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4화
754. 해결되지 않은 문제
최은태 회장의 긴박한 목소리가 폰을 타고 들려온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만식이 그놈이 곧 한국에 돌아올걸세.
“일본에 구속되어 있는데 어떻게 말입니까?”
일본 자회사 대표인 스즈키는 어떻게든 일본에 최만식 대표를 붙잡아 두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서재일 검사는 최만식이 살인 청부를 저질러도 일본에 소환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굴렁쇠 엔터의 주식 상장 전까지는 한국 땅을 밟을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런데 최만식 대표가 한국으로 온단다.
-서 검사의 윗선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걸로 일본 측과 딜을 했다는군. 아마도 박상곤 의원의 지시겠지.
박상곤은 자기 사위가 일본 구치소에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선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손을 쓴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 감옥에서 한국 감옥으로 오는 거 아닙니까? 뭐가 걱정입니까?”
범죄자를 인도받는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일본 구치소에서 한국 구치소로 옮겨지는 것뿐이었다.
최만식은 출소하려던 강은기를 죽이기 위해 살인 청부를 한 흉악한 범죄자니까.
하지만 최은태 회장이 이번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한다.
-지난번 은기를 습격한 놈들 절반이 증언을 번복했네. 나머지 놈들은 협박당했는지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고. 그래서 최만식은 불구속 상태로 조사받을 가능성이 크네. 어쨌건 자세한 건 와서 이야기하지.
현재 재보궐 선거는 박상곤 의원이 이끄는 여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윗선도 박상곤의 사위가 될 최만식을 구속시키지 않을 거란다.
그나저나 최만식이 풀려난다면 예사 심각한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당장 출발하려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런데······ 은기 쪽에는 요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가?
옆을 슬쩍 쳐다보자 강은기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전화기에서 들려 나오는 목소리 덕분에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알지만 아직은 직접 통화하긴 어색한 기색이다.
“예. 은기는 괜찮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은기 쪽에 경호원을 더 확충했으니 그렇게 알아 두라고 전해 주게.
“예.”
전화를 끊은 난 강은기를 향해 들은 말을 전했다.
“최만식이 한국에 온단다. 근데 감옥에 가서 조사받는 게 아니라 일단 풀려날 거 같다는데?”
“하긴 나이가 든 최 회장보다는 최만식 대표 쪽이 젊고 그 장인 될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니까. 검찰 쪽이 다들 그쪽으로 줄을 섰나 보네. 아무래도 서 검사가 당분간 고생 좀 하겠는데?”
“어. 서 검사는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최은태 회장의 힘은 절대로 약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힘이라는 건 상대적인 법.
미래의 대통령을 넘보는 박상곤 의원의 힘이 워낙 대단한 터라 그의 사위가 될 최만식에게도 힘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최만식 대표는 최은태 회장의 양아들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최은태 회장 대신 최만식 대표에게 줄을 대고 있었다.
최만식 대표는 한국 최고 현금 부자의 유일한 상속자이자 한국 최고 권력자의 예비 사위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단 하나밖에는 없다.
그건 바로 강은기가 최은태 회장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난 아까 하려던 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
“은기야.”
“어?”
“회장님 남은 수명. 그렇게 길진 않을 것 같다.”
에브리데이에선 2년도 채 남지 않은 일정이 여전히 그대로다.
“설마······ 뭐 예지몽 같은 거라도 꾼 거냐?”
“뭐 비슷해.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은태 회장님의 올해 76살이시다. 언제 부고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야.”
강은기의 표정이 빠르게 흔들린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최은태 회장이 고령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솔직히 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은기 넌 아니잖냐. 게다가 이젠 윤수와 은수도 있으니까 최 회장님을 아버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러면 최만식이 무슨 짓을 하든 최 회장님께서 이렇게 애가 탈 필요는 없잖아.”
“그게······.”
강은기는 무언가 목에 턱 하고 걸린 듯 대답을 못 한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 알겠어.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줘······.”
윤수와 은수가 태어나던 날 수술실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난 이후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은 모양이다.
어쨌건 고집 센 강은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이제 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일 것이고.
“알았어.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리진 마라. 평생 후회하지 말고.”
“그래. 그렇게 할게.”
강은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와장장.
“이 새X야! 자신 있다며! 맡겨 달라며!”
여의도 일식당 동경 VIP룸.
정실모가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진명규 진성그룹 전 부회장이 식탁 위에 있는 해산물과 접시를 입구 쪽으로 집어 던지고 있다.
퍽퍽.
테이블 위에 놓은 해산물과 식기들이 날아가 무릎을 꿇은 사내의 몸과 머리에 부딪히고 있다.
“입이 있으면 말이나 해봐!”
순간 무릎을 꿇은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머리 위에 잘린 해삼과 멍게가 올려져 있고 그 옆으로 찐득한 간장 도미 조림을 얹고 있는 그는 바로 TNT 엔터의 대표로 내정된 방상영이었다.
방상영은 그간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느라 며칠 만에 간신히 ‘정실모’의 모임에 참석한 것이었다.
“후욱후욱. 야 인마. 죄송하다면 다야? 네 밑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진명규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이번엔 우동 그릇을 손에 들었다.
“넌 오늘 나한테 뒈졌어.”
그때였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전 대천그룹 성학수 회장이 진명규를 말린다.
“그쯤 하지. 여기 홍 회장님이랑 다들 보고 계신 거 안 보이는가?”
VIP룸의 테이블에는 박상곤 의원의 딸 박상아와 HK 그룹 홍문규 회장 전 대천그룹 성학수 회장 진성그룹 진명규 진명희 그리고 LSP 그룹 이상필 회장이 모여서 이 난리를 보고 있었다.
진명규가 고개를 홱 하고 돌리고선 대꾸한다.
“아니 성 회장님은 화도 안 납니까?”
“솔직히 화가 나기보다 정윤호란 놈 실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군.”
“예?”
성학수가 방상영을 쳐다보며 묻는다.
“고은서의 아버지인 고준택 의원을 방송국으로 보낸 건 자네지?”
방상영이 머리에서 간장을 뚝뚝 흘리며 답한다.
“예. 실패했지만 제가 부탁드린 게 맞습니다. 인천 쪽 국회의원이다 보니 저랑 연줄이 있었으니까요.”
“하긴 고은서의 아빠니까 겸사겸사 자네 부탁도 들어주면서 방송을 방해하는 것도 딱이었겠군.”
“결론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리되었습니다. 성공했더라면 ‘팀원 조작’에 대한 증거를 터트릴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SBC 한태산 이사를 이용해서 정 실장의 팔다리를 꺾으려 한 것도 자네고?”
방상영의 눈이 커다래진다.
“그건 어떻게······.”
“맞나 안 맞나만 대답하게.”
방상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리고 오늘 <토크쇼! 연예 세상>의 최은세 작가를 자극해서 연예인들을 묻어 버리려고 한 것도 자네일 거고?”
방상영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천그룹의 회장이었던 성학수는 그저 허수아비라는 평가를 듣던 인물이다.
하지만 한때나마 재계 17위 기업을 이끈 회장이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놀라운 정보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래도 회장이라 이건가?’
꿀꺽.
생각해 보니 자신이 정윤호에게 악감정이 있는 걸 알고 이곳에 데려온 것도 성학수였다.
방상영은 화만 내는 진명규보다 성학수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학수는 방상영의 표정 변화를 읽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네. 그냥 내게 쓸 만한 정보통이 조력자로 붙어 있는 것뿐이니까.”
“예······ 예······.”
성학수는 몸을 돌려 일행들을 쳐다본다.
“들어 보셨다시피 이 친구가 다중으로 설계한 일은 누구라도 쉽사리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무리 중 가장 큰 권력을 가진 홍문규 HK 그룹 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겠군.”
“그래서 말인데 이 친구에게 한번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상영을 이 자리에 데려온 건 바로 성학수다.
그렇기에 성학수는 자신이 보증한 방상영을 비호하고 있었다.
방상영의 실수는 곧 자신의 실수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모조리 박상아를 통해 박상곤 의원에게 전달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차기 미래 대통령이 될 박상곤에게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이 정도라는 걸 알릴 순 없었다.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혀 다시금 대천그룹 회장이 되려는 자신의 본 목적이 실패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그래서 지금도 홍문규 회장에게 동의를 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반대의 의견이 나온다.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을 시키는 건 좀 무리수 아닌가요? 성 회장님?”
독사 같은 표정을 한 박상아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
마치 대천그룹의 데릴사위였던 그를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성학수는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걸 알고 결단을 내렸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직접 이 친구를 돕도록 하죠.”
“성 회장님이요?”
“제 정보력과 이 친구의 설계를 더하면 그 어떤 누구라고 해도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성학수가 직접 움직인다는 말에 다들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홍문규 회장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이번 설계는 나쁘지 않았어. 인정해.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야. 알지?”
성학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정보를 주는데도 못 이겨 낸다면 그릇이 그뿐인 거겠지요.”
“그리고 그땐 성 회장도 책임을 같이 져야 할 거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뒤로 뺄 수도 없었다.
“물론입니다.”
홍문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상영을 쳐다본다.
“굴렁쇠 엔터는 이번 주에 공모가 산정을 위한 수요 예측을 하네. 그러니 이번 주가 악재를 터트리기에는 최적기야. 알지?”
“예!”
“그러면 잘 준비해 봐. 증권사 관계자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것으로. 알겠나?”
자신의 셋째 넷째 아들을 감옥에 넣은 정윤호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가득하다.
그리고 그걸 위해 정윤호가 그토록 바라는 굴렁쇠 엔터의 상장을 막으려는 것이었고.
“오늘 안으로 설계를 끝낸 다음 성 회장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굴렁쇠 엔터 주식의 상장을 막아 내겠습니다.”
“그래. 그래. 어떻게든 해야 할 거야. 이달 말이 지나서 굴렁쇠 엔터가 제대로 상장하게 되면 그땐 진짜 각오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사라지게.”
홍문규가 보기 싫다는 듯 손짓하자 방상영이 다리를 휘청거리며 일어난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방상영이 고개를 숙인다.
철퍽.
방상영의 머리 위에 있던 도미 머리가 아래로 떨어진다.
‘정윤호. 내가 이 수모는 꼭 갚아 주마.’
온몸이 해산물과 간장으로 뒤덮인 비참한 몰골인 방상영의 머릿속에는 복수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정실모의 모임을 끝낸 박상아가 벤X 승용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때 박상곤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 : ♥아빠♥]
전화를 받은 박상아가 경쾌한 목소리로 답한다.
“어 아빠. 정실모 모임 끝났어. 홍 회장님이 부산 조선소 쪽 요구를 들어주면 정치자금으로 50억을······.”
-상아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최 서방이랑 짠 계획이 변경되었다. 빨리 집으로 와.
최만식이 주말에 들어오는 순간 강은기를 제거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응? 계획이 바뀌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만식 씨가 나한테는 이야기 안 했는데?”
-나한테 말했으면 된 거지. 어쨌건 최 서방이 모든 계획을 세워뒀으니 우린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하아~ 하여간 다들 제멋대로야. 알았어. 지금 갈게. 근데 계획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그게 말이다······.
‘미 미쳤어.’
변경된 계획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날아가는 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출발할게.”
집으로 향하는 박상아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명동 고택.
최은태 회장과 최영호 대흥 저축은행장 그리고 강감찬 대표와 함께 최만식이 돌아올 것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만식 대표가 돌아오는 순간 강은기를 노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린 우선 강은기의 안전을 더욱 강화하는 계획을 마련했다.
“그럼 은기 쪽 경호는 리버스 엔터 동생들과 상의해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최영호 은행장은 강은기의 경호 계획을 경호팀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한다.
“그래. 고생하거라.”
최영호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간다.
드르륵.
최은태 회장이 한숨을 푹 내쉰다.
“정 실장. 한참 바쁠 텐데 이리 와달라 해서 미안하네.”
올해 76살인 그의 미간에 주름이 한층 짙어져 있다.
박상곤 의원을 상대하기 위한 싸움이 쉽지 않아서였는지 부쩍 나이가 들어 보인다.
난 그 순간 그에게 힘이 되어 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회장님.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가?”
“은기가 아무래도 조만간 회장님을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예. 은기 녀석. 쇠고집이긴 해도 헛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오늘 운을 띄우더군요.”
최은태 회장이 허허거리며 웃는다.
“우리 정 실장만이 이 늙은이한테 큰 선물을 주는군.”
강감찬 대표 역시 곁에서 웃음을 짓는다.
“회장님뿐 아니라 저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실장이 아니라면 굴렁쇠 엔터의 상장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두 사람의 칭찬에 고개를 들 수 없어 머리만 긁적였다.
그때 강감찬 대표가 웃음을 천천히 줄이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그보다 회장님. 오늘 우리 정 실장을 부른 본론부터 말씀하셔야죠?”
분위기를 보니 최만식의 이송 문제 이후를 상의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나 보다.
최은태 회장이 헛기침하며 날 빤히 쳐다본다.
“사실 오늘 자넬 부른 건 자네를 구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 급하게 되었다 싶어서일세.”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왜 날 구해?
“지금 만식이 그놈에게 가장 증오스러운 대상이 누구일 거 같은가?”
“그건 바로······.”
말문이 막힌다.
최만식의 모든 것을 앗아 갈 수 있는 강은기가 언제나 최만식 대표의 첫 번째 증오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은 바로 내가 1순위였다.
그를 일본 구치소에 밀어 넣은 것이 나였고 강은기에게 날린 회심의 칼날을 막은 것도 나였으니까.
“······저군요.”
“그렇네. 그러니 몸을 피하게.”
최은태 회장이 서탁 위에 흰색 봉투를 올려놓는다.
“여기 하와이행 1등석 티켓이네. 공항으로 가면 내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와이에 있는 내 별장까지 동행할 거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비서처럼 모든 것을 처리해 줄 걸세.”
이번 주 주말이 지나면 다음 주 초부터는 굴렁쇠 엔터의 상장을 위한 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외국으로 가라니.
“은기도 소중하지만 자네도 내겐 소중하네. 그러니 만식이 그 짐승 같은 놈에게 자네가 큰일을 당하게 둘 순 없네. 만식이를 처리할 때까지만······ 하와이에서 기다려 주게. 내 모든 힘을 다해 반드시 놈을 꺾어 놓을 테니까.”
강감찬 대표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휴가를 간다고 생각해라. 그동안 굴렁쇠 엔터의 상장은 어떻게든 내가 잘 마무리를 지어 보마. 지영이도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연히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최은태 회장에겐 아들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강감찬 대표에게는 굴렁쇠를 지키는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날 그 방패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내 방패가 되어 주려 하고 있었다.
회귀 전 엄마가 죽은 이후 누군가가 이렇게 나서서 날 위해 고심해 준 적이 있었던가.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곧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회장님······ 대표님······.’
하지만 난 이를 악물었다.
애당초 최만식을 피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 굴렁쇠 엔터의 주식 상장도 내가 주도한 일이다.
난 꼭 이 일의 끝을 보고 싶었다.
“전 가지 않겠습니다.”
단호한 말투로 답하자 최은태 회장과 강감찬 대표가 언성을 살짝 높인다.
“정 실장! 내 말 듣게. 만식이가 벼르고 있네!”
“윤호야. 회장님 말씀 들어라. 자칫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었다.
내게는 나의 운세와 연예인들의 미래를 보는 에브리데이가 있으니까.
“아뇨. 적이 무섭다고 피할 거라면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전 차라리 이 기회에 끝장을 볼까 합니다.”
“정 실장!”
“그리고 이번 주식 상장도 끝까지 완수해서······ 제 연예인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터전을 만들 겁니다. 제 손으로요.”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에는 돈만을 바라보는 엉망진창인 회사에서 일했었다.
당시 내가 내린 선택으로 피눈물을 흘린 이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도울 수 있음에도 외면했던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다가 비참한 죽음과 회귀가 이어져 잘못된 모든 걸 고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코앞에 둔 순간이고.
도망치라고?
그럴 수는 없다.
난 이번에 반드시 결판을 지을 생각이다.
그때였다.
단호한 내 대답을 듣자 최은태 회장이 뭔가를 고민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네 뜻은 알겠네. 하지만 한국에 남겠다면 조건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