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6장 과거의 악몽은 다시 반복되게 마련이다(1)
소무상은 오랜만에 청화객잔을 나섰다· 번화가 너머 운중천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무상은 운중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외부에서 독립된 조직인 추밀당을 이끄는 그이지만 가끔씩은 운중천에 들어가서 직접 보고해야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수집해 온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소무상은 복잡하게 얽힌 생각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는 평범한 사람도 있고 무공을 익힌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무심히 소무상을 지나쳐 갔지만 소무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무상의 머릿속에는 이 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자료가 들어 있었다·
‘저자는 주로 하남성에서 활동하는 청하도객(靑河刀客) 유가량 그리고 저자는 요즘 복건성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린다는 구월검마(九月劍魔) 강유·’
그 외에도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인이 운중현에 들어와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운중현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운중천이 어떤 방식으로 척마대를 뽑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다· 운중천이 뽑는 방식에 따라 떨어질 수도 있고 붙을 수도 있기에 대부분의 무인은 조금의 정보라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쯧!”
소무상이 혀를 찼다·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이미 척마대를 뽑는 방식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알 만한 사람들은 그 방식을 이미 알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공평한 곳이 아니었다· 운중천은 특히 그랬다·
소무상이 걸음을 멈췄다·
운중천으로 건너는 다리가 그의 눈앞에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천강교(天强橋)·
운중천을 상징하는 다리의 이름이다·
소무상은 천강교를 건넜다· 천강교 끝 운중천의 입구에 경계를 서고 있는 젊은 무인들이 있다· 소무상은 그들에게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내보였다·
“통과하십시오·”
소무상의 패는 운중천의 외당무사들이나 사용하는 평범한 동패였다· 신분패만 봐서는 도저히 그의 지위를 알 수 없었다·
운중천의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전각과 거대한 탑 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무인들·
언뜻 보면 번창한 성도와 다를 것 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그 안에도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무인들은 신분패가 허용하는 구역에만 들어갈 수 있었고 이를 어겼다가는 즉각 처벌을 받게 된다·
특히 외부에서 들어온 무인들에게 엄격히 적용되었는데 이를 어겼다가는 본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문파까지도 커다란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 때문에 각 문파에서는 운중천에 무인들을 파견할 때 특별히 주의를 준다·
소무상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북천문에 파견 나가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청춘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지라 모든 것이 익숙했다·
그는 서쪽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에는 두 개의 신분패가 들어 있다· 하나는 정문에서 보인 평범한 신분패이고 또 하나는 무척이나 특별한 신분패이다· 그가 향하는 곳은 특별한 신분패를 내보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이 이봐!”
거친 음성이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목소리에 소무상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뒤를 돌아보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소무상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거친 인상의 사내다· 적색 무복에 허리에 커다란 도를 차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엄청난 박력을 풍기고 있다·
사내를 보는 소무상의 눈빛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런 소무상을 보면서 사내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 오랜만이군 부조장·”
“····”
“그간 잘 지냈나?”
소무상을 보며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장패산· 한때는 소무상의 직속상관이었고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전 이야기였다· 지금 그들에게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다·
칠 년 전 그날 이후 장패산은 심원의의 측근이 되어 승승장구했다· 운중천의 요직을 두루 걸친 그의 현재 직위는 항마당의 당주였다·
항마당(降魔黨)은 운중천에서도 경험이 많은 무인으로 구성된 별동대였다· 이전에 장패산이 조장으로 있던 외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곳으로 독립된 명령 체계를 갖추고 있어 외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았다·
칠 년 전 소무상이 만신창이가 된 채 운중천에 복귀했을 때 장패산은 그를 모른 척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어쩌다가 운중천에서 마주치더라도 외면하고 지나칠 정도로 냉랭한 사이가 되었다·
소무상은 아직도 외당 조원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외면한 장패산도·
자연 장패산을 바라보는 눈빛이 고울 수가 없었다· 적개심이 눈빛을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소무상의 냉랭한 시선에도 장패산은 당황하지 않았다·
“사람이 잘 지내냐고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거 잘됐군·”
“무슨 일입니까?”
“자네를 찾는 분이 있네·”
“나를?”
“그래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부르러 사람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잘됐군· 나를 따라오게·”
“지금 당장은 곤란합니다만·”
소무상의 대답에 장패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뭣이라?”
“공무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보고가 우선이라 생각합니다만·”
“흥! 그까짓 보고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네· 정 뭐하면 자네를 부른 분이 알아서 무마해 주실 거네· 그러니 잔말 말고 나를 따라오게·”
장패산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소무상은 그런 장패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뒤를 따랐다·
‘누구지 이제 와서 나를 찾는 사람이?’
그동안 소무상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현재의 위치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을 뿐 누구의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군가 찾는다니 그 의도와 정체가 궁금했다·
장패산을 따라간 곳은 두 개의 문을 통과하고 세 번의 검문을 통과한 후에야 도착할 수 있는 중지였다· 소무상조차도 운중천에 이런 곳이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은밀한 곳에 아담한 전각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이네·”
장패산이 들어서자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길을 열어줬다· 소무상은 장패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소무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은신해 있는 자들이 하나 둘··· 모두 열둘인가? 아니다· 둘이 더 있다·’
만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면 소무상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들은 은밀하게 숨어 있었다· 호흡은 물론이고 자신의 체온까지 완벽하게 감춘 채·
그는 자연스럽게 주위 풍경을 둘러보면서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본능적으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지난 칠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나의 모든 것을 생존에 맞춘다·’
그보다 먼저 그것도 훨씬 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살아온 이가 있었다· 진무원· 그의 주군이다· 칠 년 전 그날 이후 그 역시 진무원과 같은 절실함을 갖고 살아왔다·
소무상은 은밀히 이를 깨물었다·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장패산이 커다란 방문 앞에 멈춰 서더니 안쪽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 저 장패산입니다· 명대로 부조장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대답과 함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장패산이 소무상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수백 년도 더 되어 보이는 화병과 고풍스러운 문양이 양각된 가구 커다란 대호의 가죽으로 만든 바닥 깔개가 소무상의 눈을 어지럽혔다·
자단목으로 만든 커다란 책상이 방 중앙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놓여 있고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여인이 고개를 들어 소무상을 바라봤다·
소무상은 한눈에 여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서문··· 혜령·’
세월의 흐름에 더 성숙해지긴 했지만 그녀는 분명 서문혜령이었다·
소무상을 본 서문혜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네요· 벌써 칠 년 만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한번 봐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성격이 급하네요· 원래 그랬나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칠 년이란 시간은 사람이 변하는 데 충분히 긴 시간이죠·”
“그렇군요· 확실히 짧은 시간은 아니죠·”
서문혜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비수처럼 소무상의 전신에 꽂혔다· 그녀는 단지 눈빛만으로 소무상의 전신을 헤집고 모든 것을 분석하고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그녀의 의도가 신경을 타고 소무상의 뇌리로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무상은 그녀의 의도를 모르는 척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소 당주님을 부른 것은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예요·”
“무슨···?”
“진무원·”
서문혜령이 뜻밖의 단어를 내뱉었다· 하지만 소무상의 눈빛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미리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주군 때문에 불렀군·’
갑자기 진무원이란 이름 석 자가 유명해졌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심코 넘기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문혜령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서문혜령은 진무원이라는 이름 석 자를 듣고도 소무상이 미동도 하지 않자 약간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근래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나요?”
“들었습니다· 그의 별호가 북검이라는 이야기도·”
“혹시 그가 북천문의 진무원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없나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는 칠 년 전 죽었습니다·”
“하지만 소 당주께서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죠?”
“그는 화마를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럼 현재 강호에 위명을 날리는 자는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무상의 태연한 대답에 서문혜령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그것 때문에 저를 부른 겁니까?”
“소 당주께는 겨우 그 정도 일밖에 안 되는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라····”
“미안해요· 소 당주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서문혜령의 음성이 냉랭해졌다· 그에 장패산의 눈에 은은하게 살기가 감돌았다·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하게 식었다· 그에 소무상이 덤덤히 말했다·
“심기를 어지럽혔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니에요· 어쨌거나 소 당주님을 뵙고자 한 용건은 모두 끝났어요·”
명백한 축객령이다·
소무상이 서문혜령에게 포권을 취한 후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소무상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장패산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심기가 상하셨으면 제가 좀 손을 볼까요?”
그의 주군은 분명 심원의이다· 하지만 그는 서문혜령의 명령도 충실히 이행했다· 선은 여러 곳에 이어놓아야 좋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서문혜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대신 그에게 사람을 붙이세요·”
“감시를 붙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그때까지 그는 우리의 주요 감시 대상이에요·”
“알겠습니다·”
장패산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서문혜령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분명 모든 정보가 그의 선에서 끊기고 있어·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해·’
단순히 여자의 직감이나 변덕 때문이 아니었다·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무엇보다 소무상의 반응이 너무나 이상했다· 오히려 태연한 것이 그녀의 의심을 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