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 4장 원한은 잊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놓는 것이다 (3)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명류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전신은 멍투성이였고 여기저기 깨지고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다·
“크흑!”
명류산은 몇 번이고 일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대자로 널브러지고 말았다·
“아 악마 같은 놈!”
마지막 말과 함께 명류산은 그대로 혼절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기문이 혀를 찼다·
“쯧쯧! 그러게 적당히 할 것이지 뭘 그리 악착같이 덤벼드는 건지·”
“그래도 제법 오기는 있는 것 같군요· 그리 쳐 맞으면서도 눈빛이 쉽게 꺾이지 않는 것을 보니·”
하진월이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눈빛을 했다·
그는 명류산과 같은 부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끈기와 오기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명류산은 끝까지 진무원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전신에 피멍이 든 채 혼절한 것이다·
진무원의 손속에는 사정이 없었다· 그는 명류산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개중에는 손만 대도 죽을 수 있는 사혈도 있었다·
아마 죽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명류산은 어떻게든 고통을 참으려 했다·
‘딱 한 대만 정말 딱 한 대만 먹일 수 있다면····’
애초부터 진무원을 어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이미 전날 흠뻑 두들겨 맞으며 깨달았다· 하지만 진무원의 얼굴에 딱 한 대만 주먹을 먹일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명류산은 그렇게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지만·
당기문이 명류산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그의 전신을 쿡쿡 찔렀다· 몇 번을 반복하더니 그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놈으로 결정했다·”
“뭘 말입니까?”
“두고 보면 자연 알게 될 것이네·”
하진월의 물음에 당기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진무원은 혼절한 명류산을 뒤로하고 모닥불가로 돌아왔다· 모닥불 앞에서는 당미려와 남수련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진무원을 반가이 맞아줬다·
“진 소협·”
“이제 끝났나 보죠?”
“예 생각보다 끈질겨서····”
진무원의 대답에 당미려와 남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무가의 여인이다· 진무원이 단순히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명류산에게는 오히려 큰 행운이고 기연이었다· 물론 얻어맞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얻는다는 가정하에 하는 말이다·
진무원이 근처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불길이 더 거세게 타올랐다·
지금 그들은 노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관도를 따라 말을 몬다고 하지만 항상 인가나 마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곳은 몇 날 며칠을 가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적당한 곳을 찾아 노숙을 해야 했다·
다행히 그들은 노숙에 이골이 난 강호인이었다· 누구 한 사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단 한 명 있었다·
바로 명류산이었다·
명류산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항상 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진무원에게 바득바득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난 날 죽도록 얻어터진 앙금이 그대로 가슴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럴 때면 진무원은 설화를 들었다· 그리고 명류산은 흠씬 얻어맞다가 결국엔 혼절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 모습을 며칠이나 지켜보았기에 두 여인 모두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진무원의 얼굴 위로 붉은빛이 일렁이며 짙은 음영을 만들었다· 그 때문인지 진무원의 인상이 한층 더 강해 보였다·
진무원은 말없이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런 진무원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남수련이 입을 열었다·
“진 소협·”
진무원이 말없이 남수련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진무원을 바라보던 남수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있습니다·”
너무나 담담한 진무원의 대답에 당미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에 남수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군요·”
그녀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곁에 있는 당미려를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 동행하면서 당미려가 진무원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마음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당미려를 보며 답답해하던 그녀가 결국 진무원에게 먼저 물어본 것이다·
남자라면 당미려와 같은 미인이 마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진무원은 당미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남수련이 다시 한 번 물었다·
“혹시 진 소협의 사랑을 받는 운 좋은 여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쓸데없는 것을 물어봐서·”
남수련이 사과를 해왔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장내를 감돌았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상념에 빠져들었다·
명류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
“이걸 복용하란 말이다·”
정신을 겨우 차린 그의 눈앞에 당기문이 웬 자기병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독이다·”
“독?”
명류산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독을 왜 먹습니까? 거 미친 거 아니요?”
“강해지고 싶지 않느냐?”
“미친! 독을 먹고 어떻게 강해진단 말이오? 뒈지지나 않으면 운이 좋은 거지·”
“내가 만든 독은 특별하다·”
“아! 됐소· 안 먹을 거요· 절대로!”
“그럼 매일 무원에게 얻어터질 거야? 삼류무인으로 그렇게 이름 없이 살다 갈 셈이야?”
순간 명류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기문은 그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난 당문의 만독각주다· 당연히 내가 만든 독 역시 특별할 수밖에 없지·”
“당문?”
명류산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아무리 무식한 명류산이라도 당문을 모를 수는 없었다· 특히 그는 당문이 있는 사천성 출신이다· 오히려 타지인보다 당문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저 정말 만독각주님 맞습니까?”
명류산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그는 당기문의 주머니를 털려고 했다· 하룻강아지가 뭣도 모르고 사신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깨달았다·
“천하의 누가 감히 당문을 사칭할까? 나는 당문의 만독각주가 분명하다·”
당기문의 음성엔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명류산도 본능적으로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저에게 독을···?”
“너는 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기문의 물음에 명류산이 속으로 욕을 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미친 인간아? 독은 독이지·’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최대한 에둘러 대답했다·
“그러니까 독은 무서운 거지요· 먹으면 죽고 자칫하면 시신 한 조각 남길 수도 없으니까·”
“그래 그 말이 맞다· 독은 무섭다· 잘못 복용하면 반드시 죽게 되지· 하나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독이 어떻게 약이 됩니까?”
“그게 네놈처럼 무식한 놈들의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은 당문을 독만 잘 다루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기실 천하제일의 의가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당문이다·”
독을 연구하는 과정은 죽음에 대한 탐구나 다름없었다· 독이 인체를 붕괴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면서 반대로 잘만 쓰면 인체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른바 활독(活毒)이 그것이다·
당문에서도 활독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중 가장 깊이 있는 지식의 소유자가 바로 당기문이었다· 당기문은 단순한 활독을 넘어서 독으로 인체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상생의 독을 사용하면 인간은 반드시 강해질 수 있다·’
적어도 그의 이론은 완벽했다· 만반의 준비도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연구에 자원하는 이가 없었다·
원래부터 독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혐오의 영역이다· 당문의 문주인 당관호처럼 아예 독문의 특별한 심공(心功)을 익힌 채 독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독으로 강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당기문은 그런 세인의 평가를 바꾸고 싶었다· 그의 연구만 성공한다면 당문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명류산은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독기와 끈기는 물론이고 육체적인 능력도 최정상이다· 부족한 것은 그의 독으로 채워주면 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의 눈빛을 받은 명류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독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 새끼한테 한 방만 먹일 수 있다면····’
진무원을 떠올리자 갑자기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어쩔 수 없단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진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정말 독을 먹어도 이상이 없는 거지요?”
“아무렴!”
“정말이지요?”
“내가 당문의 만독각줄세· 그래도 못 믿겠는가? 단숨에 강해질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하라는 대로 꾸준히 독을 복용하면 자네는 백독(百毒) 아니 천독(千毒)이 불침하는 육신을 얻게 될 걸세· 그리고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일류고수 부럽지 않은 막강한 내공을 얻게 될 걸세· 내가 장담하지·”
당문의 만독각주가 장담하는 일이다· 그와 같은 삼류무인이 언제 당문의 만독각주를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까닭이다·
잠시 갈등하던 그는 우연히 모닥불 가를 바라보았다· 진무원의 앞에 남수련과 당미려가 앉아 있다· 각자 상념에 잠긴 그들의 모습이 명류산에게는 정분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빛에 비친 남수련의 얼굴이 유독 아름다워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질투의 빛이 떠올랐다·
‘씨발! 사내라면 저 정도는 뽀대 나게 살아야지·’
마침내 그가 결정을 내렸다·
“조 좋습니다·”
“그래 잘 결정했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세·”
당기문이 명류산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래 강해지는 거야! 강자가 되어서 나도 떵떵거리며 사는 거야!’
명류산이 이를 악물었다·
당기문이 그런 명류산에게 예의 자기병을 내밀었다·
“마시게·”
“예? 벌써요?”
“쇠뿔도 단숨에 빼라고 했네· 하물며 자네는 사내대장부가 아닌가?”
“그 그렇지요·”
“어서 마시게· 망설이지 말고·”
당기문이 명류산의 손에 자기병을 쥐어줬다·
잠시 망설이던 명류산이 눈을 딱 감고 자기병 안에 든 액체를 꿀꺽 마셨다·
마치 독주를 마신 것처럼 식도가 화끈해졌다·
당기문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명류산을 바라봤다·
“그래 느낌이 어떤가?”
“그게 별로··· 끄아악!”
갑자기 명류산이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날카로운 비수로 복부를 난도질하는 것 같은 극통이 느껴지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끄아아!”
바닥을 나뒹굴면서 명류산은 당기문을 저주했다· 당기문이 그런 명류산을 보며 웃었다·
“고통 없이 어찌 강해지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