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7화
787. 영화 제작 시작 2
“여익환 감독의 최근 커리어가 문제야.”
신종기 대표는 여익환 감독이 지난 세 작품을 말아먹은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여론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한다.
혹시 여익환 감독이 상처라도 받을까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익환 감독은 머쓱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괜찮습니다. 정 실장님이 오기 전에 제가 먼저 대표님께 말씀드렸거든요.”
“감독님이요?”
“예. 최근 세 작품이 연속해서 망한 게 이번 작품의 발목을 잡을까 봐 걱정된다고요.”
여익환 감독은 입봉작 <신입사원>으로 직접 대본과 연출을 맡아 500만 관객이라는 큰 흥행을 거뒀다.
제작비 10억을 투자한 저예산 영화로 이뤄낸 성적이었기에 그야말로 역대급 흥행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연속해서 세 작품 모두 폭망을 했다.
그리고 여익환 감독은 연출의 꿈을 접고 서예종 교수로 갔다.
그런 그 실패 사례가 이번 영화의 흥행에 발목을 잡을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신종기 대표는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여익환 감독의 말을 거든다.
“나야 우리 정 실장이 보증하는 사람은 무조건 믿지. 애당초 첫 작품 <신입사원>으로 500만 명을 불러 모은 것은 우리 여 감독에게 능력이 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시기가 나빠. 굴렁쇠 엔터 상장이 코 앞이지 않나?”
평소라고 해도 주식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인데 공모를 앞둔 시점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작에 들어가더라도 감독 발표는 4월 1일 이후에 하는 게 어때? 아 이것도 여익환 감독의 뜻이야.”
여익환 감독은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선뜻 자신의 프라이드를 내려놓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너무도 고마웠지만 난 처음부터 이 일에 대한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난 제대로 된 감독을 골랐다는 생각에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다고 말하자 오히려 여익환 감독이 당황한 기색이다.
“실장님. 정말로 전 괜찮으니까 절 배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어차피 제작에 들어가면 다 알려질 일이고 주가에 반영될 이슈입니다. 그렇기에 감독님이 우려하시는 바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준비요?”
“예. 전 지금부터 우리 감독님을 한국 최고의 천재 감독으로 이미지 메이킹할 생각이거든요.”
“예에?”
여익환 감독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신종기 대표가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응? 정 실장.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난 폰을 꺼낸 다음 몇몇 방송국의 편성표를 보여 줬다.
[MBS 목요일 편성표]
-밤 11시 : 목요일 특선 영화 <신입사원>
[TVM 금요일 편성표]
-밤 10시 : TVM 명작 영화 <신입사원>
[KBC 토요일 편성표]
-오후 2시 : 토요일 특선 영화 <신입사원> ······.
난 각기 다른 방송국에 로비해서 여익환 감독의 천재성이 드러난 작품 <신입사원>의 재방송을 연달아 잡아 놓았다.
토요일 인터뷰 전에 대중들에게 여익환 감독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신입사원>을 TV에서 연달아 재방송하게 되면 화제가 될 게 분명합니다.”
<신입사원>은 500만 명이 봤을 정도로 흥행한 영화다.
더군다나 영화 속 장면이 인터넷 밈을 양산했었기에 재방송이 나가면 커뮤니티에 관련 영상이 업로드될 게 분명했다.
5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신종기 대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5년 전에 영화 나왔을 때도 커뮤니티가 화제였지?”
“예. 그렇게 다시 한번 화제가 되면 바로 스타특종 주간스타 쪽 기자들에게 부탁해서 여익환 감독님에 관한 특집 기사를 터트릴 생각입니다. 비운의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요.”
“그럴듯하군.”
“그것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진이의 스타그램을 통한 PR.
체리블라썸의 인기 작곡가이자 <프로젝트 I.O.A> 작곡가인 방선우가 영화 음악 전체를 프로듀싱한다는 기사도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신입사원> 주인공 ‘장일산’ 역을 맡았던 배우 최진태를 만나 감독에 대한 좋은 평을 하는 인터뷰도 잡을 생각이었다.
순간 신종기 대표의 입에서 나지막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 이제 보니까 정 실장을 온전히 믿지 못한 내가 제일 문제였군. 하하하.”
신종기 대표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 웃음은 곁에 앉은 이들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웃음을 그친 신종기 대표가 말한다.
“오케이. 그러면 홍보와 관련된 일은 여기 본부장이랑 상의해서 예산 처리해. 어차피 비용은 우리 LT 엔터에서 낼 테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죠.”
“어이쿠. 이젠 빼질 않는군?”
“주신다는 건 이제 그냥 받기로 했습니다.”
이은주 본부장이 씨익 웃으며 대신 답한다.
“당연하죠. 아 그리고 따로 정 실장님한테도 홍보비로 페이 지급해 드릴게요!”
“페이보다는 %로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
유진이는 현재 출연료 5억에 수익지분 5%를 받기로 되어 있다.
연기뿐 아니라 노래와 춤까지 하며 영화 대부분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배우도 제작 스태프도 아니니 한 0.5%만 준다고 해도 만족할 수 있었다.
수익 지분 0.5% 정도라도 최소 1억은 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은주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해준다.
“정 실장님한테는 수익지분 2%를 드릴게요.”
“예? 2%나요?”
“예!”
이은주 본부장이 곁을 힐끗 쳐다본다.
“대표님. 그래도 되죠?”
신종기 대표가 껄껄 웃음을 짓는다.
“암 되고말고. 어차피 이 영화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정 실장 덕이니까. 근데 2%는 좀 그렇고······ 3%까지는 줘야지. 안 그래?”
“알았어요. 그럼 3%! 콜!”
생각지도 못하게 영화 수익지분 3%를 받아 버리게 되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런 영화를 안겨줘서 우리가 더 감사하지. 그나저나 홍보나 잘 해줘.”
“저만 믿으십시오!”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게 하는 두 사람이다.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이어서 여익환 감독을 향해 당부했다.
“감독님. 그러니까 처음 모셔 올 때 말씀드린 대로 ‘연출’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모조리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화의 연속된 실패로 인해 자신감이 없어졌던 여익환 감독의 눈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영화 이야기나 계속해 볼까요?”
그제야 우린 모든 걱정을 잊고 <그녀는 예뻤다> 시나리오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전 여주인공인 한빛나가 조금 더 밝은 성격이었으면······.”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유진이부터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왕미인 작가는 태블릿에 유진이의 의견을 적으며 시나리오에 추가 수정 요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바라는 대로 천만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 * *
<그녀는 예뻤다>의 첫 번째 시나리오 회의가 끝이 났다.
토요일 기자 회견 때 감독 발표 및 오디션 날짜를 공개하기로 한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차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 30분이다.
이따가 12시 20분에 학교로 가서 미소를 픽업해 KBC <연무(煙霧)> 대본 리딩 현장으로 가기로 했으니 아직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유진아. 시간이 좀 남은 김에 최태용 작곡가 좀 뵈러 가자.”
회귀 전 박은빈은 <그녀는 예뻤다>가 개봉하는 날 주제곡 <꿈은 이루어진다>를 발표했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6주간 차트 1위를 유지하며 영화의 흥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주제가만큼은 <꿈은 이루어진다>를 작곡했던 최태용 작곡가에게 찾아가 받아 올 예정이었다.
순간 유진이가 선글라스를 코끝에 걸치며 앞 창문 쪽으로 손가락을 쫙 펴며 외친다.
“레츠 기릿!”
“오케이~ 잠깐만?”
난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최태용 작곡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태용 작곡가가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이야~ 정 실장이 나한테 전화를 주고. 신입 때 보고 처음 목소리 듣는 거 같은데 요새 잘 나가더라?
“최 작곡가님이야말로 잘 나가시잖습니까? 이번 박은빈 1위 곡도 작곡하시고요.”
최태용 작곡가는 경력 10년 차 작곡가로 쁘띠모의 히트곡 <블링블링> 작곡가다.
주로 쁘띠모의 히트곡을 만들어줘서 이름을 알렸는데 최근 박은빈이 1위를 한 곡 <화이트데이 프러포즈>의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오늘 곡 하나 받으려고 찾아뵐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나야 언제든지 작업실에 있잖아. 근데 누구 곡이 필요한데? 혹시 프로젝트 I.O.A에 나갈 곡?
“하하하. 그것까지는 아직 말씀드리기 그렇고요.”
최태용은 업계 경력이 10년인 터라 허점을 보이면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곡 비를 부른다.
그렇기에 내가 바라는 곡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협상하는 게 좋았다.
-그래 그럼. 어딘데?
“지금 삼성동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오. 가까운 데 있네. 바로 와. 기다릴게.
난 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와 함께 최태용 작가의 작업실로 향했다.
* * *
삼성동 대로 이면에 있는 중형 빌딩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하 1층 스튜디오의 입구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삐 소리와 함께 긴 말총머리에 키가 유달리 큰 최태용 작곡가가 내려왔다.
“어? 유진 씨도 같이 왔어?”
유진이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인다.
“예. 스케줄 중에 이동하다가 잠깐 들렀어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씀은 무슨. 우리 정 실장이 내 욕이나 안 했으면 다행이지.”
“어머? 누가 감히 최태용 선생님을 욕해요?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하신 분인데.”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면 영광이고.”
우린 그렇게 최태용 작곡가와 인사를 나눈 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4개의 대형 녹음실이 있는 최태용 작가의 1번 방으로 들어가자 대형 모니터가 켜져 있다.
“미리 작곡한 거 띄워 봤어. 엄선한 것들이니까 마음에 드는 게 있을 거야.”
곡 리스트만 대략 150개가 떠 있는데 이 중 최태용 작곡가가 작업한 건 30곡이 채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머지는 이 스튜디오에 일하는 새끼 작곡가들이 작곡한 것일 거고.
새끼 작곡가들은 ‘작곡 어시’라고도 불리는데 대부분 이름 있는 유명 작곡가 밑에서 무임금으로 일을 배우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일을 가르쳐 주는 명목으로 새끼 작곡가들이 만드는 곡들은 모두 최태용 작곡가의 것으로 저작권이 등록된다.
쉽게 말해 이곳은 가르침을 핑계로 착취를 하는 음악 공장이나 다름없다.
다만 작곡가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폐단 같은 것이기에 이 문제는 건들기가 만만치가 않았다.
너도나도 작곡 어시를 그런 방식으로 이용하는 터라 자칫하다가는 수십 개의 대형 스튜디오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료수는 뭐가 좋아? 커피? 차? 둘 다 좋은 게 있는데.”
“아 그냥 물이면 됩니다.”
“유진 씨는?”
“저도요.”
“알았어.”
최태용 작곡가가 녹음실의 호출 버튼을 누른다.
삐-.
-예.
“물 두 잔만 가져다줘.”
-알겠습니다.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20대 중반의 여성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삐쩍 마르고 안경을 낀 여성은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물 두 잔을 내밀었다.
“수고했어. 가봐.”
그때 안경을 낀 여성이 주저주저하며 말한다.
“저기······ 지금 막 쁘띠모 멤버 넷이 와서 작곡가님을 찾고 계세요.”
하필이면 이때 쁘띠모가 왔다고?
“혹시 따로 부르신 겁니까?”
최태용 작곡가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나와 쁘띠모 사이에 안 좋은 악연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였다.
“아냐. 내가 정 실장을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쁘띠모 컴백곡을 작업하게 돼서 요즘 애들이 자주 와.”
“흠~ 그렇습니까? 그러면 일단 저희끼리 곡 듣고 있겠습니다. 다녀오세요.”
“그래도 온 손님들을 따로 둘 수는 없고······.”
최태용 작곡가가 고민하다 물을 갖고 들어온 여성에게 말한다.
“세연아. 네가 여기서 정 실장 곡 고르는 것 좀 도와줘.”
세연이라고 불린 여성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저 지금 혜정이가 아파서 집에 좀 가봐야 하는데요?”
“잠깐이면 돼. 너 정 실장 몰라? 굴렁쇠의 에이스. 이런 귀한 분이 우리 스튜디오 곡이 필요하시다잖아. 내가 금방 보고 올 거니까 여기 있어.”
“지금 혜정이 약 사가야 하는데······.”
그 순간 최태용 작곡가가 갑자기 짜증을 버럭 낸다.
“아~ 진짜 야! 알았어. 곡 비 달라는 거지? 넌 꼭 손님들 왔을 때 이따위로 말을 돌려 하더라?”
“죄송해요.”
최태용 작가가 말을 험하게 해서 끼어들고 싶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다.
최태용 작곡가가 윤세연을 조용히 시킨 뒤 우리 눈치를 보며 말한다.
“미안해. 정 실장. 뭐 여기 세연이가 내 세컨드 어시니까 곡 고르는 거 도와줄 거야. 퍼스트 어시인 혜정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얘도 쓸만해.”
“예.”
“그럼. 다녀올게.”
최태용 작곡가가 녹음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선다.
쿵.
곡도 곡이지만 사람이 아프다는 데 잡아 두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세연 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지만 윤세연은 내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고 마우스를 잡는다.
“곡 들려 드릴게요.”
아무래도 일단 곡부터 듣고선 경계심이 떨어지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같은 업계에 있는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일단 혹시 곡 이름을 영어가 아니라 한글로 정렬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
윤세연이 곡 이름을 한글 ‘가나다’ 순으로 정렬한다.
순간 내가 바라는 곡 이름이 상단에 보인다.
<꿈은 이루어진다>.
난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곡명을 가리켰다.
“곡명이 좋네요. 저것부터 들어볼까요?”
“예.”
윤세연이 더블 클릭을 한다.
녹음실 스피커로 <꿈은 이루어진다>의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찾았다!’
* * *
회귀 전의 주제가를 찾았지만 일부러 5곡 정도를 골라 1절씩만 더 들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곡을 밝히지 않아야지 최태용 작곡가와의 협상에서 발목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와의 파티 나잇> <붉은 드레스> <운명의 상대> 등등.
최태용 작곡가가 골라 놓은 곡들은 회귀 전의 여러 아이돌들이 불렀던 서브 타이틀곡이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방선우가 있었기에 이런 곡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꿈은 이루어진다>만 확보하면 대성공이다.
“다 좋은데요?”
윤세연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예. 그러면 작곡가님 모셔 올까요?”
“아뇨. 그 전에 세연 씨 이야기부터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난 새끼 작곡가들의 대우를 잘 안다며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지만 내가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을 외면하고 싶진 않아서였다.
유진이 역시 곁에서 말을 거든다.
“세연 씨. 때론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해요. 말해 봐요. 우리 매니저 오빠. 함부로 막말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유진이까지 나서자 윤세연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발매한 핑크다이아의 신곡 <다시 말해 줘>는 제가 만든 곡이에요. 혜정이가 편곡을 해줬고요.”
TK 엔터 핑크다이아의 신곡 <다시 말해 줘>는 신나는 댄스 음악으로 여성미를 강조한 안무가 결합 되어 꽤 인기를 끌고 있다.
“최 작곡가님이 공동 작곡가로 이름은 올려 줬습니까? 그래야 저작권 수입이 들어오잖아요.”
“아뇨. 대신에 혜정이랑 저한테 곡 비를 50만 원씩 준다고 하셨는데 아직 안 주셨어요. 그래서 아까 그 말씀 하신 거고요.”
“아~”
“그리고······ 지금 들으신 곡들도 다 저랑 혜정이가 공동 작업한 거예요.”
<그녀는 예뻤다>의 시나리오도 원작자가 따로 있었는데 설마 OST까지 원곡자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작자를 증명할 수 있던 왕미인 작가와는 사정이 달랐다.
이미 스튜디오에서 파는 모든 곡은 최태용 작곡가가 자기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해뒀기 때문이다.
즉 법적으로 이것들은 현재 최태용 작곡가의 것이란 것이다.
물론 소송을 하면 언젠가는 원곡자가 그 권리를 찾아올 수 있지만 소송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영화에 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꿈은 이루어진다>의 곡 사용권만 사면 저작권료가 원곡자도 아닌 최태용 작곡가에게 흘러 들어가게 되고.
현재 <그녀는 예뻤다>는 시나리오 수정도 거의 다 끝났기에 배역 캐스팅과 장소 로케이션만 끝나면 촬영에 바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주제곡은 당장에 필요했다.
하지만 몰랐으면 모를까 원곡자가 다른 사람인 걸 아는데 모른 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당장 소송을 피해서 곡을 쓰면서도 원곡자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할 방법이 번뜩 떠올랐다.
‘그 방법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