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화· 드래곤 로드 (2)
콰콰콰콰콰콰콰!
떨어지는 붉은 유성·
“크아아아!”
제아무리 고대룡이라도 해도 무방비 상태에서 그 일격을 맞고 멀쩡할 수는 없었다· 본신으로 현현하지 않은 상태라면 더욱더·
콰아아앙!
에드온이 그대로 지면에 내리 꽂혔다·
마치 벙커버스터에 직격당한 듯한 광경이다·
깊이가 보이지 않는 폭심지에선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에드온!”
에블린이 그 모습을 보고 양 손에 발톱을 세웠다·
파츠츠!
검붉은 강기로 얼룩진 발톱이 2m 가까이 자라났다·
“나서지 마라! 에블린!”
구덩이 속에서 에드온이 서서히 떠올랐다·
핏발이 잔뜩 선 눈·
분노와 수치심에 지독한 살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역시 그 몸뚱어리 하나만큼은 단단하구나· 칭찬해주마·”
“네년···· 오랫동안 회랑에서 썩다 보니 최상층의 절대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까먹은 건가? 아니면 상층부의 신격 몇 놈 잡다 보니 우리도 만만해 보이는 것이냐?”
“흐응·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예전부터 너희 따위가 짐보다 위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느니라·”
“그럼 이번 기회에 뼛속까지 새겨주도록 하지· 오늘을 끝으로 뱀파이어라는 더러운 종족은 두 번 다시 위대한 존재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쿠쿠쿠쿠쿠쿠!
에드온의 주위로 수많은 나선 파동들이 일어났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분자 단위로 파괴해버리는 권능·
그에 맞서·
[엘리스가 고유능력 ‘블러드 로드’를 발동합니다!]
피로 이뤄진 회오리들이 반대 쪽 하늘을 가득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
콰콰콰쾅
퍼어엉!
에드온와 에블린·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드래곤들이 합류함에 따라 전투가 한층 더 격렬해졌다·
“조금만 더 버텨라! 버티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살라시드가 휘하에 가디언들을 통솔했다·
어떻게든 호크라샤의 전당에 도달하는 것까지만 막으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고유능력 ‘검의 무덤’이 발동됩니다!]
두 개의 사복검이 대기를 갈랐다·
서걱!
콰드득!
시큰하고·
살라시드의 양 쪽 어깨에 기다란 상흔이 생겼다·
마지막에 용언으로 방어를 하지 않았다면 두 팔이 모두 잘리고 목까지 잃어버렸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네 목숨엔 별로 관심이 없거든·”
진혁이 사복검을 회수했다·
진심으로·
살라시드 한 마리쯤이야 놓아줘도 괜찮다·
지금 중요한 건 고구마를 드래곤 로드로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모기이이!”
고구마 역시 맹렬하게 날개를 파닥이며 진혁의 말에 동조했다·
“알아· 지금 빠져나가다 걸리면 저 무시무시한 놈이 응징할 거라는 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 손에 당하나 에드온에게 당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니까·
“너무 티 나지 않게 놓아주도록 할게· 그러면 저 녀석도 모르고· 너도 살아남고· 모두가 해피 엔딩 아니야?”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다 내던져 버리란 건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않겠어?”
“쫓기게 되니까 혓바닥이 꽤나 길어졌구나· 그래· 많이··· 초조한가 보군·”
살라시드의 얼굴에서 오히려 여유가 생겨났다·
동시에·
후우우웁!
살라시드의 배가 크게 부풀었다·
광역형 브레스·
블랙 드래곤 특유의 산성액을 넓게 흩뿌리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막아!”
“미요오오!”
진혁의 명령에 후라이드가 날개를 활짝 폈다·
화르륵!
주홍빛 불꽃으로 만들어진 장막이 브레스를 방어했다·
공작의 날개를 떠올리게 만드는 화려한 방어였다·
치이익!
산성액과 불꽃이 부딪치자 자욱한 연기가 뿜어졌다·
그 틈을 노려 진혁이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오오!”
“크롸롸!”
트윈 헤드 오우거들이 도끼와 몽둥이를 휘둘렀다·
허공에 궤적이 남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위력을 가진 공격이었다·
[테레사가 ‘별들의 성호’를 발동합니다!]
은백색 십자가들이 연이어 떨어졌다·
성녀의 영역에 갇힌 트윈 헤드 오우거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디언들은 제가 상대할게요!”
테레사가 방패를 높게 들어올렸다·
콰콰콰콰쾅!
“하핫! 그럼 우리도 오락가락하는 누나 따라서 가볼게·”
“인간이 아니니까 마구잡이로 죽여버려도 되는 거지?”
케이시와 주드로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쌍둥이가 ‘만상공유’ – ‘잭 더 리퍼의 유희’를 발동합니다!]
장난감이라고 인식된 존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능력· 그 손속이 잔혹할수록 크리티컬 확률이 올라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 인간이라면 본인의 멘탈이 먼저 무너져내릴 테지만····
푹! 푹! 푹!
“꺄하하하!”
“빨간 게 나온다· 빨간 게!”
이 두 미치광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색칠 놀이에 불과하다·
“크아아아!”
한 쪽 머리가 너덜너덜해진 트윈 헤드 오우거가 미친 듯이 달라붙은 케이시와 주드로를 떼어내려 했다·
“잡아 봐· 잡아 봐!”
“잡지 못 하면 이번엔 간이랑 허파랑 쓸개를 가져갈 거야! 뭐부터 잃을지는 맞춰 봐!”
하지만 날다람쥐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며 송곳을 찔러넣는 솜씨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방해꾼들이 사라진 진혁이 어느새 살라시드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우우웅!
칼날에 맺힌 검붉은 강기·
사복검이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콰콰콰콰콰콰!
[천마신검]
아래서·
위로·
[화룡출두(禍龍出頭)]
폭풍이 솟구쳐 올랐다·
검격에 의한 풍압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패도의 왕관’을 쓴 덕에 그 위력은 몇 배 더 상승해 있었다·
“크···으···어····”
살라시드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수천 개의 검에 한꺼번에 난도질을 당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간신히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긴 했으나 어디서부터 회복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수준이었다·
진혁은 마무리를 짓는 대신 살라시드를 그대로 지나쳤다·
저 앞에·
거대한 붉은 마정석이 보였다·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진혁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쿠쿠쿵!
지축이 흔들렸다·
오싹하고·
다른 용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위화감이 전신을 파고들었다·
[‘진혼룡(鎭魂龍) 아무납트’가 현현합니다!]
젠장·
진혁의 시선이 곧장 왼쪽 허공으로 향했다·
회색 머리카락·
비리비리한 체구·
그에 어울리는 동태 눈깔이 진혁을 멍하니 응시해왔다·
“원래라면····”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서로를 돕는 일은 없다· 서로가 무엇을 하든간에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이 이 세계의 의지였으니까·”
드래곤들이 본질적으로 개별 활동을 하는 이유·
같은 이유에서 더 상위종인 고대룡들 역시 철저하게 본인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이유·
그것은 너무나 강한 존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탑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기에 ‘자연’이니 ‘조화’니 하는 그럴 듯한 명목을 잔뜩 갖다 붙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일족 자체를 멸하려하는 존재 앞에서는 그 제약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지·”
이미 천지룡 디아문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위험하다고 판단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고유성창 ‘사룡(死龍)의 묘지’가 발동됩니다!]
이어진 것은 마법이라기 보다는 주술에 가까웠다·
“키···크···으아오·”
“쿠···르···카아!”
용암과 진흙 속에서·
새하얀 백골들이 일어났다·
오래 전에 죽어 묻혀 있던 용들이었다·
본 드래곤·
하지만 리치나 마왕이 흑마법을 사용해서 부활시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죽음을 담당하는 진혼룡 아무납트가 직접 술법을 펼쳤을뿐더러 이곳 자체가 드래곤의 영기가 농축되어있는 장소인 덕분·
그 결과·
“하아···· 진짜 세상 일이라는 게 쉽지 않네·”
엄청난 숫자의 최상급 본드래곤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도 하나하나 장로급에 해당하는 고룡들로 구성되어 있다·
파츠츠츠!
다수의 브레스가 점멸했다·
아예 이곳을 통째로 증발시켜버릴 생각도 아니고·
진심으로 저 많은 수의 브레스를 한꺼번에 방출할 생각인가?
의문에 대한 해답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신속의 왕관’을 꺼낸 진혁이 즉시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콰콰콰콰콰콰콰!
다수의 광선이 방금 전까지 진혁이 있던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진혁이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꿨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브레스가 그 뒤를 쫓았다·
‘무슨 놈의 출력이··· 끝이 없어?’
최대 출력으로 저리 쏴대면 재충전을 위한 공백이라도 있어야지·
1분이 넘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덕분에 마정석과의 거리는 처음보다 오히려 멀어졌다·
툭·
진혁의 등이 절벽에 닿았다·
그 순간·
절벽이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1초라도 호흡을 가다듬을 틈이 없다·
본 드래곤들의 브레스가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왔다·
무한에 가깝게 몰아치는 포격·
저걸 파괴하지 않는다면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리라·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콰아아앙!
본 드래곤들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하늘 높게 튕겨나간 뼈들·
그 골탑 속에서·
‘천마신공’·
투콰아앙!
‘마신강림’
검은 기둥이 일어났다·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마력·
검게 이어진 수십 줄기의 마력은 마그마마저 밀어내고 있었다·
“그 자를 해하려 하는 건 곧 본교를 해하는 것과 같다·”
흉내내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복사한 것도 아닌·
‘원류’ 그 자체·
10성에 이른 천마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감정을 쏟아냈다·
***
저벅· 저벅·
경쾌한 발걸음 소리·
“흐응· 흥·”
콧노래를 부르며 이동하는 모습엔 오직 장난기와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정확히 원하던 이상적인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로 강해졌네· 이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좀 긴장되려고 하는데?”
남자가 사방에 펼쳐져 있는 거울들을 기웃거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울 속에는 현재 에덴을 비롯해 수많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어느 한 쪽이 유리하다고 꼬집어 말하기 힘들다·
서로가 준비한 한 수 한 수는 날카로웠고·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전쟁의 승패에 관여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래· 아직까진 팽팽했다·
남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베리엘과 우리엘 그리고 라파엘·
마계와 에덴의 접전은 어느새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카카카카카캉!
베리엘이 창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이에 맞서 우리엘과 라파엘의 묵직한 철퇴와 대검이 각기 다른 궤적을 완성했다·
앞으로 몇 합·
그 안에 결판이 날 것이다·
‘만약 이들끼리만 싸운다면 그랬겠지·’
남자가 혀를 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싸움을 만들어낸 배후가 따로 있었으니까·
그 생각을 증명하듯·
“쯧쯧·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토록 피 터지게 치고받고 싸우다니···· 클래식한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이쯤 되면 보기 안타까울 지경이군요·”
루시퍼가 전장에 나타났다·
상처투성이에 지치고 지친 이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컨디션과 무장을 갖춘 모습으로·
오직 이때만을 기다렸노라고 말하듯 승리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건 덤이었다·
거울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던 남자가 다시 머리를 뺐다·
이쪽은 이 정도면 충분히 봤다·
반대쪽에서는 이집트와 올림포스 그리고 북유럽의 신화들이 자신들의 거점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었다·
여기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베리엘처럼 강력한 절대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 거점들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뿐이었으니·
마지막으로·
남자가 거울 앞에 멈췄다·
펼쳐진 장소는 에덴·
선악과와 12사도의 석상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신들이 들어왔다·
흐음·
여기도 얼핏 비슷비슷하려나?
쇼거스들이 추격을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균형이 맞긴 맞을 것 같긴 한데·
아니 아니지·
약간의 밸런스 조절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카알루트마저 진혁이 있는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상 성유물들을 빼앗길 확률이 너무 높았다·
‘살짝 맛만 보지 뭐·’
아직 때가 무르익진 않았지만 설익은 과실을 맛보는 것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푸욱!
거울 속에서 검이 폭사되었다·
“커억?”
에덴의 골목길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도로 위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