어치워도 배부르지 않는 아귀처럼 운중천은 무인들을 탐하고 있었다· 그 집요하고 강렬한 탐욕엔 천하의 서문혜령마저 질릴 정도였다·
수많은 무인이 한꺼번에 밀려들다 보니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사람이 수십 명만 모여도 통제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상대는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남보다 강한 힘으로 세상을 질타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운중천의 외당과 내당은 비상이 걸렸다· 그 외 다른 조직에서도 외당과 내당에 고수들을 파견해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방문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벽력문(霹靂門)의 채화영 소저입니다·”
“영매가?”
서문혜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들여보내요·”
“예!”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고 등에 창을 멘 건장한 체구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다갈색 피부의 여인은 어지간한 남자보다 훨씬 더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신광이 번뜩이는 눈 굳게 다문 입술은 암표범을 연상케 했다· 그녀가 바로 채화영이었다·
벽력문은 패도적인 창술과 화기(火器)로 유명한 문파이다· 비록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의 위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벽력문만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어 누구도 우습게 보지 못했다·
채화영은 벽력문주 채광호의 무남독녀로 매우 뛰어난 창술의 소유자였다· 서문혜령이 창룡회로 끌어들인 젊은 무인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서문혜령을 향해 다가왔다·
“언니·”
“어서 와 영매·”
서문혜령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본 채화영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식 정보 세상의 흐름에 관한 서문혜령의 탐구욕은 채화영과 같은 기재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광적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서문혜령의 조그만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채화영은 서문혜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담수천이 아닌 서문혜령을 보고 창룡회에 들었다· 때문에 그들의 친분은 단순히 창룡회의 회원을 넘어서 더 친밀했다·
서문혜령이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언니는 여전하군요·
“나에게서 이것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그래 무슨 일이니?”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나요?”
“그건 아니지·”
“하지만 일이 있어서 온 게 맞아요·”
“그래?”
서문혜령의 눈이 빛났다·
“언니 혹시 어젯밤 창룡회의 일부 회원들이 따로 모인 것은 알고 있나요?”
“그런 일이 있었니?”
서문혜령의 미간에 살짝 골이 파였다·
근래 운중천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창룡회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창룡회의 일부 회원이 따로 모였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누구니 사적으로 모임을 주도한 자가?”
“삼환검문의 좌문호 공자예요·”
채화영의 대답에 서문혜령이 혀를 찼다·
“역시 좌 공자였구나· 그는 늘 지닌바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큰 야망을 품고 있지·”
좌문호가 새로운 창룡회원들을 따로 불러 모은 이유를 짐작 못할 서문혜령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가 그 자리에 참석했지?”
“언니와 같은 칠소천의 일원인 현공휘 소협 남궁세가의 남궁일검 공자를 비롯해 꽤 거물들이 모인 것 같아요·”
“으음!”
서문혜령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남궁일검이나 그 외 다른 무인들은 그다지 신경 쓸 게 없지만 현공휘는 그 존재감이 달랐다· 그녀와 같은 칠소천의 일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접을 받아 마땅했다·
서문혜령과 반대로 채화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마치 개구쟁이 같은 채화영의 미소에 서문혜령은 그녀가 더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일은요 무슨····”
“말해봐· 무슨 일이야?”
“사실은····”
그제야 채화영이 황학루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서문혜령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게 사실이니?”
“정말이에요· 그 자리에 있던 동생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예요·”
“현 소협과 남궁 공자 좌 공자가 합공했음에도 오히려 패퇴했단 말이야?”
“네 그 때문에 남궁 공자는 오줌까지 지리고 난리도 아니었대요·”
“으음!”
세 사람은 모두 창룡회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이다· 그들이 합공을 하고도 한 사람에게 당했다는 것은 창룡회의 위신 문제였다·
이제 막 비상을 시작한 창룡회였다· 그 어떤 오점도 있어서는 안 됐다· 자칫하다가는 비상하기는커녕 날개가 꺾여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야? 그 세 사람을 한꺼번에 패퇴시킨 고수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별호가 북검이라고 하더군요·”
“진무원!”
서문혜령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니 아는 사람인가요?”
“정말 그 사람이 북검 맞아? 다른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니고?”
“맞아요·”
“으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분명 아무런 연관이 없는 단어의 조합인데 뜬금없이 연상되는 불길한 느낌과 그림이·
지금이 딱 그랬다·
북검 진무원이란 이름은 얼마 전부터 그녀의 신경을 밑바닥부터 긁고 있는 불길한 존재였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고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면 과하게 몰입됐다·
“그 북검이란 자가 지금 운중천에 들어와 있어?”
“그건 모르겠고 일단 무한에 머무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좌 공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어? 그를 당장 불러들여·”
“그게····”
“왜 또 무슨 일이야?”
“아 그게····”
“빨리 말해 영매!”
서문혜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무원은 뇌옥에 갇혀 있었다· 외당에서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뇌옥이다· 외당에 잡혀온 자들은 이곳에 갇혀 있다가 집법당(執法黨)으로 보내져 처벌을 받게 된다·
뇌옥에는 수많은 철창이 존재했고 그중 한곳에 진무원이 갇혀 있었다· 사방이 철창이었지만 진무원의 표정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품에는 설화가 안겨 있다· 원래 외당에 잡혀온 죄수들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다· 죄수가 가진 무기는 모두 압수해야 했지만 조춘광은 감히 설화를 압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이상 선을 넘어가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죄수 신분인 진무원의 손에 설화가 들려 있는 촌극이 벌어졌다·
외당의 무인들이 진무원을 보며 수군거렸다·
“조장 이거 실수한 거 아닐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잡혀온 자가 너무나 당당합니다· 혹시 든든한 배경이 있는 자가 아닐까요?”
“음!”
수하들의 말을 듣는 조춘광도 편한 표정이 아니었다·
외당에서만 구른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만큼 수많은 무인을 만나봤고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자부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한 자라도 운중천이란 이름 앞에서는 위축되게 마련이다· 하물며 뇌옥에 갇히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저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다·’
자신의 무공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자나 든든한 배경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저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명령을 받고 상대를 압송해 왔지만 그의 신세 내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상대의 이름조차도·
“저····”
그가 진무원의 이름을 물어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뇌옥 안으로 들어왔다·
사십 대 초반의 장년인이다· 허리엔 패검을 차고 보무도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조춘광이 급히 포권을 취했다·
“당주님·”
“여 사 조장 새로운 죄인을 압송해 왔다면서?”
“예!”
“흐흐! 감히 무한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녀석의 얼굴이나 볼까?”
씨익 웃는 장년인의 이름은 단운강· 운중천의 외당을 이끄는 당주로 성격이 열화와 같고 무공이 고강해서 외당을 이끄는 데 제격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단운강이 진무원이 갇혀 있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잠시 진무원을 바라보던 단운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이 사조장 왜 저 녀석의 품에 아직도 무기가 있는 거지? 뇌옥에 가둘 때 무기를 압수하지 않았나?”
“그게····”
조춘광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단운강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병신 같은····”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진무원이 갇혀 있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어이 네놈· 무한에서 잘도 사람을 죽였더구나· 감히 운중천의 앞마당에서 살인을 하고도 무사하길 바란 것은 아니겠지?”
그제야 진무원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담담한 눈동자는 고요한 바다를 연상시켰다· 파랑마저 멈춘 바다는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숨 막히는 정적이 지배하고 있었다·
“으음!”
진무원의 눈빛을 마주한 단운강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담담한 눈빛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진무원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자객이었습니다· 자객의 암습에 대항한 것이 죄가 되는지는 미처 몰랐군요·”
“시끄럽다· 그들이 자객이란 증거가 있느냐?”
“수십 명이 한꺼번에 암습을 했습니다· 자객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흥! 조사해 보면 알 일· 네놈은 결론이 나올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할 것이다·”
“누가 조사하는 겁니까?”
“흐흐! 이 몸이 조사할 것이다· 아주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쳐 주지·”
단운강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진무원의 눈빛이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좌문호의 청탁을 받은 겁니까?”
“누가 청탁을 받았다는 것이냐? 감히 이 단운강을 모함하려는 것이냐?”
단운강이 길길이 날뛰었다· 금방이라도 철창을 열고 들어올 기세다·
“각오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각오?”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을 감당할 각오 말입니다·”
“감히 나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협박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게 되겠지요·”
진무원의 담담한 말에 단운강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그 알량한 이름 석 자로 나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진무원?”
“제 이름을 알고 있군요?”
“분명히 말해두지! 그 이름과 북검이란 알량한 별호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니까!”
그의 음성이 뇌옥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