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화· 드래곤 로드 (1)
드래곤 로드가 되는 선출식을 치르는 건 단순히 민주주의에 의한 투표를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다·
각 일족의 정수를 부여받아 역대 로드의 ‘혼’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함이지·
강인한 정신력과· 그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육체·
끝없는 마력은 물론 세월을 통해 쌓아온 격까지·
로드가 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들이 골고루 갖춰져야만 했다·
진혁이 힐끗 레어 한가운데 있는 붉은색 마정석을 바라봤다·
[용소(龍沼) ‘호크라샤의 전당’]
저 마정석의 마력을 승계받는 드래곤이 곧 차기 드래곤 로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일족의 정수를 제공받지 않은 드래곤이 저 마력을 강제로 흡수했다간 몸이 버티지 못한다·
평범한 드래곤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몸이 그대로 폭발하거나 운이 좋아도 미쳐버리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모기이이이!”
고구마는 평범한 드래곤과는 거리가 멀다·
‘가능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으리라·
“그렇지?”
“모기?”
고구마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아니면 말고·
음음· 역시 이런 마인드가 중요하다·
시도하는 게 반이라는 말도 있듯· 선구자가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게 필수적이었으니·
예로부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이 미치광이로 오해받고 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진혁이 합리화를 하고 있는 동안 블랙 일족의 살라시드는 아직까지 패닉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 했다·
드래곤의 알 속에 숨어서 이곳에까지 잠입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다·
어디서부터 자신들의 수가 읽힌 거지?
에덴의 수도에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아델이라는 인간 놈을 내세운 것도 전략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에드온께서 지옥 호수의 씨앗을 루시퍼에게 받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치겠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고작 인간이 그 정도나 앞을 내다보고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거 외에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애초에 무의미한 질문이군·’
어디서부터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얼마나 깊은 수렁 속에 빠지게 된 건지· 알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대는 드래곤들의 습성과 관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걸 이용해 몇 단계나 되는 함정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정하면 모든 게 앞뒤가 맞았다·
오싹하고·
처음 느껴보는 공포와 전율에 소름이 돋았다·
“크륵·”
“인간이다· 먹잇감·”
“으깨서· 먹는다·”
물론 단순무식한 트윈 헤드 오우거들은 지금 상황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배불리 포식할 수 있다는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안 돼! 멈····”
살라시드의 고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퍼퍼퍼퍼퍽!
폭발이 일어났다·
수십 조각으로 잘린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누가 누굴 먹는다고?”
“주제 파악을 못하는구나·”
“강한 적들도 몇몇 섞여 있긴 해요·”
화려하게 치솟는 검강을 비롯한 최강의 위력을 가진 능력들이 발현되었다·
숫자는 압도적으로 적었지만 대체 어째서일까?
그 소수의 인원이 드래곤 레어 전체의 병력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살라시드가 그 참상을 보며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도망쳐야 한다·’
승산이 아예 보이지 않는 싸움·
남아있다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길 버리면 어차피 그분들 손에 죽는다·’
수많은 드래곤의 알과 ‘호크라샤의 전당’을 빼앗긴 걸 그대로 넘어갈 리 없다·
어차피 죽음이라는 결괏값이 동일하다면····
최소한 블랙 일족의 긍지라도 지키는 편이 낫겠지·
“전부·”
살라사드의 주위로 다수의 마법진들이 떠올랐다·
“침입한 적들을 죽여라·”
예외는 없다·
레어에 있는 가디언들이 전부 합심해서 단 한 명이라도 그 수를 줄인다·
[살라시드가 거점 전용 스킬 ‘망각의 투지’를 발동합니다!]
[가디언들의 공포심이 사라집니다·]
[살기와 투기가 250%만큼 상승합니다!]
[용족과 마수족의 공격 스탯이 +50만큼 상승합니다·]
[제한 시간 0H : 59M : 59S]
[시간이 모두 지날 경우 ‘망각의 투지’에 영향을 받는 모든 가디언들이 사망합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배수진이 만들어졌다·
“역시 드래곤이라는 종족 값은 하네·”
진혁이 맞서 싸우기로 한 살라시드의 결정에 찬사를 보냈다·
만에 하나 도망치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일이 많이 골치 아파졌을 거다·
당장 이 거점을 점령하는 거야 손쉬운 일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 이후였으니까·
[아공간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
망각의 투지는 거점의 전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주는 압도적인 효과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존재하는 법·
공격력에 모든 걸 쏟아부은 거점은 여러 가지로 허점이 많아진다·
툭·
진혁의 손에 떨어진 건 열쇠였다·
거점전의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유물·
‘미궁주의 마스터키’·
철컥!
허공에 열쇠를 꽂고 그대로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수많은 룬어들이 균열을 만들어냈다·
[‘거점 충돌’이 발생합니다!]
쿠쿠쿠쿠쿠!
드래곤 레어 안에 또 다른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진혁의 고유 거점이 그대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키이이이····”
“키이!”
주인 없는 그림자 식물들이 진혁을 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오셨습니까·”
임시 미궁주인 발세테르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흠흠· 시킨 대로 완벽하게 준비 끝마쳐뒀어·”
마찬가지로 공동 임시 미궁주인 오필리아가 어깨를 한껏 폈다·
새로운 감투를 썼더니 아주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모양이다·
“오오! 오빠다!”
“우리도 왔어!”
그 외에도 케이시와 주드로 쌍둥이 남매·
“힘을 보태주러 왔다·”
무림 최강의 전력 천마와 천마신교의 고수들·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국 역시 입은 은혜를 기억하라는 황제 폐하의 진언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그랜드 소드마스터 에브라함과 기사단까지·
함께 싸워주기로 한 중 저층부의 거주자들까지 총동원되었다·
살라시드의 얼굴이 아예 흙빛으로 변했다·
“내···가 한 짓이 오히려 악수였단 말인가·”
드래곤의 긍지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악은· 종족 자체를 위협하는 결정으로 추락했다·
“그럼 시작해보자고·”
우드득·
진혁이 손마디의 관절을 꺾었다·
***
함정에 빠진 걸 깨달은 에드온과 에블린이 즉각 모든 병력을 대동해 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큭!”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비행을 하며 날아가는 와중에도 연신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무슨 장난질을 해놨는지 모르겠지만 레어로 가는 공간이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특이한 왜곡장과 결계를 펼쳐둔 탓에 좌표를 도무지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날아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부우우웅!
최대속력의 비행·
이미 블랙이나 레드 일족이 따라오기 버거운 수준이었으나 속도를 줄이거나 여유를 둘 생각은 없었다·
혹시나·
“만약 놈이 ‘호크라샤의 전당’에서 드래곤 로드의 업을 이어받는 방법을 알아냈다면····”
에블린이 불안한 듯 말문을 띄웠다·
“그럴 리 없다· 불가능해!”
“알아· 나도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놈이라면 왠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차마 그 말을 내뱉진 못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두 고대룡은 그대로 침묵을 유지한 채 비행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익숙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엄청난 빛줄기가 대신 그들을 반겼다·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 보라색 덩어리는 분명 50층의 식물이 내뱉은 것이었다·
“거점까지 소환한 건가·”
“최악이네· 진짜·”
수많은 거점전을 치러왔지만 이 정도로 치가 떨렸던 거점은 없었다·
단기간에는 감히 뚫어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
최소한 1년은 공을 들여야 겨우 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여기서 또 다시 보게될 줄이야·
에드온이 재빠르게 마력을 탐지했다·
다행이다·
아직까지 전당 쪽이 돌파당하진 않았다·
살라시드가 30분 가까이 버텨주고 있던 것·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최악의 사태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파괴룡 에드온이 고유능력 ‘나선 진동’을 발동합니다!]
콰콰콰콰콰!
순간 지면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울룩불룩하게 솟구친 땅·
이어진 충격파가 무림의 살수들을 휩쓸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전원이 신법과 보법에 능한 고수들이었으나 범위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광역기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셨습니까!”
전신이 상처투성이로 변해있던 살라시드가 두 고대룡을 발견했다·
“우측 상공에 다수의 마력 반응입니다!”
“드· 드래곤들입니다!”
반 박자 늦게 제국에 소속된 마법병단이 드래곤들의 존재를 파악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진혁 역시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적셨다·
조금만·
딱 10분 정도만 더 늦게 왔으면 살라시드와 녀석의 주요 가디언들을 전부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라시드의 저항이 의외로 완강했다·
놈을 따르는 가디언들의 수준도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1~2단계씩 위였고·
그 결과가 이거다·
“쉽게 가기는 힘들겠군·”
천유성이 수십 마리의 드래곤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아· 적들의 지원이 올 걸 대비해서 거점을 불러온 거니까·”
만만치 않은 일전이 되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드래곤들 역시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을 테니·
그렇게·
거점전의 마지막 싸움이자 두 세력의 존망이 걸린 일전이 시작되었다·
***
콰콰콰콰콰콰!
몰아치는 광풍이 다시 한 번 거점을 향해 몰아쳤다·
이번에는 제국 측의 병력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중갑보병들이 다가오는 폭풍을 보자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그냥 드래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없던 용기까지 끌어와야 할 지경인데·
하물며 그보다 훨씬 상위종인 고대룡의 일격을 마주하게 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우우웅!
에브라함이 가장 앞으로 나섰다·
이마와 팔뚝에 튀어나온 굵은 힘줄·
오러가 가득 실려 있는 검이 그대로 바람을 갈랐다·
투콰앙!
간신히 상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 명을 죽이려는 게 아닌 수백 명을 몰살시키려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그마저도·
“쿨럭!”
에브라함이 그 자리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기침과 함께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가벼운 공격 한 번 방어하는 데도 이 정도 충격을 감내해야만 한다·
“호오?”
에드온의 눈에 의외라는 듯한 빛이 실렸다·
“중층부의 기사 따위치곤 제법이구나· 그렇군·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칭호 덕에 목숨은 건진 건가·”
용족을 상대로 보정치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고 들었다·
어디 일족의 어린 용 한 마리 정도 해치운 적이 있나 보다·
그러나 단지 그뿐·
파츠츠!
표적을 단일 개체로 고정하고 마력을 조금만 더 실으면 끝이다·
진동을 압축시켜 기둥의 형태로 만든 에드온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좌표까지 고정시켜 뒀으니 놓칠 일도 없을 것이다·
“드래곤을 베어본 적도 있습니다만 이건 해도 너무하군요·”
에브라함이 반쯤 포기한 얼굴로 검을 움켜 잡았다·
그런데·
스윽·
“···!?”
에드온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감지하고 즉시 고개를 돌렸다·
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 너머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절대자의 모습이 보였다·
“약한 애들 괴롭히면서 하찮은 자존감 채우지 말고· 수준에 맞는 자끼리 어울려 보자꾸나·”
어느새 에드온의 뒤쪽에 자리 잡은 엘리스가 붉은 구체를 그대로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