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3장 지인은 상봉하고, 격변의 바람은 불어온다 (1)
진무원과 곽문정은 객잔을 나왔다·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바로 철기당의 무인들이었다·
진무원이 뒤를 돌아보자 용무성이 다른 곳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다가 진무원이 걸음을 옮기면 다시 그를 따라왔다·
결국 진무원은 멈춰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용무성이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진무원이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따라오실 생각입니까?”
“응? 내가 자네를 따라가나? 그냥 나는 이 길을 가는 것뿐인데·”
“그럼 먼저 지나가십시오·”
“싫어! 나는 자네보다 늦게 가는 게 좋아· 뒷모습도 구경하면서 말이야·”
용무성의 넉살에 채약란과 종리무환의 얼굴이 벌게졌고 다른 이들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종리무환이 앞으로 나섰다·
“미안합니다 진 소협· 당주의 무례를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지금 철기당이 기댈 곳은 진 소협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휴!”
종리무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진무원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진 소협과 정보를 공유하길 바랍니다·”
운중천이 패권회를 압박하면서 그들이 나눈 밀담은 없던 것이 되었다· 아까운 시간을 그냥 허비한 셈이다· 패권회만 믿고 있던 철기당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며칠의 아까운 시간이 소비됐고 실종된 이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사이 진무원은 밀야와의 싸움을 통해 불같은 명성을 얻었다·
실종된 이들은 밀야와 연관이 있었고 현재 밀야와 가장 많은 접촉을 한 이가 바로 진무원이었다· 그는 진무원이 어떤 식으로든 실종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아는 진무원은 결코 호락호락한 남자가 아니었다·
공동파와의 충돌이나 당가의 무인들을 구하기 위해 밀야와 싸운 것을 보면 그냥 세상물정 모르고 끼어드는 애송이 무인 같았지만 실제로 그가 연관된 일치고 결과가 나쁘게 끝난 일은 없었다·
‘일관된 흐름을 가진다는 것 그러면서도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의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은 결코 애송이 무인이 해낼 일은 아니지·’
싫어도 인정해야 했다·
진무원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대단한 무인이었다· 종리무환이 수십 번 계산해서 도출해 낸 결과보다 더한 성과를 단숨에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직관력의 소유자기이도 했다·
아직도 진무원이라는 인간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최소한 무인으로서의 진무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종리무환이 진무원을 따라나선 이유였다·
그라고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의뢰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것이 백배는 더 나았다·
‘사람들은 과정 따윈 기억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실종된 상인을 구해냈다는 결과만 내놓는다면 그만큼 철기당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다·’
그것이 종리무환이 굴욕을 무릅쓰고 진무원을 따라나선 이유였다· 진무원은 종리무환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종리무환도 낯짝이 있는지라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다른 철기당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용무성은 달랐다·
“흐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우리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고· 그냥 철기당에 빚 하나 지운 셈 치면 되잖아·”
그가 실실 웃으며 다가와 진무원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그 능청스러움에 옆에 있던 곽문정이 그만 풋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그의 말처럼 철기당에 빚 하나 정도 지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진무원도 용무성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철기당이나 종리무환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호에서 살아가는 이상 언젠가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강호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는 법이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진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함께 가시죠·”
“정말이지? 흐흐! 잘 생각한 거야·”
용무성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진무원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 모습에 종리무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무원이 허락했으니 이제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함께 동행할 일만 남았다·
용무성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길인가?”
“애뇌산(哀牢山)으로 갑니다·”
“애뇌산?”
용무성을 비롯한 철기당 무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애뇌산은 이곳 옥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절산으로 산세가 험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봉우리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계곡은 깎아지른 듯 가파르기 이를 데 없었다·
봉우리는 사시사철 구름과 안개로 덮여 있었고 장대한 산줄기는 무려 백여 리에 걸쳐 뻗쳐 있었다·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거목들이 가득한 산에는 독사와 맹수가 득실거려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옥계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조차 애뇌산에는 접근하지 않는 형편이었다·
금단엽이 죽음 직전 언급한 지명이다· 함정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지금은 그 외에는 어떤 단서도 없는 상황이다· 진무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애뇌산으로 가서 만절곡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철기당과 함께라면 만절곡을 찾는 것이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됐다·
목적지를 확인한 용무성은 진무원과 곽문정을 위해 말 두 마리를 내줬다·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거의 반나절을 말을 달려 애뇌산에 도착했다·
애뇌산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험하고 거칠어 보였다· 흔히들 이런 산을 악산(惡山)이라고 하는데 애뇌산은 악산 중에서도 더욱 거칠고 험해 보였다·
진무원이 용무성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흩어져 만절곡을 찾습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결코 혼자서 돌아다니지는 마십시오·”
“알겠네·”
용무성은 철기당 무인들에게도 똑같이 말을 전했다·
“들었지? 이제부터 이인일조로 흩어져서 만절곡이란 곳을 찾아· 찾으면 호각을 불어서 신호하고·”
“옛!”
철기당 무인들이 대답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무원도 곽문정과 함께 만절곡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뜻밖의 사람이 그를 따라왔다· 철기당의 부당주인 채약란이었다·
“그냥 진 소협을 따르는 게 그들을 가장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그럼 함께 가요· 짐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채약란이 진무원 일행에 합류했다·
그들은 한참을 애뇌산을 뒤졌지만 흔한 약초꾼이나 나무꾼 한 명 보지 못했다·
채약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귀기가 가득한 산이군요·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꺼릴 만해요·”
무공을 익힌 그녀조차 그런 감정이 들 정도이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곽문정도 으스스한 기운에 양어깨를 문지르며 진무원을 따랐다·
“확실히 음기가 강하군요· 이곳에 도적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관군도 토벌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산마다 각자 다른 기운을 품고 있다· 어떤 산은 양기가 강하고 또 어떤 산은 음기가 강했다· 물의 기운을 품고 있는 산이 있는가 하면 유달리 바람의 기운을 강하게 품고 있는 산도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산의 기운에 따라 사람들은 청량감을 느끼기도 하고 거북함을 느끼기도 한다· 애뇌산처럼 특히 음기가 강한 산들은 마찬가지로 음기가 강한 이들을 끌어모으기 십상이어서 도적들이 창궐하기 쉬웠다·
“그거 알아요? 진 소협은 참 특이한 사람이에요·”
“그런가요?”
“어떤 때는 한없이 고리타분한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지나칠 정도로 맺고 끊음이 분명하죠· 한 사람이 그런 양면성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진 소협은 너무나 극명해요·”
채약란의 말에 곽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채약란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다·
진무원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한테는 모든 것을 내주지만 밖에 있는 자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거부감을 내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틀어졌다 싶으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아마 진 소협은 지금보다 더 큰 명성을 얻을 거예요· 그럴수록 자신을 숙이고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거예요· 거친 강호에서 독불장군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진 소협이 보기엔 종리 부당주가 계산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을 수 있어도 그것 역시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방편이에요· 그러니까 진 소협도 그런 모습을 너무 고깝다 생각하지 말고 잘 봐주길 바라요·”
그 말이 하고 싶어 굳이 진무원을 따라온 채약란이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진무원의 몫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고 감사합니다· 채 부당주님의 조언 항상 가슴에 담아두겠습니다·”
진무원이 자신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하자 채약란이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래도 그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구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무원과 같은 수준의 무인이 융통성마저 없다면 그 또한 강호의 커다란 악재가 될 터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진무원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똑바로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발견한 건가?’
채약란은 부지런히 진무원의 뒤를 따랐다·
진무원이 향하는 곳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 사이에 위치한 계곡이었다· 계곡 양쪽으로는 마치 검날을 거꾸로 박아놓은 듯한 험준한 봉우리가 늘어서 있었다·
계곡 입구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운무가 끼어 있었는데 안쪽에서 유달리 강한 귀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만절곡인 것 같군요·”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었다· 전방위 감각에 의지한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채약란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진무원이 불가사의한 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호각을 힘껏 불었다· 그러자 호각 소리가 절벽에 부딪쳐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잠시 후 호각 소리를 들은 철기당의 무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제일 먼저 달려온 용무성이 물었다·
“찾았는가?”
“이 안쪽에서 유달리 귀기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이곳이 만절곡 같습니다·”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야지· 앞장서게·”
용무성도 채약란처럼 진무원의 말에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
진무원은 앞장서서 만절곡이라고 짐작한 곳을 향해 들어갔다· 계곡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운무가 더욱 짙어졌다·
운무는 피부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고 기분 나쁜 느낌은 더 강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용무성의 표정 역시 굳어갔다·
‘확실히 느껴지는 귀기가 보통이 아니군· 아무리 애뇌산이 음기가 강한 산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도가 지나쳐·’
철기당 무인들에게 전음을 보내 만반의 경계태세를 갖추게 한 후 그 역시 언제든 용린도를 뽑을 준비를 해놓았다·
그 순간에도 진무원은 거침없이 계곡 깊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짙은 운무 속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방위 감각 덕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진무원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런가?”
용무성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진무원이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운무의 농도가 유달리 짙으면서 강합니다·”
“확실히 그렇군· 마치 안개로 벽을 만든 것 같아·”
“제 생각에는 진법 같습니다·”
“진법이라····”
용무성이 종리무환을 불렀다· 그래도 이 중에서는 종리무환이 제일 진법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무슨 진법인지 알아볼 수 있겠느냐?”
“글쎄요· 환영진과 미로진이 결합된 형태 같은데 파훼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뒤로 물러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음!”
진무원과 용무성이 뒤로 물러섰다·
종리무환은 안개의 벽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연신 입으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진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진무원과 철기당 무인들은 숨을 죽인 채 그가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종리무환이 눈을 뜬 것은 거의 반 시진이 지난 후였다·
“만상미로진(萬狀迷路陣)과 동경환영진(銅鏡幻影陣)을 결합한 것이구나·”
“진법을 파해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당주와 진 소협은 각각 건방(乾方)과 감방(坎方)에 자리를 잡으시고 제가 신호를 하면 최대의 힘으로 진에 충격을 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그는 다른 철기당 무인들에게도 각기 위치와 타격할 힘을 지정해 주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후 그가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그의 신호에 맞춰 진무원과 용무성이 안개의 벽을 향해 설화와 용린도를 휘둘렀다· 동시에 철기당의 무인들도 공격했다·
쿠오오!
안개의 벽이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요동을 치다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