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화· 생존을 위한 혈전 (1)
콰앙!
탓!
암황과 추혼사영 그리고 안드리아를 비롯한 멤버들이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수의 그림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주로 무림과 정신병동에서 선별해 온 정예들이었다·
[흑천마황공····]
[추혼검법····]
묵직한 기운이 실렸다·
“크하하! 덤비거라 인외의 존재들이여! 본좌가 친히 그 깊이를 가늠해 주겠느니라!”
“하나하나가 강한 존재들입니다· 신중하게 임하세요·”
비록 품고 있는 내기 자체는 천사들에 비해 밀렸지만 그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경험과 재능이 있었다·
천사라는 상위종이 타고난 힘에 취해 있을 때· 하루하루 피 튀기는 실전을 치르며 한계를 극복해 나갔단 말이다·
거기에 거점으로부터 받은 추가적인 버프 역시 모두를 한 걸음 더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안드리아가 ‘여우 구슬’을 발동합니다!]
매혹과 착시의 효과가 있는 구미호 특유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저희는 아군을 보조하는 형태로 가겠습니다!”
반인반수화가 된 안드리아가 병력을 이끌었다·
아직까지 접전을 치르고 있는 북유럽과 올림포스의 군대를 도우면서 부대장급을 각개격파해 나가려는 의도였다·
“호호홋! 천사들을 상대로 이 몸의 재능을 펼칠 수 있다니· 아주 감개가 무량하군요!”
발냄새가 고무적인 얼굴로 손바닥을 비비적거렸다·
혼자서도 충분히 거점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역량은 이미 갖추어둔 상태·
오필리아와 함께 단거리부터 장거리를 아우르는 화력지원이 가능했다·
그렇게·
전체적인 전황이 눈에 띄게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
치칙!
퍼퍽!
용언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다·
블링크는 물론 텔레포트까지·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이 모두 실패했다·
“장난질을··· 제대로 해놨구나·”
디아문이 허공에 부유하는 거대한 뱀을 바라봤다·
저 결계를 박살내야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가 재정비를 할 수 있으리라·
콰콰콰쾅!
콰아앙!
거점의 등장으로 인해 이미 전황 자체가 무너졌다·
식물들이 발사하는 저 거대한 덩어리는 ‘끔찍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강력했다·
한 방에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1000명이 넘는 병력이 소멸해버렸으니까·
이대로 간다면 쓰라린 참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디아문이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동시에·
우우웅!
왕관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디아문에게 있던 왕관이 에블린에게 이동했다·
단순히 물건을 공간이동시킨 게 아니다·
‘강제 귀속’·
새로운 소유주에게 그 권리와 의무를 넘긴 것에 가깝다·
설마·
진혁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디아문이 무얼 하려고 하는 건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블린·”
“뭐 하는 거야?”
“왕관을 가지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라· 다른 고대룡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대비하라 일러다오·”
“너····”
에블린의 끝 마디가 떨렸다·
디아문의 몸을 따라 흉흉하게 피어오르는 기운·
이제 곧 세상을 지워버린다는 고대룡의 현현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알겠어· 다른 용들에게 전할게·”
고개를 끄덕인 에블린이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아직까지 하늘 위에 뱀이 모든 것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누구 마음대로···!”
상대하던 천유성이 즉각 검격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미물이여· 지금 다른 이에게 신경쓰지 말거라·”
검은색 기운이 하늘로 이어졌다·
순간·
쿠쿠쿵!
순백의 구름이 검게 물들었다·
[고유성창····]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을 지닌 마력·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 힘을 경외하며 생존을 위해 납작 엎드렸다·
[‘초월의 시대’가 발동됩니다!]
쿠쿠쿠쿠쿠!
어느새 디아문의 몸이 수백 미터에 이를 정도로 커져 있었다·
회백색 비늘과 붉은 눈동자·
하늘을 뒤덮은 날개는 세상의 끝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길동무라고 하긴 뭐하다만 적어도 절반은 데리고 가주지·”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힘을 다한다고 했으나 거기엔 선이라는 게 존재했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담보되는·
다시 말해· 죽음까지 각오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그 선이 지워졌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이 활성화됩니다!]
인간으로 치면 진기를 소모하는 행동·
스스로의 생명력까지 쓰면서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정말로 절반을 데려갈 생각이야·’
진혁이 뱀의 주인을 바라봤다·
13번째 별자리가 디아문의 본체를 보자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꺼려하는 거겠지·
저런 재앙을 마주하는 건 부담스러울 테니까·
바로 그때·
검게 물든 구름 사이로 다수의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진혁이 움찔하며 대비하려 했다·
그런데· 마법진이 향한 곳은 진혁이 있는 쪽이 아니었다·
[절대 주언 ‘광역속박’]
노린 곳은 연합의 신격들이 있는 곳이었다·
퍼퍼퍼퍽!
상식을 초월하는 용언의 캐스팅 속도· 완성된 검은 창이 그대로 타이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쿨럭!?”
타고난 방어력 따위는 무의미하다·
올림포스 진형에 있던 타이탄들이 그대로 무너졌다·
배에 뚫린 구멍에서 대량의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산개해라!”
타이탄 족의 우두머리인 크로노스가 고함을 질렀다·
순식간에 열이 넘는 타이탄이 쓰러지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잠시·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북유럽의 주신 중 하나·
화살의 신으로 알려진 우르의 앞에 수많은 메테오들이 떨어졌다·
“큭!”
우르가 즉시 마력이 담긴 화살을 쏘아올렸다·
수십 개의 빛줄기가 날아오는 메테오에 맞섰다·
하지만·
퍼서석!
빛줄기가 채 운석에 접근하기도 전에 화살이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끓어오르는 겁화의 온도도·
잠재되어 있는 마력의 질도 다르다·
“이럴 수가····”
콰콰콰콰콰콰쾅!
이어진 것은 불바다였다·
주인없는 그림자 식물들이 난사해대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광역마법이다·
진혁 하나만 처리하겠다는 게 아닌 무차별적인 공격·
지글거리며 타들어가는 구름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길이 옮겨붙었다·
“끄아아악!”
“우와아악!”
그 열기를 견디다 못한 발키리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물론 거기는 활로가 아니었다·
[초월마법 ‘프로즌 에이리어’가 발동됩니다!]
쩌저적!
날아오르던 발키리들이 페가수스와 함께 그대로 얼어붙었다·
땅에서 피어오른 열기와·
하늘에서 퍼져나간 냉기·
서로 다른 두 개의 권역이 펼쳐졌다·
[13성궁 뱀자리의 주인이 침묵합니다·]
[‘대결계’의 기능이 멈춥니다·]
그 압도적인 마력에 대결계마저 붕괴되었다·
그렇게·
적들에게 퇴로가 열렸다·
***
범람하는 마경 속·
거대한 드래곤이 그 한가운데를 지켰다·
도망치거나 피한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배제한 채· 아예 똬리까지 튼 모습이다·
올 테면 얼마든지 들어와보라는 자신감이겠지·
저 자리에서도 수많은 마법들을 난사해댈 수 있었으니까·
화르르륵!
‘탐식의 눈’에 맹렬하게 타오르는 드래곤 하트가 보였다·
억겁의 세월동안 쌓아올린 대자연의 기운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지독하군·”
어느새 다가온 천유성이 곁에 섰다·
이 녀석도 서 있는 게 용한 모습이다·
단신으로 에블린을 상대했으니 당연히 멀쩡할 리가 없겠지·
특히나 마지막엔 검마일식까지 사용해서 근육이 죄다 파열된 것 같았다·
크게 도움은 안 되겠지만 ‘별의 가호’을 사용해줬다·
따뜻한 기운이 퍼지자 오히려 천유성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도움 따윈 됐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
센 척 하기는·
팔다리가 달달 떨리는 게 아주 대놓고 보이는구만·
“잔말 말고 컨디션 회복하는데만 집중해· 저 놈이 더 날뛰기 전에 처리해야 하니까·”
“가능은 한 거냐?”
천유성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은 에블린을 상대로도 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을 맞이했다· 고대룡이란 정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들·
하물며 저기 있는 건 모든 걸 해방한 완전체 아니던가?
그 속으로 파고들기란 쉽지 않았다·
“방법이 있긴 한데····”
이미 진즉에 왔어야 할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당연히·
진혁이 천유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라 유성아·”
“또 내가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말이냐? 네놈은 구경이나 하고?”
“우리 항상 그렇게 잘해왔잖아?”
내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너는 몸으로 구르고 구르면서 갈아 넣어지고·
좋은 추억이다·
포지션 역시 아주 마음에 들었고·
“거절한다·”
“야이· 그럼 저 녀석이 우리 팀 죄다 박살내는 동안 구경이나 하자는 거야?”
저기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추혼사영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냔 말이다!
“제가 갈게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
연약하고 병약한 몸으로·
천유성을 구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걸 보자니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걱정마라· 저 분은 지옥에 던져놔도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하실 분이니까· 그보다· 너야말로 구경만 하고 있는 게 알려진다면 암황이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성격이 더럽기로 치자면 그쪽이 훨씬 더 위가 아니던가?”
“크아아아! 뭔 놈의 날개달린 놈들이 끝도없이 오는 것이냐!”
암황이 역정을 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만약 느긋하게 있었다는 게 들켰다간 저 무지막지한 영감의 분노가 뒤를 이을 것이다·
“더 급한 쪽이 미끼가 된다·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천유성이 못을 박았다·
이것 봐라?
이 녀석이 언제부터 이리 반항적이 된 거지?
“내가 미끼가 되면 네가 마무리 지을 수는 있고? 뭔지도 모르잖아·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물론 예상하고 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이 타이밍에서는 내가 더 잘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무엇보다 내가 미끼가 되는 것보다 네가 되는 게 저 드래곤한테 어그로 끌기도 훨씬 쉬울 텐데?”
“····”
구구절절 맞는 말에 진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반박할 거리를 찾아야 하긴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머릿속엔 온통 드래곤 앞에서 요리조리 뛰어다니면서 재롱잔치를 피우고 있는 미래의 모습만이 보였다·
그리고·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진혁이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미끼역할로 나섰다·
***
“왔구나·”
디아문의 시선이 진혁에게 옮겨갔다·
동시에 퍼붓던 융단폭격에 잠시나마 공백이 생겼다·
열받긴 하지만 천유성이 한 말이 맞다·
‘내가 직접 움직이니까 저 징글맞은 놈도 집중을 하네·’
방금 번 몇 초가 적어도 수천 명의 생명을 살렸을 것이다·
“흐음· 내 드래곤 하트가 어느 정도 빌 때까지 기다릴 거라 생각했거늘· 동족을 구하겠다는 그 하찮은 동정심 때문인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뭐 이제와서 그런 게 중요한가?”
“그래· 이제와서 대화는 의미없겠지· 그럼 시작하겠다· 마지막으로 싸우는 게 네놈이라서 후회는 없을 것 같구나·”
콰콰콰쾅!
모든 화력이 집중된다·
초월급 대마법이 용언으로 구현되어 몰아치는 건 엄청난 장관을 연출했다·
‘신속의 왕관’을 착용한 진혁이 몸을 날렸다·
“유성아!”
빨리 좀·
···서둘러라!
“아직 도착 안 했다·”
천유성이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콰콰콰쾅!
퍼어엉!
또 다시 각종 마법들이 난사되었다· 하나같이 살벌한 위력을 보유한 공격마법들이었다·
“야 이제 진짜 위험해· 진짜라고!”
단순히 공격마법만 섞는 게 아니라 디버프와 군중제어기까지 적절하게 섞고 있다·
순차적인 것도 아니고· 동시에 4~5개를 사용해대는 게 도망다니는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아직·”
“아니· 지금 들고 있잖아!”
분명 온 게 보인다·
심지어 천유성은 양손으로 검의 무게와 완성도를 가늠하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발뭉·
오룬이 재조합을 끝마친 새로운 버전이었다·
‘쓰러뜨린 드래곤의 마력과 능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저것 때문에 발뭉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대룡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데 그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있나·
드디어 새로운 검에 신선한 피맛을 보여줄 시간이 왔다·
콰아앙!
“으아아아!”
저 녀석이 좀 나서주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