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1화
771. 시나리오의 주인 3
MBS 최상병 대표가 화를 내며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과 함께 임원 회의실로 들어왔다.
임원 회의실의 상석에 앉은 최상병 대표는 곧장 가애주 대표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애주 넌 방송 아카데미로 내려간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감을 잃었냐? 어? 정 실장이 일개 매니저? 히야~ 요즘 들은 말 중에 제일 쌈박한 개소린데?”
평소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부터 나누던 사이인 최상병 대표가 폭언을 퍼붓자 가애주 대표는 놀라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예?”
“하여간 이래서 현업을 떠나면 안 돼. 야! 가애주. 정 실장이 요즘 우리 방송국에 얼마를 벌어다 주는지 알기나 아냐? 앙?”
“돈을······ 벌어다 주다뇨? 매니저가 어떻게요?”
“이거 봐 이거. 아무것도 모르니까 겁도 없이 그딴 소리를 지껄이지. 야 지금 <화란전>에 들어오는 협찬 절반은 정 실장이 혼자 물고 들어오는 거야! 제작 PD가 할 일까지 다 해주는 정 실장을 일개 매니저? 니가 뭔데 정 실장을 깎아내려?”
가애주 대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씩씩대며 말한다.
“그 그래도 저흰 MBS잖아요! 우리가 매니저의 눈치를 본다는 게 말이 돼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여보세요. 가애주 아카데미 대.표.님. 그러다가 정 실장이 관리하는 배우들이 MBS랑 일을 안 하겠다고 보이콧이라도 하면 댁이 책임질 수 있어요? 지금 <화란전> 시청률이 33.9%야. KBC에서 특집으로 만든 <정희왕후>가 웰메이드 소릴 듣고 소이영이 역대급 연기력을 뽐내는데도 18%에 박힌 이유가 정유진 덕분이라고! 그래서 내가 요새 다른 방송국 사장들과 만날 때마다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지 알기나 해?”
가애주 대표는 예상치 못한 질책에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최상병 대표가 혀를 차며 이번에는 김성운 PD를 쳐다본다.
“이봐 김 PD. 지금 <무한 취업 시대> 시청률이 몇이지?”
“이번 주 화요일에 22% 막 돌파했습니다. 동 시간대 1위입니다.”
“프로그램 협찬 상황은 어때?”
“저번 달보다 30% 증가했습니다. 여기 정 실장이 소개해 준 곳들에서 추가 협찬을 해왔습니다.”
최상병 대표는 이어서 한석영 예능국장을 노려보며 질책한다.
“한 국장. <전지적 관찰 시점>은 어때? 그거 정 실장이 완전히 되살려 줬잖아. 채미현이랑 덕배랑 심지어 정 실장 본인도 출연하고 있잖아. 안 그래?”
한석영 예능국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기 시작한다.
“예. 덕분에 현재 시청률이 15%까지 상승했습니다.”
“그치? 그리고 거긴 기획도 도와줬다며?”
“예······.”
“거기다 진성이 팍팍 밀어주고 있고.”
진성 그룹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한석영 예능국장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뿐이 아니지. 여기 왕 작가 <토크쇼! 연예 세상> 입봉도 정 실장이 서포트해 줬다며?”
“예······ 마 맞습······니다.”
그 순간 최상병 대표가 큰소리로 외친다.
“야! 인마! 그걸 다 아는 놈이 천 이사랑 붙어먹어? 이 새X 이거 의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놈 아냐?”
“그 그게 아니라 대표님······.”
“시청률 댕겨줘 협찬 꽂아줘! 그렇게까지 도와줬는데도 정 실장이 매니저니까 막 해도 되겠다 싶어? 야! 이런 문제가 생기면 딴 사람은 몰라도 너는 정 실장 편을 들었어야지! 안 그래?”
한석영 예능국장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듯 고개를 숙인다.
“쯧쯧 다들 받아먹을 줄만 알지 고마워할 줄을 몰라! 하여간 다들 방송국에 머물다 보니까 염치를 다 팔아먹은 게지. 쯧쯧.”
최상병 대표는 다들 한 번씩 욕을 해준 뒤 다시금 가애주 아카데미 대표를 노려본다.
“가애주. 너 너무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스스로 사퇴한다고 발표해.”
“대 대표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닥치고 내 말 들어. 이건 네 목을 내놓지 않으면 해결이 안 돼. 정 실장 저 친구가 얼마나 독한 줄 알아? 저 친구가 밖에 나가서 기자들 붙잡고 인터뷰라도 하면 어떻게 할래? ‘젊은 작가의 시나리오를 멋대로 훔쳐서 영화화 하려던 MBS!’ ‘청년 시대의 꿈을 짓밟는 MBS!’ ‘방송 아카데미를 만든 건 어린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기 위해서인가?’ 뭐 이런 기사라도 터트리면 어떻게 할 건데? 엉? 니가 책임질 수 있어?”
아니 난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대체 내 이미지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다.
“아니다 주말은 무슨. 그냥 내일 아침에 사표 써.”
“대표님!”
최상병 대표는 가애주 아카데미 대표의 말을 무시하곤 양상혁 이사를 노려본다.
“그리고 양 이사는 가애주가 내일 아침까지 사표 안 쓰면 양 이사가 대신 기자 회견 진행해.”
“제 제가요?”
“그래 임마. 네가 애주 편을 자꾸 들어주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저 공정한 사람입니다.”
“공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가 아카데미 쪽 부조리를 눈감아 주니까 거기서 참신한 젊은 작가들이 안 나오는 거 아냐! 시나리오를 잘 쓰면 뭐 해? 쓸 만한 건 이렇게 다 가로채는데! 애주가 아카데미로 간 이후 이런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감사 한번 해볼까?”
“······아 아닙니다.”
“그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애주가 사퇴 안 하면 내일 아침에 대국민 사과하고 가애주 퇴출 발표해. 문구는 ‘MBS 내에서는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잘못된 일들이 있다. 가애주 대표는 그에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를 했으며 앞으로 MBS는 청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겠다. MBS 양상혁 이사’로 하고!”
“예.”
가애주 아카데미 대표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녀의 눈물에는 아무런 동정이 가지 않았다.
작품을 빼앗기고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을 젊은 작가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최상병 대표는 그런 가애주를 무시하곤 최은세 작가를 노려본다.
“최 작가도 그동안 고생 많았어. 다른 방송국에 가서도 건승해. 파이팅!”
“대 대표님.”
“설마 이 난리를 쳐놓고 염치도 없이 우리 방송국에 붙어 있으려고? 너 요새 아랫사람들 대본 훔쳐서 쓴다며? 하긴 가애주랑 붙어 다니니까 못된 버릇만 배웠겠지.”
순간 최은세 작가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한다.
“대 대표님.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예? 제 제가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할게요.”
그러자 최상병 대표는 완전한 타인을 대하듯 높임말로 말한다.
“최 작가님~ 내일 가애주 대표 옆에 나란히 서서 자아비판을 하고 싶은 거 아니면 당장 나가 주시겠습니까? 그냥 이대로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빌어도 통하지 않자 최은세 작가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애주 대표와 함께 두 사람은 휘청이며 회의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 순간 에브리데이의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3]
[날짜 : 2021년 3월 27일]
-PM 10: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NEW. 정유진]
<연예계 방방곡곡> “정유진의 신작 영화는 표절작?”
[연예올타임즈] “정유진의 첫 영화 제작 무산.”
[산업일보]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 굴렁쇠 엔터 상장에 예상치 못한 악재 발생.”
(긴급회의 : 고기동 감독의 시나리오와 원본 시나리오 사이에 80% 이상의 일치를 확인.))
그렇게 가애주 대표와 최은세 작가는 고기동 감독이 왕미인 작가의 시나리오를 훔친 것을 비호하다 정작 자신들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 * *
두 사람이 나가고 나자 최상병 대표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차가운 ‘THE 베스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언제 먹어도 이게 제일 입맛에 맞아~”
‘띠링.’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또 한 병 매출의 1.2%가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신 최상병 대표는 마지막으로 천이상 이사를 쳐다본다.
“그리고 천 이사.”
“예 대표님.”
“박은빈을 띄워 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남의 시나리오 가지고 그러지 말자. 그건 너무 양아치 같잖아. 업계 1위 TK 엔터의 제갈량 천이상 이사가 어쩌다 이리됐어? 응?”
천이상 이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상병 대표는 혀를 차더니 양상혁 이사에게 말한다.
“양 이사. 난 여기 정 실장과 드라마국 쪽 사람들이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 데리고 나가. 그리고 나가면서 고 감독한테 전화 좀 해. 앞으로는 MBS에 발 디디지 말라고.”
양상혁 이사는 알겠다며 마치 패잔병이라도 된 듯 모두를 데리고 임원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쿵.
문이 닫힌 순간 최상병 대표가 김격식 국장에게 지시를 내린다.
“김 국장은 조만간 본부장 승진 준비해.”
“예? 제가요?”
“그래 본부장 밟고 내년 초에는 이사로 승진시켜 줄게. 양상혁이 저놈은 그냥 뒀다간 회사가 망할 판이야. 다음 인사에는 무조건 날려야겠어.”
“······알겠습니다.”
이번 일에 얽힌 모든 이들이 모두가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폭풍 같은 지시를 내린 최상병 대표가 날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자~ 정 실장. <그녀는 예뻤다> 드라마 판. 그건 우리 MBS에서 할 거지?”
역시나 대표는 대표다.
이렇게 해줬으니 내놓으라는 게 있다고?
하지만 그냥은 못 내주지.
“예.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난 잠시 심호흡을 하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왕 미인 작가님이 캐스팅에 대한 모든 전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신인 작가한테 배역 캐스팅 권한을 넘기라고?”
PD나 제작사를 지정해 달라고 할 줄 알았던 최상병 대표의 눈이 큼지막해진다.
당사자인 왕미인 작가도 놀란 표정이고.
하지만 내가 신인인 왕미인 작가에게 캐스팅을 맡기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회귀 전 왕미인 작가는 예능 작가로 성공한 뒤 그녀는 드라마 작가로도 성공하게 된다.
10대 쌍둥이 축구 선수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 <우리두리 형제들> 청소년들이 가출해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이 템포로 다룬 <열혈 고딩 방랑기> 등으로.
그리고 당시 두 작품 모두 대형 스타를 쓰지 않고 과감하게 신인을 주연으로 내세우고 아이돌 출신 배우들을 조연으로 배치하고도 시청률 20%를 연달아 넘겨 버린다.
즉 왕미인 작가의 퍼포먼스를 최고로 끌어내려면 배우들의 캐스팅 권한이 그녀에게 있어야만 했다.
“정 실장님······.”
왕미인 작가가 괜찮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모르는 그녀 본인의 재능을 이 세상에 나만은 알고 있으니까.
“절 믿어 주십시오 작가님.”
최상병 대표가 있는 자리라서 부담되는지 왕미인 작가가 눈을 질끈 감고 답한다.
“실장님 말씀대로 할게요.”
왕미인 작가를 설득한 난 다시금 최상병 대표를 쳐다봤다.
최상병 대표가 헛웃음을 짓는다.
“신인 작가한테 캐스팅이라. 어차피 정 실장이 도울 테니 그거야 그렇다 쳐. 하지만 주연만이라도 좀 우리가 고르는 게 어떨까? 안전을 위해서 하는 말일세. 실패할 경우 왕 작가의 부담이 너무 커.”
“주연은 제가 추천할 사람이 있습니다.”
“설마 유진 씨? 영화랑 드라마랑 같이 공동 주연을 맡길 셈인가?”
최상병 대표의 얼굴에 희망이 깃든다.
“아뇨.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은 배역 설정대로 아이돌 출신의 배우를 선택할까 합니다.”
“아이돌 출신이라니? 누구?”
“은아면 어떨까 합니다만.”
“은아? 유은아? 체리블라썸의 그 은아?”
“예. 최근에 <시공의 발레리나>에서 연기자로 데뷔했잖습니까?”
“아~ 그래 우리 딸이 그 영화를 보고 와서 은아 연기 잘한다고 하던데 은아면 괜찮지.”
최상병 대표의 얼굴이 환해진다.
체리블라썸이라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등장만으로도 화제 몰이는 확실하니까.
“하여간 이 친구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군. 그러면 PD랑 제작사는 우리 쪽에서 해도 되지?”
“예. 그래도 이왕이면 김성운 PD님이 맡아 주셨으면 좋겠고 ‘미리내’에 맡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던 김성운 PD가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정 실장님이 그 작품을 다른 PD님한테 준다고 했으면 오히려 제가 드러누웠을 겁니다.”
최상병 대표는 결국 다 해달라는 소리 아니냐며 한참을 웃어댔다.
하지만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허락해 줬다.
“그래. 뭐 나로서야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해. 대신 오늘 일은 외부로 발설하지 마. 그것만 지켜 주면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해.”
최상병 대표는 알겠다며 이어서 유진이를 쳐다본다.
“유진 씨. 첫 영화. 꼭 성공하길 바라지. 영화가 크게 흥행해야지 드라마도 그 기운을 받아서 크게 성공하거든.”
“대박 칠 거예요. 제가 저희 오빠한테 천만 관객 나올 영화를 골라 달라고 했거든요.”
“천만? 이거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데?”
회귀 전 박은빈이 주연이었던 <그녀는 예뻤다>는 350만 명의 관객 수를 달성했다.
그런데 유진이는 그 영화로 천만을 찍겠다며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700만까지 나오면 잘 나온 걸 테지만 유진이의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니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 까짓것 하지 뭐!
하지만 대신 감독은 반드시 바꿔야 했다.
그사이 최상병 대표가 왕미인 작가를 쳐다본다.
“왕 작가. 일이 좀 꼬였지만 내가 팍팍 밀어주는 걸로 오늘 일을 사과하지. 입봉 축하 선물이라 생각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앞으로는 여기 김 국장이랑 김 PD랑 이야기해.”
왕미인 작가는 바라는 게 없다며 고개를 저으려고 했다.
그 순간 난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구내식당이요.
그때 왕미인 작가가 아차하고 말한다.
“전 이제 굴렁쇠 엔터 소속이니까 아니라고 해도 MBS 작품을 하는 프리랜서 작가도 구내식당은 직원이랑 동일가로 먹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최상병 대표는 몰랐는지 부끄럽다는 표정을 짓고 되묻는다.
“그 그게 차이가 났나?”
“예 끼당 2천 원씩이요.”
“다 당장 바꿔주지.”
“감사합니다.”
작가들의 밥값을 낮춰주고 시나리오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왕미인 작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절망에 빠졌다가 끝끝내 행복을 이뤄내는 <그녀는 예뻤다>의 주인공처럼.
* * *
유진이와 난 MBS 앞에 있는 감자탕집에서 특자를 포장한 다음 LT 엔터의 신종기 대표를 만났다.
그러고선 오늘 일어난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신종기 대표는 고기동 감독이 시나리오를 훔쳤다는 사실을 들은 뒤 분통을 터트렸다.
-걱정하지 마 정 실장. 앞으로 다시는 고기동 감독의 이름이 LT 엔터에서 걸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과거 영화들도 낱낱이 조사해 보라고 하겠네.
신종기 대표는 절대 고기동 감독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이후 신종기 대표는 <그녀는 예뻤다>는 주연 정유진과 시나리오만 빼고 제작사와 감독 모두를 새롭게 구해야겠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그리고 자세한 건 내일 굴렁쇠 엔터의 소강당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장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LT 엔터를 나서 집에 돌아오니 오후 9시가 되었다.
마당에 차를 멈춰 세운 난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진이가 창문에 기대 눈을 감고 있다.
얼굴을 덮고 있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깊은 잠에 빠진 유진이의 얼굴이 보인다.
‘그래 5분 만이라도 편하게 자.’
그런데 좋은 꿈을 꾸는지 유진이가 흐뭇하게 웃고 있다.
눈은 반달로 휘어지고 입은 오물오물거리면서.
응?
잠깐만?
오물오물?
그때였다.
유진이가 머리카락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잠꼬대를 하기 시작한다.
“감자탕······ 먹을······ 거야······.”
어쩐지 행복하게 웃더라니 먹는 꿈을 꾸고 있었군.
아무래도 깨워야겠다.
“유진아 다 왔어. 일어나서 밥 먹자.”
유진이가 눈을 번뜩 뜨더니 손으로 머리카락을 빼내고 입을 가린다.
“스읍~”
“침 안 흘렸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정 피곤하면 올라가서 자.”
유진이가 비몽사몽간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나 감자탕 먹어야 해요.”
“그럴 줄 알았다. 그럼 들어가자. 미소도 기다리고 있어.”
“아우~~웅~ 예.”
달칵.
난 기지개를 켜는 유진이의 안전벨트를 풀어 줬다.
그리고 먼저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서 포장한 감자탕을 꺼냈다.
그러고선 조수석에서 휘청거리며 내리는 유진이를 부축했다.
“아으~ 오늘 반나절 따라다녔는데도 죽겠네. 오빠는 진짜 일 좀 줄여야 해요.”
“잠에서 깨자마자 잔소리니?”
“걱정돼서 그러죠.”
“알았어. 상장만 끝내면 쉴게. 회사 정비되면 신입 매니저도 더 영입할 거고.”
“약속?”
“약속~”
유진이는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은 후에야 내게 부축을 받고 1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1층 현관문을 열기 전 유진이에게 말했다.
“아 맞다. 선물 준비한 거 있어.”
“선물이라뇨?”
“영화 첫 주연을 하게 된 축하 기념이랄까?”
유진이가 잠이 가신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본다.
“뭔데요?”
“백문이 불여일견.”
“쳇. 그냥 말해 주지.”
툴툴대던 유진이는 기대가 되는지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연다.
끼익.
문을 연 순간 정인지 주인아주머니 한유식 대표 부부가 꽃다발을 건넨다.
“이게 웬 꽃이에요?”
“호호. 유진 씨 첫 영화 맡게 된 거 축하하려고.”
유진이가 꽃다발을 받아 들고 감동한 표정을 짓는다.
“다들······ 감사해요······ 정말······.”
유진이가 고맙다며 날 올려다본다.
“아직 끝이 아니야.”
“또 있어요?”
그때였다.
주방 구석에서 강은기와 미소가 은빛 쟁반을 들고 오고 있었다.
각각 한 마리씩.
유진이에게 사주겠다고 약속했던 두 마리의 베이징덕이다.
“엄마! 삼촌들이 베이징덕 사 왔어!”
은빛 쟁반 위로 캐러멜라이즈되어 맛있는 색을 내는 베이징덕이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고 있다.
베이징덕을 본 유진이의 얼굴은 꽃을 봤을 때보다 3배는 더 환하게 밝아졌다.
그 순간 유진이가 고개를 돌리고선 쌍 엄지를 치켜든다.
“우리 매니저 오빠 최고!!”
담당 연예인을 언제나 웃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류 매니저로서의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