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5장 그해, 겨울······ (1)
진무원은 자단목을 깎았다· 소도가 사각거리면서 움직일 때마다 자단목은 껍질을 벗고 점점 진무원이 원하는 형태를 갖춰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완벽한 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진무원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소도를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한설은 진무원의 옆에서 그 모습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재밌어?”
“아니 재미없어·”
“그런데 왜 직접 깎아?”
“말했잖아· 해줄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 직접 깎을 수밖에·”
“목검은 왜 만드는데?”
“이제 슬슬 검이란 것을 한번 익혀보려고·”
순간 은한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럼 이제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거야?”
“그게 이상한가?”
“북천문이잖아· 북천문의 후계자가 아직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보다시피 망한 지 오래야·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공 익힐 틈이 어딨어?”
진무원의 대답에도 은한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만경각이었다· 그동안 황철이 보내준 책으로 제법 서가가 꽉 차긴 했지만 그래도 북천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초라했다·
서가에 꽂힌 책이라고는 육합권(六合拳) 삼재검법(三才劍法) 풍운보(風雲步)처럼 강호의 삼류 무공이 전부였다·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떤 무공을 익히겠다는 것인지 은한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은한설이야 의아해하든 말든 진무원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부지런히 소도를 움직였다· 잘려 나간 나뭇조각이 발치에 수북이 쌓일 때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허공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붕붕!
처음 깍은 것치곤 균형이 잘 맞았는지 손에 착 감기는 게 느낌이 좋았다·
진무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연신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은한설의 얼굴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삼재검법?’
중원의 삼류무사도 익히지 않는다는 삼재검법을 진무원은 진지하게 펼치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보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익힐 무공이 없는 거야? 정 없으면 내가 하나 알려줄까?”
“무공을 많이 알고 있나 보지?”
“뭐 어느 정도는····”
“마음만 고맙게 받지· 난 이걸로 충분하니까·”
“마음대로 해·”
은한설이 심통이 나는지 양 볼을 크게 부풀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무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묵묵히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두르고 베고 찌르고····
진무원의 전신이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흥! 기껏 호의를 베풀었더니·”
밖으로 나온 은한설이 분이 풀리지 않는지 만경각을 뒤돌아봤다·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꼭 몰락한 북천문의 현 모습 같았다·
은한설이 이제는 자신의 거처가 된 전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녀는 몸 안에 쌓인 독기를 몰아내지 못했다·
일단 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느려 독기를 외부로 배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깨지기 직전의 도자기처럼 불완전한 상태인 것이다·
“너는 누구냐?”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장패산이 삼조원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장패산과 삼조원들은 은한설이 이곳에 머무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직까지 소무상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무상이 귓속말로 장패산에게 진무원에게 들은 그대로 설명했다· 그러자 장패산의 얼굴에 음흉한 빛이 떠올랐다·
“황철이란 자의 조카라고?”
“예!”
“흐음!”
장패산이 노골적으로 은한설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엔 음흉한 빛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치 벌레가 전신을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은한설이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어디서 수작질이야? 당장 눈을 돌리지 않으면 그 눈깔로 두 번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할 거야!”
예상치 못한 은한설의 독설에 장패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어린 계집이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는구나·”
“나이가 어리면 말도 하지 말까?”
“뭐 하느냐 저년을 제압하지 않고! 잘됐다· 마침 계집 속살 맛을 못 본 지 오래되었는데 오랜만에 몸보신이나 해보자·”
“와하하!”
장패산의 음담패설에 소무상을 제외한 삼조원들이 웃음을 토해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은한설은 충분히 예뻤다· 육십이 넘은 노파라도 혹할 판인데 은한설은 어리고 예쁘기까지 하니 그들의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은한설은 장패산과 삼조원들의 얼굴에 떠오른 욕망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다·
장패산의 수하들이 은한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소무상이 인산을 찌푸리며 장패산에게 뭐라 할 찰나였다·
갑자기 은한설이 움직였다·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은한설이 장패산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그녀의 손에는 예의 조그만 비수가 들려 있었다·
“큭!”
장패산의 입술을 비집고 당혹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은한설의 비수가 그의 목에 닿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은한설이 비수를 긋기만 하면 피분수가 치솟아 오르며 그의 숨통이 끊어질 것이다·
“너 너····”
“또 한 번 지껄여 보시지· 어린 계집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으면·”
순간 장패산의 입이 조개처럼 꽉 다물어졌다· 은한설의 눈에 실려 있는 독기가 보통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무 무슨 어린 계집의 눈이····’
진무원도 보통이 아닌데 은한설의 눈빛은 그보다 더한 것 같았다·
“조장 괜찮아요? 어린 계집아 목에서 어서 비수를 떼지 못하겠느냐?”
“계집년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뒤늦게 삼조원들이 흉흉한 눈빛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현재 은한설은 내력을 거의 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만일 저들이 한 번에 달려들면 절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장패산을 제압한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한번 얕보이면 아귀처럼 계속 들러붙는다·’
그녀는 이런 자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자에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한없이 고혈을 빨아댄다· 그야말로 최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간 군상 중 하나였다·
은한설이 비수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자 비수가 장패산의 목을 조금씩 파고들었다·
“자 잠깐!”
“왜? 버릇을 고쳐준다며?”
“나를 죽이면 네년은 무사할 것 같으냐? 장정이 열 명이다·”
“상관없어·”
“뭐?”
“너만 죽이면 난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고·”
“이런 미친년!”
독종도 이런 독종이 없었다· 장패산은 은한설이 뿜어내는 독기가 보통이 아니란 사실을 직감했다· 마치 발톱을 드러낸 암호랑이 같은 게 잘못했다가는 그 역시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주르륵!
장패산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은한설의 비수가 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자 잠깐· 우리 협상하자·”
“무슨 협상?”
“네년이 이대로 물러나면 다신 건드리지 않겠다·”
“흥! 당신 말을 어떻게 믿지?”
“이래 봬도 운중천의 외당 삼조장이다· 거짓말 따윈 하지 않는다·”
장패산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은한설은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장패산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이상 일을 크게 키우면 수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장패산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그의 수하들에게 잡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내공만 회복한다면야 이런 쓰레기들 따위야····’
속으로 계산을 마친 은한설이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흥! 운이 좋은 줄 알아· 거시기를 확 잘라 버리려다 말았으니까·”
“크윽!”
은한설이 장패산의 엉덩이를 걷어찬 후 뒤로 몸을 훌쩍 날렸다· 그제야 삼조원들이 달려와 장패산의 상태를 살폈다· 그사이 은한설은 코웃음을 치며 장내를 벗어났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무상이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절기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무공은 거의 보여준 게 없었다· 하지만 치고 빠지는 동물적인 움직임과 순간적인 판단력 장패산을 질리게 만드는 독기는 그조차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익! 이 치욕은 반드시 갚고 말겠다·”
등 뒤에서 분노 섞인 장패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지만 소무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문득 소무상의 시야에 만경각의 창문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창문에 기대어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진무원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부터 보고 있던 것인가?’
소무상과 시선이 마주치자 진무원이 모습이 다시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