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4화
714. 달라진 위상 2
H2 호텔 VIP 라운지.
총괄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온 곳에는 호텔 대표인 65살의 박태석 대표와 60살인 그의 아내 이진숙 여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곁에는 비단 보자기에 무언가가 겹겹이 싸여 있었다.
박태석 대표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정중한 말투로 재차 사과한다.
“정 실장. 아침부터 보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대표님.”
“아니에요. 내가 어젯밤에 미안해서 밤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정 실장네 식구들에게 아침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이리 일찍 내려왔습니다.”
이진숙 여사 역시 어제 일을 사과하며 뒤쪽에 쌓인 비단 보자기를 가리켰다.
“저거 직접 만든 전복죽이랑 집에서 담근 동치미를 좀 들고 왔는데 시간이 되면 같이 들어요. 명인 다과 세트도 가져왔는데 그건 나중에 갈 때 가져가시고요.”
호텔업계 7위이자 건설과 식음료 사업으로 재계 70위권인 H2 호텔 대표가 내게 조식을 직접 접대하려 하고 다과 세트 선물까지 직접 가져올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다 애써 티를 내지 않고 답했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내려온 건 뭔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희 일행들을 불러도 될까요?”
“당연하죠.”
난 곧장 정상봉과 최대기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들을 챙겨 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순간 박태석 대표가 슬그머니 한 가지를 제안한다.
“아 그리고 사과의 의미로 덕배 군과 성연 양이 우리 H2 호텔의 광고 모델을 맡아 줬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박태석 부부가 내려와서 조식을 제공하고 광고까지 주는 건 어젯밤 일을 끝까지 함구해 달라는 로비였다.
그럼 그렇지.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래도 이 양반들 사과 좀 할 줄 아는데?
부지배인은 박태석 대표가 붙잡아서 뒤를 캐고 있고 최석환 PD와 안채형 PD도 구속됐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희야 감사하죠.”
“하하. 감사는 내가 더 합니다. 경찰에 알리지 않아서 H2 호텔의 체면을 지켜 주셨잖습니까?”
“그거야 부지배인 잘못이지 대표님 잘못은 아니잖습니까?”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예.”
기분 좋게 대꾸해 주자 박태석 대표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제가 듣기로는 방송국 PD들도 얽혀 있었다고 하던데······ 방송국 쪽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정 실장에게 대접이 박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정 실장이랑 손잡으면 꽃길을 걸을 수 있다는 소문도 있는 데 말입니다. 하하하.”
박태석 대표의 아내인 이진숙 여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거든다.
“그래요. 우리 기업 사모들 사이에서도 정 실장님이 요즘 참 유명해요. L.M.L 블랙 라벨 브랜드를 런칭한 이영아 대표가 정 실장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매니저가 패션도 안다고요. 아참 몇몇 사모들이 우리 정 실장을 사윗감으로 찍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때요? 혹 아가씨 소개받고 싶은 생각 없어요?”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일 때도 듣지 못했던 말들이다.
재계의 사람들은 철저히 이너서클을 이루며 사람들의 급을 나눠 대하는데 말이다.
덕분에 예전과는 달리 내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아직 누군가를 사귈 마음은 없습니다.”
이진숙 여사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요? 흠. 그래도 혹시 생각나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줘요.”
이후 이진숙 여사는 VIP 라운지 직원들과 함께 보자기를 풀고 전복죽과 동치미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박태석 대표가 조심스레 말한다.
“정 실장이 알아서 잘하고 있지만 혹 한 가지 조언을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주도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기업을 확장한 이의 조언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청하겠습니다.”
박태석 대표가 날 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현재 정 실장님은 정유진 이태풍 하루 정미소와 덕배 군 체리블라썸에 이르기까지 관리하는 배우들 모두가 인기 스타들 아닙니까? 그런데 방송국이 그런 연예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정 실장을 막 대했다는 건 아직도 정 실장을 만만하게 본다는 증거입니다!”
박태석 대표는 흥분이 되는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본인이 가진 것을 어필하고 현재의 위상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하십시오. 그래야 정 실장을 더는 만만하게 안 볼 겁니다. 만약 저라면······ 임원을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 볼 것 같습니다.”
설마 관련 업계 사람이 아닌 박태석 대표에게 이런 조언을 들을 줄은 몰랐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대로 임원들을 찾아가서 내 몫을 주장하면 확실히 대접이 달라지긴 할 거다.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시절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방송국과 힘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 적도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예인들에게 다가오게 된다.
회귀 전에도 경험했던 일인 터라 임원을 찾아가서 따지라는 그의 말은 따를 생각이 없었다.
다만 박태석 대표 덕분에 내 위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터라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박태석 대표가 숨을 들이마신다.
“주제넘었지만 정 실장님을 응원하는 한 사업가가 아쉬워서 드리는 말이라고 여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마치 점령군 같은 박태석 대표의 방법은 따르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난 나만의 방식대로 제대로 된 대우를 요구할 생각이다.
* * *
화란전 해상 세트장.
어젯밤 <화란전> 16화가 31.2%의 시청률을 달성한 터라 아침부터 현장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자~ 자~ 오늘도 빡시게 한번 촬영해 봅시다!”
오복희 PD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엔 MBS 양태식 이사 그리고 한석영 예능국장과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이 와 있다.
원래 서로 병을 휘두른 두 PD를 만나 본 뒤 H2 호텔 로비에서 볼 예정이었지만 내가 현장에 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이 묻는다.
“정 실장. 그런데 우린 왜 여기 오라고 한 건가? 안 PD는 정리했고 최 PD도 자르면서 오성연 분량도 좀 늘려 주기로 했잖은가?”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은 월화 드라마 <무한 취업 시대>에서 오성연의 비중을 조금 더 늘려 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석영 예능 국장은 날 달래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를 골라 내가 추천하는 연예인을 반고정으로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난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거래를 원하진 않았다.
“오성연 씨의 연기력을 직접 보고서 늘릴 분량을 판단해 주십시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만약 성연이의 연기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오히려 분량 늘리는 것이 작품에 피해를 줄 겁니다. 전 서로가 만족할 방법을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격식 국장이 잠시 고민하다 묻는다.
“그 말인즉슨 연기력이 떨어지면 늘릴 필요가 없다?”
“예.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잖습니까? 연기력이 좋으면 어쩌실 겁니까?”
“그렇다면 더 늘려 주지. 대신 두말하기 없기다?”
“예. 국장님.”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이 세트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세트장에서는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오성연이 연기할 씬은 제1왕후가 유화 공주와 도화 공주 사이에 있었던 일을 캐묻는 씬이다.
‘아소’ 역할을 하는 오성연은 유화 공주의 오른팔답게 자기가 모시는 공주의 정보를 단 하나도 주지 않기 위해 한 편의 쇼를 벌이게 된다.
사실 연기 경력이 대단한 이태연에게 맞서 연기를 펼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태연은 상대가 신인이라도 전혀 배려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된 연기를 한다면 오성연이란 배우를 각인시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자 하는 방법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즉 배우가 가진 능력을 눈앞에서 보여 주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는 것 말이다.
“레디~~ 액션!”
오복희 PD의 외침과 함께 오성연의 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제1왕후의 선실.
호롱불에 흔들거리며 1왕후 이태연과 정화 공주 한상희의 얼굴을 비춘다.
그 앞에는 ‘아소’ 역의 오성연이 부복하고 있다.
이태연이 오성연을 아래로 내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이X. 어서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어젯밤에 도화 공주가 너와 네 주인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더냐?』
촬영이 시작된 순간 오성연이 얼굴을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숙인 채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한다.
『아소는 그런 거 몰라요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셔요~』
그와 동시에 오성연은 얼굴이 망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갑작스럽게 터진 오성연의 눈물에 스태프들 모두 소리 죽여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태연 역시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오성연을 향해 신경질 어린 말투로 말한다.
『네 이X.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닥치고 이것부터 보거라!!』
이태연이 왼쪽에 있는 작은 보석함을 잡고 앞으로 내민다.
달칵.
보석함을 펼치자 반짝이는 금과 노리개들이 잔뜩 들어 있다.
『유화와 도화가 서로 죽이려고 했다고만 증언하면 내 너에게 이걸 다 줄 것이니라 그러면 넌 평생 서라벌에서 떵떵거리며 마나님 소리를 듣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우리 정화의 몸종으로 들여주마. 자 어떻게 하겠느냐?』
이태연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오성연을 유혹한다.
달콤하고 끈적한 악마의 유혹 소리다.
하지만 그때였다.
오성연은 보석함을 힐끗 보더니 자지러지며 폭풍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먹지도 못하는 거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살려 주세요~ 엉엉~ 아소는 살고 싶어요~~』
고막이 울릴 정도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린다.
오성연은 일부러 바보처럼 구는 아소의 모습을 온 힘을 다해 연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성연의 연기가 어찌나 리얼한 지 이태연이 진심으로 짜증 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X이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이태연이 의자의 오른쪽에 있는 채찍을 잡는다.
검붉은색의 채찍을 본 순간 오성연의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히끅······ 아 아소~ 죽는다아~』
오성연은 때리지도 않았는데 눈을 반쯤 까뒤집으며 옆으로 털썩 쓰러져 버렸다.
퍽.
이후 경련을 일으키듯 손발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오성연이 리얼한 엄살을 떤 탓인지 이태연도 어이가 나가 채찍을 들고 멍하니 쳐다본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빽하고 고성을 지른다.
자신이 고작 신인의 연기에 휘말렸다는 게 화가 나서였다.
『이 이X이 미쳤나아~ 왜 왜 이래?』
그때였다.
벌컥.
선실의 문이 열리며 유진이가 나타났다.
유진이는 바닥에 쓰러진 오성연을 보고 급히 달려가 품 안에 껴안았다.
『대관절 우리 아소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하신 것이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거라. 내가 왜 그 아이를 때린단 말이냐! 채찍을 들기만 했지 휘두른 적은 없다!』
『거짓말이 날로 느시는군요.』
『진짜래도!』
이태연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한다.
하지만 유진이는 그걸 무시하곤 오성연의 뺨을 두드리며 깨운다.
짝짝.
오성연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으아아악······ 고 공주님?』
『그래 나다 아소야. 빨리 나가자~』
『으헝헝~ 왜 이제 오셔요~ 아소 죽는 줄 알았잖아요.』
오성연이 서럽게 울며 유진이를 껴안았다.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성연을 일으킨다.
그런데 오성연이 몸을 돌린 그 순간 공포에 질려 눈물을 펑펑 흘리던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살았다고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눈 깜짝할 사이에 표정을 바꾼 오성연의 연기는 능청스럽다는 평가를 넘어 감탄이 나올 수준이었다.
“컷~ 오케이~~!! 성연 씨 수고했어.”
오복희 PD가 외치자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이야~ 누가 보면 성연 씨 인두로 지진 줄 알겠어?”
“우리 성연 씨. 눈물이 아주 수도꼭지네.”
“성연 씨. 끝에 느낌 좋았어. 이야~ 진짜 생존 끝판왕 같았어.”
오성연의 연기 실력에 만족한 난 고개를 돌려 내 옆을 쳐다봤다.
김격식 국장이 감탄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정 실장. 오성연 쟤 연기······ 생각보다 더 잘하는데?”
내가 바랐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 * *
오성연의 연기가 끝이 나자 함께 있던 양태식 이사 한석영 국장 김격식 국장 모두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하다.
국장급 이상이 되면 현장에는 잘 나오지 않았기에 보고만으로 배우를 판단한다.
그런데 내가 보증하는 배우인 오성연의 연기를 직접 보자 실력이 예상 이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박태석 대표가 임원을 찾아가서 따지라고 조언해 준 어필 방법과는 다른 나만의 ‘백문이 불여일견’ 방식이다.
순간 김격식 국장이 양태식 이사에게 요구를 늘어놓는다.
“양 이사님. <무한 취업 시대>의 후속 PD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응? 거기 이일준 AD가 남은 12화 다 끝내기로 했었잖아?”
“아뇨. 그걸로는 정 실장한테 면목이 안 서겠습니다. 정 실장이 이렇게 좋은 배우라는 걸 알려 줬는데 원래 <무한 취업 시대>의 이일준 AD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연출자가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
“김성운 PD를 붙여야겠습니다.”
현재 김성운 PD는 <신의 이름으로> 연출 이후 MBS에서 최고의 이름값을 가진 드라마 PD다.
그런데 바로 그 PD를 대타 PD로 만들겠다고 한다.
“김 PD가 할까? 그 에이스가?”
“제가 어떻게든 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해봐.”
김격식 국장이 곧장 김성운 PD에게 전화를 건다.
“김 PD. 부탁 하나 할 건데 거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뭡니까?
“지금 <무한 취업 시대> 대타 PD로 네가 가줬으면 한다.”
-예? 제가요?
아무리 현재 시청률 18%를 달성하는 인기 작품이라고 해도 다른 PD의 대타로 연출하는 건 PD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성운 PD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한다.
-국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때 김격식 국장이 딱 잘라 말한다.
“우리 MBS가 정 실장한테 빚을 졌다.”
-예? 정 실장이라면······.
“그래 정윤호 실장.”
-설마 최석환 PD가 여배우를 건드리려고 한 게 정 실장의 배우였습니까?
“그래.”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더니 김성운 PD가 말한다.
-진즉에 말씀하시죠. 하겠습니다.
“진짜야?”
-예. 빚을 진 건 MBS뿐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잖습니까?
김성운 PD는 자신을 스타 PD로 만들어 준 게 바로 나라며 흔쾌히 PD직을 수락했다.
“고맙다.”
전화를 끊은 김격식 국장이 날 바라본다.
“정 실장. MBS <무한 취업 시대>는 우리 김 PD가 맡아서 연출할 거야. 그리고 오성연 배역은 분량을 더욱 늘려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국장님.”
난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달라진 위상을 인정받게 되었다.
덕분에 MBS의 임원들과 척지지 않고도 배우에게 더 많은 배역을 줄 수 있게 되었다.
* * *
MBS 임원들과 헤어진 후 난 제주 공항으로 차를 끌고 왔다.
다음 주 <전지적 관찰 시점 : 채미현–강은기 매니저> 편의 촬영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채미현은 십수 년 연예계 생활을 하는 동안 숨겨 왔던 지적 장애 동생을 처음으로 밝히는 터라 걱정과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녀의 걱정이 아무것도 아니게 할 자신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강은기와 채미현 그리고 그녀의 외사촌 여동생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유정애가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강은기를 경호하는 팀들이 보인다.
경호 1팀은 이수찬과 동생들 경호 2팀은 TOP 경호 소속 직원들 경호 3팀은 최은태 회장이 보낸 사람들이다.
빠아앙~
경적을 울리자 날 발견한 강은기와 채미현 그리고 유정애가 빠르게 다가와 내 차에 올라탄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채미현이 뒷자리에 타며 고개를 숙인다.
“아니에요.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요.”
채미현은 어젯밤 잠을 설쳤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이어서 강은기는 내 옆좌석에 올라탔다.
“어제 고생했다며?”
“대신 보상이 좀 짭짤했어.”
<무한 취업 시대>에서 오성연의 출연 분량이 20% 이상 늘어났고 단역도 몇 자리 추천할 권리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김격식 드라마국 국장은 앞으로는 드라마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라고까지 말했다.
간단히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지잉~
“잠시만. 나 폰 확인 좀 하고.”
“어.”
[알림 : 오늘의 운세가 등록되었습니다.]
대체 오늘은 또 뭔가 하고 운세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늘의 운세를 본 순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운명이 바뀐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