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3장 강호는 넓고 사람은 많다 (1)
운중천에서 척마대를 뽑는다는 소문에 가장 호황을 누리는 업종을 뽑으라면 바로 객잔(客棧)과 철방(鐵房)일 것이다·
객잔에는 젊은 무인들이 넘쳐났고 철방에는 무기를 구매하려는 자들이 줄을 섰다· 특히 운중천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곳일수록 더 호황을 누렸고 설혹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교통의 요지에 있는 객잔은 거의가 젊은 무인들로 가득 찼다·
대죽현(大竹縣)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죽현은 사천성에서 호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커다란 현인데 이름 그대로 큰 대나무 숲으로 유명했다·
사천의 무인 대부분이 대죽현에서 하루를 머물고 바로 호북으로 넘어갔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대죽현의 객잔들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철방들 역시 무기를 손질하거나 새로 구매하려는 손님들로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철방 곳곳에서는 장인과 무인들 간에 흥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늙은 장인과 이제 스물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무인의 흥정이었다·
“아 글쎄 제대로 된 검을 사려면 최소 은 석 냥은 줘야 한다니까·”
“제가 가진 게 한 냥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거 가지고는 턱도 없다니까·”
“제발···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검을 사려는가? 자네에게 팔 만한 것은 이것밖에 없네·”
늙은 장인이 내민 것은 볼품없는 철검이었다·
이 철검은 철방의 견습 장인이 만든 것으로 균형도 엉망이고 재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젊은 무인의 눈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는 철방 십여 곳을 들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에게 선뜻 검을 파는 철방이 없었다· 평상시라면 은 두 냥이면 될 검이 다섯 냥 여섯 냥까지 값이 올랐다·
젊은 무인이 가진 은자는 한 냥이 전부였다· 이 돈을 쓰고 나면 운중천에 갈 여비조차 없었다·
젊은 무인의 이름은 명류산이었다· 사천성의 성도 조그만 무관에서 삼 년 동안 무공을 수련하고 풍운의 꿈을 안고 운중천이 있는 한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한 것만큼 녹록치 않았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물가는 폭등했고 명류산처럼 가난한 무인들은 객잔에 머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됐다·
‘며칠을 굶더라도 반드시 검은 사야 한다·’
명류산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은자 한 냥을 꺼냈다· 늙은 장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철검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 검은 이제부터 자네 것이네· 부디 소중히 사용하게· 흐흐!”
그렇게 철검은 명류산의 것이 되었고 은자는 늙은 장인의 것이 되었다· 명류산은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서는 늙은 장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늙은이 두고 봐라· 내 반드시 입신양명해서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때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명류산이 이를 뿌득 갈며 뒤돌아섰다·
비록 지금 그의 손에는 볼품없는 철검이 들려 있지만 나중에는 어떤 보검이 들릴지 몰랐다· 명류산은 그때 다시 이곳 철방으로 찾아와 늙은 장인을 마음껏 비웃어 주리라 다짐했다·
명류산은 철검을 허리에 차고 간신히 잡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가 머무는 곳은 대죽현 외곽에 있는 조그마한 객잔이었다·
그나마도 일 인실이나 이 인실은 모두 동이 나고 평소 열 명이 들어가는 큰 방에 거의 서른 명 이상을 몰아넣었다· 명류산같이 가난한 무인들은 그나마도 감지덕지하며 묵을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수많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거리엔 명류산처럼 가난한 무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질 좋은 비단옷을 입고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예기를 흘리는 명검을 찬 무인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이 흘리는 기세에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명류산처럼 겨우 몇 년 수련한 어설픈 무인이 아니라 체계적인 수련을 받은 이들이다·
‘나도 제대로 된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저들 못지않았을 텐데 왜 나는 저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지 못한 걸까?’
갑자기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잠시 노기 섞인 시선으로 다른 무인들을 바라보던 명류산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돌아온 객잔에도 사람들은 넘쳐났다· 대부분이 명류산처럼 풍운의 꿈을 안고 운중천으로 향하는 무인들이다·
개중 한 명이 명류산을 알아보고 손짓했다·
“자네 돌아왔군· 여기 앉게나·”
사십 대 초반의 장년인이었다· 수염이 가득한 얼굴과 달리 눈빛은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이곳 객잔에 머물면서 가장 먼저 사귄 사람이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하룻밤의 인연이고 운중천에 가면 잊어버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명류산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가 앉자 장년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검은 샀는가?”
“예·”
장년인의 시선이 명류산의 허리에 찬 철검을 향했다· 초라한 철검을 확인한 장년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꼭 자신을 비웃는 것아 또다시 울컥했지만 명류산은 애써 참았다·
“잘했네· 그래도 명색이 무인인데 검 한 자루는 있어야지· 운중천에 들어가서 성공하면 더 좋은 걸로 마련하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 술 한잔하게·”
“감사합니다·”
명류산은 그가 내미는 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술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갑자기 객잔의 입구에서 소란이 일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명류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류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인파를 헤치고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만개한 장미처럼 수려한 이목구비에 늘씬한 교구 화사한 붉은 비단옷과 허리에 찬 검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그녀의 미모에 압도당했는지 객잔 안의 무인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에도 여인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세가 흘러나와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햐!”
명류산이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한눈에 보아도 명문가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여인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앉았다· 그러자 점소이가 즉각 달려왔다·
“헤헤! 어서 오십쇼·”
점소이는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본능적으로 여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챈 것이다·
여인이 물었다·
“빈방 남은 것이 있느냐?”
“있긴 한데····”
“그런데?”
“최고급 일 인실이라서···· 하룻밤에 은자 한 냥인데 괜찮겠습니까?”
은자 한 냥이면 쌀 한 가마니 값이다· 일반 서민이라면 최소 두 달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러나 돌아온 여인의 대답은 흔쾌했다·
“상관없다·”
“헤헤! 그럼 묵으실 준비를 해놓겠습니다요· 식사는 어떡하시겠습니까?”
“간단한 음식으로 몇 가지 내오거라·”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점소이가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여인은 의자에 앉아 객잔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인의 눈에서 서늘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분분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신들보다 고수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침묵은 여인이 주문한 음식이 나온 후에야 끝났다· 점소이가 음식을 내오고 식사를 하면서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간간이 여인의 모습을 훔쳐봤다·
명류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장년인과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명류산의 마음을 읽었는지 장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자네도 그녀가 욕심나는가?”
“그러면 안 됩니까?”
“안 되네· 보다시피 그녀는 우리와 태생 자체가 달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 현명하네·”
“크윽!”
장년인의 단호한 말에 명류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태연한 척 표정을 바꿨다·
‘두고 봐라· 내 언젠가는 저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고 말 테니까·’
그가 이를 갈며 다짐했다·
그때 다시 입구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번엔 여인의 등장 때보다 더욱 동요가 컸다·
“또 누가 왔기에···?”
장년인과 명류산의 시선이 다시 객잔 입구로 향했다·
이번엔 여인과 달리 건장한 남자의 등장이었다· 육 척 장신에 남자답게 선이 굵은 인물이었다· 남자는 화려한 푸른 장삼을 입고 허리엔 패검(覇劍)을 차고 있었는데 특이하게 패검의 손잡이엔 세 개의 고리가 달려 있었다·
객잔의 손님들 중 누군가가 남자의 패검을 알아보았다·
“세 개의 고리? 삼환검문(三環劍門)의 제자다·”
“삼환검문? 그렇다면 혹시 비응검객 좌문호 소협인가?”
손님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남자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사람들의 짐작처럼 그는 비응검객(飛鷹劍客) 좌문호였다· 산동지역의 명문인 삼환검문의 장문제자였다·
좌문호는 여인이 앉은 탁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식사를 하던 여인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좌문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여인의 미간에 살짝 골이 파였다· 하지만 좌문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인이 식사를 하는 탁자 앞에 섰다·
“잠시 앉아도 되겠소 남 소저?”
“끈질기군요 좌 공자· 분명 그 제안은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하! 남 소저도 조금만 더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을 바꾸게 될 거요·”
여인의 날 선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좌문호가 그녀의 앞에 앉았다· 좌문호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에 여인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좌 공자·”
“잠시만 더 시간을 내주시오· 만일 이번에도 거절하면 내 두 번 다시 강권하지 않을 테니까·”
“····”
“이렇게 부탁하겠소·”
좌문호의 뻔뻔스러움에 결국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 여인을 보면서 좌문호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면 무얼 하겠는가? 결국은 아무런 경험도 없는 강호 초출에 불과한데·’
사실 여인은 무척이나 대단한 신분 내력의 소유자였다·
무산신녀(巫山神女) 남수련·
강호의 신비 문파인 무산파의 후계자이자 절정을 넘어선 검객이 바로 그녀이다· 칠소천의 일원이면서도 강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가 대죽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좌문호 창룡회의 일원이라고 했지·’
좌문호가 접근해 온 것이 불과 하루 전이다· 어떻게 그녀의 행보를 알았는지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창룡회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단박에 좌문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좌문호는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붙어 설득하려 했다·
좌문호와 몇 번 대화를 해본 결과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젊은 무인이 창룡회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이 생각 외로 대단하다는 것·’
극비인 그녀의 행보를 파악한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창룡회에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속한 무산파는 세속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신비지문이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무산파의 영역 밖으로 제자를 내보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영향력의 확대에 관심이 없기에 굳이 창룡회에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무산파를 나온 것은 차후 장문제자로서 경험을 키워주기 위한 장문인의 배려였다· 잠깐의 유랑이 끝나면 그녀는 다시 무산파로 돌아가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다·
좌문호가 말했다·
“남 소저께서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도 잘 알고 있소· 아마도 무산파의 순수함이 창룡회에 가입하는 것으로써 훼손되는 것일 터· 하나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본 회는 순수한 친목 모임이니까·”
객잔 안의 무인들은 좌문호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좌문호가 기막(氣膜)으로 음성을 완전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나도 분명히 말하겠어요 좌 공자· 나는 창룡회에 가입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남 소저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창룡회의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니라오· 이것은 분명 남 소저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오·”
“미안해요 좌 공자·”
남수련의 단호한 대답에 좌문호가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노려봤다· 두 사람 사이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