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1화
751. 부모의 자격 2
“니쩌거타마더야! (야 이! X새끼야!)”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네 명의 건장한 사내들은 중국어로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체는 왕룽과 함께 입국한 개인 경호원들이다.
그들은 다들 전원 특수부대 출신으로 상하이 뉴미디어 그룹 스태프로 위장해서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사내들의 뒤로 검은 선글라스를 낀 왕룽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저 자식 잡아.”
왕룽이 지시를 내린다.
경호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 달려와 송창식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았다.
건장한 사내들이 자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양쪽에서 팔을 잡자 송창식이 겁먹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것들은?”
난 덤덤히 송창식을 보며 답했다.
“어차피 당신 같은 인간은 말로 해서 안 듣잖아? 몇 대 맞는다고 해서 마음을 고쳐먹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이 기회에 중국 구경이나 해.”
“주 중국? 날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난 고개를 끄덕이고 왕룽에게 부탁했다.
“중국까지 잘 부탁한다.”
어느덧 내 곁으로 온 왕룽이 싸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린다.
마치 중국 조폭 두목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
“오늘 오전에 인천항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가 있으니까 거기 태워 보내면 되겠군. 안 그래도 쓰촨성의 광산에 요즘 사람이 모자라는데 잘됐어. 아 참고로 여기서 한 3000km 떨어져 있으니까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고.”
왕룽이 친절히 한국말로 말해 주자 송창식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발악을 한다.
“니 니들이 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여긴 법치국가야!”
난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법치국가? 당신이 미희랑 미희 엄마를 그렇게 때릴 땐 법 생각하고 때렸어? 아니잖아.”
“그 그건······.”
“그리고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그 기회를 차버린 건 당신이고. 안 그래?”
난 그 말을 끝으로 왕룽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룽이 씨익 웃으며 경호원들에게 지시한다.
“재갈 물리고 캐리어에 넣어.”
경호원들이 고개를 까닥 숙인다.
“쭨밍!”
예썰~이라는 경어체로 대답한 경호원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한다.
두 명은 송창식의 팔을 잡고 있고 한 명은 캐리어를 연다.
찌이익~
이민 가방이라 불리는 초대형 캐리어를 여는 지퍼 소리가 스산하게 울린다.
순간 다른 한 명은 캐리어 속에 넣어둔 재갈과 안대를 꺼내 든다.
그때였다.
송창식은 내 위협이 진짜라는 걸 알고 빽 하고 소리친다.
“자 잠깐만! 그만! 안 나타날게. 안 나타나면 되잖아!”
난 송창식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겁을 먹고 이런다지만 위기만 사라지면 다시금 똑같은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동도 없자 송창식은 이번에는 객석에 있는 송미희와 송미희의 엄마를 쳐다본다.
“미희야! 미희 엄마! 정말 보고만 있을 거야! 니들 정말 이럴래?”
그때였다.
송미희의 엄마 이영선이 눈을 질끈 감고 송미희의 귀를 감싸며 품에 안는다.
“야! 야!”
송창식이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순간 경호원들이 입에 재갈을 물린다.
턱.
“읍! 읍! 읍!”
경호원들이 이어서 송창식의 얼굴에 안대를 씌운다.
왕룽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린다.
“중국으로 가는 배 선창에다가 밀어 넣기 전에 마취제로 재워 둬. 그리고 중국에서 차를 태운 다음에도 쓰촨성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안대 풀어 주지 마.”
“쭨밍!”
경호원들이 송창식을 달랑 들어서 캐리어에 넣는다.
“읍읍읍······.”
송창식이 발악을 하며 몸부림치자 경호원들이 케이블 타이를 꺼내 묶어 버린다.
찍~
케이블 타이가 조여지는 소리와 함께 송창식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닫아.”
경호원이 거대한 캐리어를 닫는다.
찌이익.
지퍼 소리와 함께 캐리어가 닫힌다.
그리고 경호원이 캐리어를 끌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드르륵- 쿠당탕.
드르륵- 콰당탕.
살기 위해 난동을 피우는지 캐리어가 제자리 널뛰기를 한다.
난 그 틈을 타 손을 들어 올렸다.
끽.
쿵쿵쿵.
제자리에 멈춘 캐리어가 위아래로 통통 튄다.
왕룽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이만하면 된 거 같지?”
“어. 잔뜩 겁먹었을 거다.”
“그러면 넌 다시 무게 좀 잡고 있어.”
“알았어.”
왕룽이 다시금 팔짱을 끼고 중국 조폭 두목 같은 표정을 짓는다.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원들이 캐리어를 연다.
찌이익.
송창식이 파닥파닥 몸부림을 친다.
“안대 벗겨 주세요.”
경호원이 안대를 벗긴다.
송창식이 눈물범벅이 된 채 날 쳐다본다.
“읍읍읍!!!”
살려 달라는 눈빛에 한숨을 내쉬었다.
“재갈도 풀어 봐요. 뭐라는지 들어나 보게.”
경호원이 알겠다며 재갈을 푼다.
탁.
그때였다.
“서 선생님. 다 다시는 안 나타나겠습니다. 두 사람 앞에 다시는 안 나타날 테니까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제발요!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송창식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굳은 표정을 하고 물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송창식은 덜덜 떨면서 외친다.
“믿어 주십시오! 제 제발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난 고민하는 척 팔짱을 끼었다.
그러자 왕룽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다.
“이런 놈은 반성 안 한다니까? 오늘 놓아주면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서 이를 거야. 그러지 말고 나 주라. 광산에 사람 필요하다니까?”
송창식이 하얗게 질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아닙니다. 풀어만 주시면 절대 다시는 이쪽으로 쳐다도 안 보겠습니다.”
난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 사람 보낼 테니까 당장 이혼서류 도장 찍어서 보내. 그리고 이혼 절차가 끝나는 순간 다시는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할 수 있겠어?”
“예!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쪽 말은 아무도 안 믿을 테니까. 대신 그때는 진짜 저쪽 중국 애들이 데려가는 거 나도 못 막아. 이번 일에 중국 애들 돈 투자 많이 됐는데 손해가 생기면 가만 안 있을 거거든.”
송창식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예!”
그제야 난 왕룽에게 말했다.
“풀어 줘.”
“거 사람 필요하다니까 말을 안 듣네.”
왕룽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린다.
경호원들이 무서운 눈을 하고 송창식을 캐리어에서 꺼낸다.
탁.
발만 풀어 주고 손은 여전히 케이블 타이로 묶은 채다.
그때 왕룽이 말한다.
“지금 이 시각부터 내 사람들이 몰래 네 뒤를 따를 거다. 그러니까 경찰이든 방송국이든 가보기만 해. 그땐 두 번 다시 한국 땅을 못 밟게 해줄 테니까.”
“예! 예!”
왕룽이 경호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근처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와.”
“쭨밍!”
경호원들이 송창식을 양팔에 낀 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사라지는 송창식의 아랫도리에 오줌을 지린 흔적이 보인다.
쿵.
육중한 문이 닫히자 왕룽이 한숨을 푹 내쉬며 굳은 표정을 푼다.
“아~ 얼굴에 경련 오는 줄 알았네.”
“왕룽 너도 연기를 제법 잘하는데? 이 기회에 배우로 데뷔하는 건 어때?”
“아오~ 두 번은 못 하겠다.”
“어쨌건 고맙다.”
“고맙긴. 내 일이기도 한데. 근데 괜찮겠냐? 저렇게 놔둬도?”
“어. 여기까지 따라온 흥신소 직원들한테 감시시킬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난 한편의 쇼를 펼쳐 준 왕룽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뒤 관객석으로 올라갔다.
“끝났습니다 미희 어머님.”
송미희와 송미희의 엄마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뜬다.
객석 아래를 두리번거리던 송미희의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저 사람 다시 오면 어떻게 하죠?”
“제 전화로 연락만 주시면 바로 처리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기 그리고······.”
난 말을 하다 말고 송미희의 엄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더 좋은 수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해서요.”
송미희의 엄마가 놀라서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실장님. 아니에요. 저희 모녀를 위해 애써 주신 거잖아요. 고개 드세요.”
송미희 역시도 놀라서 날 일으켜 세우려 들었다.
“예. 맞아요 실장님. 어서 고개 드세요.”
두 사람의 재촉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송미희와 송미희 엄마 두 사람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다.
두려움 시원함 섭섭함 그리고 해방감 같은 감정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게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미희야.”
“예.”
“이젠 최선을 다할 수 있겠지?”
송미희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장님. 죽을힘을 다할게요!”
“그래. 미희 파이팅!”
난 송미희에게 약속한 대로 송미희의 모녀 앞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 내고야 말았다.
* * *
모니터링 룸.
5번 스크린의 모니터에 송미희가 있는 5번 팀 방의 상황이 비춰지고 있다.
“대준아. 5번 스크린 음성 틀어 봐.”
“예!”
[5번 스크린 : 음성 ON]
테이블에 앉은 송미희가 같은 팀원인 이지숙 마리 나가이 하루코에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진짜 내가 팀 리더 해도 괜찮겠어?
-응 언니. 우리 중에 아이돌 경험이 있는 애는 없잖아. 언니가 우리 좀 도와줘.
-솔직히 1주 차는 적응 기간인데 적응하려면 아무래도 유경험자가 좋잖아. 부탁해 미희야.
-마슴니다. 난 도움이 피료하무니다!
-알았어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
-그럼 투표하자.
아이들이 태블릿을 펴고 앱으로 ‘팀 리더 투표’를 실시한다.
띠링.
아이들의 투표 결과가 모니터링 룸 중앙에 있는 메인 스크린에 표시된다.
[5팀 투표 완료 : 팀 리더 송미희 (4표)]
만장일치로 송미희가 5팀의 리더가 되었다.
송미희 역시 자기 태블릿에 나온 결과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아빠란 족쇄가 풀린 탓에 그녀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다 같이 연습실로 향하고 있었다.
2주 차 오디션을 치르기 위해 익혀야 하는 노래와 댄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보던 지영식 PD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미희 눈빛이 어제랑 완전히 달라졌네요. 고맙습니다. 정 실장님.”
지영식 PD에게는 송미희의 아빠가 새벽에 찾아와 다시는 방해하지 않겠다고만 말하고 돌아갔다고 전했다.
그 이상은 지영식 PD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아닌 거 같은데······.”
“하하. 정말입니다.”
적당히 넉살 좋게 대꾸하던 그때였다.
띠링.
또 한 팀의 투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1팀 투표 불발 (최다 득표자 없음) : 고은서(1표) 한소원(1표) 양빙빙(1표) 쿠도 미나츠(1표)]
1번 방을 비추는 1번 스크린에서 고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끈하는 장면이 나온다.
“1번 방 볼륨 좀 켜 봐.”
“예. PD님.”
[1번 스크린 : 사운드(ON)]
고은서가 삿대질하며 멤버들을 향해 외치고 있다.
-니들 진짜 이럴 거야?
양빙빙이 콧방귀를 끼며 고은서의 말에 답한다.
-내가 왜? 팀 리더로 널 뽑아야 하지? 나이도 어리고 이렇게 건방진데?
-당연히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나으니까!
-그건 네 생각이고!
그 순간 쿠도 미나츠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답한다.
-계속 말하지만 리더로는 제가 제격이라니까요?
고은서가 씩씩대며 대꾸한다.
-너 같은 게 리더? 웃기고 있네!
-어머나 고은서 씨. 천박하게 고함만 꽥꽥 지르면 단 줄 알아요? 여긴 아이돌 선발 오디션장이지 오리 농장이 아니에요.
-너 말 다 했어?
한소원은 싸우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쉰다.
-다들 자길 투표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나한테 투표했지만 싸우지 좀 말자. 얘들아. 이거 녹화도 되고 있고 우리 빨리 연습도 해야 해. 5팀은 이미 투표하고 연습 들어갔대.
한소원은 팀이 깨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투표한 것이었다.
지영식 PD는 다툼이 난 1팀을 보며 씨익 웃는다.
“아 재미있네. 어쩌면 저 팀은 끝까지 리더 결정 못 하겠는데요?”
아니.
지영식 PD가 틀렸다.
이건 이미 끝난 게임이다.
“제가 볼 땐 저 팀도 리더는 정해졌는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꺾이지 않는 외골수들이 모일 땐······ 중재자가 리더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싸우긴 하겠지만 결론이 뻔히 보이는 게임이다.
고은서에게 화가 난 양빙빙이나 쿠도 미나츠는 죽어도 고은서가 리더를 하는 건 싫다며 한소원에게 표를 던질 테니까.
“하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정 실장님이 이번에도 맞힐지 궁금한데요?”
“그럼 우리 내가 할까요?”
지영식 PD가 손사래를 친다.
“아뇨. 한 이사님이 지는 거 보니까 이길 자신이 없네요.”
스태프들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중에서 정 실장이랑 내기할 사람은 없어. 하하하.”
“맞습니다. 지 PD님. 내기하지 마십쇼. 거덜 날 겁니다.”
모니터링 룸에는 다시 한번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 * *
이동민 실장님에게 <프로젝트 I.O.A> 촬영 현장을 맡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천호동 집에 도착하자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난 곧장 2층으로 올라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유진이가 <프로젝트 I.O.A> 재방송을 보며 어제 선물로 들어온 사탕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모두 다 허쉬! 나만의 위시! 소원 소원 한.소.원!”
그리고 그 곁에는 학교를 마치고 온 미소가 엄마에게 질세라 큰소리로 외친다.
“이게 나라다! 우리 나라 성.나.라!”
132명 중에서 선택되어야 하다 보니 팬덤들은 응원 구호에 특정한 의미보다는 이름을 반복해서 넣고 있었다.
나중에 I.O.A가 되고 나서 어차피 새롭게 응원 구호를 정하면 그뿐이니까.
“나 왔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두 사람이 율동을 멈추고 날 반긴다.
“오빠!”
“삼촌~”
“늦게 와서 미안. 아침에도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나저나 빨리 선물 뜯어봐요. 미소가 엄~청 기다렸어요.”
두 사람은 어제 받은 화이트데이 선물을 뜯지 않고 있었다.
미소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빨리! 빨리!”
“응.”
난 창고 방에서 내 키 높이만 한 박스 하나와 무릎 높이만 한 박스 하나를 낑낑대며 거실로 옮겼다.
먼저 키 높이만 한 미소의 선물 박스를 먼저 뜯었다.
찌익~
박스가 열리고 나타난 것은 버튼으로 크레인을 옮겨 케이스 속 사탕을 뽑는 대형 ‘사탕 뽑기’ 기계였다.
“우와~~ 삼촌 최고!”
미소가 쌍 엄지를 날리며 어깨를 으쓱이는 관광버스 춤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난 이어서 유진이의 선물 박스를 풀었다.
‘사탕 공예’로 만든 각양각색의 꽃들이 꽂혀 있는 꽃바구니가 나온다.
유진이가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오빠······ 이거 너무 예쁜데요?”
두 사람이 기뻐하니 애써 선물을 고른 보람이 있다.
그때 미소가 꽃바구니 한쪽을 가리킨다.
“엄마. 이거 봐봐! 엄마랑 미소야!”
“어? 진짜네?”
난 유진이와 미소가 서로를 껴안고 있는 사탕 공예 작품도 부탁해 놓았다.
지금처럼 두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미소가 고개를 갸웃한다.
“근데 삼촌은 왜 없어?”
날 챙겨 주는 미소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어?”
미소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한다.
“응! 삼촌도 가족이잖아요!”
가족.
그래 미소의 말이 맞았다.
가족은 같이 있어야지.
“지금 바로 추가로 만들어 달라고 할게. 그리고 할머니 것도.”
그 순간 미소의 얼굴에 해님이 내려앉고 있었다.
“헤헤헤~ 삼촌 짱!”
미소의 쌍 엄지에 고단하던 하루의 피로가 싹 하고 날아간다.
* * *
[<프로젝트 I.O.A> 1화 분당 최고 시청률 6.5%.]
[<프로젝트 I.O.A> 1팀. 치열한 다툼 속에 ‘한소원’으로 팀 리더 결정.]
[<프로젝트 I.O.A> 33개 팀. 2주 차 인기투표를 대비해 연일 구슬땀.]
[<화란전> 이번 주에는 시청률 35%의 벽을 돌파할 것인가? (18화 시청률 33.1%)]
[<지리산> 관객 수 970만 돌파. 이번에도 이태풍은 천만 배우?]
<프로젝트 I.O.A>가 시작하고 삼 일이 지났다.
내가 예상한 대로 1팀 리더는 결국 한소원이 되었다.
양빙빙과 쿠도 미나츠가 고은서만은 안 된다고 한 까닭이었다.
우습게도 이번 생에서는 고은서 덕분에 한소원이 리더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33개의 팀이 정해지자 후보생들은 연일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을 시작했다.
제작진들은 앱을 통해 그들의 소식을 올렸고 그 소식은 기사로 가공되어 연예 기사면의 50%를 채우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연예 기사면에는 주식 상장을 앞둔 굴렁쇠 엔터에 호재 기사만이 가득했기에 절로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냐?”
어느새 다가온 강은기가 묻는다.
여기는 MBS <토크쇼! 연예 세상> 촬영 현장.
한 주의 가장 핫한 연예인들을 부르는 인기 프로그램이었기에 호재를 이어가기 위해 출연을 결정한 프로였다.
난 지금 유진이와 미소 덕배와 한울이를 대기실에 데려다 놓고 대기하는 중이다.
강은기는 채미현과 채석현을 대기실에 두고서 이곳으로 온 거고.
“<프로젝트 I.O.A>가 잘되고 있어서 그러지. 혹시 봤냐?”
“당연히 봤지. 연실이랑 엄마도 방송 보고서 난리더라. 윤서랑 은서를 남자 아이돌로 키우자고 하던데?”
“그래?”
“어. 아무래도 너랑 나 그때까지 매니저 해야겠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쌍둥이들이 무슨 아이돌이야?”
“아 왜~ 눈 떴어. 봐봐.”
강은기가 폰을 쓰윽 내민다.
포대기 속에 싸인 두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환하게 웃고 있다.
두 녀석 모두 얼짱 신생아들이라고 할 만큼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우리 조카들 잘생겼네.”
“당연하지. 누구 아들인데~”
강은기의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언제 이렇게 팔불출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조폭 시절 날카로운 모습보다 백배는 낫다.
그때였다.
“매니저님들 오늘 질문지 사전 확인 좀 해주세요.”
귀엽게 생긴 20대 초반 단발머리 여자가 다가와 A4 용지를 내민다.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이다.
왕미인 작가.
예능계의 최고 스타 작가로 이름을 알릴 인재가 여기 있었다.
어쩐지 어제 정상봉에게 받은 사전 질문 내용이 인간적이면서도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것들이라서 좋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녀 덕분이었다.
주식 상장에 또 다른 호재가 생긴 터라 반가운 마음을 한껏 담아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작가님.”
“아 정 실장님. 저도 반가워요. 그리고 질문지 확인 좀······.”
“알겠습니다.”
난 그녀에게서 질문지를 받고 검토했다.
하지만 MC가 출연진에게 할 질문지의 내용은 어제 받은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질문이 왜 이따위야?’
질문지에 적힌 내용들은 하나같이 지뢰밭이었다.
막내 작가가 작성했던 기분 좋은 질문지의 내용이 이토록 공격적으로 달라졌다는 건 위에서 손을 썼다는 것.
그렇다면 범인은 단 한 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