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화· 봐서는 안 되는 미래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 세계에서도 유명한 유흥과 향락의 도시엔 오늘 인류의 역사를 바꿀만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었다·
선글라스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두 개의 입구를 지켰다·
“초대장이 없으면 출입할 수 없습니다·”
“물러나세요· 거기· 카메라 끄시고요·”
“B동 다시 한 번 체크해· VIP 입장하신다·”
철저하게 보안을 갖춘 야외 연회장에 세계 주요 인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상위 랭커들과·
일국에 준하는 가치가 있다고 알려진 대형 길드의 공격대·
그 멤버들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타케시 님 외 2명· 확인되었습니다·”
사무라이 길드의 타케시 역시 길드의 랭커 둘을 대동한 채 연회장에 도착했다·
암살조 1번대 조장 ‘하루나’·
같은 암살조 1번대 부조장 ‘타쿠미’·
길드 내에서 대인전과 암살 첩보전에 가장 뛰어난 두 명을 데리고 온 것이다·
“오고 싶어하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저희를 고르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런 자리에 저희들이 필요할 것 같진 않습니다만·”
사무라이 길드 내 서열로 치면 하루나나 타쿠미보다 높은 이들이 훨씬 많았다·
대외적인 이미지에서도 그렇고·
같이 있으면 든든하게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랭커와 주요인사들이 오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런데·
타케시는 꼭 짚어서 하루나와 타쿠미를 원했다·
길드 마스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멤버 구성은 그대로 결정되었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게 알려진 건 이래서 좋다·
‘불길하다’· ‘뭔가를 봤다’··· 라는 식으로 뭉뚱그리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역시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호화로운 음식과 잔잔한 오케스트라가 반겨주었다·
세금을 갈아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치의 끝·
그 속에서 7대 길드의 핵심 간부들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이번 연회에 참여한 목적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슈에뜨·
생글생글 웃으며 게스트들과 담소를 나누는 게 상당히 여유로워보였다·
“이번 유적은 솔직히 저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몇 달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하하하· 겸손하시기까지 하군요·”
“조금 있다가 다음 층계 공략에 관한 연설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기대가 아주 큽니다·”
“암요· 드래곤을 상대하다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꿈도 못 꾸는 일이었으니까요·”
모두가 그와 한 마디라도 섞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10분 20분··· 1시간·
대화를 하고 술을 마시느라 분위기도 무르익어갔다·
일부러 마력으로 알코올 분해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적당한 취기가 뇌를 기분 좋게 주물렀다·
‘지금이다·’
타케시가 조심스레 아공간을 개방했다·
나온 것은 다수의 성유물과 아이템들·
[‘혼령의 영약’을 복용했습니다·]
[‘행운의 토템’을 사용했습니다·]
[‘바닥을 뜨는 국자‘를 사용했습니다!]
[사용된 아이템들이 파괴되었습니다·]
불안정한 마력의 파장을 안정화하고· 행운과 능력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성유물을 사용한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 길드의 보물들이었으나·
이번 한 번을 위해선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우웅!
[한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완성된 미래시’가 발동됩니다!]
선명한 빛이 타케시의 눈에 깃들었다·
순간적으로 암전된 시야·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한 타케시의 앞에 미래의 편린이 펼쳐졌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무너지는 세계·
인류의 횃불이라 칭송받던 수많은 랭커들과 영웅들이 드래곤의 화염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화르륵!
쿠쿠쿠쿵!
부서지고 박살나고 으깨진다·
압도적인 드래곤의 위용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없어보였다·
90일이란 제한시간도 어느덧 마지막 카운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나타났다·
진혁이었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한들 위대한 신격이 보유하고 있는 고고함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적어도 타케시의 눈에는 그러한 것들이 보였다·
‘조금··· 지쳐 보이시는데····’
격렬한 전투라도 치르고 오신 걸까?
어딘지 모르게 황급히 온 것만 같은 진혁의 컨디션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처럼 진혁은 데스티아를 밀어붙였다·
강력한 능력으로 무장한 랭커는 지금까지 실패한 공격대와는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완벽한 승리·
하지만·
진짜 공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레드 드래곤 데스티아’가 쓰러졌습니다·]
죽은 시체 속으로·
[‘사령의 혼’이 깃듭니다·]
회색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둥 사이에 있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 드디어 걸렸군·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정말 손을 많이도 썼어·”
저건 설마····
슈에뜨였다·
정확히는 슈에뜨의 얼굴과 알 수 없이 불길하고 흉흉한 얼굴이 뒤섞인 존재였다·
적어도 인간은 아니다·
단지 제3의 공간에서 미래를 엿보는 것임에도 타케시의 전신은 식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원혼의 무덤’이 개방됩니다!]
지금까지 데스티아를 죽이려다가 죽은 공격대·
그들의 시체가 일어났다·
이들 역시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 보는 식물들이 몸에서 돋아난 모습· 심지어 몇몇은 다수의 눈알이 달린 끔찍한 것들에 잠식되어 있었다·
사령화된 드래곤 역시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마력을 분출했다·
“크오오오!”
쩌렁쩌렁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미래시는 거기서 끝났다·
쾅쾅쾅!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이제야 슈에뜨라는 자가 무얼 꾸미고 있는지 알겠다·
한 시라도 빨리 이걸 알려야····
“흐음· 불청객이 있었군요·”
차분하지만 섬뜩한 목소리가 타케시의 고막에 파고들었다·
분명 랭커들과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어야 할 슈에뜨가 어느새 몇 미터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슈에뜨가 절대종언 ‘금(禁)’을 발동합니다!]
쩌저적·
모든 게 회색빛으로 물든다·
아니 바뀐 건 단순히 색만이 아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타케시와 하루나 그리고 타쿠미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재미난 능력을 가지고 있네요·”
슈에뜨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웃고 있지 않다·
“인간 주제에·”
그 싸늘한 뒷말을 덧붙이자 공기가 얼어붙었다·
살기·
그것도 대놓고 타케시를 겨냥해 있었다·
“큭!”
“피하십시오!”
하루나와 타쿠미가 맡은 역할을 다했다·
스릉!
눈부신 검광을 뿌리며 몸을 날린 두 명의 암살자가 순식간에 슈에뜨의 양쪽을 잡았다·
허를 찌르는 변칙적인 움직임과 특유의 날카로운 검술·
두 가지가 적절하게 배합된 합격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수십 갈래로 쪼개진 검격이 몰아쳤다·
아무리 강한 랭커라하더라도 이 모든 걸 방어하긴 힘들 터·
그런데·
퍼퍼퍽!
피분수가 일어났다·
비틀하고·
상반신이 완전히 사라진 하루나가 그대로 쓰러졌다·
“쿨···럭·”
몸의 반이 쓸려나간 타쿠미 역시 피를 울컥 토하는 것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성가신 엑스트라는 여기서 이만 퇴장해주시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건 인간 따위에겐 너무나 과분한 힘이니까·”
슈에뜨가 천천히 타케시에게 다가갔다·
거부할 수 없는 죽음·
“···죄송합니다· 강진혁 님·”
타케시가 품 안에서 작은 카타나를 꺼냈다·
***
꿀꺽!
꿀꺽!
브레스들이 날아가는 족족 식물들에게 집어삼켜졌다·
“이것들이····”
천유성과 싸우던 에블린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설마 이 한복판에 거점을 통째로 불러오는 수를 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우리끼리는 흔히 노예섬이라고 부르는 곳이지·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영토· 절대 쉽게 돌파하진 못할 거다·”
“비켜! 더 이상 네놈 따위와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섭섭하군· 나는 이제 막 몸이 풀리려던 참인데· 미안하지만 조금 더 어울려줘야겠어·”
“하? 다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감히 누구와 더 싸우겠다는 말이냐?”
“도마뱀 한 마리와 어울리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
천유성이 검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벌써 수백 합이 넘게 주고받은 상황·
고대룡의 일격일격을 버티느라 온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얼굴에선 연신 피가 흘렀고· 갈비뼈도 몇 대는 나갔다·
주가 되는 오른쪽 팔 역시 에블린의 발톱에 당해 깊숙하게 파여 있었다·
그럼에도 검에 실린 강기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극의를 구현한다·
화르륵!
천유성의 검이 다시 한 번 불타올랐다·
[검마일식]
검신에 마(魔)가 실리고·
두 눈에는 그 본질이 담긴 혼(魂)이 깃들었다·
태산같이 버티고 진혁에게 가는 길을 막는다·
천유성에게서 결사항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흘러나왔다·
*
“어떻게 저게 여기에····”
디아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태고의 마력이 주입된 식물들·
절대 50층 아래에서는 개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건만· 버젓이 눈앞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정보의 공백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충분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공략이 가능하다며 정보를 은폐한 라파엘 때문이었다·
고전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입지는 줄어들 터·
그 점을 염려해 시간이 걸릴 뿐· 충분히 할 만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보고한 것이다·
“고대룡의 마나통이 큰 건 알았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네· 우리 애들이 아주 쑥쑥 크고 있어·”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애칭을 지어뒀다·
은가누 퓨리 타이슨 등등·
앙증맞고 깨물어주고 싶은 이름으로다가·
마력을 좀 과하게 섭취해서 꽤나 우락부락해진 것 같긴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언제까지나 작고 소중한 식물로 보였다·
“키에에에!”
식물들이 비명을 지른 건 바로 그때였다·
줄기 부분이 크게 부풀더니 이내 이파리에서 보라색 구체가 모였다·
“···!?”
디아문이 본능적으로 블링크를 시전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기존에 본인이 사용했던 브레스들에 태고의 힘까지 압축되어 날라오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콰아아앙!
부유석이 통째로 날아가며 주위에 있던 천사들 역시 그 폭풍에 휘말렸다·
단 한 방·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데 그거면 충분했다·
블링크로 벗어난 디아문의 표정이 구겨졌다·
“강한 공격을 할수록····”
“맞아· 그걸 흡수해서 더욱 강하게 반격할 수 있지·”
거점전에서 이 정도면 가히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파훼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우리가 진 것 같군·”
디아문의 머리에서 왕관이 사라졌다·
뿔도 원래대로 돌아가며 모아두었던 마력이 다른 쪽으로 치환되었다·
“도망가려고?”
“잠깐 물러나는 것 뿐이다· 더 해봤자 무의미한 소모전이 될 테니까·”
으음·
그래 그건 맞는 말인데·
“누가 보내준다고 했지?”
마법에 제법 조예가 있는 건 알겠다· 전력을 다하면 도주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는 자신감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하지만·
[황도십이궁 ‘뱀자리의 주인’이 현현합니다!]
쉬이잇!
반투명한 상태여서 눈으로 잘 보이진 않았으나·
결계가 해제되자 하늘을 따라 거대한 백사가 꿈틀대는 게 보였다·
‘고대 결계’와 ’13번째 별자리’가 혼합되어 있는 세계·
여기에서는 블링크는 물론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다·
“뭐 대놓고 집중한다면 틈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내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없거든·”
이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적어도 왕관 하나 정도는 가져가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