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0화
780. 오만의 대가 3
“내가 아는 정 실장님은 최대한 기회를 주려는 분이셔. 나한테도 그랬듯 너한테도 그러고 계신 거고.”
한소원이 정윤호란 사람에 대해 말해 주자 고은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큰 눈을 끔뻑거린다.
“정 실장님이 나한테도 기회를 주고 있는 거라고? 진짜?”
“당연하지. 너 지난주 SBC 임원도 멋대로 방송에 개입하려다가 정 실장님한테 혼나고 쫓겨난 거 들었지?”
“어 들었어······.”
“근데 정 실장님이 고작 연습생인 너 하나 못 날릴 거 같아?”
고은서는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의 터줏대감이자 국회의원인 아빠도 탑 여배우라서 어느 방송국에 가도 큰소리를 치던 엄마도 정윤호 실장 앞에서 큰소리를 치다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났으니까.
다만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되물었다.
“그러면 왜 날 봐주는 건데?”
한소원이 그건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널 봐주시는 건지는 나도 모르지. 네가 어려서일 수도 있고 네가 아직 선을 넘는 짓을 안 해서일 수도 있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아.”
“뭐?”
“정 실장님이 진짜로 화나면 엄청 무섭다는 거!”
한소원은 정윤호가 어떻게 자신을 구해 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내 준 돈을 이모 부부가 가로채서 영양실조에 걸렸던 과거도.
그리고 그 이모 부부를 정윤호가 찾아와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다는 것도.
이야기를 듣던 고은서의 눈은 아까보다 두 배나 커져 버렸다.
“······그래서 우리 이모랑 이모부. 먹은 돈 다 뱉어 냈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어. 근데 너한테나 너희 부모님한테는 안 그러셨잖아. 그러니까 봐주시는 게 확실해.”
그제야 고은서는 진짜로 이제까지 정윤호의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 난리를 쳤는데도 잔소리하는 데서 그쳤다는 것도.
“그러면 내가 진짜로 열심히 하면 잘 봐주실까?”
한소원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러실 생각 아니었으면 네가 뭐가 이쁘다고 놓아두셨겠니? 너 솔직히 재수 없었잖아.”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19살의 양빙빙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 인정. 은서 쟤 좀 재수 없었어.”
18살의 쿠도 미나츠도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나도 성격이 멋대로긴 하지만 은서는 참 얄미운 아이예요. 막내인 주제에 언니한테 버릇없이 대하고요.”
고은서가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두 사람의 말에 고은서가 발끈했다.
“언니들이나 나나 거기서 거기 거든!”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도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우리도.”
“그래요 우리도 너무 잘 알아요. 우리가 재수 없다는 거.”
양빙빙 역시 비행기에서 왕리나를 괴롭혔었다.
쿠도 미나츠는 미나모토 아오이를 따돌렸고.
두 사람 역시도 사실 고은서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잘못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세 사람은 서로를 보다 한숨을 푹 내쉰다.
자기들이 정윤호에 찍혀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소원은 그런 셋을 보며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우린 더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그 순간 고은서가 이를 악물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까지의 자기 실수를 만회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서 바뀌었다는 걸 증명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언니들. 먼저 가서 쉬어. 나 조금 더 연습하고 갈게.”
그러자 한소원이 따라 일어났다.
“리더가 어떻게 막내보다 먼저 가? 같이 해. 아직 방송까지 많이 남았으니까.”
그때였다.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 역시 발목과 손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다들 같이해. 그냥!”
“그래요. 1팀으로 묶일 날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요.”
한소원은 바뀐 아이들 덕분에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면 열심히 하고 방송 리허설 2시간 전에는 끝내자. 잠깐 쉬고서 오늘 본방 경연도 해야지.”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요.”
그때였다.
고은서가 쭈뼛대며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꺼낸다.
“알았어 리더······ 언니.”
콧대가 높던 고은서는 그동안 절대 ‘리더’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소원이 바로 자신의 리더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도 똑같이 답한다.
“뭐 나도 잘 부탁해 한 리더.”
“쳇.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요. 잘 부탁해요 리더 언니!”
한소원은 1팀을 결성하고 마지막 날에야 드디어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었다.
“고마워 얘들아. 그럼 우리 손 모으고 파이팅 한번 할까?”
한소원의 말에 네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모았다.
그리고 다 같이 손을 포갠 다음 힘차게 외친다.
“1팀 1팀 파이팅!!”
2주 차의 첫 번째 심사가 있는 날.
네 사람은 드디어 서로를 팀으로도 받아들었다.
그 덕분인지 이제까지 연습 중에 조금씩 틀리던 군무가 점점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 * *
제2 연습실에 있는 2팀으로 들어가자 도란희가 지켜보고 있었다.
“어 실장님 오셨어요?”
“어. 잘 되어가?”
“예 여긴 문제 없어요.”
난 도란희의 안내를 받아 연습실 내부의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2팀의 경우는 1팀과는 상황이 달랐다.
2팀의 리더가 전 FIVE 엔젤스 출신의 성나라였기 때문이다.
성나라는 아이돌로서 1년간 활동한 경험이 있었기에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습의 시작부터 끝까지 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자. 잠깐만 쉬었다가 하자.”
연습 휴식 시간이 되었길래 성나라를 불렀다.
“나라야. 할 만해?”
성나라는 온몸에 땀이 가득한데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예 전 괜찮아요.”
성나라의 외침에 2팀의 나머지 셋도 동시에 고개를 숙인다.
“그래. 땀 많이 흘렸네. 고생들 많다.”
“네. 땀 흘릴 기회를 받았다는 게 너무 좋아요.”
성나라 덕분에 이 팀은 따로 인성을 교육할 필요가 없겠다.
그래.
모범생들은 자습이 최고지.
“그래. 그러면 수고하고 오늘 방송 촬영 잘해. 아 나라야. 그리고 내가 말한 주의사항 기억하지?”
성나라가 눈빛을 번뜩인다.
“예 실장님.”
현재 성나라가 올린 PR 영상은 조회 수 2위다.
하지만 그 댓글 중에는 과거 FIVE 엔젤스 시절의 팬덤들이 달라붙어 싫어요를 누르며 악플을 달고 있다.
[I.O.A 베스트 조회 동영상]
······.
2. 성나라(2팀) PR 영상
(조회 수 : 359234 / 좋아요 14534 / 싫어요 2923) (댓글)
-성나라. FIVE 엔젤스 떠나서 좋냐?
-와 팀 하나 깨 먹고서 튄 주제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네.
-넌. 내가 반드시 떨어뜨리고야 만다.
-나라야 힘내!
-아 진짜. 다시 열심히 해 보려는 건데 왜 그렇게 괴롭혀? 따라다니면서 악플 다는 애들 몇 명 보이네.
-성나라 FIVE 엔젤스에서 따돌림당한 거 모름? 팬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켜 주지도 않았으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난리임?
-아 몰라. 배신자임.
성나라는 악플도 별것 아니라며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악플을 다는 팬들까지 제 팬으로 만들게요.”
FIVE 엔젤스에서 왕따당하던 시절보다 성나라의 멘탈이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알았어. 니 선에서 처리하기 힘들다 싶을 일은 매니저들한테 상의하고. 알겠지?”
“넵!”
인사를 하자 성나라는 옆에 있는 연습생들을 보며 줄을 바로 세운다.
“얘들아 인사!”
성나라의 구호와 함께 일제히 복창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다들 수고.”
성나라는 팀 리더로서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인 터라 난 그대로 연습실을 나왔다.
이후 난 다른 연습생들을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3팀에서는 왕리나를 만나서 더 자신 있게 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4팀에서는 상하이 파벌이었던 왕란의 엄살에 단단히 경고했다.
5팀의 송미희는 10년 연습생 생활을 거친 경험자답게 나무랄 데가 없어 파이팅만 해줬고 33팀인 미나모토 아오이를 만나서는 더는 왕따당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 몇 가지 충고를 전했다.
그렇게 난 온종일 숙소동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 *
방송 시작 2시간 전.
모니터링 룸으로 돌아오니 박한종 SBC 예능국장과 강대웅 CP가 와서 함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인 연출을 지영식 PD가 대형 모니터를 보며 사전 녹화 분량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얘들아~ 우리 꼭 다시 만나! 흑.
-미희 언니! 흑흑.
모니터에서는 어젯밤 연습을 끝낸 5팀 리더 송미희가 아이들과 함께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영식 PD는 연습 중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감정을 영상에 담고 있었다.
“오케이 컷! 이 파트 편집팀으로 넘겨서 이따가 방송 1부의 후반 부에 붙여줘.”
“예. PD님.”
지시를 내린 지영식 PD가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난 박한종 예능국장과 강대웅 CP에게 인사를 한 뒤 지영식 PD에게 물었다.
“사전 녹화 분량은 다 뽑으셨습니까?”
“예. 이제 잠시 후에 사전 투표 점수만 집계해 두면 될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I.O.A>는 2번에 나누어서 점수 집계를 한다.
하나는 일주일간의 미션 평가와 팬들의 사전 인기투표 합산 점수.
또 다른 하나는 방송 시간 때 경연 결과에 대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실시간 투표 점수였다.
그때였다.
장대준 엔지니어가 외친다.
“PD님. 사전 투표 종료되었습니다!”
“그래? 합산 결과부터 메인 스크린에 띄워봐.”
“예.”
대형 스크린에 방송 전 사전 투표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전 투표 점수 순위]
[심사위원 미션 평가는 심사위원 5인의 평균 점수]
[시청자 사전 투표는 1만 명당 1점으로 계산. 소수점은 반올림. (예시 : 12만 2324 = 12점.) 단 점수가 같을 땐 소수점 자리까지 반영.]
1. 성나라 : 86점 (심사위원 미션 평가 48/50점 시청자 사전 투표 38/50점) 2. 송미희 : 85점 (심사위원 미션 평가 50/50점 시청자 사전 투표 35/50점) 3. 한소원 : 84점 (심사위원 미션 평가 40/50점 시청자 사전 투표 44/50점) 4. 양빙빙 : 77점
5. 미나모토 아오이 : 76점
6. 왕리나 : 72점
······.
13. 고은서 65점 (심사위원 미션 평가 35/50점 (원래 45점이었으나 감점 –10점 반영) 시청자 사전 투표 30/50점) ······.
그 순간 모니터링 룸에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가득해지고 있었다.
“뭐야 이게?”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고은서가 13등이요?”
동영상 조회 수는 고은서가 압도적인 1등이었는데 사전 투표 결과는 예상과 달리 쭉 밀려 버렸다.
고은서는 기본적인 실력이 좋았기에 1주일 동안 진행된 미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내가 준 10점 때문에 감점이 꽤 컸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시청자 사전 투표의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동영상 조회 수에서 1등을 하고서도 말이다.
지영식 PD가 재차 확인한다.
“대준아. 이거 진짜 맞아?”
“저도 이상해서 두 번씩 체크 했는데 맞습니다. 혹시나 해서 이두오 프로그래머님께 확인했는데 정확하다고 하고요.”
다시 한번 웅성거림이 커진다.
감점이 있어도 1위를 하겠지 하고 생각한 고은서가 무려 13위까지 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늘 하루 날 따라다닌 백희영 팀장이 침을 꼴딱 삼키며 곁에서 말한다.
“진짜로······ 은서가 많이 밀렸네요?”
“제가 그랬잖아요. 단순히 조회 수가 좋은 게 아니라고요.”
내가 말한 대로 동영상 조회 수가 많아도 싫어요가 많았던 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순간 지영식 PD가 스태프들을 향해 다급히 외친다.
“다들 입 다무세요! 이따가 1부 방송 나갈 때까지 보안 유지 잘들 하시고요!”
잠시 후 1부 방송이 끝날 무렵 이 사전 점수가 공개된다.
그리고 2부 생방송에선 시청자뿐 아니라 아이돌 참가자들 역시도 이 점수를 알고 생방송 무대에 서게 된다.
자신들의 점수를 알고서 생방송 중에 보여 주는 모습으로 만회할 수 있게 말이다.
특히 방송 중 실시간 투표에서는 100점에 플러스알파 점수도 얻을 수 있었기에 이 정도 격차는 만회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박한종 국장이 헛기침하며 우릴 부른다.
“정 실장. 잠깐만······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요?”
“아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지 PD랑 강 CP랑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지.”
박한종 예능국장은 굳은 표정을 하고 먼저 모니터링 룸을 나갔다.
딱 봐도 예상치 못한 고은서의 순위를 놓고 이야기하려는 게 분명했다.
박한종 예능국장은 고은서의 부모가 누군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모르는 척 PD와 CP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어차피 그의 말은 눈곱만큼도 들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 * *
“내가 다른 건 말 안 할게. 정 실장이 은서에게 준 감점. 이것만 좀 취소하자. 응? 내가 없는 점수를 올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조율해 줄 수 있잖아?”
박한종 예능국장은 잠시 후에 SBC 대표이사와 고위 인사들이 올 거라며 내게 체면을 내려놓고 애원했다.
보통 방송국 국장이 하는 애원을 들어주는 게 상식이다.
상대 체면을 내려놓고 나왔는데 거절을 한다는 건 끝까지 가자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때 나보다 먼저 지영식 PD가 입을 열었다.
“국장님. 점수를 조작하라고 지시를 하시는 겁니까?”
“누가 점수 조작을 하재? 감점을 좀 줄여달라는 거지.”
“그게 그거죠!”
“어허! 이 친구가! 목소리 좀 낮춰! 거기다가 이거 10점 감점을 뭐라고 설명할 건데? 상위권 애 중에서 감점받은 건 7위 류란 2점 말고는 없잖아! 근데 10점이라니!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왜 없습니까? 규율 위반으로 세세한 항목을 정해 줬는데요.”
“야 그걸 누가 믿어!”
이번엔 강대웅 CP도 내 편을 들고 나선다.
“국장님. 은서가 자기 아버지 부른 것만으로도 방송에서 쫓아내도 걘 할 말이 없습니다. 10점으로 끝내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이봐 강 CP. 솔직히 말해서 은서가 아빠 불렀다는 증거 있어? 어? 그냥 정 실장이 추측만 하고서 막 내지른 거잖아!”
박한종 예능 국장의 말대로 고은서는 직접 자기 입으로 불렀다고 말한 적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지영식 PD와 강대웅 CP의 입이 닫혀 버렸다.
박한종 예능국장이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이 답답한 인간들아. 고은서 아빠가 과방위 소속이야. 다시 안 온다고는 했지만 진짜로 감점이 된 거 확인되면 어디 가만히 있을 사람이야? 온갖 형태로 프로그램에 방해가 들어올 거라고! 그리고 오늘 대표님이랑 선거철에 온다는 사람들이 바로 그 과방위라는 소식이 있다고!”
박한종 예능국장이 답답하다며 가슴을 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딱 하나 있지.
“국장님. 은서한테 직접 물어볼까요?”
“뭐?”
“말씀대로 은서가 아빠를 불렀었는지 아닌지 들어 보죠. 은서가 고준택 의원을 부른 게 맞으면 그대로 가고 아니면 취소하도록 하죠.”
아까 전 1팀 리더인 한소원이 따로 날 찾아와 고은서가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잘 봐달라고 부탁했었다.
이번 기회에 고은서가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진짜지? 진짜 약속한 거다?”
“예.”
“오케이.”
박한종 예능국장은 즉시 고은서를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 * *
잠시 후.
흰색 바탕에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인 상의에 연분홍 플레어 치마를 입은 고은서가 나타났다.
“1팀 고은서입니다!”
고은서가 90도 인사를 마치자 박한종 예능 국장이 다정하게 말한다.
“우리 은서. 잘하고 있지?”
“예. 국장님. 근데 왜 부르셨어요? 저 팀원이랑 마지막 연습 한 번 더 하기로 했는데요?”
“아~ 그게 말이다. 내가 너 감점받은 거에 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씀하세요.”
“지난주에 너희 아빠. 그거 말인데······ 네가 부른 거 아니지?”
고은서가 놀라서 눈을 끔뻑이며 날 쳐다본다.
그러나 박한종 예능국장이 다급히 그 시선을 막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아니라고 답하면 감점이 없을 거라고 정 실장이 약속해서 내가 확인하려고 부른 거야.”
어른이 아이를 망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진짜요? 감점이 사라진다고요?”
“그래.”
지영식 PD가 항의하려고 했지만 난 지영식 PD를 말렸다.
고은서가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따라 나 역시 대우를 다르게 하면 되니까.
내가 이제껏 고은서를 봐준 건 그녀가 저지른 모든 실수는 부모의 과보호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다르다.
점수 감점을 받기 싫어서 자신이 저지른 짓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땐 더는 용서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고은서. 네 인생은 네가 결정해.’
회귀 전 내가 아는 고은서라면 당연히 자기 이익을 위해 아빠를 부른 적이 없다고 말할 거다.
난 팔짱을 낀 채 과거의 고은서와 현재의 고은서가 다른지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고은서가 내 쪽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자신의 운명이 걸린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