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0화
700. <연무(煙霧)> 오디션 2
<연무(煙霧)>에서 일영신(日影神)은 늘 월영신(月影神)을 피해 도망 다닌다.
100년 전 박수무당이었던 월영신(月影神)의 제물로 일곱 살에 죽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와 연기하는 3화 장면은 일영신(日影神)이 섬에 낙오한 낚시꾼들을 구하기 위해 월영신(月影神)의 앞에 나타난 씬이다.
연기를 시작하자 언제나처럼 미소는 눈 깜짝할 사이 배역에 몰입했다.
미소는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떨기 시작했다.
『월영······ 할아버지?』
순간 난 대본에 적힌 대로 마치 월영신(月影神)이 된 듯 미소를 노려보며 군침을 다시기 시작했다.
극 중 월영신(月影神)은 일영신(日影神)의 혼을 흡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키득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미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선 당장이라도 미소를 움켜쥐려는 듯 두 손을 쭉하고 뻗으며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
『일영. 그토록 도망치더니 이제야 만나는구나~ 크크크. 더는 도망칠 수 없느니라. 넌 이젠 나의 태자귀(太子鬼)가 될 것이니라!』
그런데 그때였다.
미소가 뒷걸음질 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어쩌지······ 어? 그담에 뭐였지?』
미소가 대사를 까먹고 배역 몰입에서 빠져나온다.
그 순간 난 미소의 문제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미소가······ 겁을 먹었다고?’
사실 이 문제는 모든 아역이 겪는 문제였다.
성인 연기자가 거친 말투로 욕설을 하거나 의자를 집어 던지는 등 격렬한 연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겁을 먹고 배역 몰입에서 빠져나온다.
자신보다 월등히 크고 힘 있는 존재가 위협을 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기 때문이다.
그 탓에 액션과 스릴러 공포와 같은 장르를 찍는 현장에서는 아역배우들이 꽤 자주 교체되곤 했다.
물론 노련한 제작자들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상대 배우들과 아이들 사이에 미리 친분을 쌓도록 한다.
그런데 설마 미소가 그런 동년배들 아역처럼 겁을 먹을 줄이야.
그동안 워낙 연기를 잘해 온 탓에 아직 미소가 어리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미소가 오늘 막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른 아이라는 걸 말이다.
“어? 왜 이러지? 이게 아닌데.”
미소는 왜 집중이 깨졌는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지만 문제를 알았으니 괜찮다.
이제부터 해결하면 되니까.
난 우선 미소가 놀란 걸 달래 주기 위해 무릎을 꿇고 미소와 눈높이를 맞췄다.
“미소야. 삼촌. 미소한테 화낸 거 아냐~”
미소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요. 근데 조금······ 무서웠어요.”
“삼촌이 미안?”
난 그 말과 동시에 미소를 살짝 껴안았다.
그제야 미소가 배시시 웃는다.
“헤헤. 이제 괜찮아요.”
미소의 해맑은 표정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된다.
“근데 미소야. 엄마랑 연기할 때 엄마가 월영신(月影神) 역할 맡아서 연기 안 해줬어?”
“아뇨. 해봤어요!”
“그땐 어땠는데?”
“으음~ 엄마가 잘한다고 했어요. 아 맞다. 최지영 선생님도요.”
두 사람은 연기력이 상당하니 무서운 월영신을 연기했을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미소를 아끼는 두 사람이기도 하다.
눈이 좋은 미소는 그 마음을 읽지 못했을 리 없고.
그러니 미소가 실수하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도 두 사람 못지않게 미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연기력이 부족하다 보니 난 미소를 겁먹게 한 것이고.
이럴 땐 유대관계가 높은 진짜 연기자가 미소와 호흡을 맞춰줘야 한다.
‘어떻게 한다?’
현재 오디션은 취소하지 못하는 상황.
그렇다면 상대 배역에 손을 쓰는 수밖에.
난 고개를 돌려 연소희 팀장에게 물었다.
“연 팀장님. 오늘 오디션에 오는 사람들 리스트 혹시 갖고 있습니까?”
“아 예. 저도 좀 전에 받았는데 여기 있네요. 잠시만요.”
연소희 팀장이 오늘 아침에 받은 상대 배역 오디션 리스트 목록을 까톡으로 전해 준다.
[월영신(月影神) 오디션 명단]
-황진서 (65세 경력 60년 TK 엔터. 주연 배우 출신.) -박한중 (68세 경력 40년 에이스 엔터. 명품 조연 배우.) -최한수 (65세 경력 33년 예화 엔터. 조연 전문 배우.) ······.
명단을 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역 시절부터 무려 60년간 연기를 해온 황진서 배우가 명단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온다고?’
황진서는 40대 중반까지는 수많은 작품의 주연만을 하던 S급 스타고 나이가 든 후 조연이 된 배우였다.
그는 수준 높은 연기력과 멋진 발성 그리고 현장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는 개인 인성과 행실이 별로 좋지 않아 개인사가 복잡한 배우였다.
더군다나 아역 때부터 스타로만 살아온 사람이라 거만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는 아역들과의 연기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라는 거다.
아역들은 말도 잘 안 통하고 귀찮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황진서가 미소와 오디션을 함께 보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다만 원래는 오늘 오디션 명단에 없던 배우였기 때문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
“황진서 배우님은 원래 리스트에 없었잖습니까?”
“<연무(煙霧)>가 KBC에 편성받은 거 알고서 오늘 지원하셨대요. 그래서 첫 번째로 오디션을 볼 거라고 하시던데요?”
하필이면 황진서가 1번이라고?
그렇다면 에브리데이가 말해준 것처럼 미소가 연기를 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순간 연소희 팀장이 말한다.
“실장님. 혹시 미소가 황진서 배우님께 겁을 먹고 실수라도 할까 봐 그러세요?”
연소희 팀장도 미소가 배역 몰입에서 빠져나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예. 그게 걱정이네요.”
“음······ 그러면 차라리 제가 욕 좀 먹을 각오하고 미소를 병원에 데려갈까요?”
갑자기 미소가 체했다고 말한 뒤 월영신 연기를 단독 오디션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미소를 오디션에서 빼기 위한 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보다는 다른 배우를 데리고 와서 황진서보다 먼저 오디션을 보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도망친다 해도 어차피 결국에는 현장에서 만날 테니까요.”
“그럼 누가 좋을까요?”
“박상규 씨요.”
천의 얼굴 박상규.
최근 박상규의 아내 이사연은 양팔과 목을 움직일 정도로 호전되었다.
덕분에 유진이가 미소를 데리고 종종 병문안을 갔고 최근에는 박상규와는 꽤 친해져 있다.
게다가 박상규는 ‘천의 얼굴’이라 불릴 정도로 배역 소화력이 좋고 아역들과의 호흡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아~ 그분이라면 괜찮겠는데요.”
연소희 팀장 역시 <도플갱어>의 오디션 영상을 본 터라 단번에 오케이를 한다.
“예.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난 이 기회에 박상규를 월영신(月影神) 역에 캐스팅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곧장 폰을 들어 올렸다.
* * *
구로 희망병원에서 아내를 간병하면서 <도플갱어> 대본 연습을 하고 있던 박상규는 압구정까지 오려면 약간 시간이 걸릴 거라 답했다.
지금이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난 5층 오디션장에 있는 한유식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사람 한 명이 있으니 첫 번째로 오디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유식 대표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지만 오후 1시 정각으로 정해진 오디션 시간은 지켜달라고 주문한다.
난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때 기자들이 오디션장에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박상규가 올 때까지 최대한 기자들에게 호의적인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난 우선 미소와 함께 5층 오디션 장소로 향했다.
오디션 장소 뒤편에는 기자들이 서서 세팅하고 있다.
한유식 대표와 심사위원들은 잠깐 이야기를 하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우리를 본 기자들이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어? 정 실장.”
“미소야. 이쪽으로 좀 와볼래. 오디션 시작 전에 아저씨랑 인터뷰 좀 하자. 응?”
“이왕이면 정 실장도 같이!”
지난주 <전지적 관찰 시점>으로 방송을 타서 화제가 된 덕에 기자들은 내게도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었다.
난 최대한 기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미소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막 시작한 그때였다.
끼익.
오디션장의 뒷문이 열리며 황진서 배우가 나타났다.
한때 한국 연예계를 주름잡던 원로 배우 황진서는 비싼 골프웨어를 갖춰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피부도 65세치고는 관리를 잘해 50대의 나이로 보인다.
“이야~ 오디션장에 기자들도 오고. 어? 최 기자! 박 기자!”
황진서는 오자마자 우리의 인터뷰를 방해하며 끼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경력이 많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인터뷰할 때는 조심해 주는 게 예의다.
그러나 그는 오랜 연예계 생활 동안 자기가 갑이다 보니 안하무인으로 굴고 있다.
어차피 기자들과의 관계 때문에 인터뷰를 한 거라서 난 인터뷰를 중단하고 미소와 함께 한쪽으로 빠졌다.
시작부터 그와 충돌하는 모습을 기자들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방해한 황진서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 기자들. 다들 얼굴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황 선생님은 날이 갈수록 젊어지십니까?”
“하하하. 이 친구들이 오늘 아부가 왜 이렇게 심해? 끝나고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황진서가 껄껄대며 웃음을 짓는다.
“외모 경력 실력. 출연자 면면을 보니 오늘 월영신(月影神) 역의 주인공은 당연히 황 선생님이 되시겠는데요?”
“거. 사람하곤. 그거야 오디션을 해봐야 알지. 그래도 뭐 밖에 기다리고 있던 참가자들을 보니 떨어질 것 같진 않아 보이더군.”
황진서는 사진을 찍으며 연신 거만한 말투로 말한다.
하지만 황진서의 이름값 때문에 딱히 반발하는 기자들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연예올타임즈’의 배태주 기자가 미소를 향해 손짓한다.
“미소야. 이쪽으로 와서 황 선생님이랑 같이 한번 서볼래? 투 샷 좀 찍게.”
아무리 황진서가 유력하다고 해도 미리 투 샷을 찍는다는 건 제작사나 오디션 참석 배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투 샷을 찍는다는 건 이미 배역이 확정됐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구 마음대로?’
난 미소의 앞을 가리며 대답했다.
“투 샷은 오디션이 끝난 후에 찍으시죠. 아직 오디션이 시작도 안 했는데 그건 좀 아닌 듯합니다.”
“하하하. 난 그런 뜻이 아니고······.”
기자들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순간 황진서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허허허. 그래. 정 실장 말이 맞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황진서는 대범하고 호탕한 척 굴며 기자들을 진정시킨다.
“자자. 우리 기자분들. 이따가 보자고. 나도 오디션 준비해야지.”
“예. 선생님.”
황진서가 웃음을 짓고 기자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그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내 앞에 선 황진서는 인사나 하자며 먼저 손을 내미는 호탕함을 보였다.
“정 실장. 이야기 많이 들었어. 반가워.”
나 역시 인사를 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황진서가 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내뱉는다.
-매니저 새X가 주위에서 오냐오냐하니 보이는 게 없어? 이 새X가 어디서 나대?
연예계에서 60년이나 살아남은 인간이다 보니 능구렁이다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소로운 협박에 겁먹을 내가 아니다.
기자들이 우릴 보고 있기에 나 역시 웃으며 황진서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황진서 배우님. 요즘도 도박하십니까?
회귀 전 황진서는 탑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기에 난 그의 약점을 훤히 알고 있다.
-너 이 새X······ 그 말 어디서 들었어?
-보는 사람들 많으니까 욕 좀 그만하시죠? 계속 이러시면 저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연예계에서 60년을 버텨서 능구렁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만큼 약점도 많다는 소리였다.
황진서가 날 보며 부르르 떤다. 그러나 내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연예계 원로에 대한 예우는 여기까지.
지금부터 만에 하나 그가 미소를 자극한다면 난 절대로 넘어갈 생각 따윈 없었다.
그때였다.
오디션장의 앞문이 열리더니 잠시 나갔던 한유식 대표와 스태프들이 들어온다.
“오! 이게 누구야? 황 배우!”
황진서가 나와 맞잡은 손을 놓으며 두고 보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한유식 대표를 쳐다보는 순간 이미 그의 얼굴은 변검을 한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야~ 우리 한 대표. 얼굴 좋아진 것 좀 봐. KBC에서 전무로 지내던 때 보고 못 봤지? 아마? 하하하. 반가워!”
황진서가 이번에는 한유식 대표와 오늘 심사위원들과 친분을 다지기 시작한다.
오디션이 시작하기도 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짓을 꾸미든 뜻대로는 안 될 테니까 말이다.
* * *
현재 시각 12시 59분.
오디션 시작 1분 전이다.
황진서는 자기 오디션 순서가 뒤로 밀렸다고 하자 팔짱을 낀 채 오디션장 안에서 버티기 시작한다.
자기는 다음 순서니까 들어와 있어도 되지 않냐면서 말이다.
박상규를 압박하기 위해서인 걸 알아차렸지만 그를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한유식 대표가 시계를 보다 안 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정 실장. 계속 기다리기엔 좀······ 그렇지 않나?”
눈치 빠른 황진서가 대꾸한다.
“한 대표. 그냥 내가 먼저 할까? 순서야 무슨 상관이 있어? 그냥 먼저 온 순서대로 하면 되지.”
한유식 대표가 날 쳐다본다.
박상규를 2번으로 미루자는 눈치다.
조금 전 박상규에게 어디쯤인지 물었지만 전화가 닿지 않는 상황이다.
‘5분 만이요’라고 코리안 타임을 외치고 싶지만 황진서가 오디션장에 버티고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럼 다음으로 ‘거의 다 왔습니다’라고 중국집 안내 직원이 되어 말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끼익.
오디션장 뒷문이 열리며 박상규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헉헉헉. 아직······ 안 늦었죠?”
박상규는 남판규 팀장도 없이 혼자였다.
“상규 형님!”
박상규가 날 향해 씨익 웃는다.
“늦어서 미안. 차가 막혀서······ 골목 입구부터 뛰어왔어.”
압구정 회사 골목 도로 입구에 내려서 전력 질주로 뛰어왔다고 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5층까지 말이다.
그래서 내 전화도 못 받은 것이었다.
시계를 확인하자 아직 12시 59분이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다.
“대본은 보셨습니까?”
“오는 동안 봤어.”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박상규가 다시 한번 씨익 웃는다.
“뭘~ 대본 보니까 배역 좋던데? 이런 오디션은 기어서라도 와야지.”
박상규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재차 말한 뒤 황진서의 옆으로 간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박상규라고 합니다.”
황진서는 본체만체 고개를 슬쩍 피한다.
하지만 밑바닥을 구르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진상이란 진상은 다 겪어 본 사람이 바로 박상규다.
자기를 무시하는 일 정도야 아무렇지 않은 듯 그래도 태연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친다.
순간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대체 누구길래 황진서 같은 거물보다 먼저 오디션을 보는 거야?
-박상규라고 했지? 들어 본 사람 있어?
박상규가 주연을 맡은 <도플갱어>는 아직 제작 발표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들은 박상규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유식 대표가 손을 들어 올린다.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황진서 배우님은 다음 차례니까 뒤쪽으로 좀 빠져 주시고요.”
황진서가 뒤로 물러나고 미소가 앞으로 나선다.
그때 박상규가 오디션을 시작하기 전 내게 묻는다.
“미소가 어른이 화내는 걸 겁낸다고 했지?”
“예. 고성을 지르니까 배역 몰입에서 깨어나 버리더라고요. 애를 붙잡으려고 한 게 잘못인지 뭐가 잘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상규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씨익 웃는다.
“걱정하지 마. 아역 배우들 다루는 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할 자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천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상규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