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77. 표절 2
“삼촌 뮤직.”
“삼촌 뮤직이요?”
“어. 선우 처음 만나러 왔던 그놈들.”
하지만 어떻게 우리보다 먼저 저작권을 등록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삼촌 뮤직이 우리보다 먼저 방선우를 만났다지만 방선우는 아마추어 작곡 카페에 있는 두 곡 말고는 들려준 적도 없다고 했는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선우한테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이동민 실장이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라도 한참 작업 중인 선우 멘탈이 흔들릴까 싶어서 대충만 물어봤다. 근데 선우는 삼촌 뮤직 사람들이랑은 잠깐 방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때 곽무혁 법무팀장이 나섰다.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해킹 같은 걸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선우가 쓰던 아이패드를 받아다 분석의뢰도 해 놓은 상태야.”
언제 정확히 곡을 만들었는지 증명할 수 있다면 재판으로 갔을 때 유리해진다며.
“아······.”
그때였다.
문자를 확인하던 곽무혁 법무팀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잠깐만. 삼촌 뮤직이 어떤 곳인지 조사 의뢰한 게 들어 왔다네.”
까똑 까똑.
곽무혁 팀장은 자신이 받은 자료를 모두의 까톡으로 보내줬다.
그런데 파일에 있는 대표 얼굴을 본 순간.
이동민 실장과 강지영 본부장이 동시에 외쳤다.
“뭐야? 이 새X였어?”
곽무혁 팀장이 되물었다.
“아는 사람인가요?”
이동민 실장이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최현오라고 기억 안 나세요? 표절 사건으로 묻힌 놈 있잖아요. 홍대 인디 밴드 <블러디메리>에서 보컬로 활동하던.”
최현오는 홍대 인디 밴드 시절엔 꽤 잘 나가던 보컬 겸 기타리스트였다.
아르헨티나의 무명 밴드 EL SANDRO의 곡을 카피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는데 한국의 한 팬이 원저작자의 스타그램에 그 사실을 알리면서 난리가 났다.
국제적인 표절 사례로 각인되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의 뉴스에서도 다뤄졌으니까.
씩씩대는 이동민 실장을 강지영 본부장이 달랬다.
“이 실장님. 일단 화 좀 삭이세요.”
이동민 실장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최현오 이 인간. 실장님께서 한번 만나 타일러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의뢰한 분석 결과가 나오면 법정으로 가야 할 테니까 험한 꼴 보지 말자고요.”
강지영 본부장의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강지영 본부장의 승인이 떨어지자 나는 급히 손을 들었다.
“저기 저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정 대리도요?”
삼촌 뮤직은 생소했었지만 최현오라면 나도 알고 있다.
미래에는 강남 브라더스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해 비슷한 짓을 하던 인간이니까.
이동민 실장과 함께 일어나자 강지영 본부장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두 사람. 박한철 1실장이 이번 일을 숨긴 건 입 다물고 계세요.”
박한철 가수 1실장은 아직도 방선우의 곡이 표절 대상이라는 걸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있다.
강지영 본부장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본부장님.”
그렇게 이동민 실장과 난 삼촌 뮤직으로 향했다.
저작권 양아치 최현오를 만나기 위해서.
* * *
박한철 가수 1실장은 운영 이사의 호출에 그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동수가 이기철 이사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소파에 앉자마자 김동수가 박한철을 추켜세웠다.
“흐흐. 박 실장님. 이번에 큰일 하셨던데요?”
“큰일은 무슨. 저작권 협회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일이 잘 풀린 것뿐인데.”
박한철 실장은 가수 2실을 엿 먹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곤 저작권 협회의 장명수 이사에게 방선우의 곡에서 ‘표절’에 걸릴만한 게 없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대조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아예 기존의 곡과 멜로디가 똑같은 곡이 무더기로 쏟아졌다는 연락이 왔다.
“허허.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고 있다고 하나?”
“예. 심사 위원회의 검토가 끝나면 일주일 안에 공문으로 표절 연락이 올 겁니다. 그러면 기자들에게 먹이로 던져 줘서 바로 터트릴 생각입니다.”
이기철 이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기회에 그걸 제대로 이용해 체리블라썸을 묻어버릴 방법 같은 거 없냐?”
순간 김동수가 나섰다.
“표절 사건을 잠깐 덮고 있다가 컴백 때에 맞춰 터트리면 안 될까요?”
박한철도 거기에 반색하며 동조했다.
“그거 좋은데요?”
이기철 이사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위원회 인사들한테 저작권 문제를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해결해 보겠다고 시간을 끌어봐. 그러다 체리블라썸이 컴백 할 때 맞춰서 안 됐다고 해. 그러면 이 실장이 손도 못 쓸 거 아냐?”
이기철 운영 이사의 말에 박한철 실장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부를 해댔다.
“역시 이사님의 심모원려는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허허. 뭘 또 그렇게까지. 오늘은 기분이 좀 좋네. 다들 한잔하면서 지난 이야기나 좀 나누는 게 어때?”
“제가 봐 둔 곳이 있으니 오늘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강지영 본부장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서울예술종합대학 라인들은 곧장 강남의 룸살롱으로 향했다.
밤새도록 놀기 위해 전화도 꺼 놓은 채.
* * *
신사동 삼촌 뮤직의 사무실.
사장인 최현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새끼. 이건 또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몇 번의 발신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헤이~. 에필. 잘 지냈어?”
-갑자기 웬 전화야? 괜찮은 물건이라도 건졌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유명 작곡가 에필 K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에필 K의 반말에 최현오는 속으로 쌍욕을 해댔다.
하지만 성질을 억눌렀다.
밉살스러운 놈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중한 고객님이니까.
“당연히 좋은 물건이 들어왔으니까 전화했지. 내가 특별히 제일 먼저 챙길 사람이 누구겠어?”
-흥. 개소리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봐. 이번엔 얼마인데?
“곡당 2천.”
-뭐 뭐야? 2백도 아니고 2천이라고? 끊어!
평소에 거래하던 건 한 곡당 평균 3백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몇 배나 더 달라는 소리에 에필 K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자 잠깐. 한번 들어보면 생각 바뀔 거라니까? 이번엔 진짜 좋은 곡이야.”
에필 K가 전화를 끊으려다 멈칫거렸다.
최현오가 직접 작곡한 곡은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지만 곡을 알아보는 귀만큼은 최상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최현오는 급히 앞부분 30초의 멜로디를 플레이시켰다.
달칵.
-······이거 한 곡만이야?
“아니. 총 20곡. 한 사람 건데 한꺼번에 사면 특별히 10% 디스카운트 해줄게. 생각 있어?”
연간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한국 최고의 아이돌 작곡가인 에필 K에겐 부담은 되나 불가능한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에필 K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내일까지 연락 줄게.
최현오가 허공에 대고 주먹을 흔들어댔다.
좀생이 새X라고 입을 벙긋대면서.
그러나 실제로 입에서 나온 말은 웃음이 가득 섞인 말이다.
“째깍째깍. 내일 밤 12시가 되면 할인 끝납니다? 고객님? 얄짤 없이 곡당 2천이야?”
-······거머리 같은 새X.
전화를 끊은 최현오가 킬킬거렸다.
거머리라도 왕 거머리가 되면 팔자를 피는 거니까.
“크크크. 늘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필 K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달칵.
“김필석 이 인간 하여튼 싸가지 하고는. 내가 지보다 몇 살이 많은데 반말질이야? 에필 K? 네 본명이 김필석인 거 아는 사람은 다 알아 인마! 야 형준아. 요구르트 하나 더 꺼내 봐라.”
곁에서 짜장면을 먹던 형준이란 이름의 거구가 머리를 긁적였다.
“냉장고에 남은 요구르트가 없습니다 형님.”
최현오가 인상을 구기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곤 잡힌 지폐를 구겨 던지며 외쳤다.
“편의점은 다 무너졌냐? 이 새X야?”
최현오의 짜증에 형준이란 거구가 바닥에 떨어진 만 원짜리를 줍곤 굽신대며 나갔다.
* * *
끼이익.
강남역 4번 출구의 이면 도로 2층 삼촌 뮤직의 간판이 보였다.
음반 제작 음원 유통 가수 발굴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대충대충 만든 싸구려 간판이 꼭 대부업체 같다.
이동민 실장이 위를 올려다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저 구린 센스 하고는. 양아치 같은 놈이니까 조심해라.”
“예. 실장님.”
이동민 실장의 뒤를 따라 삼촌 뮤직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 명의 남자가 군용모포를 펴놓고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짝!
“묻고 더블로 가!”
세 명의 남자는 모두 담배를 물고 있어 10평 정도 되어 보이는 사무실이 마치 너구리굴 같다.
“뭐야? 이 실장 아냐?”
이동민 실장과 눈이 마주친 최현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쯧. 사는 꼴 하고는.”
이동민 실장의 혀를 차는 소리에 최현오가 쏘아본다.
“여긴 왜 왔어?”
“왜 왔을 거 같냐?”
최현오의 물음에 이동민 실장이 소파에 앉으며 틱틱거렸다.
“사람이 왔으면 담배는 좀 꺼라. 새꺄. 좀 치우고 좀 살고. 사무실이 이게 뭐냐?”
이동민 실장이 발로 테이블 위의 모포를 툭툭 민다.
평소에는 이런 무례한 짓 따윈 절대 하지 않는 이동민 실장은 방선우의 곡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까칠하게 변했네 우리 이 실장. 아니다. 그냥 할 말만 하고 꺼져. 나 일해야 해.”
최현오가 모포를 거두며 대꾸하자 이동민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일? 우리 선우 곡을 누구한테 팔려고?”
최현오의 표정이 바뀌었다.
“선우······ 곡? 아 그 일로 오셨구나?”
최현오는 입가에 묻은 짜장을 핥고는 곁에 있던 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
“상택아. 음료수 좀 내와라. 내 얼굴 보러 온 줄 알았더니 손님이시네.”
“예.”
옆에서 고스톱을 치던 한 사람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키는 170cm 정도에 다부진 체형의 남자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낯이 익었다.
‘차상택?’
회귀 전에 악연이 있는 인간이다.
복서 출신의 조폭 출신인데 차후 트로트 가수 붐에 편승하며 꽤 성공하는 음반 기획사 사장이 된다.
그 뒤 메이저로 진출하려고 탑 엔터테인먼트의 가수를 빼가려고 했었고.
하지만 그건 10년 뒤의 이야기.
차상택은 수가 틀리면 주먹을 쓰는 거친 인간인 걸 알았기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했다.
그 사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동민 실장과 최현오의 다툼은 점차 격해지고 있었다.
“우리 곡 빼돌려서 수작 부리는 거 다 아는데 함부로 먹으면 너희 다 뒤져 인마. 딴 생각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저작권 등록한 거 알아서 취소하라고!”
“우리가 너희 곡을 훔쳤다고? 증거 있냐? 나 진짜 억울해지려고 하네? 아 눈물이······”
최현오가 두 손으로 눈물을 쥐어짜는 연기를 하자 이동민 실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소로운 짓 하지 마 최현오. 너한테 당한 애들이 흘린 눈물에 비하면 넌 네 몸에 있는 물을 다 짜내도 절대 못 비비니까.”
“아 씨X. 이 실장. 나도 좀 먹고살자? 어?”
“그러니까 정직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라고! 남을 등치지 말고!”
이동민 실장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둘 사이 어떤 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래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최현오가 한숨을 폭 내쉬며 포기했다는 듯 손을 흔든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고. 우리 인연을 생각해서 싸게 넘길게. 곡당 2천에. 거 들어보니 곡 좋더만.”
“2천? 제정신이야?”
최현오가 피식 웃는다.
“왜? 난 진짜 호의로 권한 거라니까? 당신이 아니더라도 살 사람 많아.”
이동민 실장이 비꼰다.
“너랑 거래하는 얼간이도 있냐? 비위도 좋은 놈일세.”
“흐흐흐. 이 판에 곡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쪽이 더 잘 알잖아. 안 그래?”
최현오도 나름 대단하다.
이동민 실장이 작정하고 으르렁대고 비꼬는데도 연신 웃고 있었으니까.
“어떤 놈한테 넘기려고?”
“글쎄? 누굴까? 알아~ 맞춰 보세요?”
이동민 실장이 최연오에게 휘말린다.
안 되겠다.
내가 나서야 할 타이밍이었다.
깐죽대는 최현오에게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에필 K가 삼촌 뮤직 단골이라던데 보나 마나 그 인간이겠죠.”
순간 최현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동시에 사무실의 공기가 싸해졌다.
최연오가 거래하고 있는 상대를 맞췄기 때문일 거다.
이동민 실장이 바뀐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아 그런 거였어? 그러면 일단 에필 K부터 찾아가 봐야겠네. 우리가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도 사려고 할까?”
순간 이동민 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였다.
최현오가 음료수를 가지고 오던 차상택에게 외쳤다.
“이것들 못 나가게 막아!”
순간 차상택은 고민도 없이 쟁반을 위로 던지고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