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7장 죽음은 결코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1)
창운의 주검은 매우 처참했다· 얼굴 반쪽은 거의 썩어 문드러져 있고 몸에는 잔혹하게 살점을 도려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으으!”
칠성 진인의 악다문 입술을 비집고 짐승의 울음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누구냐 제일 처음 창운을 발견한 자가?”
“접니다 사숙·”
창궁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 역시 칠성 진인과 마찬가지로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아침이 되었어도 사형이 보이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실로 찾아가 봤더니 그만··· 크흑!”
결국 창궁이 오열을 터뜨렸다· 마치 전염이라 된 듯 근처에 있던 화산파 제자들이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사형!”
“사숙! 흐어엉!”
순식간에 갑판이 화산파 도사들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칠성 진인이 소리쳤다·
“시끄럽다! 창운을 이렇게 처참하게 살해한 자를 잡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사치다! 반드시 창운을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해야 한다!”
그의 살기 어린 외침에 화산파 도사들이 울음을 멈췄다· 그들의 충혈된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배 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섬뜩함을 느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때 화산파 도사들이 있는 곳으로 진무원 일행이 다가왔다·
당기문이 창운의 시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으음!”
진무원이 침음성을 흘렸다· 한눈에 시신이 창운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신 창운이다· 그 호방함과 청정함에 반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의기가 투합했다·
창운은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술을 마시자며 진무원에게 억지 약속을 강요했다· 창운의 그런 친절이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에 진무원은 그러마고 약속했다·
“누가····”
진무원의 눈빛이 더할 수 없이 깊게 침잠됐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창운은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에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불과 하루도 채 사귀지 못했지만 그 호방함은 진무원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당기문이 급히 창운의 시신을 살폈다· 칠성 진인은 그런 당기문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충혈된 두 눈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창운의 시신을 살피던 당기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설마?”
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칠성 진인을 바라봤다· 그에 칠성 진인이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역시 백록산인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가?”
“모를 수가 없지· 십 년 전 화산파의 제자 다섯 명이 백록산 때문에 목숨을 잃었으니까·”
“으음!”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제자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봤던 칠성 진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백록산에 중독된 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했다· 십 년 전에 꾸었던 악몽이다· 천변음마는 죽었고 칠성 진인은 그때의 기억을 애써 봉인해 두었다· 다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칠성 진인에게 무척이나 잔인한 일이었다·
“누구냐 감히 화산파의 제자에게 백록산을 사용한 자가?”
그의 분노 어린 음성이 운마도강선의 갑판에 울려 퍼졌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에 몸을 떨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필이면 죽은 자가 화산파의 일대제자이다· 화산파는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같이 배에 탔다는 이유만으로도 횡액을 당할 수 있었다·
그때 창궁이 진무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숙 저자가 수상합니다· 어젯밤 사형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자가 바로 저자입니다·”
칠성 진인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정말이냐? 네가 창운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것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진무원은 순순히 대답했다· 숨길 일도 아니고 또한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무원을 바라보는 칠성 진인의 눈에선 불똥이 튀었다·
“네가 감히····”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새벽까지 함께 술을 나눴고 내일도 모레도 함께 마시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진무원의 음성은 무척이나 나직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칠성 진인은 전신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한을 느꼈다·
‘이놈!’
그제야 칠성 진인은 진무원이 자신의 짐작보다 더 고수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축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창운의 죽음과 어떤 연관도 없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본도가 너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
“내가 보증하겠네·”
당기문이 나섰다· 칠성 진인의 분노 어린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러자 당기문이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내가 당문의 이름으로 보증하겠네· 그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일세·”
“나는 그에게 물었네· 이제 다시 한 번 묻겠네· 본도가 너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
“굳이 믿으실 필요 없습니다·”
“뭣이?”
진무원의 대답에 칠성 진인의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그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무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흉수를 찾아낼 테니까요·”
“그럼 네가 흉수를 알고 있단 말이냐?”
“아직은 모릅니다· 하나 곧 알게 될 겁니다·”
“어떻게?”
“그의 시신을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진무원의 말에 칠성 진인이 잠시 갈등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때 창궁과 창혜가 그에게 속삭였다·
“이 이상 사형의 시신을 욕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숙· 그에게 사형의 시신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이대제자들도 그들과 같은 마음인지 칠성 진인에게 시신을 보여주지 말라고 읍소했다·
칠성 진인이 진무원을 노려봤다· 그의 살기 어린 시선에도 진무원은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에 칠성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에게 창운의 시신을 보여주겠다· 만일 네가 창운의 시신을 보고도 흉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너에게 죄를 묻겠다·”
“이보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보다 못한 당기문이 소리를 질렀지만 칠성 진인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말한 것이네· 자신이 없다면 시신을 보지 않으면 그뿐일세·”
“보겠습니다·”
“강호에서 허언(虛言)은 곧 죽음과 직결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칠성 진인이 창운의 시신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허락의 의미이다·
진무원이 창운의 시신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창운의 시신을 바라보는 진무원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창운·’
죽기 직전까지 고통이 심했는지 창운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창운의 부릅뜬 눈을 감겨준 진무원은 이내 창운의 시신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옷차림과 손발의 상태 난자된 상처 부위까지 모조리 살펴본 후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당기문이 물었다·
“그래 뭐 알아낸 것이 있느냐?”
진무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칠성 진인의 표정이 변했다·
“그게 정말이냐?”
“잠시 진인과 함께 온 제자들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무슨? 감히 화산파의 제자들을 의심하는 것이냐?”
진무원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칠성 진인이 노성을 토해냈다· 진무원을 노려보는 그의 충혈된 눈빛이 살기로 잠식되어 갔다·
그래도 진무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잠시 둘러보기만 하면 됩니다·”
“좋다· 하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못할 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전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혹시 창운 도사의 시신을 만진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만 창운 사형의 시신을 옮기느라 접촉을 했을 뿐 다른 제자들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한 이는 창궁과 창혜였다·
“확실합니까?”
“우리가 제일 먼저 창운 사형의 시신을 발견했으니 확실하다· 우리 외에는 그 누구도 시신에 손을 댄 자가 없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진무원이 화산파 제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화산파 제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체도 알지 못하는 진무원이 화산파 제자의 죽음에 개입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꺼려진 것이다· 몇몇 이의 눈빛에는 진무원을 향한 적개심마저 담겨 있었다· 소위 명문 대파에 소속된 무인들의 자존심이었다·
그들의 경계 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무원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화산파 제자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어느 순간 진무원의 눈빛이 변하더니 걸음을 멈춰 세웠다·
“왜 그랬습니까?”
“무슨?”
진무원의 시선을 받은 이는 화산파의 이대제자 중 한 명이었다· 도명은 일원으로 화산파에서도 촉망받는 기재였다·
창궁과 창혜가 즉각 반발했다·
“무슨 헛소리냐?”
“일원이 범인이란 말이냐?”
칠성 진인이 앞으로 나섰다·
“증거도 없이 화산파의 제자를 모함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확실한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화산파의 명예를 걸고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당기문은 안절부절못했다·
“저 녀석 도대체 왜 나서가지고·”
그때 하진월이 조용히 속삭였다·
“잠깐 지켜봅시다 형님· 저 녀석이 아무 이유 없이 나설 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거야 그렇지만····”
“그럼 믿고 지켜보면 됩니다·”
하진월의 말에 당기문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불안한 표정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그때 일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감히 나를 모함하다니!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내 친히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그는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이다· 다른 화산파의 제자들 역시 그에 동조했다·
화산파 제자들이 발산하는 살기가 진무원을 압박해 들어왔다· 여차하면 검을 뽑아 휘두를 기세다·
“저 시벌 놈들이····”
이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명류산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공이라 부를 만한 것이 형성된 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명류산이다· 비록 화산파 제자들을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 싸움이란 것이 꼭 주먹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미려와 남수련이 그런 명류산을 진정시키며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얼굴에도 근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진무원의 무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는 구대문파 중 하나인 화산파였다· 운중천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가 바로 화산파였다· 강호의 여타문파와는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진무원이 흉수를 못 밝혀내면 화산파와 척을 지는 것이고 반대로 흉수를 밝혀내도 화산파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다· 진무원으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이로울 것이 없었다·
‘도대체 왜?’
문제는 진무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런데도 진무원은 선뜻 나섰다·
‘그만큼 화산파의 창운이란 도인과 친분을 나눴단 뜻일까? 단 하루의 인연에 불과할진대 그 정도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진무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진무원이 일원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일원이 오히려 강하게 나왔다·
“이 일원을 흉수로 몰겠다? 오호 나는 오히려 당신이 의심스럽군· 당문의 장로님과 함께 다닌다고 자신까지 당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왜 죽였습니까?”
“그래도 이자가? 증거를 대지 못한다면 당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화산파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이다!”
“증거?”
“그래 증거!”
“창운 도사의 난자된 상처를 보셨습니까?”
“봤다만?”
“언뜻 보면 마구 난자된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정한 각도로 검에 찔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흔 대부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범인은 아마 왼손잡이일 겁니다· 그런데 이 중 왼손잡이는 당신밖에 없군요·”
화산파의 도사 중 검을 오른쪽 허리에 찬 이는 오직 일원뿐이었다·
칠성 진인이 노성을 터뜨렸다·
“겨우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산파의 제자를 모함하다니 네놈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그 이상의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내 네놈을 능지처참하리라!”
순간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더할 수 없이 차가운 미소를·
“아시다시피 창운 도사는 어젯밤 저와 술을 마셨습니다· 싸구려 독주였지만 주향이 얼마나 강렬한지 아직도 제 몸에서는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기로 창운 도사의 시신에 접촉한 사람은 창궁 창혜 도사 그리고 당 대협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는 미약하지만 주향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창궁과 창혜 당기문이 자신들의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주향이 느껴졌다·
진무원의 시선이 일원을 향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접촉도 없었다는 당신의 몸에서 주향이 흘러나오는 겁니까?”
“그 그건····”
처음으로 일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칠성 진인의 표정이 변했다·
“해명해 보거라 일원!”
“생각해 보니 간밤에 창운 사형과 잠깐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몸에 냄새가 배었나 봅니다·”
“창운 도사가 술이 든 항아리의 밀봉을 깬 것은 저와 함께 술 마실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럼 그 이후 창운 도사와 접촉했다는 겁니까?”
“그건····”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일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