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6화
786. 영화 제작 시작 1
<화란전> 21화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언제나처럼 눈을 뜨자마자 에브리데이의 일정을 확인했다.
에브리데이에 별다른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난 다음으로 포털의 연예 기사면을 클릭했다.
[<화란전> 21화 분당 최고 시청률 35.0%! 벌써부터 올해 연기대상 수상자로 거론되는 주연배우 정유진.]
[정유진의 첫 스크린 도전 영화 <그녀는 예뻤다> 에 각종 관심이 집중.]
······.
어제 방송한 <화란전>에 관한 기사와 유진이의 차기작에 관한 기사들이 가득하다.
잠시 후에 만날 LT 신종기 대표님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9시에 LT 엔터에서 약속이 잡혀 있는 것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난 곧장 세수하고 2층으로 내려갔다.
달칵.
2층 문을 열었다.
거실에선 파워터프걸 잠옷을 입은 미소가 이제 제법 커진 백설기와 인절미를 껴안고 모닝 뽀뽀를 하고 있었다.
“설기도 뽀뽀~ 절미도 뽀뽀~”
“미야아옹~”
“왕왕!”
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미소는 잘 잤어?”
미소가 날 보며 활짝 웃는다.
“네! 꿀잠 잤어요. 삼촌은요?”
“나도 잘 잤지. 엄마는?”
“엄마는 코오~ 아직 자요! 코도 골고 자면서 노래도 해요! 밤에 들어와서 내 볼에 뽀뽀도 했어요. 그래서 나 오늘 조금 일찍 일어났어요.”
미소가 작게 하품을 한다.
“피곤하면 조금 더 잘래? 30분만?”
미소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괜찮아요. 잠 다 깼어요!”
“음······ 그러면 삼촌이 아침 해줄까? 프렌치토스트. 어때?”
미소가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한다.
“아~ 싫구나. 그럼 뭐?”
미소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한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에 폭신폭신한 계란찜······이요.”
“그런 거라면 식은 죽 먹기지. 차돌 된장찌개랑 계란찜 해줄 테니까 씻고 와.”
“아싸! 그럼 내가 삼촌한테 앞치마 해줄게요.”
“어 어. 그 그럼 좋지~”
미소가 내 손을 잡고 주방으로 이끈다.
미소가 주방에 걸린 분홍색 파워터프걸 앞치마를 내게 씌워 준다.
순간 미소가 손뼉을 치며 웃음 짓는다.
“우와와~ 예쁘다~”
고맙다 미소야.
예쁘다고 해줘서.
덕분에 부끄러움이 조금 줄어들었어.
“그럼 우리 미소 씻고 와야지?”
“네~”
미소가 두 손을 들고선 화장실로 달려가서 세수를 시작한다.
“어푸어푸!”
난 그 틈에 냉장고를 열어 하루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가정용 간편식(HMR) 국 포장 팩을 하나 꺼냈다.
간편식 포장 용기에는 하루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요즘 잘 팔리는 ‘하루의 요리 – 차돌 된장찌개’였다.
포장을 뜯어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담은 뒤 곧장 계란찜을 만들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고 알끈을 제거한 뒤 작은 뚝배기에 넣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요리 준비를 끝내놓은 뒤 꿀물을 타서 유진이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똑똑.
“유진아. 일어났니~~?”
“네······ 네······.”
문을 달칵 열자 유진이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카락을 앞으로 축 늘어뜨린 채 침대에 꾸물대고 있었다.
“오 오빠······ 물 물······.”
“자 여기.”
꿀물이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유진이가 고개를 들고 그릇을 받은 뒤 단번에 벌컥벌컥 들이켠다.
“크으~ 좋다~”
그제야 유진이의 눈이 조금 초점을 찾는다.
“미소 아침 먹이고 올 테니까 너도 천천히 씻어. LT 엔터 갈 준비해야 하니까.”
그때 유진이가 내 팔을 덥석 잡는다.
“나도······ 밥이요······.”
“어젯밤에 삼겹살에 소주까지 잔뜩 먹어 놓고서 아침부터 밥이 넘어가?”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아~압~”
“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나와.”
유진이가 벌떡 일어나서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어 엄마다!! 엄마 일어났어?”
“그래 미소야. 미소 잘 잤어?”
“응!”
미소는 엄마를 위해 거짓말을 해주고 있었다.
엄마가 어제 새벽에 와서 볼 뽀뽀를 해줬을 때 깼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미소의 거짓말 덕분에 오랜만에 행복하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마치 회귀해 미소를 구한 다음 날 좁은 내 자취방에서 먹었던 아침처럼 행복이 가슴속 깊이 내려앉고 있었다.
* * *
LT 엔터로 가는 길.
미소를 차에 태워 학교까지 바래다줬다.
학교 정문 앞에 차를 멈추자 미소가 뒷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다.
“다녀오겠습니다!”
미소가 운전석의 나와 조수석의 유진이를 향해 90도로 배꼽 인사한다.
순간 유진이가 창문을 내리고 미소에게 양손으로 손키스를 날린다.
“음하! 미소야 오늘도 파이팅!”
“응 엄마. 이따가 대본 리딩장에서 봐~”
미소는 가방 줄을 잡고는 종종걸음으로 학교 정문을 향해 뛰어간다.
그때 미소의 곁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미소야~ 오늘도 좋은 하루!!”
“미소야 잘 잤어?”
“미소야. 넌 어제 뭐 했어?”
“어제? 나 연기 레슨 했어.”
“와! 좋겠다.”
“미소야 오늘도 나 사인 한 장 해 줄 수 있어? 우리 할머니가 미소 너 팬이래!”
“응. 해줄게.”
어느새 아이들의 아이돌이 된 미소는 꺄륵거리며 함께 신나게 등교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광경을 본 유진이가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어젯밤 <화란전>이 35%의 시청률을 달성했을 때보다 더욱더.
“우리 미소. 언제 저렇게 컸죠?”
처음 미소를 구했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6살짜리 어린아이였는데 이젠 벌써 8살이 되었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미소는 한국 최고의 아역 배우 중 한 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많이 변한 건 유진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유진이도 언제 이리 컸을까~”
조수석에 앉은 유진이를 보며 기특하다는 듯 말하자 유진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오빠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됐네요? 어때요? 잘 컸죠?”
같은 말도 기분 좋게 하는 유진이였다.
“고맙다. 이렇게 잘 커줘서.”
그녀 덕분에 사실상 나와 굴렁쇠 엔터도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성공을 계기로 난 회사의 신임을 받고 회사의 성공에 이바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제가 더 고맙죠.”
그런데 그때 유진이가 웃음을 거두고 내 눈치를 보다 묻는다.
“근데 오빠. 민규리는 왜 그렇게 싫어······해요?”
어제는 내 표정이 좋지 않아 묻지 못했다며 궁금해한다.
난 핸들에 손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걔만큼은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못 바꾸거든.”
“예에~? 오빠가 못 바꾸는 사람이 있다고요?”
“어.”
“어떻게 알아요?”
“딱 보면 알아.”
실은 겪어 봐서 안다.
수도 없는 거짓말을 하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타입이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결국 그녀는 바꾸지 못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본부장님이 이미 스카우트 제안까지 했으면 무턱대고 반대할 수도 없잖아요.”
“뭐 도장을 최종적으로 안 찍었으니 확정된 건 아닌데······ 조금 고민이긴 해. 그냥 나가라고 하면 상장을 앞둔 우리 회사에 안 좋은 기사가 뜰 게 뻔하니까.”
그래서 난 어젯밤 ‘최고다 흥신소’를 통해 사람을 붙여 놓았다.
회귀 전과는 달리 훨씬 일찍 연예인이 된 민규리였기에 아직 까지는 그녀가 저지른 스캔들 데이터가 없어서다.
그때였다.
유진이가 각오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정 안 되면 저한테 말하세요.”
“어쩌려고?”
유진이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치켜든다.
“오빠를 위해서라면 갑질 한번 할게요. 걔가 들어오면 제가 굴렁쇠 엔터를 나가 버린다고 땡깡 부리면 스카우트 취소하지 않을까요?”
“네가 갑질을 하겠다고?”
“뭐 못 할 것도 없죠.”
유진이가 쌍심지를 켜고 날 노려본다.
민규리가 어제 보여 줬던 표독한 얼굴이 유진이의 얼굴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난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됐어. 설령 민규리가 굴렁쇠에 들어온다고 해도 절대로 너에게 그런 일은 시키지 않을 거야.”
내가 매니저인 이상 유진이가 갑질 여배우 소리를 듣게 할 순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흥신소의 사람을 풀어 놓았으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게 분명했고.
그리고 난 그 소식을 갖고서 민규리의 영입에 반대를 표할 생각이었다.
“자자 배우님은 재능 낭비 그만하시고 표정 푸세요. 신 대표님이랑 여 감독님 만나러 가셔야죠.”
유진이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눈 깜짝할 사이 지운 뒤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뭐 그러면······ 난 언제나 오빠 편이라는 것만 기억해 두세요!”
난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알아. 그러면 이제 신 대표님 뵈러 갈까?”
“예~”
우린 <그녀는 예뻤다>의 영화 제작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곧장 LT 엔터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 * *
여의도 일식집 ‘하루’.
일본어로 봄 춘<春>을 뜻하는 회원제 고급 가게의 VIP룸에는 봄을 연상하게 하는 인테리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룸 안에는 가게 이름과 달리 흡사 겨울인 듯 차가운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박상아가 만든 ‘정실모’ 멤버들이 모여 있었는데 정윤호를 잡기 위해 앞세운 방상영이 구속되어 버렸고 TNT 엔터가 수백 억대 소송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다 끝났어!!”
차가운 공기를 깨부수는 말을 내뱉은 건 TNT 엔터를 소유한 진명규 전 진성그룹 부회장이다.
굴렁쇠 엔터와 대박 증권으로부터 TNT 엔터에 수백 억대 소송이 걸린 터라 진명규는 TNT 엔터를 폐업하려는 중이었다.
소송으로 인해 자기에게 올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박상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받았다.
“알았어요. 그럼 당분간은······ 정윤호는 잊고 몸조심 좀 하죠.”
최만식은 일본에서 연락 두절이 되었고 최은태 회장을 노리는 것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박상아도 더는 정윤호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아버지의 자금책으로서 HK 그룹 홍문규 회장의 돈을 관리해 재보궐선거를 지원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홍문규 HK 그룹 회장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나도 정 실장 그놈을 치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군. 난 당분간 여기 박상아 양이랑 박 의원 쪽 선거를 집중해서 도와야 하니 후일을 도모하지.”
그때였다.
탁.
홀로 사케를 들이켜던 전 대천 그룹 회장 성학수가 잔을 놓고선 모두를 쳐다본다.
“정 실장을 공격하는 걸 절대 멈춰서는 안 됩니다!”
박상아가 짜증을 부린다.
“그러면 어쩌자고요. 이미 TNT 엔터가 날아갔으니 방법도 없잖아요?”
“상아 양. 잘 생각하게. 우리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정 실장은 더욱 빨리 크게 될 거야. 우리가 손도 못 쓸 만큼!”
HK 그룹 회장 홍문규가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크흠······ 자네 너무 정 실장을 높게 보는 거 아닌가?”
“회장님이야말로 대 HK 그룹의 셋째와 넷째를 날려 버린 정 실장을 아직도 낮게 보는 건 아니시고요?”
성학수의 말에 홍문규가 발끈한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앙?”
성학수는 눈도 끔뻑하지 않은 채 이번에는 TNT 엔터의 진명규과 진명희를 바라본다.
“두 사람 신세를 망친 것도 정윤호잖아. 거기다 이번에는 자네들이 큰돈을 투자한 TNT 엔터도 문을 닫게 생긴 데다 검찰 조사까지 받게 될 것이고.”
진명규와 진명희가 몸을 부르르 떤다.
정윤호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다.
“아무리 성 회장님이라고 해도······ 더 말하면 안 참습니다?”
성학수는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언성을 천천히 높이기 시작했다.
화를 내어야 할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걸 짚어 주면서.
“정윤호는 고작 팀장과 실장의 위치에서 내 아내를 구속시키고! 날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린 놈입니다! 여러분들께는 각자의 방식으로 치명타를 입힌 놈이고요. 그런데 그놈이 이제 상장사의 주주로서 날개를 달아 버리게 될 텐데 그때는 다들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예?”
늘 조용하던 성학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VIP 룸에 모인 ‘정실모’들의 입이 모조리 닫혀 버렸다.
성학수는 입을 다문 그들을 노려보다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후우~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놈을 날릴 기회가 없습니다. 적이 강해지면 복수할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미지근하던 홍문규도 성학수의 의견에 뜻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그도 자신의 셋째와 넷째 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정윤호를 용서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걱정이 있었다.
“다 좋은데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자네가 준비한 카드인 방상영 대표가 저리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는데.”
성학수가 눈빛을 번뜩인다.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방상영은 버리는 패였습니다.”
“버리는 패? 그럼 다음 계획은?”
그때 성학수가 대답 없이 진명규와 진명희를 쳐다본다.
“두 사람은 TNT 엔터에서 완전히 손 뗄 거지? 망하든 말든?”
“예.”
“그러면 TNT 엔터에서 두 사람의 지분을 모조리 나한테 줘.”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윤호를 고꾸라뜨릴 좋은 방법이 있어.”
다들 궁금해했지만 성학수는 계획에 방해가 된다며 말해 주지 않았다.
“내가 다 알아서 하지!”
성학수는 샐러리맨 출신으로 회장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거물.
결혼을 잘해서 바지 회장이 되었다는 세간의 비평도 있었다.
하지만 성학수는 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기라면 기었고 아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자존심도 부리지 않았다.
성학수는 그런 수모를 겪은 뒤 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정윤호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
더불어 평생을 일궈 온 모든 것들도.
그때 감옥에 있는 아내가 제안을 해왔다.
-정윤호를 짓밟아. 그럼 내가 복귀하는 대로 다시 당신을 회장으로 밀어 줄게. 아니면 이혼이야!
성학수는 대천 그룹의 회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김애자의 남편으로 남기 위해서라도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다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전심전력을 다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지금의 정윤호는 과거 대천 그룹의 회장인 자신으로서도 100% 이길 수 있다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LT 엔터의 대표이사실.
우리가 도착하자 <그녀는 예뻤다>의 원저자인 왕미인 작가와 여익환 감독 신종기 LT 엔터 대표 이은주 본부장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신종기 대표가 우릴 보고 손을 들어 환하게 맞이한다.
“여어~~ 우리 한국 최고의 여배우랑 한국 최고의 매니저가 등장 했네~ 어서 와~ 어서.”
어제 <화란전>의 시청률이 35%를 찍은 데다가 굴렁쇠 엔터의 공모가가 상한을 넘어 버린 까닭에 너스레를 떤다.
유진이와 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선 여익환 감독과 왕미인 작가와도 인사를 나눴다.
다행스러운 건 여익환 감독과 왕미인 작가도 삶에 찌들어 있었던 예전과 달리 표정이 많이들 밝아져 있다는 것이었다.
여익환 감독은 LT 엔터에서 고급 숙소 2채를 받은 뒤 본인 가족과 함께 살던 장인 장모에게도 한 채를 제공했고 굴렁쇠 엔터 소속 작가가 된 왕미인 작가는 반지하 방에서 고급 빌라인 DH 빌라로 옮겨온 까닭인 듯했다.
“정 실장님 덕분에 장인 장모님도 따로 숙소를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덕분에 저도 반지하를 벗어났어요. 햇빛 들어오는 집에서 사는 게 얼마 만인지. 요즘은 정말 살맛 난다니까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자 이은주 본부장이 시나리오를 가리킨다.
모두의 앞에 놓인 태블릿에는 왕미인 작가가 수정한 <그녀는 예뻤다>의 시나리오가 떠 있었다.
왕미인 작가가 수정된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간다.
“원래 있던 여주인공 캐릭터 서사를 좀 더 강화하고 등장인물 간의 갈등 관계는 더 부각했어요. 그리고 여주인공인 ‘한빛나’의 성공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는데 다들 확인해 보세요.”
영화 <그녀는 예뻤다>는 5인조 걸그룹 ‘엔젤윙스’가 데뷔곡 <두근두근>으로 크게 성공한 후 그룹의 리더인 ‘한빛나’가 단독 무대를 위해 홀로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교통사고로 얼굴의 반을 크게 다친 한빛나는 더 이상 무대에 서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 순간 소속사 ‘드림 기획’에서 방출당한다.
그 이후 방구석에 박혀 이름 없는 너튜브 가수로 살다가 그녀를 처음 발탁한 매니저를 만나 솔로 가수로 복귀해 성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원작자가 손을 대서 그런지 회귀 전에 본 영화 내용에 비해 사건의 인과관계와 캐릭터의 감정선이 훨씬 더 잘 살아 있었다.
난 재미와 감동 모두가 늘어난 수정 시나리오에 만족하며 천천히 손에서 태블릿을 놓았다.
탁.
그런데 주변이 너무나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모두가 태블릿이 아닌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왜 그렇게들 보십니까?”
“정 실장님이 볼 땐 어떤가 해서요.”
이 사람들이 자기 눈으로 판별해야지.
내가 무슨 흥행 자판기도 아니고 날 보고 결과를 예측하려고 하다니!
하지만 난 내 회귀 전 모든 경험과 기억을 더해 자신 있게 말했다.
“대박입니다!”
그 순간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때였다.
신종기 대표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았네.”
감독 좋고 작가 좋고 배우 좋고 제작 배급까지 결정됐는데 무슨 문제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