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5장 뜻이 같은 자, 같은 길을 간다 (2)
강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밀야의 등장에 이어 한 가지 소문이 천하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운중천에서 젊은 무인들로 구성된 무력 조직을 신설한다· 신설된 조직의 무인들은 분쟁 지역에 투입되고 분쟁 지역의 문파에서 무인들을 차출할 수 있는 권한과 감찰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소문의 여파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중소 문파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구대문파의 젊은 무인들까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운중천과 구대문파 북천사주 등으로 대변되는 중원무림이다· 각 지역의 패자가 워낙 뚜렷하거니와 운중천의 영향력이 천하를 아우르고 있었다·
그곳에 중소 문파의 젊은 무인이나 낭인무사들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능력이나 무력보다는 어떤 문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대접이 달라졌다· 운중천이나 구대문파 등에 속하지 않고서는 어떤 웅지(雄志)도 꿈꿀 수 없는 고착화된 세상인 것이다·
그런 정지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무인들에게 운중천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젊은 무인들로 구성된 조직을 만든다는 소문은 엄청난 희소식이었다·
각 지역의 촉망받는 젊은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문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먼저 운중천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소문은 진무원의 귀에도 들어왔다· 강호 제일의 정보통이라 할 수 있는 청인을 통해서였다·
방 안에는 진무원을 비롯해 청인과 곽문정 황철 당기문 등이 모여 있었다·
“흐흐! 어때?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렇군요·”
“아주 절묘해· 누가 생각해 낸 것인지 몰라도 정말 대단해·”
청인이 감탄했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곽문정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건가요? 젊은 무인들로 된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요?”
“제발 생각이라는 것을 해라 요놈아·”
청인이 곽문정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곽문정이 과장되게 어깨를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꾸 그렇게 때리니까 지능이 떨어지는 거라구요·”
“이미 바닥인데 더 떨어질 지능은 있고?”
“크!”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기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운중천은 이번 소문으로 크게 두 가지의 이득을 얻었다· 첫 번째는 옥계 사태로 흉흉해진 강호인의 이목을 운남에서 돌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젊은 무인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밀야의 등장으로 인해 자칫 위축될 수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운중천이 얻은 소득은 적지 않다·”
“아!”
그제야 곽문정이 이해를 했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청인이 그런 곽문정을 보며 보충 설명을 했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몰라도 정말 기가 막혀·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대책을 내놨다는 거야· 누군지 몰라도 민심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자가 있어·”
“그러니까 오랜 세월 강호의 최정상에서 군림해 온 거겠지· 운중천이란 나무는 실로 거대해서 뿌리를 내리지 않은 곳이 없고 가지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
당기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운중천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당가 역시 운중천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인 동시에 강호의 공고한 질서 중 하나이니까·
“운중천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변화의 물결은 시작됐습니다· 곧 강호에 큰 바람이 불 겁니다·”
청인의 시선이 중앙에 앉은 진무원을 향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과 중심에 진무원이 있다는 것을· 비록 그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이 모든 변화가 촉발됐다·
‘그가 북천문의 마지막 문주라는 사실만으로도 천하는 요동칠 것이다·’
아직은 자신이 정보를 틀어막고 있지만 언제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분명 언젠가 진무원의 진실한 신세 내력은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청인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일단은 틀어막는 데까지 틀어막을 수밖에·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청인이 양손 엄지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제야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당기문이 진무원에게 물었다·
“자네 어찌할 셈인가?”
“운중천에 가볼 생각입니다·”
진무원의 눈이 북쪽으로 향했다·
반드시 운중천에 갈 생각이었지만 그전에 한 군데 들를 곳이 있었다·
‘패권회·’
옥계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조천우가 있는 곳· 황철을 더 이상 위험에 빠지게 하기 싫었다· 그를 운남성 밖으로 보낸 후 조천우를 만날 생각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말이다·
‘숙부 우린 끝까지 악연으로 남을 모양입니다· 당신의 야망을 위해 북천문을 배신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의 야망을 위해 무고한 이들을 끌어들인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무원은 자신의 생각을 감추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의도야 어찌 됐든 그냥 이곳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럼 나도 함께 가겠네·”
“당 대협도 운중천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들은 이대로 옥계 사태가 묻히길 바라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네·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 연관이 있는 자들과 문파를 반드시 심판 받게 하겠네·”
당기문은 이미 굳은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불의를 보고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과도 직결된 일이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의협당가의 일원· 불의를 보고 모른 척 지나간다면 당가의 무인이라는 자부심도 버려야 했다·
“괜찮겠습니까? 당가에 가해지는 압력이 적잖을 텐데요·”
“가주께서도 이해하실 거네· 무(武)와 협(俠)은 다른 말이 아닐세· 무공을 익힌 자는 반드시 협을 행해야 하고 그것이 곧 무가의 정체성이라네· 그게 내 생각이고 당가의 존재 이유라네·”
당기문의 말에는 강한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올곧은 신념은 청인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다·
‘과연 의협당가의 구성원이라는 건가?
당가의 만독각주가 뱉은 말이다·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바로 당기문이었다·
“그럼 나도 가지·”
청인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을 내뱉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쑥스러운지 뒷말을 덧붙였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
“알겠습니다·”
진무원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이제껏 침묵을 지키고 있는 황철을 향했다· 그는 이제껏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황숙은 어떡하시겠습니까?”
“솔직히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제가 따라가 봐야 공자님께 짐만 될 겁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기연으로 어설픈 검강을 펼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무척이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내공과 검공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기 전에는 완벽한 검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룡상단과 함께 난주로 돌아가 이번에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고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 기회에 문정이에게도 제 깨달음을 전해주고 같이 수련하려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공자님· 이 황철 반드시 공자님께 든든한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황철의 눈은 굳은 신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황숙을 믿습니다·”
“공자님의 믿음에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저 저도 열심히 할게요·”
곽문정도 주먹을 꽉 쥐었다·
진무원과 함께하면서 곽문정 역시 깨달은 것이 많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역시 무인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자의 정의는 부질없는 외침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고 힘을 기르기 위해선 오직 수련만이 최선이었다·
☆ ☆ ☆
일단 독기를 몰아내자 윤자명의 상세는 빠르게 호전됐다· 이틀이 지나자 정신을 차렸고 또다시 이틀이 지나자 스스로의 힘으로 상체를 일으킬 수 있게 됐다· 그제야 윤자명은 진무원과 황철 당기문 숙질 등을 불렀다·
“정말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사하게 회복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네· 그래도 최소 석 달 동안은 내가 처방해 준 약방문으로 보약을 지어 드시게· 그러면 상한 원기가 어느 정도는 회복될 걸세·”
“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자명의 시선이 진무원을 향했다·
“감사합니다 진 소협· 서인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고초가 많으셨다구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저보단 다른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은혜는 그분들에게 갚으십시오·”
진무원의 말에 윤자명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진무원의 반응이 이럴 거란 이야기를 들은 탓이다·
“그럴 생각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번 입은 은혜를 결코 잊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최선의 보답을 하겠습니다· 진 소협도 혹시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백룡상단에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윤자명이 하는 말이다· 그의 말은 곧 백룡상단의 의사를 대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로써 천하십대상단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게 되었지만 진무원의 표정에는 한 점의 변화도 없었다·
보상을 노리고 한 일도 아니고 딱히 윤자명을 구하기 위해 한 일도 아니었다· 오직 황철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었다·
윤자명을 구한 것은 부수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자명은 그런 진무원의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이 남자는 분명 강호사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다·’
비록 의식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인의 감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뼛속까지 상인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지금 진무원과 끈을 연결해 두면 훗날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다행히 그에겐 진무원과 연결된 강력한 끈이 있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나·
그의 시선이 한쪽에 있는 황철과 곽문정을 향했다·
“저 때문에 고초가 많았습니다 황 보표님· 이 보답은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정이 너도 고맙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으마·”
“아닙니다 공자님·”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황철과 곽문정이 손사래를 쳤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오히려 기꺼웠다· 곽문정의 성정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함께 상행을 하면서 황철이 무척이나 진실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황철과 개인적으로 더 친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당기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자네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중원으로 출발해도 될 것 같군·”
그것으로 출발 일정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