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5화
695. 은기야 2
강은기가 교도관들의 보호를 받고선 남부교도소 철문 밖을 나온 순간 함께 나오던 검은 모자의 출소자가 가방에서 칼을 꺼내 강은기의 경동맥 부근으로 휘두른다.
그 순간 난 다급히 외쳤다.
“고개 숙여!!”
강은기는 다급한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냅다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서 데굴데굴 굴러 버렸다.
휘익~
강은기는 간신히 검은 모자가 휘두른 칼을 피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바닥을 구른 강은기가 자세를 일으키려는 순간 난 강은기에게 달려가며 다시 한번 외쳤다.
“달려!!”
강은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순간 헛손질한 검은 모자의 출소자도 균형을 찾고 강은기의 뒤를 따른다.
그런데 검은 모자의 발놀림이 빠른 탓에 점점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교도관들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보니 현재 두 사람에게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난 더욱 이를 악물고 강은기에게 달렸다.
그때였다.
어느덧 강은기의 뒤를 따라온 검은 모자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상황.
난 강은기를 향해 다시 한번 외쳤다.
“옆으로!!”
강은기가 대각선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강은기에게 가려졌던 놈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순간 난 오른손에 들고 있던 폰을 냅다 놈의 얼굴에다가 집어 던져버렸다.
팍.
내 폰이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큭.”
검은 모자가 칼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하곤 폰에 맞은 얼굴을 가린다.
짧은 찰나 난 강은기를 지나쳐 놈의 앞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난 놈의 턱으로 어퍼컷을 날려버렸다.
퍼억.
내 주먹을 턱에 맞은 검은 모자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하고 떠올라 버렸다.
뒤로 날아가던 그가 오른손에 든 칼을 떨어뜨린다.
쨍그랑.
그제야 난 발걸음을 멈출 수가 있었다.
“헉헉헉······.”
짧은 순간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낸 탓인지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하지만 안도할 틈도 없이 우선 검은 모자를 벗기고 상태를 확인했다.
“살아 있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힘 조절을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단 힘이 조금 더 들어가서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숨은 제대로 쉬고 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최영호 은행장과 이수찬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은기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 난 괜찮다. 조금 까진 것 빼고는?”
최영호 은행장 역시 먼저 강은기의 상태를 살핀다.
“다행이군.”
강은기는 최영호 은행장을 보고 묵례로써 인사를 대신한다.
이후 강은기는 옷을 툭툭 털며 혼잣말을 내뱉았다.
“어찌 된 게 조직 생활 할 때보다 손 씻은 후에 더 죽을 위기를 많이 겪나 모르겠네.”
옷을 다 턴 강은기는 내게 다가온다.
그런데 내 앞에 오자마자 갑작스레 버럭 화를 낸다.
“야. 정윤호. 그러다가 다치면······ 난 어쩌라고 그러냐? 어!”
“안 다쳤잖아.”
“그래도 좀! 다음부터는 좀!”
강은기의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녀석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처럼 할 게 뻔했다.
난 피식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넌 내가 위험하면 가만히 있을 거냐?”
“미쳤냐? 당장이라도 가서 구해······.”
“거봐.”
강은기가 할 말이 없어진 듯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제길······ 그래. 그건 그렇다 쳐. 근데 저 사람 맛이 간 거 같은데 이제 안심해도 되는 거 아니냐?”
“그렇지.”
강은기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난 그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나야 괜찮지. 넌?”
강은기가 까진 손을 뒤로 감추며 답한다.
“나도.”
우린 서로 그렇게 다시 한번 안부를 확인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찬찬히 살폈다.
30대 중반의 남자.
날카로운 인상에 앙상하게 마른 근육질의 몸이다.
그런데 망설임 없는 칼 놀림을 봐서는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다.
이런 타입은 입을 열어도 뭔가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이 낮았다.
단 혹시 몰랐기에 대흥 저축은행장인 최영호에게 검은 모자를 맡겼다.
그제야 교도관들이 교도소 안에서 달려 나온다.
호루라기를 불며 뒤늦게야 말이다.
삐이이익!
* * *
교도관들이 검은 모자를 포박하자 그제야 검은 모자가 정신을 차린다.
“너 미쳤어? 출소하자마자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누가 시켰어?”
교도관이 호통 치지만 검은 모자의 사내는 프로답게 입을 꾹 닫고 눈조차 감아 버렸다.
이어서 최영호 은행장이 검은 모자의 사내를 보고 회유와 협박을 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선 일절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이내 리버스 엔터에서 법무 담당을 하는 부행장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최영호 은행장은 부행장에게는 강은기가 대흥 저축은행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중요 투자처 대표라고 말해뒀다고 한다.
강은기가 최은태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차에서 내린 부행장은 오자마자 교도관들을 향해 항의를 시작했다.
“교도관들이 몸수색을 어떻게 했으면 출소하는 사람의 몸에서 칼이 나옵니까!!”
최영호 은행장도 곁에서 인상을 쓰며 거든다.
“이 정도면 안에서 내통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군요. 이거 뉴스에다가 까발려서 여기 당신들 전부 옷 벗길 겁니다 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저기······.”
교도관들이 봐달라며 싹싹 빌며 최대한 협조를 하겠다고 답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은기가 그 광경을 보며 내게 묻는다.
“근데 윤호야. 출소 시간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다들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왔어?”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라고. 그래서 최은태 회장님께 찾아가서 빨리 가보자고 했더니 급히 사람들을 보내주셨어.”
강은기는 최은태 회장과 달리 ‘촉이 좋다’는 내 말을 잘 믿는다.
본인의 어머니가 무당이었기 때문이다.
“XX. 어쩐지······ 그나저나 네가 안 왔으면······ 출소했다고 좋아하다가 꼼짝없이 죽었겠네.”
“그래. 그러니까 회장님한테도 좀 잘해드려.”
내 말에도 강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싫은 건 바로 싫다고 말할 성격인 강은기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즉 강은기로도 속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강은기는 그런 속내를 들킬까 봐 무안한지 내 폰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린다.
“그보단 윤호야. 폰은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조금 전 검은 모자에게 폰을 집어 던졌더니 액정 대부분이 나가버렸다.
상단부 일부만 나오고 그 아래는 터치조차 안 되면서 검게 변해 있는 것이다.
“제일 비싼 걸로 사줄게. 요즘 폰은 막 접히고 그런다며?”
“아니. 쓰던 게 좋아.”
“왜? 바꾸는 김에 제일 좋은 걸로 하지.”
“무거워.”
24시간 뛰어다녀야 하는 매니저에게 갤럭시카 노트 20 이상의 무게는 들고 다니기 어려웠다.
“알았어. 그럼 그걸로 사줄게.”
어쨌건 지난번에 이미 폰을 바꾼 경험이 있기에 ‘에브리데이’가 폰을 바꿔도 작동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난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때 교도관과 대화를 끝낸 최영호 은행장이 다가온다.
부은행장은 교도관 간부와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교도관들은 검은 모자의 사내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때 우리에게 온 최영호 은행장이 말했다.
“저 친구 일은 우리한테 맡겨 줘. 끝까지 파헤칠 테니까.”
아무 말 하지 않는 강은기를 대신해 내가 답했다.
“예.”
최영호 은행장은 강은기와 최은태 회장의 관계를 알기에 특별한 탓을 하지 않았다.
단 최영호 은행장은 리버스 엔터와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들의 표정이 살벌한 걸 보고 긴장을 풀기 위해 내게 슬쩍 농을 건다.
“아 그나저나······ 정 실장. 자네 주먹 함부로 쓰지 말게.”
“예?”
“내가 보니까 그건 흉기야 흉기. 어떻게 한 방에 사람을 저렇게 만드나 그래?”
“살살······ 쳤습니다. 살살.”
동생들이 저마다 혀를 내두르기 시작한다.
“와······. 대박······ 그게 살살이래······.”
“세게 쳤으면 죽었을 거야······.”
“사람을 공중으로 날려 놓고 살살이래······.”
다들 역시 정윤호라며 입을 모아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잉~
액정의 상단 부분 4cm 정도는 보였기에 에브리데이의 알림 메시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알림 : ‘오늘의 운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업데이트?
난 운세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오늘 일정을 확인했다.
그런데······.
[에브리데이 V12.2]
[날짜 : 2021년 3월 1일]
[오늘의 운세 : 큰 위기가 ■■■■■■■■■■■■■■■■■■■■■■■■■■■■■■■■]
중요한 내용이 나오는 부분의 액정이 완전히 나가버려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큰 위기가 뭐? 어쩌라고!’
큰 위기가 해소되었다는 건지 남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액정을 스크롤도 해보고 회전도 시켜 봤지만 도저히 가려진 내용을 볼 수가 없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어떤 내용일지 잠시 고민했지만 난 위기가 남았다는 것에 베팅했다.
강은기를 노리는 게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진 않아서였다.
일순간 폰을 빌려서 에브리데이를 설치하고 확인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데이터를 옮기는 데만 해도 시간이 드는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난 그 즉시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이고선 1차 목적지인 리버스 엔터에 빠르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은행장님. 당장 리버스 엔터로 가시죠.”
최영호 은행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지. 그러면 거기서 차를 갈아타고 명동으로 가겠나?”
“아뇨. 그건 도착하고 나서 상의하시죠.”
에브리데이의 운세가 사라져야지 다음 일정을 결정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최영호 은행장이 일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단 내 차를 타고 가지. 내 차가 제일 안전할 걸세. 방탄이거든.”
최영호 은행장이 타는 차는 후륜 구동인 벤츠 S클래스에 방탄 처리가 된 차다.
풀만 가드라는 더 상위 차량도 있지만 너무 급히 오느라 이차를 가지고 왔다.
풀만 가드보다 방호력은 살짝 떨어지지만 그래도 기동성은 이 차가 더 좋았다.
“알겠습니다. 대신 가는 길에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최영호 은행장의 비서가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긴급한 상황에선 내가 운전하는 게 좋다.
회귀 전 난 스피드 레이싱을 즐긴 터라 이런 상황에서는 비서보다 내가 운전 실력이 더 좋을 테니 말이다.
최영호 은행장이 비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비서가 내게 차 키를 건네준다.
난 차 키를 받고 운전석에 앉았다.
최영호 은행장이 조수석에 앉았고 비서가 강은기와 함께 뒤에 앉는다.
강은기가 불편할까 봐 피해 주는 것도 있고 주변을 보며 지시를 내리기 위함도 있었다.
“벨트 잘들 매십시오. 최대한 빨리 달릴 겁니다.”
현재 시각 오전 4시 44분.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 * *
교도소 앞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자 뒷자리의 강은기가 묻는다.
“윤호야. 왜 이렇게 서둘러?”
“조금 불안해서.”
최영호 은행장도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불안하긴 뭐가 불안해? 다 끝난 거······.”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최영호 은행장의 말이 끝나기 전 교도소 도로에서 나오자마자 차량 두 대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그다음 골목에서 두 대가 나와 달라붙었다.
총 네 대.
역시나 조심해야 한다는 선택지가 맞았다.
난 그 즉시 외쳤다.
“은행장님. 지금 오는 경호팀들. 사육신 공원으로 다들 집결하라고 해주십시오! 거기서 저놈들을 싹 다 잡아 배후를 캐야겠습니다.”
조금 전 깡마른 체구의 습격자 같은 프로 청부업자들은 입이 무겁다.
하지만 백미러에 보이는 조폭 같은 놈들이라면 오히려 입이 가벼울 가능성이 높았다.
내 부탁을 들은 최영호 은행장은 즉각 알겠다며 이곳저곳에다가 전화를 돌린다.
강은기 역시 이수찬에게 전화를 돌렸다.
리버스 엔터의 동생들도 경호를 위해 교도소 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커 너머로 최은태 회장이 보낸 경호원들과 리버스 엔터의 동생들이 모조리 사육신 공원으로 모인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순간 난 다시 한번 액셀을 밟았다.
부우웅~
갑작스럽게 가속하자 차량 네 대도 빠르게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놈들은 몰이사냥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놈들의 착각이었다.
그물을 쳐둔 곳으로 물고기를 유인하는 건 바로 이쪽이다.
‘몰이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지.’
* * *
끼익-.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공원 주차장에 급히 차를 대었다.
현재 시각 새벽 5시 15분.
아직 어둑어둑하다 보니 인적이 없다.
끼이이익!
어느새 뒤를 따라온 검은 승용차 4대가 우리 차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검은 마스크 대짜를 쓴 놈들이 야구 배트를 들고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는 사시미칼을 들고 있다.
놈들의 수는 12명.
아무튼 아직 우리 측의 동생들과 최영호 은행장의 식구들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
이수찬도 오던 도중 다른 동생들과 함께 오겠다며 근처 사거리에서 대기 중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
동생들이 오고 있으니 약간만 시간을 끌면 된다.
순간 방법이 떠올랐다.
“은행장님. 이 차 후륜이라고 하셨죠?”
“그렇네. 근데 그건 왜?”
“잠시만요?”
그 말과 동시에 난 ‘번아웃’이라는 스킬을 사용했다.
‘번아웃’이란 타이어의 접지력을 초과하는 출력이 전해졌을 때 타이어가 고속 회전하면서 연기를 뿜어내며 바퀴가 제자리 회전을 하는 걸 말한다.
난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번아웃’을 사용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액셀을 조절했다.
끼끼끼기기긱.
차가 들썩이며 차량의 바퀴가 제자리에서 회전하기 시작한다.
찢어질 듯한 소리와 동시에 뒷타이어에서 매캐한 냄새를 내는 흰색 연기가 잔뜩 뿜어 나온다.
당장이라도 차가 튀어 나갈 듯한 위협적인 분위기가 펼쳐지자 칼과 야구 배트를 지닌 조폭들이 당황해서 일제히 뒤로 물러난다.
“야! 물러나!”
“미친 새X! 차로······ 사람을 들이받으려고 해?”
“야. 야. 피해!!”
당황한 조폭들이 일제히 물러나 자기네들 차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간다.
그때 40대 중반의 인상 험악한 남자가 지시를 내린다.
“일단 다들 차에 올라타! 차로 들이박은 다음 끄집어낸다. 다들 움직여!”
놈들이 다들 차에 올라타려는 그때였다.
부우웅!
동생들과 최영호 은행장이 부른 경호원들의 차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됐군.’
하나둘 차들이 들어오더니 총 11대 정도의 차들이 일제히 조폭들의 퇴로를 막아 버렸다.
그래.
몰이사냥은 이렇게 하는 거지.
그제야 난 엔진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놈들이 뒷배를 말하지 않는다면 사육신의 곁에다가 고이 묻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대화를 먼저 해볼 생각이었다.
난 평화주의자니까.